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중국 기업들 대북 투자 더뎌
중국 기업들에게 대북 투자의 길이 대폭 확대됐으나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선행경험이 좋지 않아서이다. 투자 결정을 내리더라도 천천히 단계를 밟자는 기업들이 많다. 북한 정부의 말 바꾸기와 태도 돌변에 크게 데인 경험이 있어서다. 기껏 투자했더니 뜬금없이 북한 정부가 가로채가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경험들이 소문처럼 돌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북한의 소비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몹시 떨어지는 것도 이유이다. 량강도 혜산에 식당을 차리려고 했던 한 중국인 사장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너무 한심해서 식당에 오는 사람들이 정해져있다. 그 몇 사람이라도 보고 장사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계산이 안 나온다”고 했다. 대개 돈주나 간부들이 드나들 뿐 일반 주민들에게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꿈에나 그려볼 일이다.
청진에 식당을 냈던 중국인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식당 내부 꾸미기부터 주방 도구 등을 일체 새 것으로 교체하고, 식재료도 중국에서 조달받으려고 계획했다가 열흘도 안 돼 손을 들었다. 고기, 쌀, 채소는 물론 양념류까지 훔쳐가는 요리사와 복무원들은 물론이고, 식당을 찾는 손님조차 눈에 뜨이는 것들이 있으면 슬쩍하는 통에 골머리를 앓았다. 또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평양에 진출한 사업가들은 식당이 북적거려 돈을 벌었다지만, 지방은 격차가 너무 커서 아직 성공적인 투자 사례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배급 안 주면서 황금평 왜 팔아?”
봄철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황금평과 위화도를 중국에 넘겼으나 식량을 풀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의 소문이 돌고 있다. 채하시장에서 암달러 장사를 하는 정은숙(가명)씨는 “우리 정부에서 중국에 위화도와 황금평 지구를 넘겼는데, 백성들에게 식량을 안 풀고 군수산업 분야에 투자한다고 들었다. 우리들은 못 먹어서 다 죽어가는데, 정부에서는 돈이 생겨도 백성들을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로만 인민 생활을 추켜세우는 것이 첫째 가는 과업이라고 떠든다. 지금 전투함 사는 게 급하냐?”고 불만을 얘기했다. 남신의주에 사는 한성호(가명)씨는 먹고 살만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화를 냈다. 보고도 모르냐는 뜻이었다. 겉보기에도 눈이 퀭하고 뼈에 살가죽만 걸쳐있는 느낌이었다. 황금평과 위화도를 중국에 임대해준 사실을 아느냐고 물으니,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당장 입에 풀칠 할 것 찾기도 바쁜 판에 그런 얘기를 주워들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쑥 “식량은 언제 풀리느냐?”고 물었다. 땅을 팔았으면 먹을 것이 들어올 게 아니냐는 소리였다. 아직 그런 얘기를 못 들었다고 했더니, “배급도 안 주면서 황금평을 왜 파냐?”고 신경질을 내면서 등을 돌렸다. 더 할 말이 없다는 시늉이었다. 신의주 시당의 한 일군은 “중앙에서 시, 군당에 계속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고 지시가 내려온다.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는 원천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데, 몇 개 안되는 특산물들도 힘 있는 단위에서 먼저 가져가다 보니 아무리 당이라고 해도 제 앞가림 하기가 바쁘다. 지위가 있는 우리도 바쁜데 백성들 입에 들어갈 식량을 누가 챙기겠냐?”고 사실상 주민 배급이 어렵다고 했다.
개혁개방의 꿈 부푼 특구지역
황금평과 라선 개발 계획 소식에 이 지역 주민들이 개혁개방의 꿈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라선시의 경우, 지난 해 초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이 개정되고, 직할시에서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6월 8일과 9일, 황금평과 라선특구에서 착공식이 거행되자 주민들의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두고 보라. 이제 몇 년 사이에 중국처럼 개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곧 잘 살 수 있다”고 장담하는 분위기다.
