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2005년 6월 국경 통제상황 – 도강행위 급감
1. 계속되는 비로 5월 두만강 ‘강타기’ 급감
1) 어려워진 ‘강타기’
2005년 5월 7일 경부터 국경지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강물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두만강 물의 둑을 막아 수로를 만들어 논에 물을 대주는 ‘인수로’에도 물이 넘쳐흐를 정도이다(인수로는 보통 장마에도 물이 넘치는 경우가 드물다).
5월 10일경만 해도 물이 사람 가슴께 차다가 20일경에는 사람의 키를 넘기게 되었다. 평소에는 허리 아래께 오는 물이 보통 장마 때 허리 위로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강우량이 많아 물이 깊어졌다.
2) ‘구명대’와 ‘고무배’ 등장
수위가 높아 강타기를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졌다. 그러나 간혹 군인의 도움으로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군인들이 제공한 ‘구명대’나 ‘고무배’를 타고 넘는다. 일반 차량의 작은 고무바퀴나 작은 튜브를 ‘구명대’로 사용하고, 트랙터 뒷바퀴를 ‘고무배’로 사용한다.
구명대는 강타기 하는 사람이 몸에 끼면 군인들이 옆에서 잡아서 넘겨주고, 고무배는 고무바퀴에 공기를 넣어 띄운 뒤 강타기하는 사람이 그 위에 올라타거나 엎드리면, 역시 군인들이 그것을 강 위로 밀어주어서 넘겨준다.
2. 강타기 비용
강타기 비용은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 강타기를 하려면 일반 사병에게 200-300위안, 소대간부 300위안, 대대간부에게 500위안 정도를 낸다. 경우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돈을 더 주어야 한다. 여성들은 중국에 들어가면 다시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남자들은 대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왕복비는 600위안, 남자들은 400위안 정도이다. 아이들의 연선비는 어른과 비슷하지만 업힐 정도의 어린 아이들은 어른의 절반 값 정도를 낸다.
3. 국경 경비대의 발포 규정
국경 경비대는 3교대를 하는데 겨울에는 한 사람당 보통 2시간씩 근무를 서고, 여름에는 3시간을 선다. 이들은 실탄 3발, 공포탄 2발을 채운 상태에서 근무를 선다. 그러나 규정이 있어 함부로 발포하지 못한다. 일단 강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발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강에 들어서기 전에 멈추어 서라고 세 번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지 않으면 그 때는 총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체로 강물에 들어서면 발포하지 않는다.
2005년 6월 국경 통제상황 – 숙박검열 및 도강자 가족 추방
4. 회령 지역, 80세대 강제추방
지난해 말 온성, 회령 등지에 비사그루빠(주.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제거하기 위한 검열조직)의 검열 활동이 있었다. 현재 온성에 재검열이 들어간 상태이다.
5월 현재 회령에서는 이미 80여 세대가 추방되었다. 추방 대상자는 중국에 간 사람이 두 명 이상인 세대와 한국에 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집이다. 강제추방이 되면 함경남도 산골 지역이나 함경북도 내에서도 산골 지역으로 보내진다. 회령에서 어느 가족은 함경남도 장진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검열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미리 피신하거나 돈을 주고 추방 대상에서 빠지기도 했다.
5. 숙박검열
타지에서 숙박할 때 제일 신경 쓰이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숙박검열이다. 숙박 검열이란 대기 숙박(개인 집에서 숙박하는 일, 민박)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숙박 등록을 하지 않거나 공민증 또는 증명서가 없는 사람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검열은 군 안전부 또는 분주소 보안원들이 동원되어 한다. 숙박검열은 대체로 늦은 밤 시각에 담당 구역을 돌게 되어 있다. 만약 담당 구역이 스무 집이라면 그 집을 모두 검열하면 마치게 된다. 간혹 위법행위가 적발될 때 뇌물이 오고가게 된다.
그래서 보안원들은 담당 지역을 바꾸는데 온성군이라고 하면 온성읍 보안원이 온탄으로 가고, 온탄 보안원이 온성읍으로 간다.
검열은 특별 경비 주간에 집중적으로 한다. 양력설, 음력설,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 정전 협정 체결일(7월 27일), 청년절(8월 28일), 정부 수립일(9월 9일), 당 창건일(10월 10일) 등이 특별 경비 주간이다. 이 기간에는 매일 검열을 한다. 이 기간 외에 도주자가 나왔다거나 해당 지역에 특별 행사가 있을 경우 하기도 한다.
회령, 무산, 온성 등 국경지대에는 수시로 숙박검열을 한다. 강타기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집은 주 감시 대상이 되어 검열을 자주 당하기도 한다. 특히 여자들만 있는 집은 인신매매로 간주해서 조사가 심해진다.
숙박 검열에 걸리면 주로 벌금을 낸다. 7․1 경제관리조치 이전에는 벌금이 500원이었으나 이후 1,500원으로 인상되었다.
숙박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돈 있는 사람들은 보안원, 보위부원, 군 간부 등의 집에 들어간다. 이런 집은 검열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국경 통제상황 – 휴대전화와 한국문세
6. 핸드폰 사용
핸드폰은 무산, 회령, 온성, 새별, 삼봉, 종성, 남양 등지에서 수신이 잘 되고, 은덕은 학송까지도 수신이 가능하다. 당국에서 핸드폰 단속을 하지만 회수해 간다하더라도 다시 중국에서 핸드폰이 그 수만큼 건너가기 때문에 실제 완전 차단은 불가능하다.
