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이제는 화교가 제일 부자
이제는 화교가 제일 부자
현재 북한에서 제일가는 부자들은 더 이상 재일교포 출신 귀국자들이 아니다. 이제는 중국 화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중국 친척들과 연계해 북한 전역에 퍼지는 중국산 생필품의 50-70% 이상을 담당하면서 소득 및 생활수준이 현저히 높아지게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있기 전만 해도 화교들은 주로 채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많아 소득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과의 왕래가 보다 자유로워지고, 해관(세관)에서의 중국 상품 유입 조건이 완화되면서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어 경제력이 높아졌다. 이제는 화교가 없으면 북한의 시장 운영이 곤란할 정도이다. 그만큼 북한 시장 질서에 미치는 화교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주민들 사이에는 아무리 못 사는 화교라도 최소 서너 명의 일꾼을 두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제 일부 잘 사는 화교들은 보통 20-30명씩의 일꾼을 고용하기도 한다. 매달 임금이 꼬박꼬박 나오고, 하루 세 끼니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 가난한 주민들에게는 화교 집에서 일하는 것이 어느덧 큰 꿈이 되었다. 또 어느 화교 집을 가더라도 집 창고에 쌀을 쌓아놓고 판매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주민들은 화교야말로 이 시대의 지주들이라고 말한다. 쌀을 꿔주면 빌린 날수에 따라 kg당 이자를 붙여 받는다. 중국에 사는 탈북자들이나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들의 송금을 전달해주면서 얻는 이익도 매우 쏠쏠하다. 송금액수의 10-20%를 수고비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화교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돈을 전달해주는 것으로 소문이 나 중국내의 많은 탈북자들이 화교에게 돈을 맡기는 추세이다.
전거리 교화소 탈옥자, 추격 중 사망
지난 2월 6일, 함경북도 전거리 교화소에서 탈옥자가 발생했다. 5-8명이 한 조를 이뤄 땔감나무를 하러 숲속에 들어갔다가, 교관이 한 눈 파는 사이 스물여덟 살의 한 남자 죄수가 발목에 족쇄를 찬 상태로 달아났다.
탈옥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곧장 수색 작전이 벌어졌는데, 반나절이 지난 저녁 무렵 어느 야산의 나무 위에 숨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 죄수는 자신을 발견한 교관과 한동안 대치상태를 벌이다가 결국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한편 전거리 교화소에서는 하루에 보통 7-8명씩, 많을 때는 십여 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다.
전에는 벼 가마니에 말아 땅에 묻었지만, 겨울이라 언 땅을 파기가 힘들고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예 큰 구덩이를 파놓고 시체를 한꺼번에 화장해 처리한다. 그 구덩이가 있는 골짜기를 사람들은 ‘송장골’이라 부른다.
숱한 단속 속에서도 한국 영화 열풍 확산
숱한 단속에도 한국 영화 열풍 확산
한국 영화 열풍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전국 방방곳곳에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국경연선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CD 녹화물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아무리 단속해도 틈새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불법 CD물이 주민들에게 유통되고 있다. 주민들은 불법도강으로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들에게서 각종 CD를 사서 문 걸어 잠그고 문방지에 천을 치고 몰래 본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 역시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하고 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끼리끼리 모여앉아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거나, 드라마 내용을 주고받으며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에 푹 빠져있다.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친구’, ‘장군의 아들’, ‘조폭 마누라’, ‘가을 동화’, ‘목욕탕집 남자들’, ‘불멸의 이순신’ 등이다. 이 중에서 ‘조폭 마누라’는 남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영화를 본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모여 흉내 내느라 때리고 맞고 야단법석을 피운다. 그러다 다음 수업시간에 지각하거나 급우들이 부상당하는 일이 속출하자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는 못한다. 괜히 사건화 했다가 연대책임을 물어 상급당의 호된 비판 등이 뒤따라 피해가 막심해지기 때문이다. 적의 녹화물을 보는 행위는 민족의 반역행위에 해당하므로 보고 문건이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학생 당사자와 학부모는 물론 학교 측과 초급당, 그 윗선까지 줄줄이 경책을 각오해야 한다. 체포되는 학생과 학부모도 괴롭지만, 잡아가는 사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후에 피해 가족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가급적 모른 척 눈감게 된다. 다만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에둘러서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경고할 뿐이다.