이런 희망 섞인 기대는 간부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면서, 내각 경제 일군들이 동행했는데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무역성 산하 일군들은 해외에 자주 드나들어 발전상을 많이 봐왔지만, 국내에만 있던 간부들은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크게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작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따라 3차례나 중국을 다녀온 한 간부는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당장 나부터 회의에 임하는 자세가 틀려졌다. 경제 인식이 생기니까 중국을 따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그러니 말 한 마디를 해도 자신 있게 하게 되더라”고 자신의 인식 변화를 얘기했다. 중국의 발전상을 목격하고 보니, 중국이 투자를 확실히 해주기만 한다면 경제발전을 틀림없이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중국의 투자를 더 끌어내려면, 무역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인식이다.
실제 국경연선지역의 12개 세관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깐깐하던 세관 검열 규정이 중국 무역상인들에게 다소 유리하게 개정된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일례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상품들은 거의 다 통과된다. 단, 한국 상품은 제외된다. 예전에는 유엔이나 남조선 정부에서 보내준 식량과 물자 지원을 무상으로 많이 받았는데,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대중 의존도는 높아졌다.
1백 톤이라도 성의를 보이자”
각 해외대표부마다 5천 톤의 식량 과제를 통보받은 일군들은 최대한 9월 전까지 수행하라는 방침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몇 년이 걸려도 하기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단 두 달 만에 해내라는 거냐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미룬다고 해서 철회될 것도 아니고, 괜히 반발했다가는 검열에서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끙끙 앓고 있다. 식량 5천 톤을 달성하려면 약 200만 달러가, 인민폐로는 1,300만 위안 정도가 필요하다. 한 일군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 실력으로는 5천 톤이 아니라 50톤도 바쁜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될대로 되라.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국내 정세를 들으면서 변했다”고 전했다. 무역상의 목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무역성 소속 인원들은 국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이번엔 꼭 식량 임무를 완성해서 꼬투리를 잡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서로 당부하고 있다. 재중 북경 주재원들 중에는 벌써 1천 톤을 바친 사람도 생겼다. 그 뒤를 이어 일군들이 너도나도 200톤, 300톤, 500톤씩 속속 식량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신뢰를 쌓아온 중국 대방들에게 후불을 약속하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당장 5천 톤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다만 100톤이라도 조금씩 내겠다는 일군도 있고, 1-2십만 달러라도 구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일군들도 많다. 심양 대표부의 한 일군은 “자칫 잘못하면, 무역상과 소속 일군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무역상을 도우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9월말까지 무조건 완성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감을 보이는 일군들도 많다.
각국 대표부 일군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과제에 절망스러워하면서도, 일단 성의를 보이는 쪽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재중 무역대표부의 한 일군에게 어느 정도가 성의 표시냐고 물었더니, “못해도 5백 톤은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머지는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일단 1-2백 톤을 먼저 구해보고, 점차 조금씩 늘려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가면서 어떻게든 50톤까지는 구해볼 수 있겠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못하겠다. 에라, 모르겠다. 욕하겠으면 욕하고 처벌하겠으면 처벌하라”고 체념하는 일군도 생기고 있다.
무역성, “식량 과제에 사활 걸었다”
검열 광풍 속에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무역성의 행보가 대단히 빨라졌다. 리룡남 무역상부터 북경을 오가며 식량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 8일, 주중북경대사관을 방문한 리룡남 무역상은 무역참사와 무역대표부 주요 일군들을 긴급히 불러 모으고, 자신이 직접 식량 과제 해결을 주문했다. 아울러 각국 일선에서 일하는 해외무역대표부 일군들에게도 식량 과제 달성을 거듭 독려하고 있다.
무역상과의 회의에 참가했던 한 일군은 “이번 (해외대표부에 내려진) 식량 과제는 군량미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량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다. 농촌동원이 끝나면 햇곡식이 나와서 식량난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소출이 너무 적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식량 고생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 이번에 긴급하게 식량 과제가 떨어진 것. 국내의 어떤 간부는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고난의 행군때보다 몇 배는 힘들어졌다고 하더라. 단지 식량만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가 그만큼 심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자체적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싶어도 그럴 길을 안 터주니, 우리만 죽어나게 생겼다”고 전했다.
