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오늘의 북한소식’의 2008 북한 10대 뉴스
1. 최악의 식량난, 곡창지대 전역 아사자 발생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식량난과 아사 발생이다. 2006년과 2007년 연이은 큰물피해로 식량 생산량이 낮은데다, 미사일발사, 핵실험 이후 외부 지원마저 감소됐다. 또 2008년에는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 모두 중단돼 북한 주민들은 사상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다. 2월에 벌써 식량이 떨어졌다는 농가가 많았고, 4월 말부터 아사자 소식이 들려온데 이어, 5월과 6월에는 황해남북도 전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도시 노동자들이 먼저 아사했다면, 올해에는 곡창지대 농민들이 많이 죽었다. 작년에 수해피해가 컸고, 전연지대라 군량미로 우선 가져가다보니 농민 분배량이 워낙 적었다. 또 개인 소토지 농사를 통제했기 때문에 축적 식량이 일찌감치 바닥이 났었다. 올해 춘궁기 기간 동안 곡창지대의 한 농장마다 아사한 농민은 약 25-40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황해남도 사실상 전 지역 아사자 발생 제127호/2008.05.20(화)
황해남도 20개 시, 군 지역 중 1-2 곳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에서 아사자가 나타나고 있다. 곡창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농촌 지역의 식량난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황해남도는 작년 수해 피해가 심해 수확량이 급감한 데다 군인들이 직접 관리해 군량미를 확보하는 농장들이 많아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식량이 거의 없었다. 한 간부는 “원래 제일 식량사정이 바쁜 데가 강원도였는데 지금은 황해도가 됐다. 전에 없던 일이다. 제일 어렵던 것이 함경북도라고 했는데 지금은 함경북도가 제일 잘사는 곳이 되었다. 함경북도 사람들도 식량이 없어서 굶는다고 하지만, 다른 지역의 식량 사정이 워낙 나빠 굶어죽으니까 이제는 함경북도가 오히려 제일 잘사는 곳이 돼버렸다. 황해남도는 고난의 행군 때도 영향을 안 받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곳이 됐다. 그래서 당국이 이번에 공화국적으로 감자를 심으라고 했다. 제일 빨리 자라고 영양가도 높다 면서 감자로서 충성심을 바치라고 하는데 문제는 종자가 없다는 것이다. 종자가 없어 못 심고 있으면 방침을 거부하는 거냐고 또 야단이다. 위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주면서 자꾸 이런 식으로 조이니까 사람들이 더 죽겠다고 아우성이다”며 바닥민심을 전했다.
황해북도, 아사자 전역으로 확산 제137호/2008.06.03(화)
황해남도에 이어 황해북도도 아사자 발생이 전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황해북도에서 가장 먼저 아사 소식이 들렸던 사리원을 비롯해 봉산군과 곡산군에 이어 신계군과 황주군 등지에서도 아사 발생 소식이 들리고 있다. 특히 신계군과 황주군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에 더해 요즘엔 풀독이 올라 죽어가는 주민들까지 있다는 소식이다. 식량이 없어 겨우 풀죽으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해오던 이 지역 주민들은 풀을 잘 우려먹지 못해 풀독에 걸리고 있다. 황해북도 농촌 지역들에서는 하루 평균 3-4명씩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마을마다 매일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 춘궁기 식량가격 4,000원까지 폭등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식량가격 추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2007년 4월에 kg당 850원 하던 쌀값이 올해 4월에는 2,500-2,800원으로 3배나 올랐다. 춘궁기가 본격화되던 5월과 6월에는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올라갔는데, 지역과 날짜에 따라 가격변동의 차이가 발생하나 대체로 3,800-4,000원까지 급등했다. 그러다 미국의 식량 지원이 들어오던 6월 말부터 조금씩 떨어지고, 조기수확물이 나오면서 7월에는 2,400-2,500원 선을 유지했다. 8월 중순 들어 추석 전까지 다시 가격이 3,000원까지 올랐다가, 수확철이 되면서 2,200-2,400원으로 떨어졌다. 12월 현재 2,000-2,3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춘궁기에 비하면 쌀 가격이 많이 안정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작년 같은 시기의 1,000-1,200원대에 비교해 여전히 2배 높은 가격이다.
황해남북도 쌀값 일제히 4,000원 넘어 제138호/2008.06.04(수)
5월 중순까지 3,000원대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쌀값이 5월 말부터 다시 무섭게 요동치더니 4,000원선마저 넘어섰다. 5월 30일 황해남도 연안, 안악, 배천, 룡연, 옹진, 장연군 등 황해남도 전역의 쌀값은 일제히 4,500원대로 올라섰다. 황해남도와 마찬가지로 식량난이 매우 극심한 황해북도에서도 쌀값이 4,000원대를 넘어섰다. 같은 날 황해북도 사리원의 쌀값은 최고 4,200원까지 올라갔다. 옥수수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옥수수 가격은 대체로 1,950-2,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3. 미국 식량 50만톤 지원 및 테러지원국 해제
올해 미국은 1년간 북한에 50만 톤 식량을 지원한다고 발표한 뒤 6월 29일 남포항에 밀 3만 7천톤을 들여보냈고 12월 현재 약 14만 3천 톤이 지원됐다. 2005년에 대북 식량 지원을 중단한 지 약 3년만에 재개된 것이다. 이와 별도로 북핵 문제에 있어 부침을 겪는 와중에도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성과가 있었다.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던 북한은 20년 만에 명단에서 해제됐다.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기를 바라는 북한으로서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어찌됐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50만 톤 지원 사실 알려 민심 안정 꾀해 제128호/2008.05.21(수)
미국의 50만 톤 대북 식량 지원 소식이 각 도당에 내각 지시문으로 즉각 전달됐다. “미국에서 장군님의 위엄과 인민군의 위력 하에 평양에 와서 50만 톤의 식량을 6월말부터 지원하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어 “어떻게 해서라도 6월말까지 지방마다 다른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덧붙여 “이 같은 미국의 식량 지원 소식을 널리 선전하여 민심을 하루빨리 안착하라”, “농사에 모든 력량을 동원하라”는 등의 지시가 연달아 내려지고 있다.
