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활동가 박월해
송나라 철종을 뒤로 하고 가궁궐터를 지나 산정상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니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나타났습니다. ‘정족산사고’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사고는 항시 문이 잠겨 있어서 담장 밖에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창고 건물이라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역사 기행 당일 전등사에서는 불교 미술전이 개최되었고, 사고 안에 다양한 불교 미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정족산사고 출입문 앞 층계를 올라가서 전등사를 돌아보면 문 앞에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정속산이 동쪽 바다를 향해 골짜기를 열어 보이며 멀리 염하와 초지대교가 조망됩니다. 풍경은 정족산의 쭉 뻗은 소나무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가 됩니다.
풍경을 감상한 후에 정족산사고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정족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산성을 함께 오르기 시작했니다. 정족산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길이는 2.3km에 이르며, 높이는 2.3~5.3m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세 명의 아들(부소, 부우, 부여)에게 한봉우리씩 맡아 성을 쌓게 해서 삼랑성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정속산성 능선은 고즈넉합니다. 악천우는 아니었기 때문에 발아래로 멀리 강화읍내 대한성공회 강화성당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강희석님으로부터 강화읍내 역사지리에 대해 안내를 듣고 산성 동문을 향해 내려왔습니다.
정족산성 동문 안에는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맞이하여 맹렬히 싸운 양헌수 장군비가 있었습니다. 병인양요 7년 뒤 그의 전공을 기리면서 강화군민들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비의 앞면에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우게 된 배경이 자세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동문 주차장에서 버스에 올라 마지막 역사기행 장소인 광성보에 도착하자 비는 더욱 거세졌고 원래 옥외에서 점심공양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변경하여 차내에서 간단하게 공양을 마무리 하고 기상상태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1시간 정도 경과하자 비는 보슬비로 바뀌어 예정된 일정을 다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강화도에는 5진, 7보, 54돈대가 있습니다. 광성보는 7개의 보 중 하나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설치한 군 지휘부라 할 수 있습니다. 1618년(광해군 10년) 고려때 외성을 보수하여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가 배속되었으며 영조 21년에 성문성을 축성하였는데 안해루라 하였습니다. 고종 때 용두돈대가 추가로 축성되었고, 광성보는 강화해협에서도 가장 좁은 목에 해당되는 곳이므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포격전이 가장 치열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를 지나면서 성문인 안해루와 바로 우측에 자리한 광성돈대를 살펴 보았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우산과 우의를 미리 준비한 탓에 역사기행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두돈대로 향하는 탐방로를 따라 들어가면 쌍충비각, 무명용사비, 신미순의총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신미순의총을 들렀습니다. 쌍충비각 맞은편 산책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871년 4월 23일 광성진에서 벌어진 미해군 육전대와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입니다. 당시 군사를 이끌던 어재연 장군과 동생 어재순 군관 사졸 등 53명의 전사자 중 어재현 형제는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였고, 신원을 알 수 없는나머지 51명의 시신은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350명이 전투에 참가하였고 포로가 20명인데 시신이 51구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상을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로 여겨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 출신으로 용맹함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미 해군은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전투에서 이겼으나 아무도 이 전투를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 전투를 기억하고자 하지 않았다. 1871년 조선 원정은 미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실패전이다. 우리는 물리전에서 이겼으나 정신전에서 졌다.”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온 몸을 던져서 나라를 지키려 했던 민족의 호국정신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 함께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어서 맞은편 쌍충비와 무명용사비 앞에서 또 한번 묵념하고 용두돈대로 향했습니다. 강화도 54돈대 중에서 가장 늦게 설치된 돈대로 모양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용두돈대라 합니다.
바다를 향해서 머리를 쑥 내민 형상인데 돌출된 좁은 지형을 따라 성벽을 설치했기 때문에 돈대까지 이어지는 매우 좁은 통로를 지나 바다로 돌출된 석벽 위에 둥글게 축성된 용두돈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미양요 때 프랑스군의 침입을 최전방에서 방어했는데 돈대 안에는 좁은 돈대 내부에 어울리지 않게 큰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조선군의 영혼을 기리는 비도 아니고 정화기념비라니? 기념비 앞면에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라고 하니 조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역사 유적지는 정화할 대상이 아니라 복원하고 보존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염하가 용두돈대를 굽이치고 돌아나가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좁은 이곳 바다를 손돌목이라 부릅니다. 빙하가 이동하며 만든 해협 바닥의 지형적 요인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게 되는 시간에는 물결이 거대한 용트림을 하며 유속이 빨라지고 들쑥날쑥한 암초에 부서지는 물소리가 우는 소리 같고 홍수를 만난 강물 같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만날 수 없는 시간대에 용두돈대에 서 있게 된 것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역사기행 일정은 이곳 용두돈대를 끝으로 마무리하면서 날씨는 화창한 가을 날씨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서양의 신식 전함들을 끌고 와서 평화적으로 교역에 응하든지, 교역을 거부하고 전쟁을 감수하든지 양자택일을 일본에 요구하던 당시 에도 막부의 선택은 개항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나중에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고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시아를 제패하고 태평양 패권까지 넘보는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시대 조선의 선택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순간 손돌목을 굽이치는 염하가 소리내어 울부짖는 듯 했습니다.
“지금 너희들은 나라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역시 기행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참가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비가 내리다 활짝 개이는 다채로운 날씨 속에 부천지회 강화도 역사기행을 통해 강희석님과 박월해님의 해설로 몇 백 년 전 우리나라의 상황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나누었습니다. 참석한 회원들은 부여된 역사기행 스탭역할을 수처작주의 마음으로 참여했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순국선열과 나라를 위해 몸바치신 분들 덕분에 지금 내가 있을 수 있음에 고마운 마음을 느꼈고 오프라인으로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맡은 일을 너무 열심히 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프로그램을 잘 짜주시고 설명을 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비가 온다 해서 6시30분 출발이라 취소할까 고민했지만, 와서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나무와 절 등 자연만을 보고 갔는데도 역사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비 오는 중에 산성에 올라갔다가 잘 내려왔습니다. 힘들었지만 좋았습니다. 내려오면서 긴장하면서 레크레이션을 하니 다리가 뭉쳤지만 풀렸습니다.
오늘 오길 잘 했습니다. 강화에 가끔 왔지만, 이번과 같은 역사기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처음이어서 뜻깊고 마음이 풍족했습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3시30분밖에 안 됩니다. 역사기행 해설도 좋았지만, 숏츠와 영상 참여도 좋았습니다.
역사기행 준비해주신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사히 귀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오프로 활동가님들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돌아가서 손자에게 할 이야기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강화도는 100번 정도 방문했지만, 이번과 같은 역사기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처음이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역사적 장소에서 역사를 통해 활동가들과 소통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날씨 선택을 잘 못했나싶어서 오전에는 실망했지만, 오후에는 화창한 날씨로 행사를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몇 백 년 전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만나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쫓기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음 행사에는 시간을 충분히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탭들께서 소임을 가지고 주인의 마음으로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1회 6주간의 회의와 10월 3일의 답사를 거쳐 역사기행을 결정한 이번 주는 2번의 추가 회의를 거쳐 역사기행 결정체가 탄생했습니다. 오늘의 날씨는 예상 밖이었지만, 이렇게 비 오는 날에도 나의 예상과 달리 재미있었습니다. 비도 오고 내가 생각한 대로 일정이 진행되지않아 불안했는데, 참가자 중 한 분은 우중 등산을 좋아한다며 비가 와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알게 되니 생각하기 나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자 일의 부담을 덜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오랜만에 버스까지 타고 함께 행사를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나니 무겁던 책임감이 덜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