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제대 송별회, 눈물 젖은 옥수수떡 2개뿐
한때 군인들 사이에 누구나 배치되고 싶어 했던 국경연선지역은 폭풍군단이 쓸고 간 후 예전의 영화가 많이 퇴색한 분위기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군생활을 했던 안기남(가명)씨는 며칠 전 불명예 제대를 했다. 이번 검열에서 손전화기가 걸렸는데, 다행히 정치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철직 제대 처분을 받았다. 같은 부대에서 생활했던 동료들이 조기 제대되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송별회 겸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유선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옥수수 빵을 만들어 파는 집이었는데, 주인은 선불이 아니면 안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안씨와 친구들이 그 집에서 외상으로 먹은 게 벌써 10만원을 넘어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친구가 제대를 하는데, 아무 것도 못 먹여 보내야 되겠느냐며 친구 빚까지 다 갚을 테니 제발 옥수수떡 좀 달라고 애걸복걸하다시피 했다. 동료들이 손이 닳도록 애원한 덕분에 겨우 옥수수떡 두 덩이를 얻을 수 있었다. 한창 건장해야할 젊은 애들이 너무 비쩍 마른 것을 보고, 주인도 끝까지 모른 체하지 못했다. 주인은 “생돈을 또 강에 처넣는 구나”하고 한숨을 쉬고, 술 한 병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5-6명의 군인들이 옥수수떡 두 덩이로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마는 제대하는 동료에게 뭐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주인 서향순(가명)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안 주려고 했는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안 줄 수가 없었다.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 내 자식이 어디서 못 얻어먹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 더 주고 싶지만, 나도 사정이 안 좋다. 아무리 바쁘게 옥수수떡을 만들어 팔아도 빚잔치다. 나도 빚내서 이 장사를 하는데, 가져가는 군 아(이)들도 다 빚지고 먹고 제대할 때는 그냥 도망가 버린다. 옛날 같으면 제대하는 아이들이 송별회 한다고 불고기집을 찾아가거나 상점에서 맥주를 상자로 들여다 먹고는 했다. 다들 도강이다 뭐다 비법을 하도 많이 해서, 제대하면 돈 꽤나 벌었다는데, 옥수수떡이라도 먹겠다고 저렇게 애원하는 것을 보면 요즘은 군인들도 돈 벌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서씨처럼 군인들에게 외상으로 음식을 팔고 못 받은 집들이 부지기수다.
폭풍군단 검열 후에도 여진 남아
국경연선지역에 불어 닥쳤던 ‘폭풍군단’ 검열이 8월 말에 끝나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폭풍군단 검열에서는 지난 8월 초부터 국경연선지역 군부대와 간부들을 대상으로 도강, 밀매매, 인신매매, 마약 등 불법 활동을 집중 단속했었다. 함경북도와 량강도, 평안북도에서는 수천 여 명이 조사 대상에 올라 고초를 치렀다. 공개재판을 받은 사람만도 각 도별로 각각 수백 명에 이른다. “도강자와 안내자, 밀수업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에 따른 대대적인 검열이었다. 8월 20일에는 중앙당 검열조가 국경연선지역에 추가 투입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경경비대원들과 군관, 보위부원도 대거 구속됐다. 대부분 핸드폰 사용과 도강, 탈북브로커, 한국문세에 걸려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탈북브로커와 연계해 도강을 눈감아주거나 심부름을 해준 경우다. 심문 결과 중국 대방의 연락처가 나오면 중국 공안당국에 수사 협조를 한다. 중국 측에서도 자국민이 탈북브로커나 마약거래 등 불법 활동에 연루됐을 경우, 북한 측과 공조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국경연선지역 단속이 한층 더 강화되는 양상이다. 비법행위를 해오던 일부 주민들은 국경지역을 벗어나 평안남도 평성시나 함경남도 함흥 등 안쪽 도시로 피해버렸다. 아예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다. 법관들이 뒤를 봐주었는데, 그들이 걸리면 자기들의 비리도 드러나게 될 것을 우려해 적극 피신을 권한 경우도 많았다.
