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지금은 인도적 위기 해결 위해 중지 모을 때
요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문제가 연일 언론에 주요하게 보도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문제가 북한의 체제 변화에 중요한 변수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수의 언론들은 마치 경쟁하듯 갖가지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며 북한의 급변 사태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WFP(세계식량계획)와 FAO(식량농업기구)가 공동 실시한 북한의 식량 상황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이번 보고서는 그동안 북한 식량난의 실태와 심각성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두 끼를 겨우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보고서의 내용은 그동안 ‘오늘의 북한소식’을 통해 언급된 주민들의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좋은벗들에서 식량난 악화의 원인으로 지적했던 수해 피해, 외부의 지원 중단, 그리고 중국의 식량 수출 통제 등을 WFP 보고서 역시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게다가 식량 부족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구매력을 감소시켰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뙈기밭 경작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야생식물 채집(풀죽을 끓이기 위해 풀을 뜯으러 다니는 행위)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북한 사회를 여러 지역에서 다방면으로 고찰해 온 좋은벗들은 이번 공동 조사 보고서가 북한 사회의 현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북한 식량난의 실태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실 정보가 통제된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외부로 알리는데 많은 반론이 있어왔다. 일부 민간단체가 식량난을 과장하고 있고, 곡물 가격 상승은 북한 정부의 시장 통제 정책의 일시적 결과일 뿐이라는 것, 식량이 부족하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 또는 현재의 식량 부족은 북한 정부가 기근의 정치로 사회 통제를 하는 일환이라는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됐다. 그렇지만 이제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은 줄이고 2천만 북한주민들에게 맞닥뜨려진 인도적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우리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과 그로 인해 야기될 북한 사회의 급변 사태라는 문제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설혹 급변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당국자 간 대화 단절로 인한 협상통로의 부재, 인도적 지원의 중단, 민간교류 위축, 경협사업의 퇴보 등 무엇 하나 남한 정부가 통일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도해나갈 수 있는 입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큰 문제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당면한 고통을 덜어주어 민심을 사로잡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통일로 가기 위해 한국 정부가 가장 적은 비용과 뚜렷한 명분으로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 정부는 조건 없는 대북 식량 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당면한 고통을 해결하고, 북한 정부와의 대화를 재개하여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개입하고,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회복해야 한다. 식량난으로 인해 다수 주민의 희생이 계속되는 작금의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북한의 급변 사태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