이에 남포의 몇몇 주민들은 “얼마만한 량이 제공되겠는지 모르겠지만 작년에도 많은 지원 쌀이 들어왔어도 평양을 제외한 전국의 일반 주민들에게는 배급은 고사하고 장마당 쌀값조차 내리지 못했다”고 한탄하며, 이번엔 제발 평백성들에게 먼저 차려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각 공장, 기업소들에서도 조미간 식량 제공 협상이 잘 타결됐으니 지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대용 식품 해결 대책을 세울 것을 강조했다.
4. 이명박 정부 비난과 남북관계 경색
10년간 우호적으로 발전해온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북한 정부는 2월까지만 해도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남한 정부 당국자들의 대북 강경발언에 분명히 선긋기를 했다. 4월 1일 로동신문 논설을 필두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성 비난 발언을 집중포화하기 시작했다. 남한 정부는 화해와 협력 기조 속에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려고 했었는데, 북한 당국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난하면서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경색된 관계를 풀어보려고 대통령의 특별 담화가 있을 예정이던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이 피살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는 더 꼬여갔다. 북한은 12.1 조치로 개성공단 인원 축소와 남북 간 육로통행 제한 등을 강행했다. 유례없이 심각해진 식량난 속에서도 남북한 당국이 서로 협의하고 방안을 모색하려 하기보다 일종의 ‘기 싸움’에 몰입하느라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해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발언 비판 대회 시작 제120호/2008.04.16(수)
남북한 경색 국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각 계층별로 비판 대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남이 우리 공화국과 무역 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등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우리를 정복하려고 한다. 이명박 반민족도당의 고약한 심보를 폭로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각 계층별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한 중간 간부는 “회의 정신을 학습하며 생각해보니, 남쪽과의 거래가 모두 중단되면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길까 아득해지기만 한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강원도 원산으로 일본 중고품 장사를 다니는 김용선(52세)씨는 “이남 정부가 우리나라와 민간 거래도 차단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하긴 차단하거나 말거나 별로 상관은 없다. 언제 민간이 주는 걸 받아봤어야 안타깝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한 고위 간부는 “몇 사람들 싸움 때문에 죄 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가게 됐다. 고래 싸움에 새우 치는 격이 되었다. 공화국이야 그렇다 치고, 남조선도 알고 보니 어느 것 하나 공화국보다 나은 게 없이 그저 둘이 똑같다. 백성은 안중에 없고 서로 누가 더 잘 났나 힘자랑하는 꼴이다. 검둥이와 까마귀 싸움이라 우리 민족의 앞날이 안 보인다.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조선은 정말 우리 백성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거냐”고 뼈아픈 통탄을 했다.
5. 종합시장 폐지, 내년부터 농민시장 개편
“시장은 비사회주의의 서식장”이란 말은 북한 지도부가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북한 당국은 미국과 남한의 사상침투가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고, 사회주의 사상을 해이하게 하고 물들게 하기 때문에 ‘시장’을 단속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해마다 시장 단속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었으나, 작년 하반기에 40세 미만 여성들의 장사 금지 조치에 이어 올해 하반기에는 급기야 종합시장 폐지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새해 1월부터 기존의 농민시장을 대대적으로 부활해 식량은 량정사업소 배급소에서, 공업품은 국영수매점에서, 그리고 나머지 농산물은 농민시장에서 매매할 것을 지시했다. 매일 상설로 열리던 시장은 이에 따라 매월 1일, 11일, 21일, 이른바 ‘1일장’으로 바뀐다. 장마당 장사로 생계를 잇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당국의 이 같은 방침에 깊은 불신과 회의감을 보이고 있다.
