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중국서 뼈 빠지게 번 돈, 하루아침에 날려
다음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중국에 도강했다가 돌아온 한 남성이 겪은 얘기다. 그의 얘기를 그대로 싣는다.
“나는 중국 화룡에서 1년 반에 가까운 나날을 보내면서 7천 위안을 벌어 2009년 1월에 겨우 처자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 돈으로 내화(조선돈)를 바꾸어 자그마한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막상 고향에 도착하여 보니 눈이 딱 감길 정도로 막막했다. 그동안 몰라보게 컸으리라 했던 아들놈이 조금도 늘어 안 나고, 일년 반 전 그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누군가? 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좌우간 그간 고생으로 할미가 다된 안해는 남편이 돌아왔다고 눈물 콧물범벅으로 마중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그동안 그리움보다도 급한 것은 쌀이었다. 묵지가루에 남새를 좀 섞은 음식이 반 그릇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 남의 눈을 피해 낡은 옷을 갈아입고 안해 손목을 잡고 시장에 달려갔다. 그런데 1월인데도 식량 가격은 입쌀이 kg에 1,650원, 옥수수는 550원 정도 했다. 며칠이 지나 그냥 이러고 있을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 계획했던 장사를 시작해야 했지만 날마다 심해지는 단속 때문에 보위부나 보안서의 눈길을 한동안 피해야 했다. 그러다 1월 15일에 신발(조선 운동화)과 쌀, 달력, 기타 필수품을 사려고 황해북도 사리원 장마당으로 떠났다. 온성에서는 이런 물품들을 평성이나 사리원에서 많이 사오고 있다. 이래저래 반달 넘어 고생 한 끝에 물품들을 두 보따리로 가득히 만들어 2월 2일에 온성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물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누가 보았는지 내가 나타났다고 고자질을 해 집에 보안원들이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할 수 없어 이때부터 눈을 피해 산속에 숨어 있었다. 부모, 처자와 함께 살겠다고 돌아온 나를 잡으려고 매일 찾아다니는 보안원들을 보니 내 마음이 실로 아파났다. 올해 2월 11일, 내게 밥을 나르던 안해의 뒤를 밟은 보안원들 때문에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이들은 나를 보위부에 데려가 빈칸에 억류하여 놓고는 부문 책임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몇 시간 기다리니 부문 책임자가 와서 나에게 있는 물건을 다 꺼내 놓으라고 하기에 모두 털어 놓았다.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라이타, 담배 (조선담배 풍년), 돈 200위안 이것뿐이었다. 만약을 생각해서 내게 있는 돈과 물건을 다 숨겨두고 홀몸으로 다녔던 것이다.
그러더니 우리 인민반 담당보위지도원 민영식이 다가와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민영식은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다. “우리는 네가 중국에 갔다 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솔직히 불라”고 나를 을러멨다. 나는 태연스럽게 2007년 황해도에 있는 고모네 집에 놀러 갔다고 했다. 자기들의 문초에 순순히 순응하지 않자 몇 장의 종이와 원주필을 주면서 네가 솔직히 고백하고, 반성하면 관대히 용서를 해 줄 것이고, 계속 악질적으로 나오면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잘 생각해 보고 자백서를 쓰라고 위협하였다.
나는 그들의 고문과 위협에도 마다하고 끝끝내 황해도로 놀러 갔댔다고 끝까지 우겨댔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처와 아이까지도 이 세상에서 더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모진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글쎄 배급도 아니 주고 로임도 아니 주고 하니 먹고 살자고 황해도에 가서 돈을 벌어 온 사람을 그래 죄인으로 취급해도 되는 것인가?’하고 끝까지 우겼다. 그랬더니 무릎을 꿇어앉히고 본격적으로 매질을 들이댔다. 구둣발로 넓적다리를 짓밟고, 주먹으로 구타하고, 배를 걷어차 숨도 못 쉴 정도로 때리다, 때리다 이제는 손이 아파 맥이 든다고 금고 우에 있던 망치자루로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문을 들이댔다. 나의 희미한 의식 속에 감각이 없는 내 몸을 매질하는 소리와 ‘바른대로 말해’ 하는 소리가 어슴푸레 들렸다. 이렇게 되어 온 하룻밤과 하루 낮을 문초하더니 이틀이 지난 새벽 4시가 되어도 더 이상 다른 말이 안 나오자 나를 재우라고 했다. 조선 중앙 텔레비죤과 로동신문에 미제가 꾸바 근처에 있는 어느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불로 지지고, 얼음이 둥둥 뜨는 찬물에 담가놓고, 귀를 자르고, 갖은 야수 같은 고문을 들이댄다고 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실제 체험해보니 그런 미제나 인민이 주인 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나라라는 말을 곧잘 하는 우리나라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왜 사람을 이 지경까지 다루는가.