핸드폰 기기와 사용료는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조선족이 내주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을 빼앗기면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 빼앗겼으니 새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밀수로 들어온 핸드폰을 받는 것이다.
핸드폰을 빌리게 되면 기기를 빌려주는 사람에게 북한 돈 5천원을 주고, 그 사람의 핸드폰 비용을 대주는 조선족에게 사용료로 50위안 정도를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을 두 개 가지고 다니면서 핸드폰 사용한도액이 넘어 사용이 중지되면 나머지 핸드폰으로 중국에 전화해서 사용료를 충전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핸드폰 추적기가 있지만 기술력이 떨어지고 추적기도 한 군당 1-2개에 불과하여 별 효과는 없다.
7. ‘한국 문세’ 심부름 비용
한국에서 부탁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건당 1,000위안 정도를 받는다. 이들은 주로 한국에 나와 있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이 요청하는 전화 연결, 생계비 지원, 가족 찾기 등을 한다. 이런 일은 위험 감수도가 높기 때문에 검열이 세지면 세질수록 심부름 비용도 높아진다. ‘한국 문세’(주. OO문세란 개인의 신상과 행적에 나쁜 기록이 남겨지는 것을 이른다)를 하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검열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세를 하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 문세로 걸린 사람들 중 강타기를 한 사람보다 넘겨주는 사람이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 강타기를 한 사람들이 2년 정도의 교화형을 받는다면, 이 사람들은 최고 5년 이상의 교화형을 받게 된다.
■ 경제활동
2005년 3~5월 함경북도 회령의 물가 변동
2005년 3월~5월까지의 기본 곡물 가격입니다.
2005년 5월 함경북도의 물가동향
쌀값이 전년도 6월 온성, 청진 550원에서 올해 두 배 가격으로 올랐다. 현재 시장에 나오는 쌀은 전년도 가을 수확물이 대부분이다. 가을에 식량 값이 쌀 때 대량으로 구입해두었다가 다음 해 식량이 두 배 이상 오를 때 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장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외부의 식량 지원이 없다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식량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5월부터 보릿고개 시작이라 8월 말 햇곡식이 나오기 전까지 쌀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2005년 5월 함경북도 회령의 물가표
2005년 5월의 함경북도 회령 물가표입니다.
2005년 5월 함경북도 주민들의 식량 사정
일반 주민들의 끼니 사정
1) ‘5대 5밥’
국경 지역에서 장사, 외화벌이, 군 장교, 당 간부 등 일부 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쌀밥을 먹기 힘들다. 일명 ‘5대 5밥’(강냉이쌀 절반과 입쌀 절반을 섞어 지은 밥)을 먹거나 두 끼는 강냉이밥을 한 끼는 옥수수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
5대 5밥을 먹거나 이렇듯 세 끼니를 다 챙겨 먹는 집은 그래도 잘 사는 축에 든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부식물을 자체 조달한다. 이런 집을 제외하고 대다수 집은 한 끼니 정도 굶는 것이 예사이다.
2) ‘풀보시’와 ‘두박 시래기’
국경지역의 극빈층은 전체 주민의 약 10-15%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끼니를 여전히 푸대죽이나 국수로 연명한다. 풀을 뜯어 강냉이 가루와 버무려 쪄먹기도 하는데 이를 온성에서는 ‘풀보시’(주. 온성 사투리)라고 한다. 또한 콩기름과 옥수수 기름을 짜내고 남은 두박(주.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을 시래기나 풀에 섞어 먹기도 한다(남한에서 두박은 거름이나 사료로 쓰인다).
소토지에 배추를 심은 집이라도 배추에 비료를 주지 못해 통김치를 만들지 못하고 시래기 김치를 만들어 먹게 된다. 극빈층의 끼니는 이렇듯 고난의 행군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음식이라기보다는 식량 대체물이 많다.
3) ‘백만 장사 행방 다니는 해’
작년에는 ‘지주 마누라가 산에 가는 해’라고 했다면, 올해는 ‘백만 장사 행방 다니는 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잘 사는 사람, 부유한 사람을 지주라고 하는데, 그런 집도 산에 풀을 뜯으러 갈 정도로 곤궁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더 악화되어 북한 돈 백만 원을 가진 돈주라도 자기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따리 장사를 해야 될 정도로 힘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5년 전만 해도 백만 원이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쌀 1kg에 1,000원대로 치면 백만원이라고 해야 쌀 1톤 가량 밖에 구입하지 못한다.
쌀 1톤은 네 가족이 다른 생계비를 계산하지 않고 순전히 입쌀만 먹는다고 가정할 때 1년 조금 넘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1일 성인 기준 600g). 이러한 말에서 식량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읽을 수 있다.
2005년 5월 북한 장사꾼의 수완 향상
장사 수완의 향상
상인들의 장사 수완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함경북도 새별 하면의 한 잡화 상인은 나진선봉에 직접 나가 물건을 들여와 좌판을 하는데 체계적으로 상품을 관리해왔다.