회의에서 대책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무역상이) 정 돈이 없으면 일부 대주겠다고 하더라. 중국 대방들에게는 2개월 후불을 제안해서 식량을 먼저 끌어당기고, 나중에 그 값은 본사에서 대주겠다고 했다. 꼭 쌀이 아니어도 좋으니, 수량은 꼭 맞춰달라고 했다”며 무역성이 식량 과제 달성에 얼마나 필사적인지 증언했다. 만약 9월까지 과제를 못하면, 주요 일군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무조건 잘하겠다고 싹싹 빌면서 납작 엎드릴 때이다. 국내에서 지금 어려운 식량 상황을 자꾸 무역성에 돌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잘못하면 (우리 무역상도) 작년 박남기 전(前) 계획재정부장 꼴 날까봐 다들 바짝 긴장한 상태다. 무역상이 떨어지면, 그 밑에 있는 우리라고 별 수 없이 같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도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냥 빈 말이 아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무역성, 식량 해결에 사활 걸었다
처음부터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 군량미 과제도 헉헉대면서 했던 그들이다. 물론 하는 시늉만 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다. 예전에는, 그들이 움직이면 아무리 다급한 식량문제도 일시적으로나마 해결됐기 때문이다. 본국에서는 군량미 과제를 60% 수준밖에 달성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한 듯하다. 북한 지도부는 한쪽에 검열의 칼을 빼들고, 다른 쪽으로 매 해외대표부마다 5천 톤 이상의 식량을 마련하라는 과제를 내렸다. 이번 검열이 통상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리룡남 무역상의 숙청 얘기까지 들리면서, 무역성 일군들이 식량 과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식량 과제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의 최 일선에서 식량을 마련해야 하는 해외무역대표부의 고충은 매우 깊다. 5천 톤이 아니라, 50톤 마련도 힘들어 나자빠지는 일군들도 생기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발 벗고 나서는 분위기다. 험난한 대외무역의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노력이 꼭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 경제활동
중국 기업들 대북 투자 더뎌
중국 기업들에게 대북 투자의 길이 대폭 확대됐으나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선행경험이 좋지 않아서이다. 투자 결정을 내리더라도 천천히 단계를 밟자는 기업들이 많다. 북한 정부의 말 바꾸기와 태도 돌변에 크게 데인 경험이 있어서다. 기껏 투자했더니 뜬금없이 북한 정부가 가로채가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경험들이 소문처럼 돌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북한의 소비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몹시 떨어지는 것도 이유이다. 량강도 혜산에 식당을 차리려고 했던 한 중국인 사장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너무 한심해서 식당에 오는 사람들이 정해져있다. 그 몇 사람이라도 보고 장사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계산이 안 나온다”고 했다. 대개 돈주나 간부들이 드나들 뿐 일반 주민들에게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꿈에나 그려볼 일이다.
청진에 식당을 냈던 중국인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식당 내부 꾸미기부터 주방 도구 등을 일체 새 것으로 교체하고, 식재료도 중국에서 조달받으려고 계획했다가 열흘도 안 돼 손을 들었다. 고기, 쌀, 채소는 물론 양념류까지 훔쳐가는 요리사와 복무원들은 물론이고, 식당을 찾는 손님조차 눈에 뜨이는 것들이 있으면 슬쩍하는 통에 골머리를 앓았다. 또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평양에 진출한 사업가들은 식당이 북적거려 돈을 벌었다지만, 지방은 격차가 너무 커서 아직 성공적인 투자 사례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꿈 부푼 특구지역
황금평과 라선 개발 계획 소식에 이 지역 주민들이 개혁개방의 꿈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라선시의 경우, 지난 해 초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이 개정되고, 직할시에서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6월 8일과 9일, 황금평과 라선특구에서 착공식이 거행되자 주민들의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두고 보라. 이제 몇 년 사이에 중국처럼 개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곧 잘 살 수 있다”고 장담하는 분위기다.
