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은덕군 농촌 진출 자원여성들, “8개월 식량 안주면 출근 못 해”
식량분배를 약속받고 농촌에 진출했던 함경북도 은덕군 여성들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집단으로 결근했다. 올해 초 부양여성(가정주부)들을 농장에 진출시킬 데 대한 방침이 나온 이래 각 지역에서는 농촌 진출자를 모집해왔다. 각 동(읍)사무소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하거나 해설담화를 통해 활발히 선전했지만 누구도 선뜻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원율이 저조하자, 급기야 당국에서는 농촌에 진출하면 최소 8개월 분량의 식량을 미리 배분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일단 기한은 3년으로 하고, 집안 일이 생기면 농장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약속도 했다.
그 결과 은덕군에서는 50여 명의 여성들이 농장원으로 자원했다. 이들에게는 우선 한 달 분량의 통 옥수수가 분배됐다. 2월 초가 되자, 여성들은 나머지 7개월 분량을 줄 것을 요구했다. 군당에서는 군량미를 내느라 식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2개월 뒤에 나머지를 분배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여성들은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며 결근하기 시작했다. 2월 12일에는 작업반장 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결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군당에서는 보고를 받고 작업반장을 호되게 질책했다. 한 일꾼은 “보고를 받을 때 군당 일꾼들이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약속을 못 지킨 건 자기네들이니까 사실 뭐라 할 말은 없다. (농촌 자원) 여자들이야 한 달 식량 받고 한 달 일했으니 받은 만큼 일한 거 아니냐. 그나저나 곧 봄철 농사가 시작될 텐데 사람이 없어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 식량소식
배천군 작년 옥수수 작황 예상보다 낮아
황해남도 배천군의 작년 옥수수 농사 소출이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보당 1.5톤을 수확한 농장들도 있지만 대체로 1톤 이하인 곳이 많았다. 배천군의 한 농장일꾼은 “(정보당) 한 톤 반에서 2톤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전년도보다는 잘 나왔지만 1톤도 못 나온 농장이 많아서 군량미가 아니라도 분배할 게 별로 없다”고 했다. 전연지대라 농작물은 군대에서 일단 접수해갔다. 그나마 농장관리일꾼들이 군당과 도당에 여러 차례 신소해, 올해 6월초까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김근모(48세)씨는 “말이 6월초까지 분배지, 실제로는 4월까지 분량밖에 안 된다. 노력공수도 따지고, 군대고기 지원하고 뭐 내라는 것도 많으니까 이것저것 빼면 겨우 그 정도 나온다”고 했다.
■ 경제활동
단천 피복공장 폐업
함경남도 단천시 피복 공장은 생산 활동이 저조해 작년에 결국 문을 닫았다. 이 공장 노동자는 약 400여명으로, 이 중 약 90% 이상이 여성들이다. 공장에 출근하면서 집안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다보니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주부들이 많다. 일부 여성들은 공장 기계를 집에 가져가서 물건을 생산해 공장에 제출하기도 한다. 명절 때 2일 또는 3일 치 식량을 공급받는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여성들이 스스로 벌어들여야 한다. 자연히 출근율이 떨어지고 생산량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성천군 령대탄광, 평양화력발전소 공급 차질
평안남도 성천군 신성천 로동자구에 위치한 령대탄광은 생산량 일부를 평양화력발전소에 공급해왔으나 최근 생산량 저조로 차질을 빚고 있다. 월 2만 7천 여 톤까지 생산량이 떨어졌다. 원래 이곳은 월 10만 톤 이상, 연간 100만 톤 이상 생산되는 곳이다. 탄광 일꾼들은 감소 원인으로 설비 노후화와 전기 부족, 그리고 수송 문제 등을 지적했다. 게다가 노동력도 부족하다. 이 공장에 소속된 노동자수는 약 6천여 명에 이르지만 실제 출근자가 감소하고 있어 노동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탄광 노동자인 최혁(40대)씨는 “배급을 제때에 주지도 않고, 영양제도 안 준다. 그러니 로동자들 출근률이 떨어질 수밖에. 굴진공과 채탄공은 다른 데 갈 데도 없고 완전 거지꼴”이라고 말했다. 조학민(30대)씨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먹을 것이 없어 헤매고 다니니 누가 굶으면서 탄 캐나. 그러면 머저리지. 로동자들이 안 나가니 자연히 탄도 잘 안 나오고 다른 공장에도 못 준다”며 평양화력발전소에도 공급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수동구 덕사 탄광, 생산량 낮아 함흥 공장 타격