안해가 사람을 찾아 들여보냈는데, 오랫동안 법관 노릇하다가 제대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로인이었다. 그가 민영식에게 ‘이 사람이 나에게 들어와 솔직히 말했다’고 하면서 한번 봐주면 안 되느냐 청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돈을 좀 쓰라고 가만히 얘기하였다. 하여 생각하던 나머지 안해한테 귀띔하여 내가 중국에서 벌어온 돈 7,000원(위안) 중에 물건 사고 남은 나머지 중국 돈 4,000원을 그들에게 다 주고 나왔다. 민영식은 ‘그 돈(4,000원)으로 목숨하나 건진 줄 알라’면서 ‘4만원 내도 이 같은 죄는 현재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그랬다. 그 로인이 담보를 서주지 않았으면 살아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중국에서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벌어온 돈을 하루아침에 다 날리게 되었다. 아 이 세월이 이다지도 더럽고 흉악하구나, 나는 설움이 북받쳐 눈물로 통곡할 뿐이었다.”
“돈에 눈 먼” 보위부원, 협박과 모진 구타로 노인 숨지게 해
지난 7월 10일, 함경북도 온성군 주원탄광 보위부에서 심문을 받던 한 할머니가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숨을 거둔 노인은 지철삼(67세)의 아내로 딸이 중국에서 보내준 중국 돈 1,500위안을 보위부원 민영식에게 내놓지 않아 이 같은 변을 당하고 말았다. 수사 결과 노인의 사인은 민영식의 심한 구타와 갖은 협박에 의한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민영식은 노인이 죽자 “제 방에다 가두어 놓고 변소에 갔다 오니 전화선에다 목을 감고 자살을 하였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 하지만 노인의 장례를 치르면서 주민 여론이 나빠지자 군과 도에서까지 내려와 법적으로 부검이 진행됐다. 도에서 내려온 2명의 법관과 군 법관 1명, 담당 보안서에서 1명이 가족 참관 하에 부검하였다. 부검 결과 머릿속에 두 주먹을 합친 것 만한 핏덩어리가 있었고 앞가슴 부문에 피가 뭉쳐있었다. 이 사실이 주민들에게 전해지자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 신소나 대중들 여론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사실이 밝혀지겠는가? 돈이나 권력이 있어야 사는 세상”이라면서 주민들의 한탄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도 그나마 죽은 노인이 빨치산 줄기 유자녀이기 때문이었다. “잘됐다. 이참에 보위부원 민영식은 옷을 벗고 나앉아라”, “돈에 눈깔이 어두워 날치다가 끝내 일을 저질렀다”는 비난의 소리도 들끓고 있다. 사람들은 “민영식 뿐만 아니라 보위부 안에 이같이 악독한 놈이 3명 더 있다. 이번 기회에 이 벌레 같은 것들을 다 쓸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어랑천 도로 공사 노동자들, 간부들과 싸워 집단 파업
지난 6월 10일, 함경북도 어랑천 도로 공사에서 노동자들이 일군과 싸우고 집단으로 파업하는 일이 발생했다. 식량 사정으로 현장의 노동자들은 옥수수밥 한 그릇에다 국 한 그릇, 염장 무 몇 조각으로 끼니를 이으면서 일해 온 반면, 현장 간부들은 도로 공사에 동원된 각 기업소가 지원한 돼지고기와 식량, 기타 필수품을 가로채 매일 고기에 술, 쌀밥을 먹어왔다. 노동자들은 간부들이 하는 일 없이 지원 물자를 탕진하는 것을 보면서도 묵묵히 참고 지냈다.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신 간부가 현장에 나와 잠깐 쉬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욕설을 퍼붓자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노동자 조동수(가명)가 “당신들은 온 하루 무엇을 하는 것이 있어 매일 술과 돼지고기를 배 터지게 먹고 우리들한테 소리만 치나? 우리는 날씨도 덥고 배도 고프고 맥이 없어 죽겠는데, 잠깐 쉬는 것도 안 되냐?”며 대들었다. 그러자 현장 일군이 “너 이놈 어디다 말대꾸야?” 하면서 주먹으로 그 노동자의 얼굴을 갈겼다. 이것이 싸움의 도화선이 되어 현장 일군 2명과 노동자들 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일군들은 수적으로 우세한 노동자들에게 밀려 많은 매를 맞았다. 뒤늦게 사실을 안 지휘부는 회의를 연 뒤, 싸움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잡아다 “상부에 반항하고 지시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공개비판하고 노동자들을 일주일간 격리시켰다. 잘못은 간부들에게 있는데 도리어 노동자를 공개비판하고 격리시키자 이에 격분한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고 들고 일어나 이틀 동안 항의하였다. 이에 놀란 지휘부는 상급단위에 파업 진압을 요청했으나 상급단위에서는 현장에 사람을 파견해 진상을 파악한 뒤 지휘부 성원들을 비판하고 성난 노동자들을 달래는 데 힘썼다. 결국 사건은 현장 일군들이 노동자들에게 공개 사과함으로써 마무리됐다.
