통일 민들레를 피우며
김옥자 ( 주부 )
새벽예불 집전을 맡고 있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두세 번 정토회 불교대학이나 법회 때만 겨우 나왔다. 그때는 통일 돼지 담당이라는 이름만 걸쳐놓고 남편이 하는 일이 지금 어려운데 가계에 같이 나가서 남편을 도와야 되나 어쩌나 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법륜스님께서 오히려 매일 법당에 나와서 봉사하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의 갈등을 접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하며 천일 동안 일초도 쉼없이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고 기도하던 통일기도가 마지막 100일을 남겨두었을 때였다. 지방에서도 통일민들레라는 이름으로 통일의 열풍이 일게 되면서 그 담당을 맡게 되었다.
기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대구정토법당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주례회의에 안건으로 내놓았더니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먼저 백일동안 백명이 하루씩 이어가는 백일기도, 10월3일부터 23일까지 21일 릴레이 모금, 그 힘을 모아서 마지막 일주일동안 24시간 일초도 쉬지 않고 릴레이 기도를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먼저 “통일마당” 게시판을 만들고 백명이 기도하는 중에 들었던 소감을 적을 노트도 한 권 준비하면서 그렇게 통일 민들레는 싹을 튀웠다.
백명이 이어가야 하는 기도이므로 목탁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소감문들을 정토회 게시판 ‘왁자지껄’에 올리면서 통일기도의 열기는 더해간다. 미리 미리 기도자 명단을 받아놓지만 갑자기 펑크낼 때를 대비해서 매일 법당에 나오시는(자원활동가 포함)분들은 비밀 무기 마냥 아끼고 아껴두었다. 매일 정성스레 공양을 지어주시고 통일 기도에도 빠지지 않는 분, 매일 아침일찍 법당에 나와서 저녁까지 여러가지 일 다하시면서 일요일까지 법당에 나오셔서 통일 기도자 목탁 연습시켜주시고 통일 기도하시는 분, 또 그 외 여러분들 모두가 몸으로 행함을 보여주시는 정말로 대 보살님들이시다.
정토회 천일결사 3차 입재 때 다녀오면서 먹은 김밥의 부작용으로 60여명이 않아 누워있는 속에도 모두들 아픈 배를 움켜잡고 모금 통을 들고 나갔다.
“동포 어린이를 돕습니다. 5천원이면 한달을 살고 천원이면 일주일을 살고, 150원이면 하루를 살수 있습니다.” 외치면서 고개를 숙이며 마음을 숙이는 연습을 하였다. 외면하고 지나치는 사람들 제법 큰 액수를 통에 넣어주는 분 또 비난을 퍼붓는 분들을 보면서 올라오는 내 마음도 살펴보았다. 모금을 나가보면 힘이 생기고 희망이 보인다. 몇명이 나가서 1시간 남짖 모금을 하면 꽤 많은 액수가 모아지고 마음이 부자가 된다. 21일 동안 400만원이 넘는 액수를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것이 기적이 아닐까 하는 감동에 젖기도 한다.
일주일 동안 목탁소리가 24시간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릴레이 기도가 시작되었다.
자원활동가 7명이 하루 밤씩 철야를 하면서 동참한다. 어정쩡한 새벽시간에도 까치머리를 하시고 와서 기도하시는 분들, 밤새 장사하시고 눈 한번 못부치고 와서 기도하시는 분, 아침밥을 지어야할 시간에 통일 기도하시다가 아저씨가 오셔서 불려나가시는 분, 정말 모두 모두 온 몸과 온 정성과 온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모습이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한다.
그 가운데 부산을 첫 기점으로 울산, 마산을 거쳐 여기 대구까지 온 통일 순레단 “ 참회의 날”이다. “마음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둘이 아니다”가 오늘의 주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시민들을 바라보며 한배 한배 참회의 절을 한다.
외면하고 모른 척 하면서 남 탓 만 했습니다. 참회합니다.
그들이 굶는 것은 그들이 잘못해서 그렇다 했습니다. 참회합니다.
쌀이 북으로 간다했을 때 다 퍼준다고 비난했습니다. 참회합니다.
내가 옳다고 우기면서 주위의 인연들을 미워했습니다. 참회합니다.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이 남북의 정치인들 탓이라고만 했습니다. 참회합니다.
저의 이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나 먼저 참회합니다.
차소리, 사람들의 오고가는 소리, 그 시끄럽고 분주함 속에서 내 안에 평화를 찾아 명상을 한다. 그 어느 장소에서건 조건에 관계없이 내 마음의 고요함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순레단을 보내고 일주일 릴레이 기도도 회향하면서 서로 서로에게 기쁨의 박수를 보내는 모습에 정말 눈물이 핑도는 가슴 벅찬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백일을 달려서 마지막 회향식장으로 향하였다.
백명의 기도자들 중 마지막 기도자로 남으신 손창원 님, 그리고 또 한 대의 김광선님 모두 함께 통일 발원문을 읽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목청것 부르며 그렇게 70여명의 가슴속에 통일 염원을 가득 싫은 버스 두 대가 서울로 향 하였다.
첫 시간이 토론이라는 말에 졸리겠구나 하는 염려는 사라지고 한 말씀 한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어느 분이던가 “굶는 사람들 밥좀 주자는데” 거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하시는 말씀이 내 가슴에 그대로 꼿힌다. 한오백년에 서려나오는 그 춤사위가 눈물나게 한다.
회향식을 마치고 돌아온 이튼날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집전을 하기로 하고 10여명이 마지막 정성을 모아 3천배 입재를 한다. 그런데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그동안의 많은 그림들이 지나간다. 야간반의 십여 분도 함께 하자는 정성으로 늦은 저녁 시간이지만 1000배 정진을 하셨다.
이튼날 12시에 맞추어 회향을 하고 서로 서로에게 감사의 삼배를 올리면서 가슴 뭉클함을 박수로 표현한다. 감사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이제 조금은 한가롭기에 3차 백일기도 과제였던 통일 실천 체크지를 들여다 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면서 작은 돈의 소중함을 알았고, 또 저금통을 나누어주면서 작은 돈이 이렇게 크게 잘 쓰여진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한끼 굶기를 해보면서 내가 혀끝의 맛에 탐닉해서 너무 많이 먹는 것이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참회가 되고, 적게 먹음도 힘든데 굶는 그 고통을 어쩌누, 내 관심밖이였었던 통일 그러나 지금은 TV나 신문 그어디에서건 통일이란 단어가 나오면 시선이 쏠리고 마음이 가는 나를 보면서 살짝 미소 짖는다.
상대를 탓하고 또는 경쟁하면서 쌓아놓았던 찌꺼기들을 기도로서 녹일 수 있었고 이렇게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는 인연에 또 훌륭한 스승님께서 계셔 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사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법당에 일 한가지를 내가 담당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백일을 해오면서 그 해왔던 과정이 행복이었고 기쁨 이였음을 알게되고 내 주위에 인연들과 더불어 살수 있음이 좋다.
또 감사한 것은 이제 몇 시간후인 오늘밤에 인도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다. 이렇게 갈 수 있도록 해주신 우리 집의 두 부처님(남편과 아들) 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부처님이 살으셨던 곳에 다가가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와 주위를 기분 좋게 하는 연이 되기를 발원해본다.
김옥자님은 대구 정토법당에서 통일담당자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한 24시간 천일정진’을 함께 해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