■ 경제활동
“군수 생산과 관련되는 일용직장 전기를 무조건 보장할 데 대하여”
“군수 생산과 관련되는 일용직장 전기를 무조건 보장할 데 대하여”
2월 초순에 열린 전국 각 도시군당 책임비서 연석회의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군수 생산과 관련된 일용직장에 필요한 전기를 무조건 보장할 데 대하여”라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의 지시문이 전달되었다. 민수부문 전기를 모두 차단하는 일이 있어도, 일용직장의 군수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과 군수품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를 높여줄데 대한 당의 지시 내용이었다. 특히 각 시 구역 송전 배전부에서 얼마간의 뇌물을 받고 일부 간부사택이나 기관일꾼들 사택, 그리고 회갑연이나 잔칫집에 군수용 전력을 주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군수품 전기를 훔치는 행위, 불평불만을 내비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역적 죄인으로 취급하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도,시,군당에 내려온 지시문은 일반 공장 기업소 산하에 있으면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용직장을 일컫는 것이다. 같은 공장의 다른 직장들이 전기를 못 받더라도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용직장은 최우선 공급받는다. 일용직장의 군수품이 생산되지 않으면 다른 군수공장과의 협업이 안 되므로 무조건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군당의 관할 하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일부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빼돌리거나 다른 민수부문에 급한 대로 돌려쓰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번 지시문은 이렇듯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사례가 속출하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 부족으로 농자재 준비 차질
전기 부족으로 농자재 준비 차질
심각한 전력난으로 민수부문은 여전히 생산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곧 봄철 농사를 준비하려면 농기계들도 미리 확보되어야 하는데, 농기계 생산 기업소들은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자동차, 트럭 부속품은 물론 파종한 뒤 모를 씌울 비닐박막 등 농자재 생산에 필요한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농기계 부속품 생산기업소에 우선 공급한다고 하나, 하루에 겨우 5-7시간에 불과하다.
한편 배전부와 보안서에서는 여전히 단속에 여념이 없다. 밤낮으로 순찰을 돌면서 전등 켠 집이 보이면 무작정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세대주를 잡아들이고 있다. 전기를 끌어 쓸 엄두를 못내는 일반 주민들은 아예 전기 구경을 못한다. 일반 주민들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등잔불 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 기름마저 아까워 컴컴한 방에 누워 일찍 잠에 든다. 주민들은 “언제면 이 캄캄한 세상에서 해방되어 환한 세상에서 살아보겠느냐”며 모여 앉으면 한숨만 짓고 있다.
난방비 찬조금에 학부모 반발, 1주일 집단 등교 거부
난방비 찬조금에 학부모 반발, 1주일 집단 등교 거부
지난 2월 초순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 구역의 한 인민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등교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2006년 6월말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이다. 이번 집단 등교 거부는 학교에서 화목비(난방비) 명목으로 학생 일인당 500원씩 내라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민위원회에서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긴급히 학부모 대상 설명회를 가졌으나,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학부모들은 단순히 난방비 500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이젠 각종 부담금에 지쳐서 자녀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집안 생계유지하기만도 벅찬데 학교에서 내라는 돈을 다 합치면 어지간한 생계비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녀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라리 돈 버는 방법과 농사짓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사회 과제 수행 명목으로 여러 일을 시키고 있다. 파철, 파유리, 파비닐(폐비닐), 파지(폐지) 등을 모으는 것은 기본이다. 학생 한 명당 일등품의 토끼 가죽 3매, 석탄과 나무 한 달구지, 재생 학습장을 만들기 위해 마른 오사리 50kg, 영예군인 전상자 돕기 성금 300원, 건설장 지원운동 명목으로 100-500원, 군부대 지원운동으로 달래 3kg, 마른 도토리 50kg, 마른 살구씨 3kg 등 명목도 많고 종류도 많고, 할당량도 많다. 계절이면 계절, 절기면 절기, 내라는 물품도 다양하고 특이한 게 많아 나이 어린 학생들이 따라가기에 여간 벅찬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수집을 못하면 결국 그 몫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돌아간다. 학부모들은 학부모대로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으로라도 과제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돈 낼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은 과제를 못한 벌을 받거나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 당하기 일쑤여서 학교에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지키거나 부모 따라 돈벌이에 나서는 아이들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학교에 내야하는 부담금 때문에 갈수록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대학교수가 살아가는 법