중앙당 부원의 솔선수범으로, 주원탄광 최대 생산량 기록
중앙당은 150일 전투를 전개하며 전국 각 단위의 생산력 증대를 위해 중앙당 부원(옛 지도원)들을 파견한 바 있다. 이중 함경북도 온성군 주원탄광에 파견된 부원이 주민들과 화합하여 큰 성과를 이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부원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파괴된 철도를 복구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침목 보장을 위해 벌목지에 나간 사람들 앞에서 솔선수범으로 일하고, 휴식 시간에는 오락회를 조직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불러 주변을 즐겁게 해 주었다. 또한 자신의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보내 준 돈, 과자, 사탕을 벌목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온정도 베풀었다. 침목이 마련되자 철도 복구 사업에 나선 그는 온성군당, 인민반, 학교 등 각 단위에 도와줄 것을 호소하여, 두 달도 못 돼 9년 동안 화차가 들어오지 못하던 주원탄광에 화차를 개통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또한 탄광 노동자들, 특히 채탄공들을 찾아가 고무 및 격려해주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애썼다. 이런 그의 노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난 9년 이래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는 성과를 낳았다. 주원탄광의 주민들은 “모든 간부들이 이 사람처럼 일한다면, 강성대국의 대문이 정말로 열릴 것이다”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 식량소식
함경북도 은덕군, 식량 배급 끊긴지 오래
함경북도 은덕군 ‘7월 7일 공장’의 군수품 직장에서는 8월 현재까지 식량 배급이 전혀 없다. 또 오봉탄광 로동자구 주민들도 식량이 떨어져 하루에 죽을 먹는 세대가 전체 인구의 30% 가량 된다. 은덕군 전체적으로 보면, 절반 정도의 세대가 식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곤한 세대들이다.
자강도 희천발전소, 돌격대 식량문제 고민
중앙당과 내각 지휘부 일군들은 8월 7일,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후방 물자 지원 및 식량 공급을 바로 하기 위한 회의를 했다.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에 갑자기 인원이 집중되면서, 식량 공급 과 후방 지원 보급 물자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군부대보다는 사회 기관, 단체에서 동원된 돌격대에 식량이 잘 전달되지 않아 7월 25일부터 8월 4일까지 옥수수 이삭을 하루 한 끼에 한 개씩 주었다. 중앙당과 내각 지휘부 일군들은 회의에서 이 같은 실태를 보고받고, “후방부 일군들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성을 발휘하여 식량을 제때에 신속히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옥수수 이삭과 옥수수 국수를 물에 불구어 죽을 쑤어 먹이는 돌격대 후방 책임 일군은 일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후방부 일군들의 책임성을 재차 강조했다.
■ 경제활동
노점 음식판매 단속에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상인들 원성 고조
8월 2일 오후 5시경, 함경북도 온성 장마당 어귀에서 벌어진 일이다. 장마당은 150일 전투를 시작하면서부터 오후 4시에 시장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음식 장사꾼들은 시장에서 음식판매를 금지하는 공문이 내려온 뒤, 장마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마당 어귀나 주위에서 팔고 있다. 골목에서 파는 사람들이 있으나 장사가 잘 안 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마당 어귀에 몰려드는 것이다. 이 날 70여 명이 음식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안원들이 사방에서 덮쳐들었다. 그간 여러 차례 경고하고 쫓아버렸지만 말을 안 들으니 단단히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보안원들에게 판매 음식을 뺏기지 않으려고, 그릇을 쥐고 뛰는 사람, 음식 밀차를 밀고 달아나는 사람, 뛰다가 자빠져 음식 그릇을 땅바닥에 엎질러 뒤죽박죽 만든 사람 등 난리가 아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닭 무리에 승냥이가 뛰어든 경관이었다. 발이 짧은 사람은 보안원에게 음식과 그릇을 빼앗기고 투덜댔고, 뺏기지 않으려고 악을 쓰면서 맞아 넘어지면서 “썩어질 개새끼”라고 욕하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 그 중 발 빠른 몇 사람만이 겨우 자기의 물건을 가지고 도망갔다. 이날은 물건만 회수하고 사람을 잡아가지는 않았다. 이번 작전을 선두에서 지휘한 보안일군은 “팔지 말라는데 계속 팔면 보는 족족 회수할 것”이라 거듭 경고했다.