종합시장 폐지, 평양 간부들 의견 분분 제255호/2008.12.02(화)
종합시장을 폐지하고 농민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중앙당의 결정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간부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한 간부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중앙당 간부들은 ‘종합시장이 들어선 뒤 사리사욕과 빈부차이가 커져 사회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 도적질 등의 범죄가 점점 더 늘어나고, 모조품이 성행한다. 사람들이 직장이나 농장 일에 적극 참가하지 않으면서 소토지 농사나 장사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종합시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간부들은 국가에서 식량공급을 하지 못하고 로임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그저 백성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자체로 노력하는 일을 비사회주의 행위라며 종합시장을 폐지해야 한다고만 말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간부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들은 침묵을 지켰다. 공개석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한 간부는 “앞에서는 누구도 말 못했지만 배후에서는 다들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지금, 농장마다 군량미를 바치고 새해 농사지을 종자와 가축 사료 등을 제하고 나면, 농장원들에게 배분할 식량이 모자란다. 당장 시장에서 식량을 팔지 말라고 하는데, 양정사업소에는 식량이 없다’고 말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중앙당은 내년부터 공업품은 수매상점에서, 식량은 각 구역 배급소에서, 그리고 식량을 제외한 각종 농산물은 시장에서 판매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매일 열리던 시장을 매월 1일, 11일, 21일 단 3회를 열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6. 시장단속에 청진여성들 집단 항의
지난 3월 3일부터 5일까지,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을 필두로 각 구역 종합시장에 여성들 1만 여명이 모여 당국의 장사 단속에 집단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40세 미만 여성들을 장사하지 못하게 하는 방침에 따라, 청진시 당국은 3월 3일 각 구역 시장에서 매대를 시장 밖으로 내놓으며 여자 상인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급기야 다음날 4일 오후 1시부터 각 구역 시장에 여성들이 모여들어 시장관리소측에 “쌀을 달라”, “배급을 주든지 장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보안당국은 집단 항의에 놀라 폭동을 우려해 별다른 강제 진압을 취하지 않았다. 3월 5일, 중앙당의 방침이 다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진 당국은 자체적으로 장사를 허용하도록 함으로써 일단락 지었다. 사건 일주일 뒤인 3월 11일, 중앙당은 “나이제한에 걸린 여성들은 모두 공장, 기업소에 입직시키라”며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사건은 북한 여성들이 생계 문제에 얼마나 필사적인지 보여주었으며, 북한 당국이 강제로 ‘내리먹이기’식 방침을 집행하다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청진시 각 구역시장 여성상인들 집단 항의 제115호/2008.03.12(수)
지난 3월 4일 청진시에서 생활난을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수남 구역을 비롯해 각 구역 시장 관리소에 밀려들어 집단적으로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날 오후 1시 무렵부터 수남 시장을 비롯해 청진시 곳곳의 시장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사를 못하게 하겠으면 배급을 달라”, “이러다간 다 죽게 됐다. 줄 쌀이 없으면 장사를 하게 해 달라”, “죽을 바엔 너 죽고 내죽고 해보자”등 과격한 언사로 항의했다. 각 시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청진시 보안서와 각 구역 보안원들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여성들을 상대로 해설과 설복에 나섰다. 집단 항의에 나선 여성들은 당국의 설복과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관리원들과 보안원들을 맞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그들은 보안원들 앞에서 “일하면 배급도 주지 않고, 월급이라야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면 500원 정도도 안 되어 주나마나 하니 어떻게 살라하는 가? 이런 시책은 백성들을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말하라”,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법도 너무 한다”라고 고함치면서 그 자리에 버텼다. 혹여 보안원들이 강제로 해산하려고 했다가는 당장 험악한 일이라도 벌어질 분위기였다.
7. 곡산군 미루벌 물길공사 노동자들 식량난으로 공사 지연
황해북도 곡산군 미루벌 공사의 식량난은 ‘미루벌’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선정됐다. 2007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 당국은 특별히 ‘미루벌’을 언급해 미루벌 물길공사에 심혈을 기울일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미루벌은 1957년 김일성 주석이 현지 지도했던 곳으로, 대표적인 곡창지대가 아닌데도 신년공동사설에서 언급한 것은 그만큼 그 해 수해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2007년의 주요 과제가 된 미루벌 공사는, 그러나, 2008년 식량난으로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곡산군 물길공사에 동원된 약 1만 5천 명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겨우 통옥수수 한 줌과 소금으로만 끼니를 이었다. 아사자가 속출하다보니, 이 소식에 너무 놀란 중앙당에서 긴급히 현지 방문을 나가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5,000-6,000명 가량인 여성 노동자들이 위생대가 없어 곤란을 겪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곡산군 물길공사에 동원된 1만 5천명, 식량난으로 고통 심각 제131호/2008.05.26(월)
무엇보다 2006년과 2007년 연속된 큰물피해로 파괴된 곡산군 미루벌 물길공사에 동원된 약 1만 5천 명 노동자들의 식량난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곡산군내에 식량이 바닥난 상태에서 동원 인력들 역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중앙으로부터도 별다른 공급과 지원이 없어 하루에 겨우 통옥수수 한 줌 정도와 소금으로만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 수준이다. 간혹 풀뿌리에 겨 가루를 섞어 먹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먹은 게 없는 상태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 보니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중앙당에서도 너무 많은 아사소식에 놀라 현지 방문을 나가기도 했다. 중앙당 간부들이 직접 현장을 둘러보면서 너무 처참한 광경에 입만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한 목소리로 “밥 한 끼라도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앙당 간부가 돌아간 뒤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이 동원 인력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의료 체계를 보강하는 것도 매우 시급하다. 공사하다가 다치거나 쓰러지거나 아파서 병원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이 회복되는 기간도 늦고 심한 경우 그대로 죽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간단한 구급실처럼 약도 제대로 구비가 안 돼 1차 진료 수준밖에 안 된다. 한 간부는 “먹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사장 로동자가 한 명도 안 남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식량이 없어 먹지 못해 쓰러지는데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한다.
