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북한 수재민들 겨울 날 수 있게 남북한이 힘을 합해야
북한에 수해가 난지 벌써 3개월째 접어들었다. 화폐교환 조치로 신년부터 비정상적인 물가폭등과 식량부족으로 고통 받아온 주민들은 봄 냉해에 이어 장장 두 달이 넘게 큰물피해까지 겪으면서 더욱 더 절망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전역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려면 복구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복구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재민들의 고통도 그만큼 심해질 테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남한 사회의 관심은 온통 당대표자회 이후 후계자와 그 주변 인물에 쏠려있다. 여기저기 온통 북한의 새로운 지도체제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북한 역시 연일 후계자를 부각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기후로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찾아 올 추위에 수재민들이 이번 겨울에 어떤 고통에 처하게 될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장 먹을 것과 입을 옷이 없고, 잠잘 곳이 없는 수재민들에게 밥 한 끼와 따뜻한 잠자리가 얼마나 절실할 것인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먹을 것이 떨어진 상태에서 겨울철로 접어들자 아사자 수가 증가했다. 아무 도움이 없다면, 이번 겨울은 수재민들이 생존하는데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것이다.
북한 당국은 먼저 긴급 식량을 다시 배정하고, 살림집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최대한 확보해주어야 한다. 건설자재가 부족하다면, 비닐박막이라도 공급해 칼바람이라도 막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반토굴을 짓는 집들에는 일손이라도 지원해 어떻게든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당장 솜옷과 내의 등을 지급해 추위를 조금이라도 면하게 해주어야 한다.
남한 사회 역시 북한 수재민 구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다행히 이달 25일쯤이면, 대한적십자사에서 보내는 수해 지원 물품이 중국 단동을 거쳐 들어간다고 한다. 신의주 지역에 쌀 5천톤과 시멘트 1천톤, 컵라면 300만 개가 지원된다고 하는데, 수재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귀한 물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당장 시급한 식량과 겨울 옷, 이불, 털양말, 신발 등 겨울나기용 생필품은 물론이고, 살림집 복구에 필요한 장비와 비닐박막, 시멘트 등의 건설자재, 그리고 전염병 치료를 위한 의약품 등의 지원이 잇따라야 한다. 북한 스스로 수해복구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는 현재로는 어려운 상태이므로, 최소한 올 겨울은 날 수 있게 남한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산가족상봉에 남북한이 합의해 곧 재개되는 것처럼 수재민 지원에도 늦기 전에 뜻을 모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끝).
■ 시선집중
전쟁로병들, 자식들에 생계부담 안 지우려 자살 택해
평성시를 비롯한 평안남도에서는 오랫동안 굶주린 전쟁로병들이 자녀들에게 생계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자살한 사건이 지난 2개월 동안 도당에 보고된 것만 벌써 7건이 넘는다. 굶어죽은 사람은 더 많다. 화폐 교환 이후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아가는데, 나이든 세대들은 장사를 하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영양상태가 안 좋아 경미한 감기나 설사병에 걸려도 맥을 못 추고 숨을 거두는 노인들이 많다. 70대 이상의 전쟁로병들은 “화폐 교환 이후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귀찮다. 조용히 잠을 자다가 슬며시 죽었으면 좋겠다”고 절망스러워한다. “죽자고 해도 목숨이 끊어져야 하는데, 자식들을 보면 차마 자살을 할 수는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우는 로병도 있다.
정부에서는 전쟁 로병들과 나라를 위해 공로를 많이 세운 공로자들에게는 최상의 수준으로 우대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하루에 600g씩 주던 식량배급이 중단되고, 년로보장금으로 지급되는 1,000원으로는 쌀 1kg도 사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 로병들과 공로자 등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전쟁로병들은 “젊어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결과가 이것이냐?”며 강한 실망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나라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식량공급을 안 해주면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 수령결사옹위는 또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며, 북한 사회에 대해 깊은 절망감과 분노를 표현했다. 평성시에 사는 정호성(가명) 할아버지는 “아무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공로를 세워도 나라에서 더 이상 늙은이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지 않으니, 어떤 후계자가 나선다 해도 현실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없다”고 냉소하기도 했다.