1) 철저한 기록
잡화다 보니 라이터, 혁대, 지우개, 머리핀, 안경, 양말 등 온갖 종류의 물건을 가져오는데 이 중에서 잘 팔리는 상품과 팔리지 않는 상품을 그 때 그 때 기록한다고 한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은 가격을 낮추어 떨이로 팔아버리고, 다음번에 가져올 때는 잘 팔리는 상품만 가져온다.
2) 시기별 특화상품 판매
계절, 명절, 시기별로 특화된 상품을 선택하여 팔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설 명절 때는 양말을 대량으로 가져와 판다. 이런 날은 하루에 100켤레 이상 판다. 명절이 되면 여기 저기 인사를 하러 다니는데 새 양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가격도 올려서 판다. 수요자가 많으면 가격을 올리고, 수요자가 적어지면 다시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쓴다.
5월부터는 학생들이 농촌 지원을 나오는 시기라 세면도구를 구비해 놓는다. 학생들이 타지에 나오면 세면도구를 찾기 때문이다.
또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에는 소년단 아이들의 넥타이를 특별 상품으로 내놓았다. 아이들이 소년단에 입당할 때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 예측이 맞아 떨어져 약 200개의 수량이 3일 만에 모두 팔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상인들이 뒤늦게 넥타이를 가져왔으나 더 이상의 수요자가 없어 낭패를 보기도 했다.
이렇듯 명절이나 시기별, 계절별로 수요가 급증하는 상품은 꼼꼼히 기록해두었다가 다음 해 상품 판매에 중요하게 참조한다. 이들에게는 단골 고객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소비자의 요구를 잘 읽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상인들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3) 상인간의 경쟁심리
판매 가격을 두고 상인들끼리 미묘한 경쟁을 하기도 한다. 잡화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열 명이라고 하면 100원짜리 상품을 100원에 파는 사람이 있고, 90원에 파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중간 상인을 거치느냐의 여부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는다.
함경북도 지역의 공업품 도매시장은 주로 청진 수남시장과 나진선봉 시장이다. 청진이나 나진선봉 ‘달리기’(현지 구매)를 통해 물건을 직접 가져오는 상인들은 중간상인에게서 물건을 넘겨받은 소매상인들에 비해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상품의 70%를 판매한 뒤 30% 정도 남았을 때 다시 ‘달리기’를 하는데, 남은 30%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과감히 가격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구매자들은 동일한 제품 중 가격이 더 싼 상품을 구입하므로, 중간상인에게서 넘겨받아 좌판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조건이 불리하다. 중간상인에게 넘겨받은 가격에서 더 낮추었다가는 손해를 보기가 쉽다. 상품이 ‘잠길수록’(팔리지 않는 상품이 늘수록) 이들의 손해는 커진다. 새로운 상품을 살 돈도 없을뿐더러 도매상인들이 물건을 넘겨주지 않아 새로운 상품을 받지 못하고, 새로운 상품을 받지 못하면 구매자의 관심을 끌지 못해 결국 팔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소매상인들은 달리기 상인들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가격을 더 이상 낮추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이다. 물론 달리기 상인들은 이러한 항의를 대체로 무시한다. 경쟁 심리가 확산된 탓이다(참고로, 소매상인들 중에는 달리기를 할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노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4) 눈속임 장사
장사 요령도 다양하다. 낱알(쌀, 옥수수 등)을 팔 때 저울 무게를 조정해 10kg 살 때 500-800g 정도 덜어내고 팔아 이윤을 남기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구매자들이 꼼꼼하게 살펴보고 사기도 하지만 장사꾼들의 눈속임을 매번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매우 많다. 맛내기(조미료)의 예를 들면, 포장된 비닐봉지 윗부분을 잘라 일정량을 덜어낸 뒤 자른 부분을 종이에 대고 다리미로 다리면 감쪽같이 붙는다. 구매자들은 포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그 가격에 사기 마련이다. 구매자가 이를 알아채고 찾아가 항의를 하면 모르는 척 슬그머니 제 봉지로 바꾸어 준다.
판매자들은 덜어낸 분량을 별도로 판매한다. 맛내기를 한 봉지씩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잔으로 사기도 하는데, 이들에게 한 잔씩 판다(참고로, 맛내기 한 봉지는 450g 정량에 1,200원인데 1잔으로 팔면 100원 가량 받는다).
5) 점점 세련되어 가는 상품 포장
개인이 직접 만들어 파는 식품류는 맛과 모양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사탕을 만들더라도 맛도 좋고 모양이나 빛깔도 예쁘게 만든다. 예전에는 강냉이로 만드는 음식이 한 종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 음식 종류가 더 다양해졌다.
술을 빚어 시장에 팔 때도 병에 넣어 마개도 달고 상표도 다는 등 포장에 신경을 써서 상품으로 내놓는다. 개인 집에서 파는 술과 마찬가지로 밀주로 만드는 것이지만, 포장을 해서 시장에 나온 술은 좀 더 비싼 가격에 팔게 된다.
기계를 다루거나 손으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기계 수리를 담당하던 사람은 기계를 사용하기 편리하게 개조하여 상품으로 내놓기도 한다. 잘 분쇄되지 않는 기계를 분쇄가 잘 되도록 고쳐서 파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상품 판매 방법, 기술, 품목 선정, 수요자의 욕구파악 등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여러 사례를 통해 상행위가 딘순 판매에서 벗어나 점차 세분화, 전문화되는 양상을 엿볼 수 있다.
