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북미 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기대하며
미국이 20여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핵 문제의 원칙을 미국 스스로 파기했다느니, 미국이 지나치게 양보했다느니, 북한의 벼랑 끝 외교전술에 미국이 굴복했다느니 하는 비난 여론도 거세다. 이란 등의 국가에 나쁜 외교적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우려도 있고 한반도 문제에서 남한 정부의 영향력 상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사실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그리고 북?미간에 합의한 대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합의사항을 이행한 것일 뿐이다. 미국의 지나친 양보도, 또한 미국의 굴복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하거나 아전인수 격으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북미 양국은 지난 3년 동안 때론 살얼음 위를 걷듯이, 때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을 걷듯이 온갖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것만으로도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누가 승리했고 누가 굴복했다는 시각은 편협한 지적일 뿐이다.
전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색적인 폭언으로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던 양국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만도 큰 진전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은 물론 미 정부 일각의 물리력을 동원한 정권 교체 발언조차도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고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그랬던 양국이 오늘까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 가고 있는 것이다. 상호 적대적인 대결 구도로는 결코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음에 대한 자각이 오늘의 합의를 만들어 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양국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데 큰 진전이라 할만하다.
아직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북미 양국은 보다 성숙한 자세로 비핵화, 평화정착, 관계정상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아래,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합의된 사항을 하나둘씩 이행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문제는 북핵 만이 아니라 식량난 해결, 대북 지원, 교류 협력, 인권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새로운 북미 관계의 전환에 이어 국제사회 무대에 등장하게 될 북한이 과연 어떤 행보로 나올 것인지,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며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국 내 산적한 문제들의 모든 책임을 외부에 전가해왔다. 이제 공은 북한에게로 넘어갔다. 북한은 좀 더 유연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자세로 국제 사회에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