전쟁로병 생계, 어디에서 책임져야 하나?
평안남도 평성시 전쟁로병(6.25 참전용사)들은 식량 배급이 끊어진데다 장사 벌이까지 잘 되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시당과 시인민위원회에 신소를 올렸다. 평성시 주례동에 사는 김천일(가명), 최명학(가명) 등 전쟁로병 5명은 시당에 찾아가 저마다의 사연을 말하고, 식량 배급 재개와 당장 먹을 수 있는 대용 식량을 요청했다. 이들은 가내반에 등록돼 신발 수리를 하며 하루벌이를 해왔는데, 화폐교환 이후 일거리가 줄어들고 식량사정이 더 긴장해지자 굶주리는 날이 많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당의 배려를 호소했다. 시당 간부들은 배급을 줄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라며 일단 돌려보냈다. 신소를 한 것은 8월인데, 9월이 넘어도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로병들은 평안남도 도당에 찾아가 신소했다. “조국해방전쟁 시기에도 먹을 것이 없어 이렇게까지 고생한 적이 없는데, 최첨단으로 발전한 21세기에 통옥수수도 없어 전쟁참가자들이 다 굶어죽게 생겼다”며 울면서 하소연했다.
평성시당에서는 도당에서 처리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도당에서는 “(평성뿐만 아니라) 관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신소가 계속되고 있는데 누구 사정은 들어주고, 누구 사정은 안 들어주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화폐교환 조치 이전만 해도 이런 신소가 별로 없었는데, 올해 들어 부쩍 늘어 도당에서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전쟁로병의 생계를 누가 책임져야하는지를 두고 시당과 도당 간부들 사이에 거센 언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시당에서는 도당 지원 받는 것을 포기하고, 시 량정사업소에 연락해 전쟁로병세대와 로력영웅, 년로보장 세대 등에 10일 분량의 식량을 배급해주도록 지시했다. 량정사업소에서는 식량 배급용 옥수수가 떨어져 보리와 감자를 절반씩 섞어서 겨우 배급을 마련해주었다.
이른 추위에 어린이들 독감으로 고생
지난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독감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서해안 수해지역에서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독감이 돌아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이 독감을 호되게 앓는 경우가 많다. 집도 먹을 것도 없는 주민들은 나이든 부모와 어린 자녀들이 독감에 걸렸어도 치료를 아예 포기하거나 치료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각종 오염으로 습진이나 옴과 같은 전염병도 돌고 있으며, 파상풍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계속 늘고 있다. 해당 지역 인민병원과 비상방역지휘부 보건 부문 일군들과 의사들은 전염병이 더 퍼지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의약품 부족으로 여건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곡창지대에 큰물피해가 휩쓸고 지나간 뒤 가뜩이나 어렵던 식량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황해남북도와 평안북도, 그리고 함경남북도 지역의 농장들은 이번 폭우로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강원도는 올해 10년 만에 옥수수농사가 잘 됐는데,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훼손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평안남도는 큰 타격이 없어 작황이 평년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앙당에서는 식량 가격 폭등을 막고, 식량으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전국 식량 판매와 운송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무역회사와 기관들에도 역시 식량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다.