배곯는 군대도둑 극성
“내년 여름까지 버틸 식량을 구하라”, 인민무력부가 산하 무역회사들에 내린 지령이다. 올해 국내 생산량으로는 군량미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대표부와 무역회사들에 불같은 독촉을 연달아 내리고 있다. 미래를 예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요즘 식량난이 더 어렵다. 군인들이 가기 싫어하는 강원도 주둔 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이 가장 배치되고 싶어 하는 국경연선지역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요즘 가을철이라 그런대로 하루 세 끼를 챙겨먹고는 있지만, 겨우 허기를 면하는 수준이다. 지난 9월 25일, 군부대 검열이 끝나자 군인들은 당장 민가를 덮쳤다. 예전에는 군인 한두 명이 털었다면 요즘엔 5-6명씩 무리지어 집집마다 돌면서 콩, 감자, 옥수수는 물론이고 닭, 오리 등 곡물과 가축까지 싹쓸이한다. 군민관계 훼손이라며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해 군인들은 군복을 뒤집어 입거나 아예 벗어버리고 도둑질을 한다.
지난 9월,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동에서는 3주간 군대 도둑 신소가 50여 건에 달했다. 최금철(가명)씨 부부는 지난 9월 24일 새벽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잠귀가 밝은 최씨의 아내가 먼저 깼다. 처음에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부엌에서 키우던 닭이 시끄럽게 울며 푸드덕거렸다. 곧장 남편을 깨워 나갔더니, 한 무리의 도둑이 닭과 옥수수 마대를 잽싸게 들고튀었다. 소리 지르면서 쫓아가려는 찰나, 두 부부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한밤중 큰 소리에 놀란 이웃집에서 살펴보러 왔다가, 쓰러진 부부를 급히 병원에 데려갔는데 남편은 뇌진탕으로 아직 의식을 못 찾은 상태이고, 아내는 하루 만에 깨어났다. 아주머니는 어둠 속이어서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명의 장정들이었는데 군대도둑이 틀림없다고 했다. 군대 도둑이 워낙 극성이라, 주민들은 무리 지어 다니는 도둑들은 무조건 군대 도둑이라고 믿는다. 실제 민가에 내려가 도둑질을 해온 사병 김병옥(가명)씨는 옥수수 수확철이라 집집마다 구들에 널어 말리거나 자루에 담아둔 것을 낮에 돌아다니면서 눈여겨보았다가 밤에 부대원들과 함께 훔치러 간다고 했다. 요즘 군대 도둑들 때문에 주민들은 낮에도 집을 비우지 못하고, 한밤중에도 교대로 잠을 자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선잠을 자기 일쑤다. 전기가 없으니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새벽까지 촛불을 켜는 집들도 있다.
해외대표부, 식량과제 체념하는 분위기
10월 말까지 목표로 하는 식량 50만 톤 확보 계획이 순조롭지 못하다. 무역성의 자금난으로 그만한 식량을 수입할만한 여력이 없고, 일선에서 사업을 하는 해외대표부 일군들도 잇단 식량과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원래 해마다 2.16 명절 전에 식량과제를 바치는 게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몇 달 앞당겨진 것이다. 공교롭게 무역성 검열과 맞물려 공포 분위기 속에서 식량 확보에 나섰지만,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본국에서는 과제를 못하면 당장 짐 싸서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거듭 엄포를 놓아도 체념하는 일군들이 늘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당에서 죽이겠다고 해도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절반에도 못 미칠 것 같다. 지난 9월 말까지 확보된 5만 톤에 러시아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식량 5만 톤을 포함해 외부에서 들여오게 될 식량은 현재까지 10만 톤 수준”이라고 했다. 이미 배분된 것까지 포함한 양이 그 정도이고, 10월 말까지 40만 톤이 과연 확보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했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혼자만 못했으면 계속 끙끙 앓을 텐데, 다들 피차일반에 무역성 검열로 교체될 사람은 이미 교체되었으니 걱정을 덜었다는 얘기도 한다. 한 일군은 “잘릴 사람들은 다 잘렸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을 다 처벌할 수 있겠냐. 그저 불려가서 비판받고 욕먹고 그러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지만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당에서 충성심을 의심하면 나도 할 말이 있다. 후불은 한 푼도 안 된다고 면박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10월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9월 말까지 식량과제가 진행된 상황을 보면,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약 10%가 초과달성하고 20%가 아무 것도 못한 상태이며, 약 70%가 식량 1-2톤 내지 그에 해당하는 돈을 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올 가을 수확량 적어 평양시 타격
올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농촌 수확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평양시의 경우 근래 식량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인근 농촌 지역에서의 유입량은 예년에 비해 줄었다. 평양 시당의 한 간부는 “수확량이 크게 없는데다 군부대들에 식량을 먼저 줘야 해서 평양시에 들어오는 식량이 적다. 외부에서 수입되는 식량이 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어서 앞으로 식량 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9월 말, 평양에서 쌀값은 kg당 2,300원에서 2,600원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옥수수는 kg당 1,400원에서 1,700원 사이를 오르내렸다. 쌀 장사꾼들은 수해 이후 생산량 급감에 따라 12월에는 쌀값이 3,000원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양시는 가을철 식량 확보에 더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시당 간부는 “지난겨울, 지독한 한파에 굶주림이 겹쳐 1월부터 사망자가 속출했다. 배급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주민 대상 배급을 전면 중단했고, 3월에는 하급간부들에게 주는 식량도 떨어졌다. 나중에는 중앙당 간부들까지 가족 배급을 못 받았다. 내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큰 일 난다. 내년은 더군다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가 아니냐. 태양절 전에는 전면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어떻게든 올 겨울을 버틸 식량이 시급하다”고 했다.