공사장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간부는 “미루벌 물길공사에 지원이 시급하다. 마른 건면이라든지 식량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떤 것도 좋다. 도와주겠다고만 하면 현지에 직접 와서 나눠주고 배분해주는 것을 감독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여력이 부족해 미처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곡산군 물길공사에 동원된 우리 로동자 1만 5천 명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8. 유엔식량기구 전국 시찰
올해 6월 5일, 미국의 4개 비정부구호단체들로 조직된 식량 조사단이 평안북도 신의주를 기점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WFP 역시 식량대상자를 북한 128개군 500만명으로 늘리기로 하고, 분배감시요원을 10명에서 59명으로 확대시켰다. 미국이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50만 톤 식량 중 40만 톤을 WFP에서 관할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지난 7월 말, 식량 배분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WFP 분배요원들이 각 지역을 방문했다. 북한 당국은 예년과 달리 이들에게 비교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북한 주민들 중에는 “예전에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곳과 좋은 면만 알려주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문제 있는 곳,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보여줬다”며 잘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유엔식량기구 평안북도 시찰 제144호/2008.06.12(목)
지난 6월 5일, 유엔식량기구에서 주민 식량 상황을 시찰하려고 평안북도 신의주에 들어와 몇몇 지역을 돌아보고 갔다. 신의주에서는 도착 전 날 갑자기 비상회의가 소집됐다. 유엔 식량기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할 내용을 만들어서 일부 주민들에게 포치했으며, 그 외 주민들에게는 3일 동안 외부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 유엔식량기구: 북한에서는 4개 비정부구호단체들로 구성된 미국의 식량 조사단이 유엔식량기구 조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9. 김정일 위원장, 공화국 창건 60돐 기념식 불참
올해 국제적으로도 가장 주목을 받았던 사건은 아무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일 것이다. 김 위원장이 8월 14일 군부대 시찰을 마지막으로 두 달 가까이 두문불출하면서 건강이상설이 더욱 불거졌다. 좋은벗들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보다 9.9절 기념행사 불참에 더 주목한다. 올해 김위원장은 손수 “공화국 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를 조국 청사에 아로새겨질 력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고 구호를 내세웠다. 또 ‘인민생활제일주의’를 거론하며 인민들에게 ‘기쁨의 해’가 되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새해의 비장한 다짐은 곧 춘궁기 식량난과 아사자 발생으로 온데간데 없어졌다. 공화국 창건 60돐을 빛낼만한 성과는 미미한 데다, 그나마 대미전쟁의 승리, 체제의 승리로 선전할 수 있었던 ‘테러지원국 해제’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김위원장이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가운데, 공화국 창건 60돐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불참 소식은 건강이상설을 부채질했고, 이 소식이 역으로 북한 내부에 들어가 주민들 사이에 풍문으로 떠돌기도 했다.
김위원장 9·9절 행사 불참, 중요 간부들에게 미리 통보 제211호/2008.09.16(화)
북한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9절 행사에 불참 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요간부들에게 미리 통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공화국 창건 60주년인 올 9.9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밖에서는 신병 이상설로 들끓고 있으나, 북한 내부에서는 비교적 조용하다. 신병에 대한 객관적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 내 고위 관리들에게 알려져 있는 9.9절 행사 불참사유는 “신변 안전 문제”였다고 한다.
북한의 한 고위간부는 “남조선에서 신변이상설, 심지어 몇 년 전 사망설까지 나돌고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그것은 허무맹랑하다. 중국에서 시진핑 부주석이 방문하는 등 국가 정상들과 계속 접촉을 해왔는데도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상식 밖이다”라며 요즘 외부 언론매체의 소식이 터무니없이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건강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나, 밖에서 떠들고 있는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9.9절 행사의 경우 신변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불참한 것이다. 당신은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신변상의 불편 때문에 장군님이 출사하지 않도록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탈북 고위 간부는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하는 1호 행사에 대해 미리 통보한 예는 없었다. 민간 무력에서 1호 행사를 할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는데 그날 아침에 김일성 광장에 나가는 것이 중지 되었다는 것은 신병 이상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다”며 북한 당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을 내부에 숨기기 위해 신변 안전을 불참사유로 변명하는 것 같다고 했다.
10.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 후원 인구조사 실시
북한은 UNFPA의 후원을 받아 10월 1일부터 전국 인구 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인구주택 총조사는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약 2주간 실시됐으며, 현장 조사 요원 3만 5천 200명과 지도요원 7천 500명이 동원됐다. 북한 당국은 조선 중앙 TV는 물론 여러 매체를 통해 인구 조사 사실을 알리고 주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따라 표본 지역으로 선정된 56여개의 시, 군은 “인구 조사를 세밀하게 하여 통계를 낼 데 대한” 중앙당의 지시에 따라 인구 조사사업에 적극 협조했다. 조사요원들은 성별, 연령, 학력, 당원, 사로청 여부, 직장, 직위 등을 상세히 조사했으며, 세부 최종 조사결과는 2009년 하반기에 나올 것으로 예고됐다.
