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중앙 검찰소 전국 검열 전격 실시
5월이 시작되자 중앙 검찰소 검열성원들이 전국 주요 도시에 전격 파견되었다. 전국 단위에서 중앙 검찰소 검열이 나간 것은 1980년대 이래 근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간혹 일개 도 차원에서 중앙 검찰소 검열이 진행된 적은 몇 차례 있었으나 전국 단위에서 진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최근 국가 보위부 검열과 보안서 검열, 중앙당 조직부 검열, 호위사령부 검열 등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이뤄진 검열이다.
이번 검열의 주요 대상은 보위부와 보안서, 재판소, 도당, 시당, 인민위원회 등 바로 각 단위 책임자들 및 여맹 일꾼 전체였다. 이른바 당정 책임일꾼들에 대한 한 차례 폭풍과도 같은 검열이다. 이번 검열은 검열 성원들이 예고 없이 지역에 내려가서 중앙 검열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한 뒤 바로 시작됐다. 중앙 검찰 검열은 이른바 자료를 장악한 뒤 김 위원장에게 보고 올리는 것이 중점 사업이다. 문건 료해 사업이기 때문에 시일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비준을 받아 처벌하는 것은 해당 보위부와 보안서 등에서 하게 되어있다.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은 현 시기 어려운 환경에서 동요하고 변질되어 가는 당정간부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고민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한다.
검열에 간부들 긴장 바짝
해외 주재 대표들을 비롯해 국내 각 도, 시, 군 당정간부들 역시 중앙 검찰소 검열 소식에 모두들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속 계속되는 생활난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 중에 털면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들을 하고 있으나, 고위 간부들부터 일반 주민들까지 바싹 긴장했다. 국경연선지역의 경우 전문 도강자들과 전과자들은 대피할 곳을 찾아 헤매느라 분주했고 행방불명자들과 탈북자 가족들은 근심 속에 조마조마해 하며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막상 검열이 시작되자 상황은 사뭇 다르게 전개됐다.
검열 성원, 탈북자 가정 특별 방문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 성원들은 조사를 시작하면서 탈북자 가정을 찾아 집집마다 특별 방문했다. 한 때 긴장했던 탈북자 가족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애초의 우려와 달리 이들은 탈북자 가족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간부들의 비리를 물어보기도 했다. 검찰소 성원들이 앞장서 다니는 바람에 지역 보안서나 보위부는 물론 인민반장, 여맹 간부들도 꼼짝 못하고 따라다녔다. 검찰 성원들은 “이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또 도망친다. 이게 다 관심이 부족해서다”라며 지역 간부들을 훈시했다.
그러는 한편 탈북자 가족에게는 뭐가 부족한지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생활을 돌볼 데 대하여’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집 떠난 가족들 소식이 있는가? 나라가 어려워 먹고살자고 그런 것이니 죄는 아니다. 인민생활이 어려운 게 나라살림이 어렵기도 하지만, 간부들이 위에서 제대로 못한 것도 있다”며 탈북자 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검찰 성원이 앞에서 지시하면 보위부, 보안서, 시당, 여맹, 인민반 간부들이 뒤따라 다니며 라면, 음료수, 양말, 옷가지, 약품 등을 최소 한 가지씩이라도 지급해주었다. 또 탈북자 가족들이 쌀도 떨어지고 농사도 짓기 어렵다고 말하면 해결해주라고 그 자리에서 지시했다. 이를 시당에서 받아 바로 처리하도록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간부들은 이번 검열이 무서워 벌벌 떨었던데 반해 주민들은 이런 검열이라면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전과 달리 인민의 어려움을 듣고 현장에서 물자를 공급해주는 이런 모습에 주민들은 간부들의 자세가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한 간부는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에 간부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다. 그런데 주민들에게는 애로 사항을 들어주고 아픈 데를 어루만져주려고 했다. 이는 국경연선지역의 지속적인 탈북 방지를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 경제활동
중앙 검찰소 전국 검열 전격 실시
5월이 시작되자 중앙 검찰소 검열성원들이 전국 주요 도시에 전격 파견되었다. 전국 단위에서 중앙 검찰소 검열이 나간 것은 1980년대 이래 근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간혹 일개 도 차원에서 중앙 검찰소 검열이 진행된 적은 몇 차례 있었으나 전국 단위에서 진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최근 국가 보위부 검열과 보안서 검열, 중앙당 조직부 검열, 호위사령부 검열 등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이뤄진 검열이다.