2005년 5월 함경북도의 연료 기름 장사
기름(연료) 중간 장사
함경북도 청진시에는 기름 중간 장사하는 사람들이 5-6명 가량이다. 합법적으로 원유를 내갈 수 있는 것은 허가를 받은 단위 기관들이다. 계획량에 맞게 가져가기 때문에 개인들이 공식적으로 기름을 구하기가 어렵다. 수요자는 있는데 공급이 어렵다보니 불법으로 매매 행위가 발생한다.
배의 선장은 분배 받으러 온 기관 기업소에 기름을 줄 때 계획된 양보다 한 드럼당 1-2리터씩 더 넣어주거나 한 드럼을 더 준다. 이런 기업소들은 허가를 받고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단속을 받지 않는다. 일단 항구를 빠져 나오면, 중간 장사꾼들이 이 기업소에 가서 선장이 넣어준 양만큼을 가져와 이를 구입 희망자에게 넘겨준다.
디젤유가 1리터에 700원할 때는 한 드럼(180-200리터)을 13만 – 14만원에 사서 개인에게 14만 – 15만원에 팔아 선장에게 판매금을 넘기고 자기는 수고비로 10,000원 남기는 장사를 한다.
배가 자주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서 보통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하게 된다. 기름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작은 어선을 운영하거나 나선이나 청진 등지를 오가는 서비차를 운행하는 사람들이다. 기름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순식간에 팔린다. 이 때문에 오징어(주. 북한에서는 낙지)잡이가 한창인 철에는 기름값이 두 배로 치솟는다(참고로 전년도 오징어잡이 철에는 한 드럼에 최고 25만원까지 올랐다. 오징어는 매우 비싼 값에 수출된다).
2005년 5월 함경북도 주민들의 생계활동
철 도매장사
철 도매는 청진 제강소나 제철소에서 파철을 녹여 만든 철 묶음을 중국에 넘기는 장사를 말한다. 5kg이나 10kg이 한 묶음인데 선철 1톤당 160달러(6월 현재)에 넘긴다. 질이 나쁜 주철은 톤당 80-90달러에 거래된다. 중국은 철의 판매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고, 그 가격에 해당하는 식량으로 건네준다.
작은 시장에서의 중기 장사
TV, 냉장고, 비디오, 녹음기 등을 중기라고 한다. 군이나 시단위의 큰 시장에서는 중기를 팔지만 구 단위의 작은 시장에서는 중기를 파는 곳이 없다. 중기를 판매하고 싶은 사람은 푯말만 놓는다. 예를 들어, 냉장고를 팔고 싶은 사람은 ‘냉동기(냉장고)를 팝니다, 가격은 얼마입니다’라는 식으로 푯말 선전을 한다. 이것을 보고 판매대에 물어보면 누구네 집으로 가라고 가르쳐준다.
빈민층의 생계활동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한 끼 벌어 한 끼 먹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얼음 장사, ‘강냉이 틔우개'(통옥수수에 삭카린을 첨가한 일종의 뻥튀기) 장사, 펑펑이 가루 장사 등을 한다.
소토지 농사짓는 집에 가서 김매기나 경작을 도와주면서 점심 한 끼니 얻어먹고, 저녁에 간단한 끼니 거리를 받아가는 이른바 ‘머슴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남의 돈을 받고 일하는 이런 일은 구하기 쉽지 않다.
2005년 5월 북한 주민들의 가축 사육
1. 개인들의 가축 사육
가축은 주로 개, 닭, 돼지가 많다. 돼지는 군대에 바치기도 하고, 닭은 달걀을 팔거나 병아리를 부화시켜 팔기도 하며, 개는 도둑에 대비해서 기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먹을 게 많아야 가축들도 잘 키울 수 있는데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가축을 대량 사육하기는 힘들다.
돼지는 돈벌이를 위해 키우는 집이 많다. 먹이가 부족해서 집에서 술이나 두부를 빚고 남은 두부 찌꺼기, 술 찌꺼기를 주기도 한다. 이것만으로 부족해서 옥수수 가루를 더 먹이기도 한다. 이 조차도 넉넉한 형편의 집에서 그렇다. 다른 집들은 돼지에게 인분을 먹여 키운다. 인분에 물을 타서 끓여 살균한 것을 돼지에게 주거나 거기에 풀을 섞어 사료로 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더라도 돈주가 아닌 이상 세 마리 이상을 키우기는 힘들다.
닭을 키우는 집들은 주로 달걀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집들은 소토지에 조나 기장을 경작하기도 한다. 조나 기장을 판매한 돈으로 더 싼 옥수수를 사서 닭에게 모이로 준다. 어떤 집은 달걀을 팔아 생계비를 벌어들이기 위해 닭만 전문적으로 50-100마리까지 키우는 집도 있다.(주 : 올해 5월 회령의 달걀 1알 가격은 100원이었다.)
그 외 거위, 오리, 염소, 토끼 등을 키우기도 하고, 간혹 양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거위, 오리 등의 먹이는 옥수수 가루에 풀을 얹어 준다. 벌에게는 설탕(사탕가루)을 사료로 준다. 설탕을 많이 주지 못해서 강냉이에 엿을 달여서 설탕과 섞어 준다. 이상은 개인들이 소유할 수 있다.