물건을 빼앗긴 사람들은 밤늦도록 보안원들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돌려줄 것을 사정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담배나 술 몇 병을 들고 아는 보안원을 찾아가 사정했으나 물건을 벌써 가져가버려 찾을 수 없었다. 한 순간에 장사밑천을 다 날려버린 사람들은 “사람들이 왜 저런 것인가? 식량과 로임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저 자신들이 자체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마저 막으면 어떻게 사는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들이 먹고 살수만 있어도 이런 짓을 하겠는가 말해보라, 그럼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하면서 얼굴을 아는 보안원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일부 아주머니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군당에 찾아가 “빼앗은 물건을 돌려주고 장사를 허용해 달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건을 못 찾은 좌절감에 “당신들이 법대로 하고, 규정대로 하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겠는가?” 하면서 “백성들이 골목골목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좀 눈뜨고 다니면서 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시장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이날 군당일군들에게 “시장 관리원들이나 보안원들이 조그마한 결점이 있으면 그것을 트집 잡아 벌금이요, 몰수요 하고는 저들 배만 채운다”고 하면서 구구절절 하소연했다.
가뭄 피해로 2010년 식량 위기 심화 우려
올해 가뭄 피해로 함경북도 시, 군 농장들의 농사수확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 농업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함북도 옥수수 밭 3,200정보, 논밭 1,600정보가 말라 옥수수 이삭이 나오지도 못했다. 수분이 필요한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아 가을철 수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작물이 자라지 못했다. 도 인민위원회는 8월 7일, 가뭄 피해 방지 대책 지휘부를 긴급히 조직했으나, 대책은 없이 농경지의 피해 실태만 조사했을 뿐이다. 남쪽의 평남, 함남, 황해도 지방들은 함경북도 보다 2~3배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성대국 문을 열자면 뭐니 해도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식량인데, 올해 국내 농사 형편이 한심하여 2010년 식량 값이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고 각 도 인민위원회 회의에서 예견하고 있다. 특히 내년 식량 사정 위기가 올해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클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하다. “국내 농사가 안 된 상황에서 맞이하는 식량 위기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악화돼 식량을 대량 구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져서, 국내 실정에서 농사가 안되면 식량 위기는 벗어날 수 없고 강성 대국문은 열 수 없다”는 것이 일군들의 얘기다.
식량 사정 악화로 농작물 침해 엄중 처벌 방침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평안남도 등에서는 농작물 침해를 없애라는 내용으로 공개당총회를 소집했다. 공개당총회에서 “농작물을 침해하는 자가 당원이면 출당을 시키고, 엄중성에 따라 로동단련대나 교화형에 처하며, 그 가족은 추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 처벌을 주는 것은 일반 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을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과 녀맹원들, 대학 전문학교 학생, 심지어 중학생, 소학생, 유치원 어린애들에게까지 전달하도록 했다. 주민들은 “나라의 식량 사정이 얼마나 긴장되면 포고문과 같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농작물을 침해하지 말라고 강박적으로 각성시키겠느냐”는 말들이 많다.
농장 일군들,“2010년 식량 위기, 작년보다 2배 이상 악화될 것”
농업성에서는 8월 20일, 각 도들의 농촌경영 알곡계획과 올해 알곡수확과 관련된 주요 책임 간부들을 불러 각자의 도내 농사실태를 보고받았다. 2008년과 비교해, 옥수수나 벼, 콩 등 농작물의 새 품종을 심었을 때 수확고가 높아진 곳과 낮아진 곳의 실태를 파악했다. 조사결과, 현재 물 피해로 적지 않은 농장들이 농경지 피해를 입어 작년 수확보다 소출이 떨어지는 곳이 많았다. 농장 일군들은 “올해 농사 정형을 보면, 작년과 비교했을 때 2010년도에는 식량 위기가 2배 이상 악화될 것”으로 예견했다.