이번 검열의 주요 대상은 보위부와 보안서, 재판소, 도당, 시당, 인민위원회 등 바로 각 단위 책임자들 및 여맹 일꾼 전체였다. 이른바 당정 책임일꾼들에 대한 한 차례 폭풍과도 같은 검열이다. 이번 검열은 검열 성원들이 예고 없이 지역에 내려가서 중앙 검열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한 뒤 바로 시작됐다. 중앙 검찰 검열은 이른바 자료를 장악한 뒤 김 위원장에게 보고 올리는 것이 중점 사업이다. 문건 료해 사업이기 때문에 시일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비준을 받아 처벌하는 것은 해당 보위부와 보안서 등에서 하게 되어있다.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은 현 시기 어려운 환경에서 동요하고 변질되어 가는 당정간부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고민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한다.
검열에 간부들 긴장 바짝
해외 주재 대표들을 비롯해 국내 각 도, 시, 군 당정간부들 역시 중앙 검찰소 검열 소식에 모두들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속 계속되는 생활난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 중에 털면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들을 하고 있으나, 고위 간부들부터 일반 주민들까지 바싹 긴장했다. 국경연선지역의 경우 전문 도강자들과 전과자들은 대피할 곳을 찾아 헤매느라 분주했고 행방불명자들과 탈북자 가족들은 근심 속에 조마조마해 하며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막상 검열이 시작되자 상황은 사뭇 다르게 전개됐다.
검열 성원, 탈북자 가정 특별 방문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 성원들은 조사를 시작하면서 탈북자 가정을 찾아 집집마다 특별 방문했다. 한 때 긴장했던 탈북자 가족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애초의 우려와 달리 이들은 탈북자 가족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간부들의 비리를 물어보기도 했다. 검찰소 성원들이 앞장서 다니는 바람에 지역 보안서나 보위부는 물론 인민반장, 여맹 간부들도 꼼짝 못하고 따라다녔다. 검찰 성원들은 “이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또 도망친다. 이게 다 관심이 부족해서다”라며 지역 간부들을 훈시했다.
그러는 한편 탈북자 가족에게는 뭐가 부족한지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생활을 돌볼 데 대하여’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집 떠난 가족들 소식이 있는가? 나라가 어려워 먹고살자고 그런 것이니 죄는 아니다. 인민생활이 어려운 게 나라살림이 어렵기도 하지만, 간부들이 위에서 제대로 못한 것도 있다”며 탈북자 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검찰 성원이 앞에서 지시하면 보위부, 보안서, 시당, 여맹, 인민반 간부들이 뒤따라 다니며 라면, 음료수, 양말, 옷가지, 약품 등을 최소 한 가지씩이라도 지급해주었다. 또 탈북자 가족들이 쌀도 떨어지고 농사도 짓기 어렵다고 말하면 해결해주라고 그 자리에서 지시했다. 이를 시당에서 받아 바로 처리하도록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간부들은 이번 검열이 무서워 벌벌 떨었던데 반해 주민들은 이런 검열이라면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전과 달리 인민의 어려움을 듣고 현장에서 물자를 공급해주는 이런 모습에 주민들은 간부들의 자세가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한 간부는 “이번 중앙 검찰소 검열에 간부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다. 그런데 주민들에게는 애로 사항을 들어주고 아픈 데를 어루만져주려고 했다. 이는 국경연선지역의 지속적인 탈북 방지를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 대표부, 자녀 속속 귀환시켜
이번 중앙 검찰소의 검열 여파가 해외 대표부에까지 미치고 있다. 해외 주재 국가 대표들은 검열 통지를 전해 듣자마자 5세 이하의 자녀들을 속속 귀환시키고 있다. 5월 1일부터 6일 사이에 열의 아홉은 모두 돌려보냈다. 그간 본국의 눈치를 살피며 자녀 귀환에 소극적이었던 대표부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바로 검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간부들이 대체로 가장 무서워하는 검열 중 하나가 바로 이 중앙 검찰소의 검열이다. 일단 걸리면 김 위원장의 방침을 받아 무조건 집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대표부들도 이번 문건 료해 사업에 걸릴까 봐 서둘러 지시를 따랐다.