2. 이제는 소 관리도 개인이 가능
한창 고난의 행군 시절에 국가 소유의 소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만큼 소는 일반적인 가축들과 달리 농사, 운반 등에 유용한 국가 관리 재산에 들어갔다. 지금도 여전히 개인이 소유하거나 키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들이 소를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농장원이나 기관 기업소에 등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공적 재산으로 등록하였지만 관리는 개인이 하는 것인데, 해당 기업소나 농장원이 소를 필요로 할 경우에는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는 개인이 자신의 용도로 사용한다. 관리를 한다고 해서 해당 기업소나 농장원에 별도로 관리비를 내지는 않는다. 소를 관리하는 데 관리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소에서도 관리를 해주겠다는 개인이 있으면 환영하는 형편이다. 농장 관리보다 개인이 더 책임성 있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소를 관리해주면서 남의 밭갈이를 하면서 돈을 버는데, 보통 평당 20원씩 받는다.
2005년 5월 북한 주민들의 소토지 경작
옥수수 농사에는 요소 비료가 가장 필요
농사를 짓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비료이다. 일반 주민들의 주식이 실제 강냉이밥이라고 할 때, 옥수수 농사는 매우 중요하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데는 복합비료보다 요소비료가 효과적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복합비료를 두 번 주는 것보다 요소비료 한 번 주는 게 낫다는 평가를 한다. 그런데 요소비료가 제일 비싸서 사서 쓸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옥수수 1kg에 450원이라고 하면, 요소비료는 300원이다. 이에 비해 질소비료는 220-230원 정도로 요소비료보다 싸다
괭이, 호미, 낫 등 농기구는 대체로 골고루 구비한 집들이 많다. 그러나 삽을 가지고 있는 집은 적다. 삽은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것으로 사려고 하는데 워낙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내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삽 하나에 옥수수 15-20kg에 맞먹는 돈을 내야 한다.
4. 기관 기업소 땅 경작 상황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35명 정도의 종업원이 있는 한 기업소는 인근 협동농장의 땅을 3-4정보 배분 받았다. 그런데 농장에서 배분한 토양의 토질이 좋지 않아서 산에서 뙈기밭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나마 토질이 괜찮은 땅을 배분받은 몇 사람만 경작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개인적으로 소토지를 가꾸었다. 배분받은 땅을 경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부과된 세금을 내지 않았다.
5. 뙈기밭도 묘목을 심어야 안전
고난의 행군 시절 주민들은 배급이 끊겨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산 곳곳마다 뙈기밭을 만드는 현상이 널리 퍼졌다. 이에 산림훼손 문제가 심각해지자 당국에서는 뙈기밭을 몰수하는 등 강경한 정책을 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토지나 뙈기밭을 근절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당국은 나무심기를 권장하는 한편, 나무를 심는 조건으로 곡물 경작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산림반에 가입을 하고 묘목을 심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그리고 땅세를 내는 조건으로 허용한 것이다(참고로 땅세는 한 평당 12원씩이다).
그런데 옥수수, 콩, 감자, 고구마 등 뙈기밭에서 나오는 소출로 근근이 먹고 사는 주민들에게 땅세는 자못 부담이 된다. 예전에 비해 안전하게 경작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지만, 땅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토질에 관계없이 땅세를 내야해서 세금에 대한 부담은 더 높아진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산림감독원과 사업을 잘 해서 땅세를 경감받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관리하기로 되어 있는 산 면적이 500평이라면 100평만 등록하는 것이다. 세금은 100평에 해당하는 돈만 낸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보고 되면서 당국은 땅의 실제면적 및 농작물 등을 조사하는 업무를 산림감독원 외에 별도로 두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산림반에 가입하지 않는다. 대신 산림반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의 명의를 빌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림반 사람에게 배당되어 있는 4천 평의 땅 중에서 천 평은 자신이 관리할테니 명의만 빌려달라는 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묘목을 자기 돈으로 사서 심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만 심으면 뙈기밭을 회수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뙈기밭을 안전하게 경작하면서 세금부담도 나름대로 덜어내는 방식으로 경작하고 있다.
2005년 5월 함경북도 온성의 교육 상황
1. 도농 학교간 출석 편차
함경북도 온성군 주원 노동자구에 위치한 주원 중학교는 출석률이 매우 저조한 편이다. 30명 학급에서 출석자는 7-8명에 불과하고, 27명 학급에서 1-2명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1학년들은 출석을 잘 하는 편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결석자가 늘어난다.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면 집 안의 노동력이 될 수 있어서 학교에 보내는 대신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소토지 농작물을 가꾼다든지 삯벌이를 보내든지 집을 지키든지 ‘탄바퀴’를 하는 식으로 가정 생계와 관련된 일을 한다(참고로, 탄바퀴란 석탄을 훔쳐 파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이 이런 일을 많이 한다).
반면 읍내에 위치한 온성 중학교는 출석률이 높다. 장사를 하는 집이나 당 간부 등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약 90% 정도가 출석한다. 함경북도 청진시와 함경남도 단천시의 중학교 출석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특별한 질병이 있는 학생들이 아니면 대체로 출석을 잘 한다. 이에 도농간 소득 격차에 따라 출석률이 달라짐을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은 결석자가 생기면 방과 후 가정방문을 해서 결석 사유를 알아보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출석을 권유한다. 온성, 회령, 무산 등 국경지역의 학교들은 특히 중국에 가는 집들이 많아 학생이 왜 학교에 나오지 못했는지, 집에 있는지,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확인한다.