■ 정치생활
마약 밀매매에 관여한 지방 고위 간부 집중 단속
전국 시, 도검찰소에서는 지방 고위층을 중심으로 마약 밀매매 사건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검찰소 4처에 새로 꾸려진 담당 팀은 보안서와 해당 검찰소를 통하지 않고 마약 밀매매자와 관련 있다고 판단된 간부들은 그날로 체포해 직접 도검찰소로 압송해가고 있다. 이는 지역 법관들 역시 수사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마약 장사를 조직한 주범이 붙잡혔는데, 이들은 150일 전투 총화가 끝나면 처형될 예정이다. 그 외 범죄자들은 노동교화형 무기징역 아니면, 10년 이상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특대형 마약 범죄자들이 체포되면서 마약 밀매와 관련된 시당 간부와 보안원, 검찰 등의 법일군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는데 이들은 간부 자리에서 해임되거나 노동자로 강등되고 있다.
8월의 중앙당 방침들
올해 농사가 잘 안 되자, 기본 곡창 지대인 황해남도와 평안남도에서도 농사 실태를 조사해 알곡 수확 예상량을 중앙당에 보고했다. 중앙당은 자료를 보고 받고, 농업성 일군들에게 올해 가을걷이를 잘하여 부족한 상황 하에서도 인민 부대들부터 먼저 공급하여야 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8월 20일, 북한 당국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서 전면 거부한다는 것을 모든 대내외 당 일군들에게 알리도록 지시했다.
백두산 3대장군의 숭고한 당 조직 관념을 따라 배우라는 당 생활 지침이 떨어져 당원들이 회의를 진행 중이다. 150일 전투 개인결의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궐기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인들은 하루, 일주일, 월별로 사상사업과 행정사업에서 높은 계획을 세우고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8월 28일 청년절을 맞이하여 사상교양사업과 전투 기능을 더욱 높이는 교양사업을 진행했다.
■ 사회
평양 여성 바지 허용 소식에, 개혁개방에 버금간다며 술렁여
평양에서 여자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한다는 소식이 돌자, 지방 간부들이 대단히 놀랍다는 반응이다. 마치 핵실험한 것처럼 여론이 높아 일부에서는 “대단한 결정이다. 우리로서는 개혁개방에 버금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며, “좀 있으면 대외 개방도 하지 않을까?”하며,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도록 허용해준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신혼부부, 살림형편 때문에 자녀 기피
요즘 신혼부부들은 생활 형편이 궁색하다보니 웬만해서는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한다.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박찬혁(가명)씨는 결혼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자식이 없다. 이들은 결혼할 때 약속하기를 경제적인 토대를 마련한 다음에 아이를 낳기로 했는데, 둘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무리 부지런히 뛰어다녀도 점점 더 살기 어려워져서 아직도 아이가 없다고 한다. 현재 자식을 3명 낳으면 국가에서 1인당 500원씩, 세 자녀에게 1,500원의 부양비가 나온다. 또 각종 노력동원이나 세외부담 등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보조금이 얼마 되지 않아 자녀 양육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활형편이 빠듯한 일반 가정에서는 자녀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경제 형편이 나은 집이나 간부들은 자식을 많이 낳아, 애 낳는 데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전군 농민들, 감자 생산해 옥수수와 바꿔 먹어
함경남도 부전군은 순 감자 농사 전문으로, 농장마다 계획량이 따로 있는데 계획량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감자 분배조차 잘 안 나오는 살기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 함경남도뿐만 아니라 함경북도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이곳에 보내진다. 1990년대 초부터 계획량을 달성하지 못해 이곳 주민들은 감자뿐인 배급도 거의 제대로 타본 적이 없고, 농장에서조차 힘없는 농민에게는 분배할 생각을 안 한다. 이젠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농장일보다 개인 소토지 농사로 식량을 해결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옥수수농사는 잘 되지 않으니 심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근근이 감자농사 지은 것을 다른 군에 가서 옥수수로 바꿔 먹고 있다.
