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군량미 확보 위해 농민 희생 강요해선 안 된다
가을 수확이 한창인 북한 농촌에서 벌써부터 내년 식량 부족을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식량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속에 군량미와 농민들의 분배 몫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군량미를 올리자니 농민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고, 농민들의 분배 몫을 최소한이나마 확보하자니 가뜩이나 부족한 군량미를 더 줄여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중앙당에서는 군량미와 비축미 부족의 이유를 들어 농민 분배량을 3~5개월 분량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군량미로 확보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이 같은 방침은 힘없는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 매우 우려스럽다. 실례로 함주군의 농장 간부는 실적 경쟁이라도 하듯 필요 이상으로 군량미를 바치겠다고 해 농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작년에도 전국의 많은 농장들이 농민들에게 분배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평안북도 박천군에서는 겨우 2개월 분량만 분배한 농장들이 많았다. 그 여파로 올 봄 파종기에 농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농사일에 나서지 못했다. 농민들은 농사일 대신 산으로 들로 풀을 뜯으러 다니며 봄부터 풀죽으로 연명해왔다. 급기야 황해도의 여러 농장에서는 아사자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농민들은 그 어느 계층보다 심각한 식량난 속에 가까스로 생존해왔다.
그런데 이번 중앙당의 방침은 북한 농민들에게 또 다시 최소 3개월 분량으로 1년을 살아남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풀죽으로 고통스럽게 연명해온 농민들에게 내년에도 이렇게 살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일부 농장 간부들이 군량미를 거두라는 지시가 내려지기 전에 미리 농민들에게 분배한 것은 이런 염려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당의 방침에 반대하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농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당의 방침이 오히려 군민일치의 미풍양속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군량미는 식량 여유분이 생기면 수시로 보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을에 1년 치의 식량을 분배받아야 하는 농민들은 이 시기를 놓치면 식량을 보충할 기회가 없다. 또 대부분 농민들은 장사에 나서기도 어렵고, 교통이 불편하고 마땅한 운송수단이 없어 외부의 식량 지원 접근도도 낮은 편이다.
물론 군부대의 식량 상황도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잘 안다. 그러나 농촌 세대의 식량을 우선 해결해야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먹는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 올 봄처럼 농민들이 굶주림에 농사일을 하지 못하면 내년 수확기 식량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식량의 절대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식량 수입량을 늘리는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