2. 개인 과외 교습 성행
살림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개인 교습을 시켜주기도 한다. 국어, 수학, 물리 이런 교과목 학습보다는 손풍금 등 예능 쪽이나 영어, 컴퓨터, 각종 기술 학습이 많다.
외국어의 경우 예전에는 러시아어를 선호했으나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잘 사는 나라 미국의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인식이 높아졌다. 일반 주민들에게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영어는 퇴직한 교사들에게서 배운다.
과외 교사들에게 지급하는 교습비용은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한 달에 5,000원에서 10,000원 정도이다. 국가에서는 불법이라 통제하지만 엄격하게 단속하지는 않는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전에는 통제가 심했는데, 자력으로 능력껏 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과외 교습을 받는 학생들은 주로 당 간부나 장사꾼들의 자녀들이다.
3. 북한도 주입식 교육(일명 ‘들이 먹이기식’ 교육)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교사의 열의와 성실도가 높았다. 당시에는 이른바 ‘깨우쳐주는 교수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교육 기자재 활용도 높아 학생들의 시청각 교육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다. 그러나 식량난을 거치고 난 뒤 교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교육 기자재는 파손되거나 도둑맞았다. 교사들은 깨우쳐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기보다, 강제로 주입시키는 이른바 ‘들이 먹이기식’ 교육을 한다. 무조건 외우고 쓰게 하는 강압식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이전에는 무능한 교사들이 주입식 교육을 했다면, 이제는 교원의 양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교사 외에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 방식으로 가르친다.
2005년 북한 학생들의 원료 수집 운동
각종 원료 수집 운동
모든 원료가 부족하다보니 당국에서는 직맹, 여맹, 당조직별, 인민반, 직장별, 학교별로 각종 원료 수집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파철, 파지, 파비닐, 파유리, 파동, 파알루미늄(파늄), 토끼가죽, 신발밑창, 살구씨, 아카시아씨 등 내는 종류만도 스무 가지 이상이다.
파철은 1인당 5kg씩 의무적으로 내야한다. 한 학급인원이 30명이면 150kg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출석자가 10명밖에 안된다면 이 열 명이 150kg을 분담해서 내야 한다. 토끼 가죽은 1인당 보통 5-10매씩 내야한다. 파지, 파고무, 파병, 파비닐 등도 마찬가지로 각각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파철을 비롯한 각종 원료들을 구하기가 어려워 부모들이 5원, 10원씩 돈으로 대신 내는 경우가 많다. 할당량을 내지 못한 아이들은 반 친구들 앞에서 불려나가 창피를 당하기도 한다.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학교에 자연스레 결석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능력 있는 교원이란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각종 수집물을 잘 걷는 사람이다. 그런데 교사들도 생계비를 얻기 위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일인당 살구씨 1kg이 부과되면 학생들에게 전할 때는 1kg 500g을 내라고 한다. 초과로 걷은 500g 분량은 자기 몫으로 챙기기도 한다.
학생들의 부담은 고스란히 학부모의 부담으로 남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한 달에 500원이면 500원, 1,000원이면 1,000원 교육비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불평을 많이 한다. 등록금을 내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명목으로 학교에 내는 분담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수집 운동은 비단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들이 속한 각 조직에서도 요구하는 것들이라 한 가정의 부담은 매우 높다.
2005년 5월 북한 학생들의 학습도구 부족
노동자구 학교 학생과 교사의 끼니 사정
노동자구 학교에 다니는 교사와 학생들의 끼니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전교생 중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한 끼니 정도 굶는 것을 예사로 한다. 두 끼니를 먹는다하더라도 풀죽이나 국수를 먹는다. 옥수수밥이라도 먹는 학생은 약 30-40%, 5대 5밥이나 입쌀밥을 먹는 학생은 10% 정도 된다.
교사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점심을 거르거나 집에 가서 국수를 먹고 오는 선생님들이 많다. 도시락을 싸오는 선생님들도 5대 5밥을 싸오는 사람은 잘 사는 축에 속한다. 입쌀밥만 싸오는 교사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강냉이밥을 싸온다. 교사들 중에는 간혹 잘 사는 학생 집에 들러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가다보니 학부모의 눈총을 사게 되기도 한다.
어떤 교사들은 방과 후에 술을 빚어 술장사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남자 교사들은 아내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6. 교과서는 대물림, 학습장은 종합장
2003년까지는 교과서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어떤 노동자구 학교에서는 교사만 교과서를 갖고 수업을 하기도 했다. 도시의 학교에서는 이전 학생들이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아 사용했다. 2004년 들어 교과서가 새로 지급되었는데, 개인별로 한 권씩 돌아갈 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었다. 새 교과서는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학습장은 일명 ‘종합 학습장’이라고 하는데, 한 권에 전 과목의 필기를 하기 때문이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보니, 종이의 질이 안 좋은데다 지우개의 질도 나빠 종이가 쉽게 찢어진다.
물론 부모가 장사를 해서 어느 정도 여력이 되면 학습장과 필기도구, 가방, 옷, 신발 등을 일체 시장에서 구입해 준다. 이런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복이나 가방을 주더라도 중국 상품을 구입하려고 한다.