서해안 수재민 살림집 건설 늦어져
황해남도 서해안 지역의 수해 피해 복구가 자재 부족 등으로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 옹진군과 배천군, 룡연군 지역에서는 완파되거나 반파된 살림집들을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수재민들의 불안이 높아가자, 군당과 인민위원회 일군들은 자재부족으로 살림집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할 뿐이다. 주민들은 불완전하게나마 벽체와 지붕만 수리하거나 보수하고, 창문과 출입문은 대충 비닐박막으로 막아 가을 찬바람을 막고 있다. 비닐박막조차 구하지 못한 집들은 비닐박막을 대체할 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 사정의 압박을 받는 세대들은 집 지을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한다. 그저 땅을 파서 반토굴을 만들어 위에 지붕을 씌워 겨울 준비를 하는 정도이다. 대조적으로 일부 간부들과 잘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에 먼저 들어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식량 지원 끊기자, 친척 찾아 떠나는 수재민들
의주군 수진리를 비롯해 비피해가 심했던 룡계리, 룡운리, 대화리 등에서는 현재 식량이 없어 하루 3끼 전부를 고구마로 이어가는 세대가 많다. 홍수 피해 지역에서 제일 힘든 세대는 역시 어린애가 많거나 노인들이 있는 세대이다. 정부에서 수해 초기에는 긴급 식량을 얼마간 지원해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폭우로 하루아침에 집과 모든 재산을 잃은 주민들 중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친척이나 부모형제의 도움을 받으려고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살길이 막힌 농민들은 다른 지방에 있는 친척이나 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얹혀살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떠나가고 있다.
중앙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지역 당국에서도 안쪽 지역에 도움을 받을만한 데가 있으면 다녀오라며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농장 일군들 역시 농민들에게 수해 피해를 입지 않은 친척이 도와주겠다면 얼마든지 허락해줄 테니 가서 도움을 받고 오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한창 가을걷이 총동원 기간인데도 여행증명서까지 주면서 이동을 허가한 것은 실제 가을걷이할만한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수재민들의 생계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식량을 책임져주지 못하니 임시방편으로 이동을 허락한 것이다.
농민들은 이듬해 식량이 떨어졌을 때 알곡에 섞어 먹으려고, 배추나 무를 심고 있다. 폭우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진 옥수수 밭의 땅을 갈아엎고, 배추와 무를 한 세대 당 700평 정도씩 심고 있다. 지금은 다른 알곡을 심기에는 너무 늦어 배추와 무를 부식물이 아니라 식량 대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각 농장관리위원회에서도 농민들이 무, 배추를 심도록 농장 밭을 떼 주며 경작을 장려하고 있다.
의주군 수진리 수해복구, 그저 망연자실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리 협동농장 인근 지역의 수해 복구가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진리 협동농장의 경우, 폭우에 휩쓸려 옥수수, 고구마, 남새(채소) 등 농작물과 돼지, 오리, 게사니(거위), 닭 등의 가축이 떠내려가거나 없어지고 말았다. 전체 농가의 1/5 가량이 완파되거나 반파됐다. 일부는 집 기둥이 뽑히고,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송두리째 씻겨 내려갔다. 농가들이 거의 흙집이다 보니 비가 오거나 이번처럼 폭우가 쏟아지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쉽게 무너져 버린다.