평양시 인근 농촌에서는 “가을이라 굶어죽는 사람은 없으나, 보릿고개 때만큼이나 고생하고 있다. 농촌에 이렇게 식량이 없는데, 도시는 오죽하겠냐. 올 겨울에는 식량공황이 나타나지 않겠냐”는 소리가 나온다. 들판에 나가도 거둘 것이 없다보니, 올 겨울을 넘기기 어렵지 않겠냐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평양으로서는 식량 수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무역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 말까지 무역성에서는 식량을 5만 여 톤 구했지만, 목표 50만 톤에는 크게 못 미친다. 식량 과제 마감일이 10월말로 한 달 연기되었으나, 목표치 대비 몇 %나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눈물 젖은 옥수수떡 2덩이
폭풍군단 검열이 휩쓸고 지나간 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책을 잃고,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회령에서는 어린 군인 한 명이 손전화기를 가지고 있다가 검열에 걸렸다. 조기 제대하게 된 그를 위해 동료들이 뭐라도 먹여서 보내려고 했더니 돈이 없었다. 겨우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옥수수떡 2덩이를 얻어 먹일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불고기집에 몰려가 맥주를 상자로 들여놓고 먹고 마실 만큼 잘나가던 국경지역 군인들이었는데, 이제는 옥수수떡 2덩이를 얻지 못해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촌에서는 가을 수확 철을 맞아 극성을 부리는 군대도둑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라에서 아무리 군량미를 최우선 확보하라고 한다지만, 군인들은 늘 허기지다. 여느 해 같으면 훔쳐 먹을 게 많은 가을 수확기일 텐데, 말단 병사들에게는 춥고 배고픈 겨울이 벌써 시작되었다. 굶는 병사가 늘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물고 물리는 악순환이 올해도 재연되고 있다.
■ 식량소식
제대 송별회, 눈물 젖은 옥수수떡 2개뿐
한때 군인들 사이에 누구나 배치되고 싶어 했던 국경연선지역은 폭풍군단이 쓸고 간 후 예전의 영화가 많이 퇴색한 분위기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군생활을 했던 안기남(가명)씨는 며칠 전 불명예 제대를 했다. 이번 검열에서 손전화기가 걸렸는데, 다행히 정치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철직 제대 처분을 받았다. 같은 부대에서 생활했던 동료들이 조기 제대되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송별회 겸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유선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옥수수 빵을 만들어 파는 집이었는데, 주인은 선불이 아니면 안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안씨와 친구들이 그 집에서 외상으로 먹은 게 벌써 10만원을 넘어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친구가 제대를 하는데, 아무 것도 못 먹여 보내야 되겠느냐며 친구 빚까지 다 갚을 테니 제발 옥수수떡 좀 달라고 애걸복걸하다시피 했다. 동료들이 손이 닳도록 애원한 덕분에 겨우 옥수수떡 두 덩이를 얻을 수 있었다. 한창 건장해야할 젊은 애들이 너무 비쩍 마른 것을 보고, 주인도 끝까지 모른 체하지 못했다. 주인은 “생돈을 또 강에 처넣는 구나”하고 한숨을 쉬고, 술 한 병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5-6명의 군인들이 옥수수떡 두 덩이로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마는 제대하는 동료에게 뭐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주인 서향순(가명)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안 주려고 했는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안 줄 수가 없었다.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 내 자식이 어디서 못 얻어먹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 더 주고 싶지만, 나도 사정이 안 좋다. 아무리 바쁘게 옥수수떡을 만들어 팔아도 빚잔치다. 나도 빚내서 이 장사를 하는데, 가져가는 군 아(이)들도 다 빚지고 먹고 제대할 때는 그냥 도망가 버린다. 옛날 같으면 제대하는 아이들이 송별회 한다고 불고기집을 찾아가거나 상점에서 맥주를 상자로 들여다 먹고는 했다. 다들 도강이다 뭐다 비법을 하도 많이 해서, 제대하면 돈 꽤나 벌었다는데, 옥수수떡이라도 먹겠다고 저렇게 애원하는 것을 보면 요즘은 군인들도 돈 벌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서씨처럼 군인들에게 외상으로 음식을 팔고 못 받은 집들이 부지기수다.