7월 1일 식량 배급 재개 소문
7월 1일부터 식량이 다시 배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간에도 3월 20일 이후에는 외부에서 식량이 곧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배급 소문이 다시 등장한 것은 북한 당국의 조처가 일정하게 효력을 발휘한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 식량 보유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북한 당국은 과감하게 군축미와 2호미를 방출했고, 시장 내 쌀 판매 단속을 강화했다. 게다가 개인의 소토지 농사를 금지시키고, 각 단위의 6개월 경작지를 협동농장으로 회수했다. 한국의 쌀 지원이 확실한 가운데 국제적 지원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회복된 때문이다.
소식 빠른 일부 쌀 장사꾼들은 남조선에서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어보는 정도이다. 하위 간부들이나 주민들은 6자 회담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국과의 거래에서도 쌀이 금방 들어온다고 하고, 미국이 무릎 꿇었다고 하니 그러나 보다 생각한다. 당국에서도 의사나 교사들에게는 무조건 밭농사를 하지 말라, 곧 다 주겠다, 너희들의 생활은 100% 보장하겠다고 말한다. 그동안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밭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출근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고 하면서 “본업에 전념하라, 교육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주민들은 7월부터 정상 배급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쌀 가격 소폭 상승세
전국적으로 쌀 가격이 지난달에 비해 50-80원씩, 많게는 100원씩 오르고 있다. 지난 달 전국 주요 도시의 쌀 가격은 800원대에 고정되었는데 이번 달 들어 일제히 850원대로, 평양은 900원대까지 올랐다. 지역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농사짓는 지역은 850-860원대, 기타 지역은 900원대에 팔린다. 쌀 생산이 안 되는 큰 도시들에서 100원 가량씩 올랐다.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주요 도시 순방과 명절 공급 일부에 따른 식량 공급, 2호미와 군축미 방출 등 잇따라 쌀이 약간씩 풀렸었다. 실질적인 쌀 구매력이 감소한 상태에서 약 간량의 쌀이 풀려 대체로 800원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가격 상승은 국내 보유량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5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의 쌀 지원이 가격 변동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여성/어린이/교육
5월 1일 회령 공개재판 실시
지난 5월 1일, 회령 로동자 문화회관에서는 회령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공개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 대상자는 불법월경자 4명과 인신매매자 5명, 총 9명이었다. 불법월경자 4명은 3-5년의 교화형을, 인신매매자 5명은 교화형 10년을 각각 선고 받았다. 이번 공판에서 금후 인신매매자들은 모두 최고형인 사형에 처하겠다고 공포됐다.
불법도강 감시 카메라 설치
국경 연선 지역에서는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5월 5일부터 강연선 주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평양 국가보위부에서 내려 보낸 것들로, 탈북자가 많은 회령과 새별, 무산 등지에 우선 10일까지 설치하고 다른 지역 역시 가능한 빨리 완료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온성 등지에는 이전에도 카메라가 일부 설치되었으나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카메라를 더 촘촘히 설치했다. 또한 강 주변의 주요 초소들과 통신이 가능한 구역들에 전화 교란기(전파 교란기)들을 장치하는데 땅 속에 까벨선(주. 케이블선)을 묻느라 강 주변에 있는 주민들이 일군 뙈기밭을 모두 파헤쳐놓아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