군당 일군에 따르면, 당국에서 폭우 경보를 했지만 부엌살림을 비롯해 TV, 록화기 등 살림도구와 식량과 재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집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해도 설마 물이 집안까지 들어오겠느냐며, 얼마간의 재산과 간단한 식량만 챙겨갔다고 한다. 그러다 폭우가 그치지 않으면서 물이 점점 무릎 위를 넘어 허벅지까지 차오르자, 하나라도 살림을 더 건지겠다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때 많이 죽었다고 한다. 인민반장인 손명희(가명)씨는 “재산을 건지겠다고 들어간 사람들 중에 많이 죽었다. 국경경비대에 구조돼 살아난 사람은 재산은 하나도 못 건지고 겨우 제 목숨만 부지해 돌아왔다. 비가 그렇게 무섭게 쏟아질지 정말 아무도 몰랐다”고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큰물이 거침없이 쓸고 내려간 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농장 밭은 물론이고, 얼마 안 되는 소토지 밭을 전부 물 피해로 잃었다. 농장원들은 “올해 농장에 알곡 생산물이 없다보니, 가을철 분배와 앞으로 먹고 살아갈 식량이 없다”며 탄식한다. 살림집과 재산을 비롯해 집짐승까지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린 집들은 더 없이 막막한 상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할 지 몰라 아예 손을 놓은 집들도 많다. 농장과 사회단체들에서 비 피해를 입은 탁아소와 유치원 등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고 있지만, 시멘트와 건설 자재가 부족해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완파되거나 반파된 농민들의 살림집 건설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에서는 살림집을 건설하는데 시멘트를 세대별로 300kg씩 제공해주었는데, 겨우 온돌과 부엌 부뚜막 정도만 지을 수 있는 양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체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시멘트 이외에 다른 자재 지원은 전혀 없다. 일단 농민들은 파손된 옛집에서 그나마 쓸 만한 목재를 건져 다시 쓰고, 집 벽체는 벽돌이나 블로크로 쌓는 대신 수수대나 싸리 같은 것을 엮어 진흙을 다져서 올리는 식으로 집을 손보고 있다. 한편 정부에서는 집기를 하나도 못 건진 세대를 위해 임시적으로 입을 옷과 이불, 간단한 살림도구를 세대 당 1-2벌씩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식구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수요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 식량소식
식량 지원 끊기자, 친척 찾아 떠나는 수재민들
의주군 수진리를 비롯해 비피해가 심했던 룡계리, 룡운리, 대화리 등에서는 현재 식량이 없어 하루 3끼 전부를 고구마로 이어가는 세대가 많다. 홍수 피해 지역에서 제일 힘든 세대는 역시 어린애가 많거나 노인들이 있는 세대이다. 정부에서 수해 초기에는 긴급 식량을 얼마간 지원해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폭우로 하루아침에 집과 모든 재산을 잃은 주민들 중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친척이나 부모형제의 도움을 받으려고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살길이 막힌 농민들은 다른 지방에 있는 친척이나 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얹혀살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떠나가고 있다.
중앙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지역 당국에서도 안쪽 지역에 도움을 받을만한 데가 있으면 다녀오라며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농장 일군들 역시 농민들에게 수해 피해를 입지 않은 친척이 도와주겠다면 얼마든지 허락해줄 테니 가서 도움을 받고 오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한창 가을걷이 총동원 기간인데도 여행증명서까지 주면서 이동을 허가한 것은 실제 가을걷이할만한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수재민들의 생계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식량을 책임져주지 못하니 임시방편으로 이동을 허락한 것이다.
농민들은 이듬해 식량이 떨어졌을 때 알곡에 섞어 먹으려고, 배추나 무를 심고 있다. 폭우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진 옥수수 밭의 땅을 갈아엎고, 배추와 무를 한 세대 당 700평 정도씩 심고 있다. 지금은 다른 알곡을 심기에는 너무 늦어 배추와 무를 부식물이 아니라 식량 대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각 농장관리위원회에서도 농민들이 무, 배추를 심도록 농장 밭을 떼 주며 경작을 장려하고 있다.
■ 사회
의주군 수진리 수해복구, 그저 망연자실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리 협동농장 인근 지역의 수해 복구가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진리 협동농장의 경우, 폭우에 휩쓸려 옥수수, 고구마, 남새(채소) 등 농작물과 돼지, 오리, 게사니(거위), 닭 등의 가축이 떠내려가거나 없어지고 말았다. 전체 농가의 1/5 가량이 완파되거나 반파됐다. 일부는 집 기둥이 뽑히고,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송두리째 씻겨 내려갔다. 농가들이 거의 흙집이다 보니 비가 오거나 이번처럼 폭우가 쏟아지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쉽게 무너져 버린다.
