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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255호

■ 시선집중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주민들 “조미관계 발전 있을 것” 기대

북한 주민들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표가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특히 흑인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강원도 원산시 시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노예로 미국에 팔려온 조상들을 둔 후손인 만큼 역대의 잘 사는 자본가 출신의 백인 대통령들처럼 오만무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이야말로 조미관계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 중고품 장사를 하는 김영덕(48세)씨는 “조미관계가 좋게 발전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거나 원거리 미사일 개발에 인력과 재력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백성들 부담도 적어지고, 생활도 개선될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 – 평양 간부, “인권문제 건드리면 당당해야”

평양의 한 간부는 부시정부 때보다 조미관계가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미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더 과시해서 우리를 얕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겠지만, 우리나라 인권 문제를 걸고넘어지면 당당하고 강경하게 나서야지 조금이라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 – 국경연선지역 주민들, “적위대훈련 안 해도 될 것”

함경북도 국경연선 지역 주민들은 내년부터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 조미관계가 평화공존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에 도매장사를 하러 온 무산군과 연사군, 회령시 주민들은 “조미관계가 평화롭게만 되면 더 이상 적위대 훈련을 안 해도 될 것이다. 군대 지원하라는 시달림에서만 벗어나도 우리들 생활 부담이 많이 줄 것이다. 전쟁이 없어지는 것이 우리들 살 길이다. 지금은 하도 살기 어렵고 나라에서 못살게만 구니까 ‘어디 콱 전쟁이라도 터졌으면 속 시원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먹고 사는 걱정만 좀 줄어든다면야 전쟁 터지길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전쟁 난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드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평화로운 관계를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신천군, “누가 대통령 되도 미제는 인민의 철천지 원쑤”

6.25 전쟁의 상흔이 가장 크게 남아있는 황해남도 신천군 주민들은 오바마 당선 소식에 “그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제는 우리 인민의 철천지 원쑤”라고 말한다. 6.25 전쟁 시기 미군 폭격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은 리기남(78세)씨는 “미제 승냥이의 야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본성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리씨의 말에 주위에 있던 60-70대 노인들이 “맞다. 미제국주의자들과는 한 하늘 아래에 함께 살 수가 없다. 승냥이에 대해 좋은 기대를 가지고 우리 의지가 약해지기라도 하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큰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동조했다.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우리나라가 분단되고 공화국 인민들이 고난의 생활에서 허덕이는 것은 다 미국 놈들의 반공화국 책동과 경제 봉쇄 때문이다. 우리는 혁명적 경각성을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 된다” 고 말해 전쟁 1세대의 의견과 뜻을 같이했다.

■ 경제활동

종합시장 폐지, 평양 간부들 의견 분분

종합시장을 폐지하고 농민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중앙당의 결정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간부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한 간부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중앙당 간부들은 ‘종합시장이 들어선 뒤 사리사욕과 빈부차이가 커져 사회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 도적질 등의 범죄가 점점 더 늘어나고, 모조품이 성행한다. 사람들이 직장이나 농장 일에 적극 참가하지 않으면서 소토지 농사나 장사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종합시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간부들은 국가에서 식량공급을 하지 못하고 로임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그저 백성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자체로 노력하는 일을 비사회주의 행위라며 종합시장을 폐지해야 한다고만 말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간부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들은 침묵을 지켰다. 공개석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한 간부는 “앞에서는 누구도 말 못했지만 배후에서는 다들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지금, 농장마다 군량미를 바치고 새해 농사지을 종자와 가축 사료 등을 제하고 나면, 농장원들에게 배분할 식량이 모자란다. 당장 시장에서 식량을 팔지 말라고 하는데, 양정사업소에는 식량이 없다’고 말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중앙당은 내년부터 공업품은 수매상점에서, 식량은 각 구역 배급소에서, 그리고 식량을 제외한 각종 농산물은 시장에서 판매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매일 열리던 시장을 매월 1일, 11일, 21일 단 3회를 열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큰 도시 양정사업소 판매 쌀 부족