10월 1일, “인구 조사 세밀하게 낼 데 대한”지시 제230호/2008.10.13(월)
지난 10월 1일, 전국 시, 군은 중앙당으로부터 “인구 조사를 세밀하게 하여 통계를 낼 데 대한” 지시를 받아 인구 조사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별, 연령, 학력, 당원, 사로청 여부, 직장, 직위 등을 상세히 조사하고 있다. 이번 인구 조사사업은 유엔의 요청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식량소식
함흥 군부대 요청에 온성 추가 군량미 거둬
함경남도 함흥시 주둔 부대들은 함경북도 온성에서 올해 군량미로 콩을 40톤씩 받아갔다. 배급받은 콩으로 된장, 콩나물, 두부, 비지 등을 만드는데 수량이 충분하지 못해 추가 군량미를 요청했다. 이에 온성군 군당에서는 각 농장마다 4톤씩 더 거뒀다. 각 농장에서는 군량미 계획을 완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가 계획이 내려와 당혹스러워 했다. 군량미를 거두고 남은 식량으로 농민들에게 이미 분배를 끝낸 상황에서 남은 수량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일부 농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종자나 사료로 남겨둔 몫에서 군량미를 빼냈고, 또 일부 농장에서는 농장원들에게 벼 1kg를 콩 4kg과 교환해주는 식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회령 12월, 옥수수와 콩 분배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12월 배급으로 노동자들에게 통옥수수 15kg씩 배급했다. 어린이와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18kg씩 더 공급했다. 옥수수 대신 콩을 18kg 분배한 지역도 있었다. 농민들도 분배를 받았는데 회령 역시 온성과 마찬가지로 추가 군량미를 거둬 농민들의 원성이 높다. 분배 받은 벼를 옥수수로 환산해 집에 들여다 바싹 잘 말렸던 농민들은 군량미를 추가로 바치라는 요구에 “또 속았다”는 반응이다.
■ 경제활동
“농장 전출하면 가족까지 전량 분배해 주겠다”선전
평안북도 녀맹회의에서는 자발적으로 농장원이 되면 본인 몫으로 벼 360kg에 가족 몫을 더 해 1년 식량 전량을 공급하겠다고 선전하고 있다. 농장에 전출하면 여러 생활 편의를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선전을 듣고 농장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여성들도 생기고 있다. 올해 극심한 식량난으로 춘궁기를 힘들게 보냈던 여성들은 내년에 또 다시 굶으며 버티기는 싫다며 자원하고 있다. 농장원들은 이 선전을 ‘되지도 않는 소리’라고 말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며 자원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면수 풍작에도 사가는 사람 없어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10월부터 이면수가 잘 잡혀 이면수 풍작이지만 잘 팔리지 않고 있다. 전국 도매 시장 역할을 하고 있는 청진 수남 시장에서 이면수는 한 손에 600원 한다. 이면수 장사를 하는 김옥화(46세)씨는 “올해 식량난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면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지금은 알곡 모으는 게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작년에 한 손 당 500원씩 하던 것에 비하면 물가가 오른 것도 아닌데 찾는 사람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정재경(31세)씨는 “이면수만 안사는 게 아니다. 추운 날이라 겨울옷들이 팔릴 때인데 옷도 안 팔린다. 사람들이 벌써 내년 걱정에 옥수수가 쌀 때 1kg라도 더 산다고 다른 건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평안남도 올해 식량난에 염소도 수난
평안남도 각 시, 군의 청년염소목장 염소들이 대부분 올 봄 식량난을 버티지 못했다. 올해 3월부터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농장들에서는 새끼 밴 염소까지 잡아먹었다. 농장에서 잡아먹은 염소 수량도 많았지만 도적을 당하거나 분실된 염소도 많았다. 온천군 청년염소목장은 2002년에 지어질 당시만 해도 염소사 한 곳에 90마리씩 총 8곳의 염소사가 있었다. 그런데 염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줄어들었다가 올해 식량난에 급기야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식량이 없던 농민들이 잡아먹은 이유도 있지만, 풀밭이 잘 조성되지 않아 염소 먹이가 없어 굶어죽은 염소도 많았다.
