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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지(노원 좋은이웃 나들이)

노원지회 좋은 이웃의 날 , 계곡 나들이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중지시켰습니다.
“일단 멈춤!”이란 노란 불이 수 년간 켜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 되었습니다.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코로나-19가 종식 되었습니다.
3년 4개월만에 켜진 초록불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활동하고 있는 노원지회 좋은 벗들 봉사자 수가 단 3명 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봉사자를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해, 마침내 정기 봉사자 11분을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코로나 -19 이후 좋은 벗들 활동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좋은벗들은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호빵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듯, 새터민 일상 방문을 통해 서로를 더 가깝게 알아가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활동으로 안타깝게 멀어졌던 이웃과 소식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모두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먼저, 새터민과 봉사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물놀이 소풍을 계획 했습니다.
일정을 정하고, 참석 가능한 새터민과 봉사자를 파악하고, 필요한 준비물을 점검한 후, 일감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설레는 맘으로 소풍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소풍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하필 장마로 비가 매일 같이 내렸습니다.
하루하루 일기 예보를 시시때때로 살피며 애태우고, 간절한 마음에 ‘비 그치게 해달라’ 속으로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소풍 하루 전, 물놀이 답사를 위해 계곡에 가보니 수량도 적당했고, 안전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계곡 안전을 관리하시는 분이
“내일 비 많이 오면, 여기 폐쇄합니다. 비가 안 오면 새벽부터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러 온답니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일도 비가 안 오길, 비가 안 오면 제일 먼저 이 자리를 차지하리라, 다리 밑에 돗자리를 쫙 깔아놓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소풍 당일인 7월 16일, 우리의 간절한 바람대로 장마가 멈추었습니다.
썰어놓은 수박과 체리, 돗자리와 조그만 텐트를 챙겨들고 아침 7시 40분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올레~~~~!!!
돗자리를 펴며 흥얼흥얼 노래가 나왔습니다.

 10시쯤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 봉사자들과 새터민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12시에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음식을 꺼내놓고 보니 저절로 손이 마구 갔습니다.
며칠 전, 한 어머니와의 대화 중, 준비할 음식은 과일과 김밥, 과자, 음료라고 했더니,
“선상님, 그걸 누구 코에 붙이려고 그럽니까?
그래도 놀러 가면 먹을 만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음식 좀 해갈게요.”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일 펼쳐놓은 음식은 북한식 두부밥, 시래기를 넣은 북한식 순대, 고기밥, 그리고 떡볶이!!.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느라 아무리 아파도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와 장애아 둘을 키우느라 힘겨운 어머니가 이른 아침 준비해 온,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음식을 보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처음 먹어보는 북한식 음식들을 아구아구 아귀처럼 먹습니다.
다행히 목에서 불이 나거나 목구멍에서 막히지 않고 술술 잘 넘어갑니다.
입에서 절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집니다.

 아이들은 조금 먹더니 놀기 시작합니다.
가장 젊은 새터민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줍니다.
엄마가 더 신나게 노는 것 같습니다.
튜브를 타고 물살을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계곡물과 함께 흐릅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동전을 얕은 물속 모래에 감췄습니다.
“많이 찾는 사람이 1등이야. 상품은 없어.”
상품이 없어도 보물찾기처럼 설레는 일이었는지 열심, 또 열심, 아이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옵니다.
한 아이는 보물찾기든 뭐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물속에서 신이 나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손뼉을 치고 놀았습니다.
평소 어떻게 그 많은 에너지를 다 풀었 냈을까요?
놀라울만치 에너자이저입니다.

 그 시간,
엄마들은 북한에서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한 이야기를 봉사자들에게 들려줍니다.
사춘기 자식과의 소통의 어려움도 이야기합니다.
봉사자들은 처음 듣는 생생한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때로, 슬쩍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계곡 가까이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들어서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물소리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맑고 가볍게 들렸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맘껏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서둘러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짐을 정리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 원칙을 깨고 추위에 벌벌 떠는 아이들을 위해 컵라면을 먹였습니다.
추위엔 컵라면이 최고라며 합리화도 했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듯 그렇게 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 이내 헤어질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젊은 새터민 엄마는
“선상님, 오늘 저는 스트레스가 왕창 풀렸습니다. 이런 기회를 자주 가지면 안 됩니까? 우리끼리도 잘 못 모이는데, 이렇게 함께 모이니 좋습니다.”
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미얀마로……. 먼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 오신 분들입니다.
그 험한 길을 헤쳐 왔는데 여전히 힘든 노동을 이어가며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마다 처한 삶의 무게로, 계곡 물소리 조차 쉽사리 들을 수 없는 분들입니다.
언제든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려 드리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계절마다 갈 수는 있는데요, 계획을 해야 해요.”
“선상님, 꼭 간다고 약속해 주세요.”
“정말, 그렇게 해주세요.”
“아, 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어머니들의 강력한 요구에 떠밀려 한 대답에 와와! 새터민 엄마들과 봉사자들까지 열렬히 박수를 칩니다.

 새터민 나들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직접 느끼게 해 줍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내놓는 장이기도 합니다.
봉사자는 자신이 방문하는 새터민 가정만이 아니라, 다른 가정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됩니다.
함께한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서로를 뜨겁게 응원하는 작지만 힘찬 통일축제의 장이 됩니다.
우리 모두의 통일을 만들어가는 새터민 나들이는 들인 품이 몇 백 배의 기쁨과 보람으로 되돌아오는, 가슴 저 밑에서부터 열기가 솟구쳐 뜨겁고 웅장해지는 가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