시장에서 식량판매를 금지하는 대신 배급소에서만 팔 수 있게 한다는 방침에 배급소에 식량을 대주는 양정사업소들은 식량부족으로 걱정이 많다. 평성의 한 간부는 “군 단위만 해도 아직까지는 괜찮다. 주변에 농장들도 많고, 식량을 갖고 있는 개인들에게 사들일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큰 도시 양정사업소들이다. 지금 군들은 식량이 외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얼마나 엄하게 단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큰 도시들은 국가에서 식량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식량을 거둬들일 수 있는 곳이 없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종합시장 해체에 반대하는 일부 간부들은 이 같은 소식에 “(종합시장 폐지 주장 간부들이) 너무 정치적인 극단으로 나가면서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양정사업소에 쌀도 충분하지 않는데 당장 시장에서 쌀 판매를 금지시키면 어쩌란 말인가. 백성들의 생활 곤란에는 나 몰라라 하고, 사상변화에만 관심이 크다”고 말들이 많다. 한 간부는 “백성들을 너무 구속하면 민심이 급변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천시, 11월 농민시장 시범 실시

평안남도 순천에서는 함경남도 함흥시 등과 함께 농민시장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열린 장에서는 배추, 감자, 고구마, 각종 산나물, 고춧가루 등 농산물과 오리, 닭, 토끼 등 가축류, 그리고 감, 사과, 배 등 과일류, 그 외 꿀, 약재류 등 지방 토산품 등만 판매됐다. 이날 보안원들이 시장뿐만 아니라 주위 골목마다 나와 지키며 식량과 공업품을 팔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눈에 띄는 식량과 공업품은 일단 회수됐다. 이 날은 시장 안팎으로 등짐을 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세워 짐을 풀고 물건을 검사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일용품과 공업품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다. 이렇게 종합시장 폐지를 실시하고 있는 순천시에서는 아직도 배급소에서 식량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모였다 하면 “농업 장만 보게 하고, 알곡도 사지 말라고 하지 공업품도 사지 말라지. 대체 우리 먹을 식량은 어디서 구해야 하나. 국가에서 식량도 공급 못해주면서 사지 말라고만 하니 속이 타 죽겠다. 장사도 못하게 하는 데다 내년부터는 소토지도 하지 말라고 한다니 우리는 더는 살 길이 없다”고 말한다.

함흥시, 종합시장 폐지에 주민 혼란

11월부터 농민시장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갑작스런 변화에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대량으로 물건을 사들였던 도매상인들의 타격이 크다. 이미 사들인 물건들을 팔기가 어려워져서다. 한 달에 3일만 시장을 보게 하는데다 공업품, 일용품, 식량 등을 아예 팔지 못하게 하니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도 문제다. 옷 장사를 하는 40대 한 여성은 “농업상품만 팔게 하고 나머지는 못 팔게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어디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 심정을 내비쳤다.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던 상인들은 저장 물품을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기 위해 이윤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원가에 판매한다. 또 구역마다 길목 어귀에 봇짐을 풀어놓고 메뚜기 장사를 하고 있다. 아니면 시장에 나가 은밀히 호객행위를 하기도 한다. 쪽지를 보여주거나 “무엇을 사겠는가?” 물어서 상품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식이다. 그동안 방문판매를 하지 않았던 상인들조차 등짐에 물건을 넣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편 함흥시도 순천시와 마찬가지로 양정사업소와 수매상점에서의 상품 거래는 물품 부족으로 판매가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 정치생활

함흥 109호 련합지휘부, 3/4분기 마약사범 단속

함경남도 함흥시 109호 련합지휘부는 지난 10월 23일, 도당 책임비서와 조직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이번 3/4분기 단속 총화를 했다. 109호 지휘부는 중범죄자들을 지역 보안서에 이관하고, 경범자들은 시단련대에 보내거나 석방시켰다. 7월부터 9월까지 3/4분기 동안 단속된 범죄자들은 주로 마약사범과 국경밀수업자, 불법록화물판매자 등의 범죄자들과 무단결근, 불법록화물 시청자 등 비사회주의 행위자들이었다. 마약범죄에 걸린 사람은 총 30여 명에 이르며 이들은 해당 지역 보안서에 이관됐다. 마약을 제조했던 대학생들은 퇴학처리 됐다. 돈을 받고 미신행위를 하거나 무단결근한 노동자들은 시단련대에 보내졌고, 불법록화물을 유포시킨 자들 중 일부는 함경남도 부전군 농촌마을에 추방됐다. 불법록화물시청자는 비록 3년 전에 본 영화라고 해도 증거가 확실하면 처벌했다.