■ 정치생활
도강자, 앞으로 보위부 소관
북한 당국은 11월 28일 방침에 따라 이후 도강자들은 보위부에서 취급한다고 밝혔다. 도강자들이 중국과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탈북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법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11월 28일 방침의 주요 내용은 “국가보위부의 법적 통제를 강화하고, 범죄자에 대한 형사 재판의 효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국경연선지역의 시, 군에서 붙잡힌 도강자들은 보위부에서 집중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
■ 사회
전거리 교화소, 올해 대사령자 20명 불과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 교화소에서는 올해 10월 대사령자가 불과 2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된 인원은 역대 가장 적은 숫자인데 반해 새로 들어오는 수감자는 점점 늘고 있어 수용시설이 비좁다. 12월 5일 현재 여성 범죄자는 1,400명이 넘었고, 남성 범죄자는 1,800명이 넘었다. 정식 사면된 20명 외에 거금을 주고 가석방된 사람은 전부 합해 100여 명에 불과하다. 공간이 비좁다보니 제대로 눕지 못하고 모로 누워 칼잠을 자거나 심지어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 여성/어린이/교육
도교육부, “우리나라 연속극만 봐라”
함경북도 도교육부에서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연속극이나 영화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에 이어 12월에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거나 이색적인 노래나 춤을 추면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단련대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중앙당의 방침이라며 여학생들은 무조건 단발머리를 해야 하며, 굽이 높은 신발을 신지 말라고 했다. 남학생들은 머리가 손에 잡히지 않도록 짧게 깎아야 하고, 특히 술, 담배를 엄금하라고 지시했다. 이 방침에 따라 각 학교들은 학생 교양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강서군 녀맹원들, “애국미 못 바치겠다”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3지역 43반 세대의 녀맹원들이 애국미를 바치지 못하겠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같은 동 녀맹위원장이 인민반, 녀맹, 초급단체 성원들 앞에서 애국미 헌납에 성실히 참가하지 않은 여성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상 투쟁을 받는 와중에 김정란(41세)씨는 처음에는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갑자기 언성을 높여 녀맹위원장과 말다툼을 벌였다. 김씨에 동조하는 여성들이 늘어나자 분쟁이 더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초급당 비서가 부랴부랴 회의를 중지시키고, 녀맹원들을 재빨리 집으로 돌려보냈다. 김씨와 동행해 집에 갔던 초급당 비서는 김씨의 살림살이 형편을 보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 사건사고
이천령 군차량 사고로 사상자 발생
지난 11월 6일, 강원도 1군단 소속 한 소대 차량이 이천령 고개를 오르던 중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소대는 당일 화학련대 동기 훈련 준비를 하려고 철원군에 화목작업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참변을 당했다. 이 사고로 차량에 탑승 중이던 29명 중 3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에 호송됐으며, 나머지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순천 닭공장 병아리 2만 마리 전멸
지난 11월 9일, 평안남도 순천시 닭 공장에서 닭 420마리와 병아리 2만 마리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안당국에서는 닭 모이를 주는 사료공의 부주의로 보고 사료공을 체포해 조사에 들어갔다. 이 날 전체 닭의 약 55%가 죽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 논평
새해 농사, 국방공업 못지않게 중요시해야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자체로 해결하는 것은 나라의 국방공업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올해 7월에 발표된 식량 관련 간부 및 군중 자료에서 북한 당국은 식량 문제가 나라의 국방공업 못지않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식량 문제를 풀 방법으로 ‘종자혁명, 감자농사혁명, 두벌농사방침, 영농물자 보장’ 등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예전에 비해 먹는 문제를 점차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은 구태의연하다. 종자혁명은 물론 해야 하고, 감자농사와 두벌농사 잘 지으면 식량 확보에 크게 도움 될 것이고, 영농물자 보장은 그야말로 농사짓기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런 4가지 방향을 충족시킬만한 자금이 없다는 점이다. ‘국방공업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인식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국방공업을 위해 북한 당국은 군수공장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투여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월급과 배급도 다른 일반 노동자들보다 나은 형편이다. 물론 올해 식량난은 일부 군수공장 노동자들도 어려움을 겪었으나, 일반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배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것은 사실이다. 국방공업처럼 식량문제를 풀려면 농장에도 우선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농민들에게 먼저 식량을 배분해 농민들이 굶주림 때문에 일하러 나오지 못하는 올해 같은 상황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비료와 비닐 박막 등 영농자재 확보에도 보다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0년 넘게 가동이 중단되다시피 했던 흥남비료공장이 올해 소량이나마 비료를 생산하기 시작한 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내년에 황해남북도 일부 농장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흥남 비료를 구경하기 어려우니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정도로 그 양은 필요량에 턱없이 부족하다. 비료를 충분히 확보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에서 화해국면으로 전환해 다시 비료를 지원받는 것이고, 아니면 당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대대적으로 수입하거나 비료 공장을 증설하는 것이다.
벌써 새해 농사준비가 시작됐다. 녀맹원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논밭 갈기에 동원돼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집집마다 비료를 모은다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인분 등 퇴비 만들기에 총동원될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남이 만들어놓은 인분을 사다가 바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끙끙댈 것이다. 관련 무역일꾼들은 어디 가서 무얼 팔아야 비료를 사올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맬 것이다. 비료를 사올 돈이 없으니 무엇이든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괜히 국가 소유물을 잘못 팔았다가는 범법행위로 조사당할지도 모른다. 북한 당국이 만약 식량 문제를 국방공업처럼 중요시 여긴다면, 말이 아니라 투자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집중탐구
북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
오직 ‘강성대국’을 향한 긴 여정
2012년 강성대국건설을 향한 북한의 대장정은 2008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한 해를 결산하려면, 그 이전의 역사를 간략하나마 짚고 넘어가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북한 당국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강성대국건설’을 주창한 이래 해마다 강성대국건설을 다음과 같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최고 이상향으로 그려왔다.
“주체적 사회주의 강성대국은 착취와 억압, 가난과 무지, 침략과 약탈, 지배와 예속으로 얼룩진 지난 시기의 반동적 반민족적 국가건설사에서 종지부를 찍고, 인민들의 요구, 인류의 염원을 전면적으로 꽃피워주는 이상 국가이다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성대국’ 구상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웅대한’ 구상은 처음부터 극심한 혼란과 위기를 겪게 되었다. 바로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대량아사와 체제존망의 위기 속에 북한 당국이 강성대국건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1999년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라고 했던 신년공동사설에서 볼 수 있듯이, 고난의 행군이 끝나갈 시점에서야 강성대국건설을 공식적으로 등장시킨다. 고난의 행군을 극복했으니 이제 ‘위대한 전환’을 시작하자는 독려였던 셈이다.