7. 잘 차려입은 학생, 주눅 드는 선생님
학생은 구두와 정장을 차려입고 다니는데, 선생님은 초라한 행색으로 다닐 때 선생님들은 스스로 위축감을 갖는다. 학생들도 예전처럼 선생님을 무조건 존경하지는 않는다. 선생님들이 시간을 쪼개 장사를 다니거나 계속 학부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은근히 선생님을 무시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이렇다보니 선생님들이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잃게 된다. 월급이 제 때 지급되지 않을뿐더러 높은 물가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교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퍼지고 있다. 다만 교사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농장원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쉽게 교사직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는 비단 선생과 학생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도 빈부 차이가 생기다보니 위화감이 조성된다. 노동자구의 학생들은 도시 학생들에게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인다. 옷차림에서 잘 차려 입은 학생들에게 기가 죽는 것이다.
2005년 5월 함경북도의 기차 운행 상황
1. 회령-온성간 통근 기차 운행
기차도 일종의 서비차 형태로 운행되는 노선이 생겼다. 온성과 회령을 오가는 통근 열차가 생긴 것이다. 아침에는 회령발 온성행, 저녁에는 온성발 회령행으로 왕복을 한 번 한다. 편도 요금은 2,000원이다. 수화물이 있을 경우 수화물 1kg당 1원씩 받는다. 매일 운행되고 있으며 약 2시간가량 소요된다. 통행 증명서는 없어도 되며, 공민증을 지참하면 된다.
2. 기타 기차 운행 소식
함경북도 새별군에서 나선 가는 기차는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함경남도 함흥과 단천, 함경북도 청진과 무산은 각각 6시간 정도씩 소요된다. 청진-무산은 전력사정이 좋을 당시 4시간 소요되던 거리였는데 10여 개역을 지나는 데만도 시간이 세 배 더 걸린다.
2005년 북한의 통행증명서 발급 상황
통행 증명서
통행 증명서는 발급 한도량이 정해져 있는데 수요자가 많아 발급기관에서는 매번 초과 발급을 한다. 군이나 시 인민위원회 2부는 도 인민위원회 2부에, 도 인민위원회 2부는 중앙에 뇌물을 바치면서 할당량보다 추가로 가져온다.
뇌물 비용이 들더라도 수요자가 워낙 많아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형편이다. 이에 수요자의 80-90%를 차지하는 장사꾼들은 더 빨리 떼기 위해 뇌물을 추가로 바치게 된다. 국경지역으로 가는 증명서와 평양행 증명서는 단가가 비싸다. 6월 현재 청진에서 평양 갈 때 보통 5,000-8,000원을 주어야 한다. 청진에서 국경연선에 갈 때는 최소 3,000원이 든다.
시간과 금전적 측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승객들 중에는 통행 증명서 없이 그냥 올라타는 사람들도 있다. 안 걸리면 운이 좋은 것이고, 걸리면 벌금 500원을 내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적발될 경우 단속원에 따라 일이 더 복잡해질 우려가 있어 대체로 돈을 더 주고라도 ‘증명서를 지참하는 분위기이다.
단속을 하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증명서가 없다고 단련대에 보내는 식으로 강경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로부터 받는 벌금이나 뇌물을 수입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예전에는 뇌물을 받더라도 고양이 담배 한두 갑, 술 한 두병, 쌀 몇 키로 등 현물로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현금을 더 선호한다. 뇌물을 받는 것이 어느덧 관행으로 굳어져서 승무 안전원, 승무 안내원, 기관사, 정비사들도 한 번 운행을 하고 돌아오면 집행단위에 현금을 얼마씩 바쳐야 한다. 이들은 대체로 평양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근무하는 것을 원하는데, 특히 평양-두만강행 노선을 가장 선호한다. 노선이 길어 승객이 많아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2005년 함경북도의 버스 운행
버스 운행 소식
청진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버스는 주로 김책, 길주, 회령행 노선이다. 출발지는 청진 수남 경기장 앞이다. 청진 버스 회사는 2-3년 전부터 보안성에서 운영하고 있고, 현재는 거의 유일한 회사이다. 청진 회사는 아니지만 본사가 회령에 있는 버스 회사도 청진에 다닌다.
청진 버스는 오전에 회령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고, 회령 버스는 오전에 청진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온다. 이 두 회사는 서로 승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언쟁도 오가고 갈등도 생긴다.
버스 출발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운전수의 재량에 따라 손님들을 더 태우기 위해 늦게 출발하기도 하고, 가다가 더 태우기도 한다. 회령까지 가는 길에는 주로 석막, 부령, 고무산, 전거리 등에 정차한다. 이 때 여행증명서가 없는 사람들은 전거리 교화소에 면회 간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짐은 한 개당 50원 가량 받는다. 약 3시간 소요된다.
버스에는 운전수 두 명, 차장 한 명이 타는데 모두 남자들이다. 가끔 돈을 내지 않으려는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군인을 태우지 않기 위해서이다. 원래 규정에 군인들은 일반인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군인의 횡포가 심해 일반인들이 제지할 형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버스 회사 입장에서 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태울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군인 승차를 거부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는 군인이 있을 경우 경무부(남한의 헌병대)에 신고를 한다.