* 109호 련합지휘부란?

2004년 10월 9일 방침이 처음 내려진 이후 2005년 1월 20일 국경연선지역에 임시로 만들어낸 단속 조직이다. 올해 5월부터 국경연선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 시, 군에 109호 련합지휘부가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각 시, 군당 부원들 중 능력 있는 자를 책임자로 세우고 해당 지역 보안서, 검찰소, 재판소, 인민위원회 부원들로 인력을 구성했다. 109호 련합지휘부는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 있어서 비사회주의적 요소부터 명백한 범죄행위까지 세부적으로 단속하며, 일부 처벌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 논평

식량난으로 파생된 파라티푸스의 발병

고난의 행군 시절, ‘9・27 수용소’라고 불리는 꽃제비 구호소에서는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악명높은 전염병이 있었다. 파라티푸스라고 불리는 이 병은 남한에서는 큰 위협이 안 되는 이름조차 생소한 단순 전염병이지만, 북한에서는 콜레라, 장티푸스와 더불어 식량난이 극심할 때마다 창궐하는 무서운 병이다. (사)좋은벗들이 1999년 발표한 에 의하면 고난의 행군 시기, 전체 사망자의 60%가 장기간의 영양결핍으로 인한 질병 사망자로 추산되었다. 질병 중에서는 폐결핵(전체 사망자의 5.9%)에 이어 파라티푸스(전체 사망자의 4.2%)가 가장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동안 식량 사정이 개선되어 발병률이 낮았던 이 병이 강원도 원산에서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파라티푸스는 살모넬라 균에 의해 감염되어 발열, 설사, 두통 등을 동반하는 장티푸스와 비슷하나 다소 경미한 증세를 보이는 제1군 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영양공급이 충분한 성인들은 감기처럼 며칠 앓다가 곧 회복되지만 아동이나 노약자,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계속되는 설사로 인해 영양결핍 상태에서는 사망율이 높으며 열이 오르면 정신을 잃기도 하고 다행히 목숨을 건지더라도 뇌가 손상을 입어 정신적 질환이 후유증으로 남는다.

이 병은 당시 쌀 1kg에 80원 할 때에 1만원이 들어야 치료될 수 있다고 해서 ‘만원병’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약값이 비쌌다. 돈이 없어 쌀도 못 살 형편이니 치료약 대신 해열제를 썼다가 일시에 열이 내려 사망하거나 소염제를 쓰면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걸리면 일반 주민들에게는 약으로 치료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병이다. 게다가 낮은 온도에서도 강한 내성으로 북한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기승을 부린다. 전염경로는 주로 환자의 인분과 파리 등 곤충을 통하거나 위생상태가 불결한 식수 오염 등을 통해 감염된다. 예방법은 장티푸스처럼 철저한 개인 위생과 주변 환경 위생 밖에 없다.

현재 북한에서는 전기 부족으로 대다수 주민세대에게 위생적인 수돗물 공급이 거의 중단되었다. 대부분 강·하천의 물을 식수 및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가정이나 국가에서도 오폐수 정화시설이 태부족이어서 위생적인 물 공급이 요원한 형편이다. 환자가 발생해도 격리시키는 것 이외의 별다른 후속 조치가 없어 이미 발생한 파라티푸스의 전염과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꽃제비 구호소는 이런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아주 높은 곳이다. 그곳의 꽃제비들은 배식이 적어 만성적인 영양결핍 상태에 처해있다. 당시에도 위생환경이 불량한데다 비좁은 방안에 50여명이 수용된 채 집단생활을 하고 있어 한번 병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체 구호소로 확산되어 버리곤 했다.