2005년에는 ‘전당, 전군, 전민이 일심단결하여 선군 위력을 더 높이 떨치자’고 했다. 전 사회의 선군사상화를 완성하자는 목적으로, 이 해에는 고 김일성 주석의 사상 체계였던 주체사상이 선군사상으로 이행됐다. 2006년에는 ‘원대한 포부와 신심에 넘쳐 더 높이 비약하자’고 했다. 2005년에 전 사회가 선군사상화됐기 때문에 2006년부터 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향해 뛰자는 내용이었다. 이 때만해도 아직까지 ‘령마루’ 아래에 있으니, 이제는 강성대국의 령마루로 어서 오르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가자’고 했다. 글머리에 “려명이 밝아온 위대한 승리의 해, 격동의 해로 수놓아졌다2)”고 언급된 것은 “령마루까지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강성대국의 려명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7년, 평양에서 15년 만에 재개된 전국지식인대회(11/30-12/1)에서는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맞이하자”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시한을 언급했다. 그러다 2008년 들어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를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력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고 했다. 조만간 ‘령마루’로 올라설 것 같던 기세등등한 기운은 멈칫했지만, 강성대국 건설을 향한 여정이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강성대국 건설의 ‘2대 방침, 3대 전략’
강성대국 건설을 향한 국가의 일관된 목표는 ‘2대 방침, 3대 전략’으로 집행되고 있다. 2대 방침이란 첫째 김일성 주석의 유훈 교시로써, 혁명의 위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립적 민족경제건설 노선을 고수한다는 것과, 둘째, 사상 사업을 모든 사업 앞에 앞세워나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침을 ‘확고부동하게 틀어쥐고 나가면서’ 3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3대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전략, 대외사업강화전략, 대미관계개선전략’이다. 경제강국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과 기술이 필요하고(과학기술전략),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지지자를 끌어들여 정치 지원과 경제 투자유치를 끌어들여야 하며(대외사업강화전략),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체제안전을 보장받아야(대미관계전략) 강성대국 건설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력사적 전환의 해’로 만들자던 2008년,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은?
북한은 올해 스스로 어떤 것을 성과로 꼽고 있을까? 우선 강성대국 건설의 주공전선인 경제건설 중에서도 식량 부문을 보면 작년에 비해 17% 증산한 것을 들 수 있다. 북한 농업성은 지난 10월 29일, 올해 생산량이 총 468만 톤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1987년 이래 최대 수확이라고 말한다. “현 시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과업은 없다3)”고 했던 신년공동사설을 상기해볼 때, 북한 당국이 발표한대로 17% 식량 증산이 사실이라면 분명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올해 생산량은 논란이 있으므로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인민경제선행부문인 기초공업부문의 전력공업, 석탄공업, 금속공업, 철도운수 등의 성과는 과연 어떨까? 전력생산을 위해 발전소 건설을 다그치고, 석탄 계획량 완수를 독려하며, 각 지역 철도운수부문에 여러 차례 검열단을 내려 보내 개선 상황을 점검했다. 올해 7월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간단히 살펴봐도 기초공업부문에 대한 김위원장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1월 6일 – 황해북도 예성강 발전소 건설장
1월 26일 – 자강도 강계시 닭 공장, 돼지공장, 버스공장, 식료공장,
토끼 종축장 방문
1월 30일 – ‘3월 5일 청년광산’ 방문
5월 29일- 평안남도 순천시 2.8비날론 연합기업소 현지지도
5월 30~31일- 함경남도 흥남연합기업소 (흥남비료, 흥남화학 등) 방문
김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는 곳마다 보름치 배급이 미리 지급됐고, 갖가지 편의가 제공됐다. 로동신문에 따르면 현지지도에 힘입어서인지 1/4분기 기간 동안 각 부문에 혁신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의주 신발공장의 하루 계획량은 120% 달성됐고, 경공업성 산하 기타 다른 신발공장들 역시 1/4분기 계획량을 완수했다. 4월 2일에는 전력공업성 산하 각 발전소가 1/4분기 계획량을 달성했다고 보고됐다. 특히 올해 남한의 비료지원이 중단된 상태에서 흥남비료공장의 비료생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전력공업성은 전력생산이 올해 상반기에 103%가 달성됐다고 발표했다. 이것만 보면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제일주의’를 주창했던 대로, 인민생산계획이 제때에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외관계는 어떤가. 일본, 남한과의 관계는 경색국면이지만, 약간 소원해졌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보다 우호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또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와 미얀마와의 외교관계 복원 등도 성과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3대 전략 중에서 체제보장 문제가 걸려있는 대미관계전략은 비교적 성공했다고 자축할만하다. 물론 8월 달에 핵 검증 문제로 테러지원국 해제가 지연되고, 12월 최근 6자회담이 결렬되는 등 여전히 부침을 겪고 있으나, 결국 10월에 테러지원국이 해제되었다. 또, 오바마 정부의 등장은 앞으로 북미관계에 비교적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올해 이룩한 이 성과들을 바탕으로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기 위하여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독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올 한해 이루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성과와 실패를 가늠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성과로 내세우는 것들이 실은 성과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기준을 ‘주민들의 실생활’에 맞춰보면 그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를 인민생활향상에서 실질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보람찬 해, 기쁨의 해로 되게 해야 한다4)”