대학교수가 살아가는 법
초중등 교사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들의 생활 형편도 전반적으로 어렵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장사를 할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매월 임금이 지급되기는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늘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는 교수들도 많다. 학교마다 당 지도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도 대학에 따라 교수들의 생활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특히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의 교수들은 여타 다른 대학의 교수들과 생활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일부 교수들은 특별히 중앙당 간부과로부터 뇌물을 받기도 한다. 중앙당 간부과에서는 토대가 좋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미리 간부로 선점해 관리에 들어가는데, 학생들의 졸업 성적이 무조건 좋아야 한다. 성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이 생기면 중앙당 간부과에서 직접 담당 교수를 찾는다. “틀림없이 간부가 되는 학생인데 제대군인이다 보니 서른 살 넘어 머리가 굳어 공부하기도 힘들고, 기초가 좀 부족할 뿐 일꾼하면서 공부하도록 좀 양해해주고 우수학생으로 졸업시켜 달라”며, 1,000-2,000달러 상당의 두툼한 봉투를 건넨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은 이런 식으로 토대 좋은 우수학생을 유치하려는 중앙당이나 무력부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는다. 이외에도 학생들에게서도 상당한 뇌물을 받는다.
김책공업대학은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입학한 20세 미만의 직통생과 서른 살 넘은 제대군인이 함께 공부하는데, 제대군인들 중에 당원이 많아 대체로 한 학급별로 당세포가 조직된다. 그러다보니 세포비서와 소대장(반장)이 전면에 나서 시험을 치르기 전에 학생들에게 분공을 내린다. 학급생들로부터 돈은 물론이고, 쌀, 술, 고기 등의 물품을 걷는 분공이다. 정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은 소대장의 재량에 따라 면제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것을 교수에게 직접 건네주고 시험 문제를 받는다. 시험 문제가 5개라면, 교수는 약 20개 정도의 문제와 답안을 내준다. 이렇게 교수에게 일종의 뇌물을 바치고 시험 문제와 답안을 받는 것이 어느덧 관례가 되었다. 김책공대 교수들은 학생들의 조직 사업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편이다.
지방 대학의 교수들은 가난한 학생들이 많아 생활이 고달프다. 다만 통신학부 재학생 중에서 지방 간부나 호위국 출신 학생들이 있어 그나마 뇌물이 들어오는 편이다. 통신학부는 1년에 1주일-10일 가량은 학교에 출석해 숙제 제출, 질의응답 및 시험 등을 치러야 한다. 지방 당 비서들 중에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사람은 통신학부를 다닌다. 대학 졸업 여부가 간부 평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 정상 출석하기 힘들기 때문에 얼마간 뇌물을 바치고 출석 처리를 한다. 호위국 제대군인들은 일반 농장이나 노동자로 집단배치 받을 경우 대학 졸업장을 취득해 사무원이나 관리직으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이 되는 제대군인들은 지방 당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뇌물을 주고 성적을 올린다. 명문대학이든 지방대학이든 뇌물이 아니면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재 대학교수들의 공통된 현실이다.
“나 아팠으면 좋겠다”
“나 아팠으면 좋겠다”
일반 주민들에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입쌀은 그저 눈요기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시장에서 쌀 파는 사람들도 손님이 줄어들어 고민이다. 하루 종일 기다려봐야 쌀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다들 어떻게든 옥수수밥으로 이 겨울을 버티자는 분위기다. 그런데 간혹 집에 심하게 앓는 환자가 있으면 다만 500g이라도 사 가는 주민들도 있다. 한 끼니라도 입쌀밥을 먹이면 병세가 나아질까 싶어서이다. 이렇게 아파야만 겨우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요즘 주민들 사이에는“나 아팠으면 좋겠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유명하게 돌고 있다. 다섯 살 난 아이가 어머니에게 “엄마, 나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가 놀라서 왜 그러느냐 묻자, “그래야만 입쌀밥을 먹어볼 게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단순한 대화지만, 이 말이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 사이에 돌고 돌면서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하루라도 배부르게 입쌀밥을 실컷 먹어보면 한이 없겠다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