일단 전염병은 발생 초기에 초동 조치가 중요하므로 북한 정부는 파라티푸스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부족한 영양 섭취와 불결한 위생 환경 조건을 개선되도록 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원산시 당국도 꽃제비 구호소의 배급을 늘려 영양 상태가 호전되도록 하고 위생 환경도 나아질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이미 꽃제비들은 물론 다수의 주민들 역시 장기간의 식량 부족으로 인해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면역력이 상당히 결여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해는 이런 전염병이 나타나지 않아 식량 부족 상황에 비해서는 큰 인명 피해가 없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향후에는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더 이상 파라티푸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식량 부족은 주민들의 영양결핍으로 이어지고 전염병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남한 정부와 국제사회도 북한의 질병 예방에 주목하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 식량난이라는 인도적 위기는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인도적 위기로 파생되어 가고 있음을 국제사회는 간과해선 안된다.

■ 사회

공장, 기업소 김장용 야채 분배

전국 각 시, 군 공장, 기업소들은 김장철을 맞아 김장용 무, 배추를 분배하고 있다. 노동자 1인당 분배량은 각 공장, 기업소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공장, 기업소 책임자들이 얼마나 협상을 잘 하느냐에 따라 분배량을 더 많이 받을 수도 더 적게 받을 수도 있다. 힘 있는 공장, 기업소에서는 채소 전량을 배급해주기도 하지만, 김장 필요량의 20-30% 정도만 공급하고 그치는 공장들이 대부분이다. 농민들은 대부분 텃밭에 무, 배추, 옥파, 고추 등을 심어 김장비용을 그나마 좀 줄일 수 있지만, 도시 노동자들은 모두 시장에서 사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그만큼 공장, 기업소에서 김장용 채소를 얼마나 많이 배급해주느냐가 중요하다.

당증 남겨둔 도둑 “그래도 양심 있어”

함경남도 신포시에 사는 40대 한 남성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좋은 옷들과 손가방 등을 훔치고 달아났다. 집주인이 돌아와 도둑맞은 것들을 헤아려보다가 손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당증을 생각해냈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당증을 잃어버리면 변명의 여지없이 ‘정치 생명’을 잃은 것이 된다. 급기야 당에서 제명되는 책벌을 받아야 한다. 온 식구가 집안 곳곳을 다 뒤져봐도 당증이 나오지 않자 가족들 얼굴에 점점 수심이 깊어졌다. 도적맞은 지 3일째 되는 날, 문틈에 끼워진 당증을 발견했다. 도둑이 나가기 전에 끼워놓았던 것이다. 이에 집 주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 턴 도적놈은 나라 정세를 잘 아는 도적이다. 사람 신세를 평생 망치게 하지 않으려는 양심 있는 도적”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이 곳 주민들 사이에 ‘양심있는 도적’에 대한 이야기가 두고두고 회자됐다.

김장철, 느는 건 시름

김장철이 본격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일제히 김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김장은 식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부식물로, 준 식량이다. 다른 반찬이나 부식물이 없는 북한에서는 알곡이나 김치가 거의 유일한 끼니거리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김장을 얼마나 담그느냐에 따라 다음 해 봄철까지 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라진다. 이렇게 중요한 김장철이 돌아왔지만 함경북도 연사군 주민들은 “김장을 담그려니 느는 건 시름뿐”이라고 말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리 죽물을 먹는 집들이라도 집집마다 못해도 300-400kg(약 200포기)씩 담궈 먹었는데, 올해는 김장값이 비싸 200kg만 담그는 집들이 많다. 농민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좋은 배추는 다 시장에 팔고 자신들은 상태가 나쁜 시래기로 100kg씩 담구고 있다. 물론 돈이 있고 잘 사는 주민들은 올해에도 400kg 이상 김장을 담구고 있다.

