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과 거리에서의 만남
신윤영(서울대 3학년. 좋은벗들 자원활동가)
5월 31일 금요일. 월드컵 개막식이라는 국가적, 아니 전세계적 행사를 앞두고 정토회관 3층강당에는 열 세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너도나도 월드컵 개막식을 보기 위해 TV앞에 앉아있을 때, 대화마당 참여를 위해 먼 거리 마다않고 강당에 나오신 분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통일을 일구는 사람들’이 아닐까.
통일대화마당이 11기의 대장정을 내딛은 지 다섯 번째. 이번 주 주제는 ‘청소년들의 통일의식’이었다. 청소년들의 통일의식? 생각해보면 이는 ‘통일의식’이라는 개념부터 시작해 무척 포괄적이고 함부로 결론 내릴 수도 없는, 다소 위험하고도 애매한 주제이다. 다양한 청소년들의 생각을 어떻게 하나로 표현해낼 것이며, 또 그 대화는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쉽게도 대화마당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는 청소년들이 빠진 상태에서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인터뷰를 담은 사전 프로그램은 청소년이 빠진 강의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애초 인터뷰 계획도 그것이었다. 청소년들이 직접 나올 수 없다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한번 들어보자고. 그리고 이야기하자고. 이렇게 해서 대화마당의 도우미 세 명은 한 손엔 질문지를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어느 낯선 고등학교 앞에 모였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질문의 형태였다.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가에 따라 대답 역시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통일의식을 보다 실질적으로 알아보려면 어떤 식으로 질문해야할까.. 그 통일의식이라는 개념의 범주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이런 고민 속에서 질문지는 완성되어갔다. 하지만 질문지는 매우 허술하고, 강의날짜는 다가오고.. 그래도 인터뷰는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기존의 개발된 질문들을 자세히 검토할 수 있었을텐데.. 개발된 것이 없다면 좀 더 다양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우문현답이라고 했나. 의외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놓는 학생들이 있었다. “TV에서 비추는 모습들은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그래요” “결과만 보여주지 말고 과정을 함께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아무 의미 없는 글짓기 숙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생각할 거리도, 시간도 주지 않는 그저 점수따기에 불과한 통일관련 글짓기, 숙제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분명 그들은 지금의 통일교육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고, 분단 현실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했다. 그리곤 역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왜 이런 주제로 인터뷰를 나왔고,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며, 그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당황했다. 질문을 하러 간 내가 오히려 질문을 받게 된 상황이라니! 애써 침착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마치 내가 도덕선생이 되어 책을 읊고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역시 이들이 답답해하는 선생님과 다를 바가 없구나. 기존의 설명 그 이상의 것을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구나..’ 물론 도덕교과서적인 답변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통일과 관련하여 좀 더 명확하고 실질적인 이야기였다. 군사력이 어떻게 변하고, 경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그들에게 ‘식상’한 이야기였다. 그것들이 어떻게 ‘내 생활’과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그 누구도 명확하게 집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은 점점 피상적인 것,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통일되면 경제가 나빠지잖아요’와 같은 대답을 가장 많이 한다는 건, 통일을 자신의 문제로 풀어내고 있지 못함을 드러내는 반증이 아닐까.
이제까지 많은 강의를 듣고, 세미나를 하고, 또 혼자 생각하면서도 난 통일문제를 나의 언어 속에 담아내지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만일 그런 작업이 있었다면 그들의 역질문에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가 청소년들의 생각을 탐색해보겠다고 나갔으니… 하지만, 청소년들과 이렇게 부딪쳐보지 않았더라면, 난 내가 통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청소년들에 대한 인식도 ‘아이들’이라는 식의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 역시 갑자기 찾아온 우리들이 없었다면, 아마 백주대낮에 ‘통일’이나 ‘분단’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사용해볼 기회도,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인터뷰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그들과 우리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어느샌가 진지하게 통일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월드컵을 보기 위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일대화마당에 늦지 않으려고 일찍 회사를 나서는 사람이 있다. 또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 방송국을 찾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반쪽친구(북한에서 이주한 청소년)를 만나기 위해 청소년센터를 찾는 학생이 있다.
가만 보면 청소년은 어른의 축소판이다. 그러기에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이 없다, 통일의식이 없다고 하는 것은, 어른들 역시 그러한 의식이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터뷰를 하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청소년은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 청소년들을 걱정하기에 앞서 가장 걱정해야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월드컵 개막식날 강당을 지킨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 희망은 있다. 통일대화마당은 이렇게 통일을 일궈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143회 마지막 강좌가 끝날 때까지 쉬지않고 달릴 것이다. 희망을 확인이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