군당 일군에 따르면, 당국에서 폭우 경보를 했지만 부엌살림을 비롯해 TV, 록화기 등 살림도구와 식량과 재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집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해도 설마 물이 집안까지 들어오겠느냐며, 얼마간의 재산과 간단한 식량만 챙겨갔다고 한다. 그러다 폭우가 그치지 않으면서 물이 점점 무릎 위를 넘어 허벅지까지 차오르자, 하나라도 살림을 더 건지겠다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때 많이 죽었다고 한다. 인민반장인 손명희(가명)씨는 “재산을 건지겠다고 들어간 사람들 중에 많이 죽었다. 국경경비대에 구조돼 살아난 사람은 재산은 하나도 못 건지고 겨우 제 목숨만 부지해 돌아왔다. 비가 그렇게 무섭게 쏟아질지 정말 아무도 몰랐다”고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큰물이 거침없이 쓸고 내려간 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농장 밭은 물론이고, 얼마 안 되는 소토지 밭을 전부 물 피해로 잃었다. 농장원들은 “올해 농장에 알곡 생산물이 없다보니, 가을철 분배와 앞으로 먹고 살아갈 식량이 없다”며 탄식한다. 살림집과 재산을 비롯해 집짐승까지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린 집들은 더 없이 막막한 상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할 지 몰라 아예 손을 놓은 집들도 많다. 농장과 사회단체들에서 비 피해를 입은 탁아소와 유치원 등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고 있지만, 시멘트와 건설 자재가 부족해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완파되거나 반파된 농민들의 살림집 건설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에서는 살림집을 건설하는데 시멘트를 세대별로 300kg씩 제공해주었는데, 겨우 온돌과 부엌 부뚜막 정도만 지을 수 있는 양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체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시멘트 이외에 다른 자재 지원은 전혀 없다. 일단 농민들은 파손된 옛집에서 그나마 쓸 만한 목재를 건져 다시 쓰고, 집 벽체는 벽돌이나 블로크로 쌓는 대신 수수대나 싸리 같은 것을 엮어 진흙을 다져서 올리는 식으로 집을 손보고 있다. 한편 정부에서는 집기를 하나도 못 건진 세대를 위해 임시적으로 입을 옷과 이불, 간단한 살림도구를 세대 당 1-2벌씩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식구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수요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서해안 수재민 살림집 건설 늦어져
황해남도 서해안 지역의 수해 피해 복구가 자재 부족 등으로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 옹진군과 배천군, 룡연군 지역에서는 완파되거나 반파된 살림집들을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수재민들의 불안이 높아가자, 군당과 인민위원회 일군들은 자재부족으로 살림집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할 뿐이다. 주민들은 불완전하게나마 벽체와 지붕만 수리하거나 보수하고, 창문과 출입문은 대충 비닐박막으로 막아 가을 찬바람을 막고 있다. 비닐박막조차 구하지 못한 집들은 비닐박막을 대체할 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먹을 것이 없어 식량 사정의 압박을 받는 세대들은 집 지을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한다. 그저 땅을 파서 반토굴을 만들어 위에 지붕을 씌워 겨울 준비를 하는 정도이다. 대조적으로 일부 간부들과 잘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에 먼저 들어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전쟁로병 생계, 어디에서 책임져야 하나?
평안남도 평성시 전쟁로병(6.25 참전용사)들은 식량 배급이 끊어진데다 장사 벌이까지 잘 되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시당과 시인민위원회에 신소를 올렸다. 평성시 주례동에 사는 김천일(가명), 최명학(가명) 등 전쟁로병 5명은 시당에 찾아가 저마다의 사연을 말하고, 식량 배급 재개와 당장 먹을 수 있는 대용 식량을 요청했다. 이들은 가내반에 등록돼 신발 수리를 하며 하루벌이를 해왔는데, 화폐교환 이후 일거리가 줄어들고 식량사정이 더 긴장해지자 굶주리는 날이 많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당의 배려를 호소했다. 시당 간부들은 배급을 줄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라며 일단 돌려보냈다. 신소를 한 것은 8월인데, 9월이 넘어도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로병들은 평안남도 도당에 찾아가 신소했다. “조국해방전쟁 시기에도 먹을 것이 없어 이렇게까지 고생한 적이 없는데, 최첨단으로 발전한 21세기에 통옥수수도 없어 전쟁참가자들이 다 굶어죽게 생겼다”며 울면서 하소연했다.