잘 사는 집 김장비용, 최고 30-40만원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도 김장을 시작했다. 간부들이나 잘 사는 집들은 올해 김장비용으로 보통 15만원 안팎을 쓴다(아래 표 참조). 더 여유 있는 집들은 700-800kg 이상 담그거나 도루묵이나 한 마리에 5천 원 이상 하는 명태 20-30마리를 넣는 등 추가비용이 들어 최고 30-40만원까지 쓰고 있다. 평양 선교시장에 모닥불 피워놓은 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주민들은 너도나도 김장비용이 비싸다고 한 마디씩 했다. 김장거리를 사러 나왔다는 박기정(35세)씨는 “우리 집은 200kg만 담그려고 한다. 우리 집 세대주가 기업소에서 김장배추를 80kg 정도 받아와서 그나마 좀 아꼈다. 우리 다섯 식구가 내년 봄까지 먹으려면 한 사람당 100kg씩 해서 500kg는 담궈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다”며 김장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화제가 간부들 김장비용으로 옮겨가자 누군가 “나도 간부 집에서 김장한 김치 맛이나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왁자하게 웃었다.

평성 40대 간부 세대 올해 김장비용

품목수량가격(북한 원)
배추400kg ×250(원)100,000
고춧가루5kg ×5,500(원)27,500
마늘2kg ×1,200(원)2,400
소금7kg ×500(원)3,500
맛내기1kg ×8,500(원)8,500
콩기름1.5kg ×5,500(원)8,250
멸치2kg ×2,000(원)4,000
합계154,150

극빈자들, 김장 대신 시래기 절임

꽃제비를 비롯해 돈을 벌지 못하는 극빈자들은 수확이 끝난 밭에 나가 이삭과 시래기 줍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무, 배추 농사를 지은 밭에 가서 땅에 떨어진 시래기를 주워 간다. 김장 담굴 생각은 못해도 소금에 절여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 여성/어린이/교육

원산 꽃제비 구제소 파라티푸스 전염병 발생

지난 11월 12일, 강원도 원산시 꽃제비 구제소에서 파라티푸스가 발병한 뒤 병에 전염된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고열과 몸살을 앓는 아이들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격리되기만 했다. 뚜렷한 대책 없이 11월 중순까지 사망한 아이들은 모두 7명이다.

이혼 강요당한 간부 아내, 홧김에 방화

함경북도 온성군에서는 각 기관, 기업소 농장 간부들의 주민등록 정리 사업에 돌입했다. 보안서 주민등록과에서는 간부와 직계가족 주민등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처벌하고 있다. 일례로 아내나 그 자녀 중에 중국에 건너간 전력이 드러나면 간부직에서 해임하는 식이다. 몇 년 전부터 실시했던 정책이었으나 일반적으로 간부들의 비리를 눈감아줘서 유야무야되곤 했었다. 온성군의 한 농장관리위원회 일군은 몇 년 전에 아내가 본가(친정) 여동생과 함께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장사물품을 받으러 간 것이 걸렸다. 문제는 이 간부가 해임되지 않으려고 재판소에 이혼을 신청한 데서 커지기 시작했다. 아내 김모씨는 “내가 나만 살자고 그랬는가. 다 우리 같이 살자고 그런 거 아니냐. 어쩌면 이렇게 무정하게 그럴 수 있는가?”라며 울며 사정해 봤지만 소용이 없자, 홧김에 집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초기에 불을 잡아 큰 피해는 생기지 않았다. 고의 방화라는 사실에 수사를 나온 보안서에서는 하마터면 초상화가 타버릴 뻔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무산, 석탄 없어 유치원 운영 중단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유치원에서는 11월 10일부터 석탄이 없어 운영을 중단했다. 이와 관련 유치원은 교양원들을 원생들의 집에 보내 ‘학습지도를 방조해줄 데 대한’ 조치를 취했다. 이 유치원에서는 지난 10월 말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날씨가 추워지자 감기에 걸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입이 비틀어지는 아이들도 나타났다. 석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인민위원회에 제기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아, 내년 2월까지 유치원 문을 닫기로 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들이 직접 방문해서 학습시키기로 했다.