이런 희망 섞인 기대는 간부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면서, 내각 경제 일군들이 동행했는데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무역성 산하 일군들은 해외에 자주 드나들어 발전상을 많이 봐왔지만, 국내에만 있던 간부들은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크게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작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따라 3차례나 중국을 다녀온 한 간부는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당장 나부터 회의에 임하는 자세가 틀려졌다. 경제 인식이 생기니까 중국을 따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그러니 말 한 마디를 해도 자신 있게 하게 되더라”고 자신의 인식 변화를 얘기했다. 중국의 발전상을 목격하고 보니, 중국이 투자를 확실히 해주기만 한다면 경제발전을 틀림없이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중국의 투자를 더 끌어내려면, 무역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인식이다.
실제 국경연선지역의 12개 세관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깐깐하던 세관 검열 규정이 중국 무역상인들에게 다소 유리하게 개정된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일례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상품들은 거의 다 통과된다. 단, 한국 상품은 제외된다. 예전에는 유엔이나 남조선 정부에서 보내준 식량과 물자 지원을 무상으로 많이 받았는데,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대중 의존도는 높아졌다.
■ 식량소식
“배급 안 주면서 황금평 왜 팔아?”
봄철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황금평과 위화도를 중국에 넘겼으나 식량을 풀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의 소문이 돌고 있다. 채하시장에서 암달러 장사를 하는 정은숙(가명)씨는 “우리 정부에서 중국에 위화도와 황금평 지구를 넘겼는데, 백성들에게 식량을 안 풀고 군수산업 분야에 투자한다고 들었다. 우리들은 못 먹어서 다 죽어가는데, 정부에서는 돈이 생겨도 백성들을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로만 인민 생활을 추켜세우는 것이 첫째 가는 과업이라고 떠든다. 지금 전투함 사는 게 급하냐?”고 불만을 얘기했다. 남신의주에 사는 한성호(가명)씨는 먹고 살만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화를 냈다. 보고도 모르냐는 뜻이었다. 겉보기에도 눈이 퀭하고 뼈에 살가죽만 걸쳐있는 느낌이었다. 황금평과 위화도를 중국에 임대해준 사실을 아느냐고 물으니,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당장 입에 풀칠 할 것 찾기도 바쁜 판에 그런 얘기를 주워들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쑥 “식량은 언제 풀리느냐?”고 물었다. 땅을 팔았으면 먹을 것이 들어올 게 아니냐는 소리였다. 아직 그런 얘기를 못 들었다고 했더니, “배급도 안 주면서 황금평을 왜 파냐?”고 신경질을 내면서 등을 돌렸다. 더 할 말이 없다는 시늉이었다. 신의주 시당의 한 일군은 “중앙에서 시, 군당에 계속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고 지시가 내려온다.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는 원천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데, 몇 개 안되는 특산물들도 힘 있는 단위에서 먼저 가져가다 보니 아무리 당이라고 해도 제 앞가림 하기가 바쁘다. 지위가 있는 우리도 바쁜데 백성들 입에 들어갈 식량을 누가 챙기겠냐?”고 사실상 주민 배급이 어렵다고 했다.
“1백 톤이라도 성의를 보이자”
각 해외대표부마다 5천 톤의 식량 과제를 통보받은 일군들은 최대한 9월 전까지 수행하라는 방침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몇 년이 걸려도 하기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단 두 달 만에 해내라는 거냐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미룬다고 해서 철회될 것도 아니고, 괜히 반발했다가는 검열에서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끙끙 앓고 있다. 식량 5천 톤을 달성하려면 약 200만 달러가, 인민폐로는 1,300만 위안 정도가 필요하다. 한 일군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 실력으로는 5천 톤이 아니라 50톤도 바쁜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될대로 되라.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국내 정세를 들으면서 변했다”고 전했다. 무역상의 목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무역성 소속 인원들은 국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이번엔 꼭 식량 임무를 완성해서 꼬투리를 잡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서로 당부하고 있다. 재중 북경 주재원들 중에는 벌써 1천 톤을 바친 사람도 생겼다. 그 뒤를 이어 일군들이 너도나도 200톤, 300톤, 500톤씩 속속 식량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신뢰를 쌓아온 중국 대방들에게 후불을 약속하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당장 5천 톤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다만 100톤이라도 조금씩 내겠다는 일군도 있고, 1-2십만 달러라도 구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일군들도 많다. 심양 대표부의 한 일군은 “자칫 잘못하면, 무역상과 소속 일군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무역상을 도우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9월말까지 무조건 완성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감을 보이는 일군들도 많다.