폭풍군단 검열 후에도 여진 남아
국경연선지역에 불어 닥쳤던 ‘폭풍군단’ 검열이 8월 말에 끝나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폭풍군단 검열에서는 지난 8월 초부터 국경연선지역 군부대와 간부들을 대상으로 도강, 밀매매, 인신매매, 마약 등 불법 활동을 집중 단속했었다. 함경북도와 량강도, 평안북도에서는 수천 여 명이 조사 대상에 올라 고초를 치렀다. 공개재판을 받은 사람만도 각 도별로 각각 수백 명에 이른다. “도강자와 안내자, 밀수업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에 따른 대대적인 검열이었다. 8월 20일에는 중앙당 검열조가 국경연선지역에 추가 투입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경경비대원들과 군관, 보위부원도 대거 구속됐다. 대부분 핸드폰 사용과 도강, 탈북브로커, 한국문세에 걸려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탈북브로커와 연계해 도강을 눈감아주거나 심부름을 해준 경우다. 심문 결과 중국 대방의 연락처가 나오면 중국 공안당국에 수사 협조를 한다. 중국 측에서도 자국민이 탈북브로커나 마약거래 등 불법 활동에 연루됐을 경우, 북한 측과 공조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국경연선지역 단속이 한층 더 강화되는 양상이다. 비법행위를 해오던 일부 주민들은 국경지역을 벗어나 평안남도 평성시나 함경남도 함흥 등 안쪽 도시로 피해버렸다. 아예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다. 법관들이 뒤를 봐주었는데, 그들이 걸리면 자기들의 비리도 드러나게 될 것을 우려해 적극 피신을 권한 경우도 많았다.
배곯는 군대도둑 극성
“내년 여름까지 버틸 식량을 구하라”, 인민무력부가 산하 무역회사들에 내린 지령이다. 올해 국내 생산량으로는 군량미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대표부와 무역회사들에 불같은 독촉을 연달아 내리고 있다. 미래를 예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요즘 식량난이 더 어렵다. 군인들이 가기 싫어하는 강원도 주둔 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이 가장 배치되고 싶어 하는 국경연선지역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요즘 가을철이라 그런대로 하루 세 끼를 챙겨먹고는 있지만, 겨우 허기를 면하는 수준이다. 지난 9월 25일, 군부대 검열이 끝나자 군인들은 당장 민가를 덮쳤다. 예전에는 군인 한두 명이 털었다면 요즘엔 5-6명씩 무리지어 집집마다 돌면서 콩, 감자, 옥수수는 물론이고 닭, 오리 등 곡물과 가축까지 싹쓸이한다. 군민관계 훼손이라며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해 군인들은 군복을 뒤집어 입거나 아예 벗어버리고 도둑질을 한다.
지난 9월,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동에서는 3주간 군대 도둑 신소가 50여 건에 달했다. 최금철(가명)씨 부부는 지난 9월 24일 새벽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잠귀가 밝은 최씨의 아내가 먼저 깼다. 처음에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부엌에서 키우던 닭이 시끄럽게 울며 푸드덕거렸다. 곧장 남편을 깨워 나갔더니, 한 무리의 도둑이 닭과 옥수수 마대를 잽싸게 들고튀었다. 소리 지르면서 쫓아가려는 찰나, 두 부부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한밤중 큰 소리에 놀란 이웃집에서 살펴보러 왔다가, 쓰러진 부부를 급히 병원에 데려갔는데 남편은 뇌진탕으로 아직 의식을 못 찾은 상태이고, 아내는 하루 만에 깨어났다. 아주머니는 어둠 속이어서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명의 장정들이었는데 군대도둑이 틀림없다고 했다. 군대 도둑이 워낙 극성이라, 주민들은 무리 지어 다니는 도둑들은 무조건 군대 도둑이라고 믿는다. 실제 민가에 내려가 도둑질을 해온 사병 김병옥(가명)씨는 옥수수 수확철이라 집집마다 구들에 널어 말리거나 자루에 담아둔 것을 낮에 돌아다니면서 눈여겨보았다가 밤에 부대원들과 함께 훔치러 간다고 했다. 요즘 군대 도둑들 때문에 주민들은 낮에도 집을 비우지 못하고, 한밤중에도 교대로 잠을 자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선잠을 자기 일쑤다. 전기가 없으니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새벽까지 촛불을 켜는 집들도 있다.