■ 사건사고

강계시 군수공장 화재사고

지난 11월 2일, 자강도 강계시에 위치한 한 군수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직장은 5.45mm 자동보총 탄알 생산과 탄약상자를 포장하는 곳이었다. 한 여성 노동자가 포장 기계설비를 청소하려고 기름을 주입하다가 기름 뭉치를 전동기 전기선에 두었는데 합선으로 불이 일어났고, 이 불이 탄알상자에 번져 더 커졌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작업장이 갱도 안에 있어 화재사고로 미처 대피하지 못해 질식해 쓰러진 노동자들이 있었다. 공장 보안당국에서는 정확한 사고경위를 밝히기 위해 며칠 동안 주간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문조사를 벌였다. 한편 이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9시간 30분씩 주야 2교대 근무를 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옥수수쌀과 입쌀, 옥수수영양가루, 국수 등을 약간씩 배급받았다.

정평군 열차 탈선으로 사상자 100여명

지난 11월 8일,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락원군으로 향하던 열차가 탈선했다. 2대의 객차가 완전히 전복됐는데 이 사고로 승객 4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아 철도관계자와 보안당국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 집중탐구

리명박 정부와의 선긋기 – “리명박 력도의 반북대결책동이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데 대하여”

리명박 정부와의 선긋기

“리명박 력도의 반북대결책동이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데 대하여”

간부 및 군중강연자료 주체 97(2008).4

남북한 관계가 날로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북한은 12월 1일부터 개성관광과 남북철도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개성공단 남측 상주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24일 남한 정부에 통보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도 못 돼 남북한 교류협력이 중단되고,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됐다.

관망에서 적대로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날로부터 2008년 3월까지 북한은 말 그대로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북한에 대체로 적대적이었던 한나라당이 집권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려는 했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였다.

예를 들면 당선된 직후부터 2008년 2월까지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가리켜 ‘남조선 당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남조선 당국이라는 말은 북한으로서는 가장 존중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한 당국자들의 잇따른 발언에 점점 가열점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3월달에는 ‘남조선 당국자’가 ‘남조선 보수집권층’으로 바뀐다.

이 때 남한 정부는 출범 1개월 시점에 의도했든 아니든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 남북관계 경색에 빌미를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발언일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3월 19일 통일부 김하중 장관은 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라고 발언했다.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에 체결된 기본합의서”라고 밝혔고, “핵을 끼고는 우리가 통일하기도 힘들고 본격적인 경협을 하기도 힘들다”며 ‘핵-경협’ 연계를 공식화했다. 북측에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합의를 사실상 부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같은 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과 공동회견에서 “(북핵문제에 대해)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며 대북압박정책을 시사하는 강경발언을 했다.

이 날 또 하나 주목할만한 발언은 김태영 당시 합참의장 내정자로부터 나왔다. 김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적(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북선제공격론으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북한은 일련의 발언에 즉각 반응했다. 27일 개성공단 경협사무소 남한 당국자 13명 중 11명을 추방했고, 이튿날 서해안 미사일을 발사했다. 급기야 4월 1일 노동신문 ‘남조선 당국이 반북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는 논평을 필두로 대대적인 적대전술로 돌입했다. 이미 가열점을 넘어선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결국 뚜껑을 기세좋게 열어젖힌 셈이다.

본격적인 적대전술,

“(리명박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리명박 력도의 반북대결책동이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 강연제강은 4월 1일 노동신문 논평을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알리는 대내선전용 강연제강이다.

해년마다 받던 남한의 비료지원도 물 건너가고 더 이상 남한 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격렬한 적개심 표출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북한은 전형적인 사상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사상전이란 드러난 문제를 사건으로 만들어 집중 포화식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글의 첫머리에서부터 남한 당국자 발언 관련 대응을 일일이 열거해 무엇에 자극받았는지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3월말 개성공업 지구에 들어와 있던 괴뢰당국 인물 11명을 추방하고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군사훈련을 진행하였으며 을 고집하는 남조선괴뢰들을 답새기는 해군사령부 대변인담화를 내보내였다. 그리고 괴뢰들이 우리 핵기지를 《선제타격》하겠다고 줴친 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강력한 립장을 천명한 전화통지문을 보내였고 선불질을 해대면 남조선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는 군사론평원의 글도 련이어 내보냈다”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사상전의 전초전에 등장하는 초강경대응자세이다. “우리가 이기느냐, 지느냐 운명과 관련된 원칙문제”이기 때문에 뒤로 물러설 공간은 없으며, 오로지 이기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결국 1회전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주장한다.