함경남도 부전군, 일제 떠돌이들의 숙박집인 함박집 성행
함경남도 부전군은 북한 전역에서 가난한 사람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장진군과 함께 간부들이 추방되면 보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집 없는 사람들이 유리걸식하다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한번은 미거주자들을 원래 거주지로 되돌려 보내라는 상부 지시가 내려와 몇 차로 가득 실어 함흥에 나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집에 가기는커녕 2-3일 후면 다시 찾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보내면 오고 또 잡아 보내면 다시 찾아오는지라 나중에는 보안원들도 두 손 들게 됐다. 혹 어떤 이들은 미리 담배를 준비해 가만히 주면서 “제발 쫓아내지 말아 달라.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보안원들은 “말썽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생활하라”고 넘어가곤 한다. 부전군이 못 사는 곳인데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단속도 덜하고, 세외부담이 적다는 이점 때문이다.
게다가 부전군에는 함량이 높은 금광과 함박집이 있다. 일제 때 있었다던 함박집은 돈 없고 집 없는 떠돌이들이 숙박비를 외상으로 하고 밤잠을 자는 곳이다. 한 집안에 보통 20~30명씩 모여 자는데 밥은 자체로 해결하고 잠만 자다가, 돈을 벌면 그 때 숙박비를 낸다. 돈 많고 잘사는 집들은 함박집에 와서 일군을 뽑아가는 데 이때도 일하러 나갔다오면 밤에는 함박집에 와서 잔다. 함흥에서도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곳인데, 함경남도 지역을 떠돌아다니는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다. 숙박비는 보통 100~150원하며, 주인들은 신체가 튼튼하여 일거리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들만 가려 받는다. 병이 있거나 허약한 사람을 잘못 받아들였다가 숙박비는커녕 자리만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혹 가족이 들어오는 것도 볼 수 있는데 남편이나 장성한 자녀들이 낮에 일하고, 아이들과 노인은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주민들은 함박집을 보고는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라고 매일 선전하지만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때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다만 왜놈들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 한다.
■ 여성/어린이/교육
일군의 횡포에 맞장 뜬 꽃제비 청년분조원들
강원도 철원군과 평강군 등에서는 2007년에 부모가 죽었거나 행불자(행방불명자)여서 보호자가 없는 꽃제비 중에 사회 진출할 나이가 된 아이들을 모아 농장에 배치했다. 청년분조에 소속돼 농사일을 하던 아이들은 작년 결산 총화 때 현금 분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농장 일군들이 절반 이상 떼먹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러다 올해 7월 29일, 이 지역에 폭우가 내려 청년분조가 담당한 옥수수밭이 파괴돼 알곡 수확에 큰 차질이 빚어지자, 농장 일군들은 “왜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가?”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올해 결산 총화를 할 때 노력 일수와 공수를 자르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말이 안 된다. 그러면 그동안 우리에게 주지 않은 현금분배를 다 달라”며 일군들과 싸웠다. 이에 화가 난 농장관리원장이 리청년비서를 내세워 청년분조원들에게 강한 사상 투쟁 회의를 시켰다. 리청년비서가 청년분조원들을 선전실에 모이게 하고, 일군들에게 반항한 아이들 4명을 일으켜 세워 인정사정없이 때리자 이에 분개한 다른 아이들이 리청년비서에게 달려들었다. 몰매를 맞은 리청년비서는 급히 병원에 이송됐다. 꽃제비아이들 20명이 그날로 달아나버렸다. 청년분조원 꽃제비는 모두 27명이었는데, 스무 명이 달아나버렸으니 농장으로선 큰 낭패였다. 결국 이 문제가 군당에 제기됐다. 군당에서는 “일군들이 사업을 졸렬하게 하여, 청년분조원 아이들을 제대로 안착시키지 못하고 뛰쳐나가도록 만들었다”며 일군들을 비판했다. 군당은 이 문제를 일보로 도당에 올리고, 해당 농장의 관리 일군들을 해임할 것을 건의했다.
■ 사건사고
옥수수 훔친 노동자, 몰매 때려 죽게 한 경비원 체포
지난 7월 30일, 평안남도 은산군 은산읍에 사는 리성남(가명)씨는 협동농장의 무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중, 옥수수밭에서 옥수수 5개를 몰래 훔쳤다. 그러나 농장 경비원들에게 걸려 처참하게 몰매를 맞고 경비막 기둥에 11시간 동안 묶여 있다가 그만 숨지고 말았다. 경비원들은 부랴부랴 시체를 소달구지에 실어 근처 옥수수밭에 눕혀놓고 달아났다. 시신은 그로부터 사흘 뒤인 8월 2일에 발견됐다. 경비원들은 리씨를 구타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중학생들의 신고로, 지난 8일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