최근 청진에서도 막무가내로 올라탄 군인들을 운전수가 아무 말 없이 청진 경무대에 싣고 가서 신고를 했었고 경무원들이 그 군인이 데려간 적도 있었다. 청진에서 김책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군인들이 오르려 하자 운전수가 말렸다. 다른 군인들은 세상 물리를 조금 알기에 타지 않았는데 대위 1명이 막무가내로 올라탔다. 운전수가 안 내리면 다른 방도를 쓸테니 후회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그 대위는 버텼다. 그래서 그 운전수는 버스를 몰아 청진 경무대 앞에 세우고 신고를 했다. 결국 경무부에서 그 대위와 하전사 1명을 데리고 갔다.
예전 같으면 경무부가 군인의 편을 들었겠지만, 이젠 버스 회사와 경무부가 미리 뇌물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군인을 처벌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 여성/어린이/교육
6월 북한 주민들의 생존경쟁에 대한 인식 변화(2005년)
1. ‘머저리’=돈 없고 굶주리는 사람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는 사람, 장사를 잘 못하는 사람,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을 ‘머저리’라고 부른다. 국가의 어떠한 지원도 끊긴 상태에서 각자 스스로 살아야 되는 현실 속에서 머리를 써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즉 한 끼니조차 해결하기도 힘든 사람들은 그만큼 머리를 쓰지 못하는, 즉 똑똑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시대에 머리를 쓰지 못하는 것은 경쟁체제에서 밀려나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강타기를 하든 강도질을 하든 사기협잡을 하든 자기 나름대로의 방도를 찾아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역으로 어떤 식으로든 주민들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머저리’라는 말은 새로운 경쟁 시대 속에서 낙오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집단적 야유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이런 인식의 결과, 설혹 가족 중에 누군가 굶주림으로 죽었다 하더라도 굶어 죽었다는 말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머저리라서 죽었지, 똑똑하면 죽었겠냐’고 비웃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들에게는 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말한다. 굶어 죽는 것은 이제 부끄러운 일이 된 것이다.
인민반에서 부조금을 모아주거나 장례를 함께 치러주고, 옥수수 몇 kg씩이라도 모아 주는 등 이웃을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 체계와 사회 안전 보장 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선행에 기댄다고 하더라도 만성 기아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에는 절대 역부족이다.
굶주려 죽는 사람들은 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취약 계층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장, 즉 외부의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6월 함경남도 단천 주민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인식(2005년)
함경남도 단천 주민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인식
주민들은 오랫동안 한국을 미국의 허수아비, 못 살고 굶주리고 헐벗은 나라, 사대주의 하는 괴뢰정권 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 6․15 정상회담을 할 때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한국의 대통령이 서로 포옹하고 연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또 고(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보내주고 금강산 관광도 열고, 박근혜 대표가 다녀가고, 한국에서 비료와 식량들이 오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물론 북한 당국에서는 정치 강연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치를 잘 하고 북한의 국방력이 강해서 한국 정부가 굽히고 들어오는 거라고 선전한다. 이 말을 믿는 주민들이라도 한국에서 한 동포니까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구나, 어떻게든 통일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남조선이 나쁘다고 했지만 결국 우리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한국의 도움을 고마워하면서도,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비료나 식량지원이 들어온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이 직접 받는 몫이 거의 없거나 적은 경우에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오히려 중국 덕분에 자기들이 먹고 산다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에 공짜로 주는 것은 없지만 중국에서 공업품과 옥수수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장사를 하면서 살 수 있겠냐고 말한다.
이는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경제활동이 장사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제품이 없으면 생계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 물품은 제한적인 지역에 제한적인 대상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만, 중국의 물품은 무상이 아님에도 북한 전역을 휩쓸고 있는 데서 나오는 말이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각자의 처지와 경험에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된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의 지원 사실에 대해 모르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에 대해서는 호불호의 차이가 있지만(지난 6호 참조. 황해도 해주 주민들은 중국에 대해 불평과 불만이 높았다), 한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식이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
6월 국경 주민들의 북한 정부에 대한 불신(2005년)
북한 사회에 대한 비관적 인식
외부의 정보에 비교적 쉽게 노출되는 국경변 지역의 주민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내륙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이들은 가까운 친구와 친지들끼리 북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2003년까지만 해도 희망이 있었는데 농사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2004년 들어 식량가격이 최고 1,000원에 이르며 사상최고치를 가파르게 경신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절망감이 확산되고 있다.
‘내년이면 더 나아진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져라’라는 당국의 사상 교육을 받아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농사는 점점 안 되고 쌀 가격은 계속 오르기만 해서 의심이 깊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2005년 들어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식량을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터에 벌써 올해 6월 초순 현재 쌀 가격이 1,000원대를 넘어서고, 2,0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더해져 희망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한국이 이기든 미국이 이기든 북한이 이기든 전쟁이라도 일어나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서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이대로 가면 북한 사회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른바 ‘자기 붕괴론’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정치가 썩었다는 소리도 나온다. 이전에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는 사회로 변모하면서 잘 사는 사람에 대한 위화감이 높아졌다. 똑같이 법을 어겨도 잘 사는 사람은 빠져 나오고, 못 사는 사람들은 심한 처벌을 받는 등 법적 제재에 큰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