4월 1일 노동신문 논평에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던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여느때같으면 제꺽 반응을 보였을 괴뢰당국과 정치권이 정신이 나갔는지 일체 입을 다물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리명박조차 자기를 민족반역자의 대명사인 《력도》라고 락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 못하고” 있는 것이 1차전 승리의 증거다.

“우리의 강경조치에 대응하자니 당장 전쟁이 터질 것 같고 그렇다고 사죄하고 굽어나오자니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아 적들은 지금 진퇴량난에 빠져 있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연이은 주장이다.

일단 사상전을 진행하면 왜 때리는지 그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맞은 사람이 어떤 몰골이라는 점을 얘기한다. 우리가 때리니까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내선전용임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분명히 선 긋고 타도해야할 적대정권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핵문제에 왜 남한이 나서느냐?”

북한 주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비핵개방3000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 이명박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다만 이 강연제강을 통해 남한의 새 정부가 반북대결책동을 일삼는 타도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북한이 반북대결책동을 일삼는 근거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대미관계, 후남북관계 주장

둘째, 선핵포기 주장

셋째, 인권, 개방 주장

마지막으로, 군사안보문제 자극이 그것이다.

북한은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26일 발언을 문제 삼아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합의를 부정한 것을 가장 반북적이고 반통일적인 사안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선핵포기라는 남한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선핵포기’가 남한에서 이미 널리 합의된 사항임에 반해 북한에서 핵포기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한에서는 핵을 포기해야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믿지만,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조차 핵을 포기하면 더 위험해진다고 믿는다. “핵이 있어야 우리가 든든하지 않느냐”며 “핵은 우리만이 아니라 남조선을 보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북한의 일반적인 관점이다.

이 부분은 남한 정부가 핵문제를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한다. “핵포기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실제 포기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별도로 현재 일반적인 북한사람들의 생각이다. 남한 정부가 상대할 대상에는 북한 정부만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일반 주민들도 포함된다.

‘부러지면 부러지되 결코 굽힐 수 없다’는 대북 강경 일변 정책을 지속하다가는, 북한 주민들의 민심도 잃어버릴 위험이 있는 예민한 사안인 셈이다. 왜냐. 북한은 끊임없이 대내선전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을 핑계로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계속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인권문제와 개방 문제는 북한 당국과 일반 주민들의 인식에 차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다. 핵문제가 북한 당국과 인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라면, 후자는 둘 사이에 대립관계가 생기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나 국제사회가 왈가왈부하기 전에 이미 북한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견해차다. 제아무리 ‘우리식 인권’을 얘기해도, 보위부에 끌려가고 번연히 남들이 보는 앞에서 보안원에게 두들겨 맞거나 물건을 빼앗기고 갖은 횡포를 경험하는 주민들이다. 하룻밤새 옆집 가족이 몽땅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 공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은 아직도 시범처벌로 공개처형을 고수하고 있다. 공개처형을 지켜본 주민들이 ‘우리는 인권을 보장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당장 “불안 속에 사는 게 무슨 인권인가?”라는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

예전에는 인권이라는 말도 몰랐지만, 대북인권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인권교육을 많이 시키다보니 어느새 북한 당국의 의도와 달리 역으로 얼마나 인권이 형편없는 곳인지 체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주민들은 “인권을 얘기하면 귀에 하나도 안 들려서 그저 졸고 지나갈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지 살포나 남한 정부의 대북인권결의안 발의 등 일련의 움직임이 사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의식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당국을 자극해 남북한 교류협력에 찬물을 끼얹고 나아가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면 그 결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대북 인권 문제는 남한에서 북한 당국을 자극해서 개선시키는 방법보다 북한 당국 스스로 자책골을 넣고 있는 상황에서 꽃피고 있는 역설 때문이다. 인권 문제는 핵문제와 달리 북한 당국 대 주민 간의 대립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므로, 북한 당국 스스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상 북한 당국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상전을 감행한 이유를 살펴봤다.

남북한 정부,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글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북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해 세계 각국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뉴욕타임즈 등의 외신을 인용해 남한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일반화한다.