각국 대표부 일군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과제에 절망스러워하면서도, 일단 성의를 보이는 쪽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재중 무역대표부의 한 일군에게 어느 정도가 성의 표시냐고 물었더니, “못해도 5백 톤은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머지는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일단 1-2백 톤을 먼저 구해보고, 점차 조금씩 늘려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가면서 어떻게든 50톤까지는 구해볼 수 있겠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못하겠다. 에라, 모르겠다. 욕하겠으면 욕하고 처벌하겠으면 처벌하라”고 체념하는 일군도 생기고 있다.
무역성, “식량 과제에 사활 걸었다”
검열 광풍 속에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무역성의 행보가 대단히 빨라졌다. 리룡남 무역상부터 북경을 오가며 식량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 8일, 주중북경대사관을 방문한 리룡남 무역상은 무역참사와 무역대표부 주요 일군들을 긴급히 불러 모으고, 자신이 직접 식량 과제 해결을 주문했다. 아울러 각국 일선에서 일하는 해외무역대표부 일군들에게도 식량 과제 달성을 거듭 독려하고 있다.
무역상과의 회의에 참가했던 한 일군은 “이번 (해외대표부에 내려진) 식량 과제는 군량미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량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다. 농촌동원이 끝나면 햇곡식이 나와서 식량난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소출이 너무 적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식량 고생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 이번에 긴급하게 식량 과제가 떨어진 것. 국내의 어떤 간부는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고난의 행군때보다 몇 배는 힘들어졌다고 하더라. 단지 식량만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가 그만큼 심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자체적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싶어도 그럴 길을 안 터주니, 우리만 죽어나게 생겼다”고 전했다.
회의에서 대책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무역상이) 정 돈이 없으면 일부 대주겠다고 하더라. 중국 대방들에게는 2개월 후불을 제안해서 식량을 먼저 끌어당기고, 나중에 그 값은 본사에서 대주겠다고 했다. 꼭 쌀이 아니어도 좋으니, 수량은 꼭 맞춰달라고 했다”며 무역성이 식량 과제 달성에 얼마나 필사적인지 증언했다. 만약 9월까지 과제를 못하면, 주요 일군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무조건 잘하겠다고 싹싹 빌면서 납작 엎드릴 때이다. 국내에서 지금 어려운 식량 상황을 자꾸 무역성에 돌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잘못하면 (우리 무역상도) 작년 박남기 전(前) 계획재정부장 꼴 날까봐 다들 바짝 긴장한 상태다. 무역상이 떨어지면, 그 밑에 있는 우리라고 별 수 없이 같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도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냥 빈 말이 아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무역성, 식량 해결에 사활 걸었다
처음부터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 군량미 과제도 헉헉대면서 했던 그들이다. 물론 하는 시늉만 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다. 예전에는, 그들이 움직이면 아무리 다급한 식량문제도 일시적으로나마 해결됐기 때문이다. 본국에서는 군량미 과제를 60% 수준밖에 달성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한 듯하다. 북한 지도부는 한쪽에 검열의 칼을 빼들고, 다른 쪽으로 매 해외대표부마다 5천 톤 이상의 식량을 마련하라는 과제를 내렸다. 이번 검열이 통상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리룡남 무역상의 숙청 얘기까지 들리면서, 무역성 일군들이 식량 과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식량 과제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의 최 일선에서 식량을 마련해야 하는 해외무역대표부의 고충은 매우 깊다. 5천 톤이 아니라, 50톤 마련도 힘들어 나자빠지는 일군들도 생기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발 벗고 나서는 분위기다. 험난한 대외무역의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노력이 꼭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