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처녀 시집와요』와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1. 영화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상을 반영한다
북한에서 만든 『도시처녀 시집와요』는 전체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서 개인의 욕망이란 사회주의 이상향 건설이라는 이념 혹은 윤리에 가리워진다.
반면 남한에서 만든 『바람불어 좋은 날』은 유달리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많이 강조한다.
두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바람불어 좋은 날』을 개인이 아닌 남한이라는 국가가 만들었다면 『도시처녀 시집와요』같은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고….
『도시처녀 시집와요』를 북한의 비판적 지식인이 만들었다면 『바람불어 좋은 날』같은 내용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 영화의 기본 주제인 사랑이 왜곡
『도시처녀 시집와요』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은 사랑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회주의 이상향을 농촌에 실현하는 과정에서 유효하다. 물론, 이야기 설정 자체가 남녀간의 사랑보다 사회주의 이상향 건설에 더 많은 비중이 실려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사랑을 너무 가볍게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반면 『바람불어 좋은 날』은 자본주의 사회답게 잘나가던 사랑도 돈이 개입되면 많이 좌절되고 왜곡당한다. 유지인, 최불암, 김보연, 김성식이 좋아했던 미용실 여자 등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매우 고상하게 느껴지고 돈과 욕망이 사랑이라는 자리를 대신한다.
3. 이성과 감정
『도시처녀 시집와요』는 전반적으로 이성이 지배한다.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감정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이 이것을 극복하는 모습이 전반적 흐름이다.
반면 『바람불어 좋은 날』은 등장인물들이 주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앞서고 결코 그것을 비하하지 않는다.
4. 가부장적 사회에서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도시처녀 시집와요』와 『바람불어 좋은 날』의 비슷한 점은 두 영화 모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여성들이 상당히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비쳐진다.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여자 주인공과 그 친구는 사랑을 함에 있어 결코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다. 『바람불어 좋은 날』의 유지인이나, 임예진, 박원숙 등도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개방적 모습으로 등장한다.
5. 언어와 억양
『도시처녀 시집와요』를 보면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언어와 억양이었다. 남한에 이주한 북한사람들을 꽤 만나보았는데, 그들의 억양과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의 억양은 많이 달랐다. 마치 신파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였다. 굉장히 어색하였다.
또한 대체로 북한 언어를 알아듣겠지만 상당수는 알아듣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편안하였다. 우리가 쓰지 않는 속담을 등장인물들이 사용할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6. 음악
『도시처녀 시집와요』에 나오는 음악은 한결같이 씩씩하고, 장엄하고, 경쾌하였다. 마치 80년대 행진곡풍의 소위 운동권 가요를 듣는 듯 하였다. 영화의 줄거리가 ‘선전’에 비중이 많이 실려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반면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음악은 전반적으로는 소위 처지는 리듬이었지만 줄거리 전개에 맞춰 밝은 음악도 꽤 나왔다. 줄거리 전개와 리듬이 서로 맞춰가는 것 같다.
7.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방법
『도시처녀 시집와요』에서 등장인물들의 욕망(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가 대우받음, 도시삶에 대한 동경, 명예심 등)을 공동체 규율이나 윤리 만으로 해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국가 사회주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등장인물들의 욕망(돈, 섹스, 출세욕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해결되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욕망의 표현이 욕망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