북한에서 인용하는 외신이란 늘 그렇듯이 6하 원칙과 무관하게 쓰여 지고, 자신들의 구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신빙성은 없다 하겠다. 문제는 외부 소식에 접근하기 힘든 간부들과 일반 주민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먹혀든다는 점이다.

“남조선 각 계층은 사실상 북남사이의 호상협력없이 남측이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민족문제나 경제문제는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하면서 사태해결을 위해서는 리명박이 직접 나서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존중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북에 사죄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요구를 마치 남측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아직 이명박 정부에 일말의 손잡을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2008년 한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북측에서 넘어온 공을 남측이 제대로 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시작부터 필요 없는 말로 북을 자극해 남북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 발전이 아니라 후퇴의 후퇴를 한 것이 사실이다. 3월 26일 하룻동안에만 대통령부터 군,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이 쏟아낸 발언들이 전략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로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족의 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고, 과연 남한에 경제적 이득은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무엇보다 남북한의 소모적인 기싸움 때문에 식량난으로 죽어간 수많은 북한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생각한다면, 설혹 일부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정책적 패착이 라 아니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북한 정부의 사상전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사상전에 빌미를 주고 끊임없이 말려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대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계속 자극하고 있다. 민족 통일의 길과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을 뿐이다.

2008년 북한의 파상공세에 밀려 남한 정부 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면 5천여억원의 막대한 투자금 손실은 물론 국제사회 신용도에 타격만 받을 뿐이다.

북한 정부도 단선적인 생각에서 좀 더 거국적이고 민족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이 으르렁대고 맞서 싸워서 누구 하나 이긴다손 쳐도, 엄혹한 국제 관계 속에서 결국 둘 다 패자가 되고 말 것이다.

북한 정부의 두려움은 바로 남한 정부에 흡수통일되는 것이다. 글의 말미에 “우리는 남조선 것들에 대한 환상, 남조선경제에 대한 털끝만한 미련도 가지지 말고 혁명적원칙, 계급적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남한 정부는 북한 정부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북한 정부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회복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남한에 대해 사상전을 퍼붓는다 해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만 성공 가능한 일이다.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아시아개발은행이나 국제기금에서 투자를 유치하려고 해도, 그들이 아무런 보장도 없이 북한에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보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북한은 늘 ‘우리민족끼리’를 외치고, 남한더러 ‘친미사대주의’라 욕하지만 실상 우리민족끼리 협력해야 할 때는 남한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과만 상대하려고 한다. 이것은 미국에 목매달고 있는 게 어느 누구도 아닌 북한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남한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강성대국을 이루겠다는 것은 이뤄지기 힘든 허망한 꿈이다. 미국이 북한에 돈을 대주고 경제를 발전시켜 주리라는 꿈을 꾼다면 일찌감치 접는 게 낫다. 북한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남한뿐이다. 또 북한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난이나 욕은 참지 못하면서, 남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을 너무 쉽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남북한 최고 수장에 대해 서로 존중하는 모습부터 보여주면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 바란다.

■ 식량소식

극빈자들, 김장 대신 시래기 절임

꽃제비를 비롯해 돈을 벌지 못하는 극빈자들은 수확이 끝난 밭에 나가 이삭과 시래기 줍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무, 배추 농사를 지은 밭에 가서 땅에 떨어진 시래기를 주워 간다. 김장 담굴 생각은 못해도 소금에 절여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연백벌 농민 분배량 4-6개월 불과

황해남도 해주시의 한 간부는 연안, 배천, 청단군 등 연백벌 지역 농민들의 올해 식량 분배량이 4-6개월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현금 결산 분배를 하지 못한 농장들이 많다. 배천군에 사는 황재순(41세)씨는 “식량 분배를 전량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올해 농사가 그나마 잘돼서 작년보다는 낫겠지 했는데 역시나”라며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대표적인 곡창지대이자 전연지대라 군량미를 가장 우선적으로 가져가고, 일부는 평양에도 보내졌다. 농민들이 가져갈 몫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해주시의 한 간부는 “작년보다 생산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올해 정해놓은 알곡 계획을 달성한 농장은 황해도에서 단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