북한 당국이 올 한해 무엇보다 신경 썼던 ‘인민생활제일주의’, 곧 ‘기쁨의 해’는 여러 부문의 계획량 달성이라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올해 춘궁기 극심한 식량난과 아사자 발생 등으로 당장 빛을 바래고 만다. ‘기쁨의 해’에 웃음소리 대신 고통스러운 신음과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식량 부문을 보면, 생산량이 증산됐다고 하지만 큰물피해를 당해 2000년 들어 사상 최저 수확량을 기록했던 작년에 비해 나아졌을 뿐 평년작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468만 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어도 북한 국내에는 한 명도 없다. 예년에도 허위보고가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해 날씨가 좋아 생산량이 그나마 나온 것일 뿐 전체 수요량을 감당할만한 생산량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실례로, 수확이 끝난 지금 식량가격이 년중 최저가격인데도 불구하고 2,000-2,3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예년 가격의 3배 이상 올랐던 올 봄의 가격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2월 발간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Crop Prospects and Food Situation)’ 보고서 북한 편에서 내년에는 180만 톤의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당국의 소토지 농사 단속과 장사 통제는 지금도 주민들을 더 고통으로 몰고 가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전력부문에서는 평양 화력발전소 개보수가 끝나고 중유가 들어가 일단 전력 수준이 높아졌지만, 기타 다른 발전소들은 보수공사가 원활하지 못했다. 김위원장의 현지지도로 보름 분량의 배급을 받았던 발전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발전소들은 건설 노동자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일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각 공장, 기업소에서 건설 노동자들을 차출하려고 했지만, 순순히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각 공장, 기업소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이처럼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발전소 보수 공사만 해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자금 부족을 겪기 일쑤였다. 석탄부문에서 각 광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산 노동자들은 일 년 내내 거의 배급을 받지 못하다가 10월에 들어서야 겨우 보름치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채탄하는 일이 어려운 만큼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장사를 통제하면서 광산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는 타격을 받았다. 광산마다 설비가 낙후해 생산계획량에 차질을 빚는 것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사정이다.
올해 성공적으로 생산된 흥남비료공장의 속사정은 어떤가. 제 3차 7개년 계획(1987-1993년) 당시 흥남비료공장의 대대적인 개건사업이 완전히 실패한 뒤 지금껏 전혀 가동되지 않다가 지난해부터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성과라 할만하다. 그러나 압축기 16대 중 복구된 것은 겨우 4대에 불과하다. 그것도 신형 설비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과거 일제 때의 설비를 고쳐서 다시 가동한 것이라 설비가 낙후하다. 내년 농사에 비료가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실제 북한 당국은 얼마 전 황해남북도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흥남 비료를 기대하지 말라고 미리 못 박기도 했다.
판단 기준에 따라, 이렇듯 주공전선인 경제건설의 성과가 사실과 다르거나 혹은 그늘진 면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올해 테러지원국 해제로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것처럼 보이는 대미관계전략은 어떤가. 4월 8일 싱가폴 회담에서 합의한 약속이 순조롭게 이행되지 못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다시금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약속대로 1만 8천여 쪽에 달하는 영변 원자로 가동기록을 건넸더니 미국에서 테러지원국을 당장 해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추가 샘플 채취를 요구하는 등 핵 검증을 보다 철저히 할 것을 주문하면서 10월로 연기되었다. 올해 8월 달, 테러지원국이 곧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에 각 시, 군 간부 및 군중강연 자료5)에 미리 선전을 해두었던 북한으로서는 퍽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올해 공화국 창건 60돐이 되는 해를 맞아 미국과의 관계에서 승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던 테러지원국 해제가 물거품이 되는 듯하자 북한 지도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항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떠돌기 시작한 시점도 이 무렵쯤이었다. 김위원장은 8월 14일 군부대 현지지도를 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데다, 성대하게 치를 것을 약속했던 공화국창건 기념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와병설이 더욱 확산됐다. 와병설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김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잘 풀리지 않은데 대한 충격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 자체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60돐에 내세울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대미관계의 승리에 집중했으나 이마저 좌절된 데 대한 실망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공화국 창건 60돐을 맞아 력사적 전환의 해를 맞이하고자 했던 목표는 과연 이뤄진 것일까? 이에 대한 북한 정부의 공식 답변은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열어젖히려면 이제 4년 남짓 남았다. 강성대국건설을 앞당기려면 북한 당국은 내부 선전용 성과에 안주하는 대신, 실패와 한계점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추상적인 구호를 나열하기보다 보다 구체적인 경제건설지표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종속 변수로 두기보다 남북관계를 풀면서 동시에 북미관계를 더 유연하게 풀어가기 바란다. 2009년은 2008년의 성과를 더 발전시키고, 실패를 거울삼아 인민들이 진정 ‘기쁨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