평성시당에서는 도당에서 처리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도당에서는 “(평성뿐만 아니라) 관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신소가 계속되고 있는데 누구 사정은 들어주고, 누구 사정은 안 들어주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화폐교환 조치 이전만 해도 이런 신소가 별로 없었는데, 올해 들어 부쩍 늘어 도당에서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전쟁로병의 생계를 누가 책임져야하는지를 두고 시당과 도당 간부들 사이에 거센 언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시당에서는 도당 지원 받는 것을 포기하고, 시 량정사업소에 연락해 전쟁로병세대와 로력영웅, 년로보장 세대 등에 10일 분량의 식량을 배급해주도록 지시했다. 량정사업소에서는 식량 배급용 옥수수가 떨어져 보리와 감자를 절반씩 섞어서 겨우 배급을 마련해주었다.
■ 사건사고
전쟁로병들, 자식들에 생계부담 안 지우려 자살 택해
평성시를 비롯한 평안남도에서는 오랫동안 굶주린 전쟁로병들이 자녀들에게 생계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자살한 사건이 지난 2개월 동안 도당에 보고된 것만 7건이 넘는다. 굶어죽은 사람은 더 많다. 화폐 교환 이후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아가는데, 나이든 세대들은 장사를 하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영양상태가 안 좋아 경미한 감기나 설사병에 걸려도 맥을 못 추고 숨을 거두는 노인들이 많다. 70대 이상의 전쟁로병들은 “화폐 교환 이후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귀찮다. 조용히 잠을 자다가 슬며시 죽었으면 좋겠다”고 절망스러워한다. “죽자고 해도 목숨이 끊어져야 하는데, 자식들을 보면 차마 자살을 할 수는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우는 로병도 있다.
정부에서는 전쟁 로병들과 나라를 위해 공로를 많이 세운 공로자들에게는 최상의 수준으로 우대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하루에 600g씩 주던 식량배급이 중단되고, 년로보장금으로 지급되는 1,000원으로는 쌀 1kg도 사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 로병들과 공로자 등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전쟁로병들은 “젊어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결과가 이것이냐?”며 강한 실망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전쟁에서 싸운 게 수치스럽다”며, 북한 사회에 대해 깊은 절망감과 분노를 표현했다. 평성시에 사는 정호성(가명) 할아버지는 “아무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공로를 세워도 나라에서 더 이상 늙은이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지 않으니, 어떤 후계자가 나선다 해도 현실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없다”고 냉소하기도 했다.
■ 여성/어린이/교육
이른 추위에 어린이들 독감으로 고생
서해안 수해지역에서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독감이 돌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이 독감을 호되게 앓는 경우가 많다. 집도 먹을 것도 없는 주민들은 나이든 부모와 어린 자녀들이 독감에 걸렸어도 치료를 아예 포기하거나 치료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독감 환자 중에 사망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 외 각종 오염으로 습진이나 옴과 같은 전염병도 돌고 있으며, 파상풍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계속 늘고 있다. 해당 지역 인민병원과 비상방역지휘부 보건 부문 일군들과 의사들은 전염병이 더 퍼지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의약품 부족으로 여건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곡창지대에 큰물피해가 휩쓸고 지나간 뒤 가뜩이나 어렵던 식량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황해남북도와 평안북도, 그리고 함경남북도 지역의 농장들은 이번 폭우로 거의 모든 것을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강원도는 올해 10년 만에 옥수수농사가 잘 됐는데, 그만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옥수수 훼손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평안남도는 큰 타격이 없어 작황이 평년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가을걷이가 한창인 가운데, 중앙당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식량 판매와 운송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무역회사와 기관들에도 식량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식량 가격 폭등을 막고, 식량으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