해외대표부, 식량과제 체념하는 분위기
10월 말까지 목표로 하는 식량 50만 톤 확보 계획이 순조롭지 못하다. 무역성의 자금난으로 그만한 식량을 수입할만한 여력이 없고, 일선에서 사업을 하는 해외대표부 일군들도 잇단 식량과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원래 해마다 2.16 명절 전에 식량과제를 바치는 게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몇 달 앞당겨진 것이다. 공교롭게 무역성 검열과 맞물려 공포 분위기 속에서 식량 확보에 나섰지만,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본국에서는 과제를 못하면 당장 짐 싸서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거듭 엄포를 놓아도 체념하는 일군들이 늘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당에서 죽이겠다고 해도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절반에도 못 미칠 것 같다. 지난 9월 말까지 확보된 5만 톤에 러시아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식량 5만 톤을 포함해 외부에서 들여오게 될 식량은 현재까지 10만 톤 수준”이라고 했다. 이미 배분된 것까지 포함한 양이 그 정도이고, 10월 말까지 40만 톤이 과연 확보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했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혼자만 못했으면 계속 끙끙 앓을 텐데, 다들 피차일반에 무역성 검열로 교체될 사람은 이미 교체되었으니 걱정을 덜었다는 얘기도 한다. 한 일군은 “잘릴 사람들은 다 잘렸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을 다 처벌할 수 있겠냐. 그저 불려가서 비판받고 욕먹고 그러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지만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당에서 충성심을 의심하면 나도 할 말이 있다. 후불은 한 푼도 안 된다고 면박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10월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9월 말까지 식량과제가 진행된 상황을 보면,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약 10%가 초과달성하고 20%가 아무 것도 못한 상태이며, 약 70%가 식량 1-2톤 내지 그에 해당하는 돈을 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올 가을 수확량 적어 평양시 타격
올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농촌 수확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평양시의 경우 근래 식량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인근 농촌 지역에서의 유입량은 예년에 비해 줄었다. 평양 시당의 한 간부는 “수확량이 크게 없는데다 군부대들에 식량을 먼저 줘야 해서 평양시에 들어오는 식량이 적다. 외부에서 수입되는 식량이 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어서 앞으로 식량 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9월 말, 평양에서 쌀값은 kg당 2,300원에서 2,600원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옥수수는 kg당 1,400원에서 1,700원 사이를 오르내렸다. 쌀 장사꾼들은 수해 이후 생산량 급감에 따라 12월에는 쌀값이 3,000원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평양시는 가을철 식량 확보에 더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시당 간부는 “지난겨울, 지독한 한파에 굶주림이 겹쳐 1월부터 사망자가 속출했다. 배급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주민 대상 배급을 전면 중단했고, 3월에는 하급간부들에게 주는 식량도 떨어졌다. 나중에는 중앙당 간부들까지 가족 배급을 못 받았다. 내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큰 일 난다. 내년은 더군다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가 아니냐. 태양절 전에는 전면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어떻게든 올 겨울을 버틸 식량이 시급하다”고 했다.
평양시 인근 농촌에서는 “가을이라 굶어죽는 사람은 없으나, 보릿고개 때만큼이나 고생하고 있다. 농촌에 이렇게 식량이 없는데, 도시는 오죽하겠냐. 올 겨울에는 식량공황이 나타나지 않겠냐”는 소리가 나온다. 들판에 나가도 거둘 것이 없다보니, 올 겨울을 넘기기 어렵지 않겠냐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평양으로서는 식량 수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무역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 말까지 무역성에서는 식량을 5만 여 톤 구했지만, 목표 50만 톤에는 크게 못 미친다. 식량 과제 마감일이 10월말로 한 달 연기되었으나, 목표치 대비 몇 %나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