함경남도 수동구 덕사탄광의 생산량이 저조해 탄을 공급받던 지방 공장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이곳은 그동안 지방 공장에 탄을 공급하는 중소탄광으로 월 1,000톤 이상의 무연탄을 생산해왔다. 여기서 생산된 무연탄은 주로 저열탄으로, 함흥시 옷 공장, 장 공장, 피복 공장, 신발 공장 등에 공급된다. 그런데 최근 생산량이 떨어지면서 제때 탄을 보장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상급 단위에서는 “채탄 임무를 무조건 완성하라”고 독촉하지만, 노동자들은 “더는 일을 못 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먹을 것을 제때 주면 일하지 말라고 해도 일한다. 먹을 것을 먼저 달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정영일(50대)씨는 “ ‘탄광이고 뭐고 다 없어져라, 어딜 가도 여기보다 못 하겠느냐’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했다. 한광수(40대)씨는 “자기들은 잘 먹고 우리만 고생시킨다. 짐승도 잡아먹으려면 살찌워서 잡는 법인데 로동자들한테 일시키면서 먹여주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한씨는 “우리더러 날마다 강성대국이요, 군사대국이요, 정치대국이요 하면서 이제는 경제대국까지 내세우는데, 로동자들의 헐벗은 사정에는 관심도 없다. 우리도 먹고 건강해야 맥이 나서 일할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 정치생활
평원군 여성들, 못된 교도관 신소
지난 2월 3일, 평안남도 평원군에 사는 30대 여성 2명은 청진 려행자 집결소 계호원(교도관)들의 불법 행위를 평안남도 도당에 신소했다. 이 여성들은 지난 1월 22일경, 함경북도 청진으로 장사를 떠났다가 단속을 당해 려행자 집결소에 들어갔다. 그들은 “집결소 계호원들한테 장사 돈 42만원 전부를 뺏기고 노리개로 이용됐다”고 증언했다. 평안남도 도당에서는 함경북도 도당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함경북도 도당 조직부 책임지도원이 직접 집결소 계호원들의 행위를 료해했다. 신소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자 계호원 2명은 해임 처벌됐다. 현금 42만원은 2월 16일 전으로 여성들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집결소 단체 처벌을 주기 위해 현금 42만원은 집결소 전체 일꾼들의 월급을 몇 개월간 삭감하고 마련하도록 했다.
평안북도, 골목장사 대대적 검열
평안북도 전역에서는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국방위원회와 중앙당 검열이 있었다. 이 때 “비사회주의 현상인 골목장사가 심하다”며 주로 골목장사 단속이 이뤄졌다. 신의주에서 골목 장사를 하던 여성(30대)은 “장마당 밖에 앉아 팔던 사람들은 폭풍 만난 것처럼 난리가 났다. 며칠간 한 푼도 못 벌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채하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50대)는 골목장사 단속하는 걸 보고 한 마디로 “살벌하다”고 말했다. “지나가다보니 사람들 몰아대는 게 무서웠다. 시장에는 나 같은 나이 든 여자나 늙은이들밖에 없다. 내 옆에 있는 할머니는 옥수수가루를 뭉갠 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장사가 안 되니까 먹는 게 그렇다. 시장에 있어도 장사가 안 되는데, 골목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며칠 못 벌었으니 진짜 뭘 먹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러워했다.
함흥-청진 길목, 마약 단속 강화
지난 2월 1일, 함경남도 함흥에서는 마약단속 검열 결과를 결산했다. 마약 생산자 및 판매자에게는 사형, 사용자에게는 교화형이 각각 선고됐다. 2월부터는 함흥에서 청진을 오가는 길목 단속이 강화됐다. 얼음 검열원들이 각 초소에 배치돼 려행증이 있는 사람도 몸수색을 한다. 각종 문서를 구비한 차량이라도 일명 ‘숙제’라는 것이 있어 이런저런 구실로 잘 통과시키지 않는다. 한 초소를 지날 때마다 대개 3-5만원 상당을 바쳐야 겨우 통과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마약 단속을 빌미로 “너무 뜯어간다”며 반발하는 주민들이 많다. 대개 큰 장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마약을 취급하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아 통과세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면 검열 일꾼들은 길목 단속이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한 일꾼은 “척 보면 누가 (얼음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안다. (내가) 찍으면 열의 여덟은 얼음이 나온다. 그러니 몸수색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일꾼도 점점 얼음 취급자가 많아져서 단속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 사회
회령시찰-노동자, 옥수수 보름분량 특별공급
이번 김위원장 방문에 따라, 회령시 노동자들은 보름분량의 통옥수수 7kg를 받았다. 2월 하순 배급이다. 김위원장이 회령시 책임비서에게 배급을 제대로 주느냐 묻자, 책임비서는 “이번 달에 쌀과 옥수수, 변성국수, 밀가루 등을 공급했다”고 대답했다. 또 작년 농사가 잘돼 군량미도 많이 원호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에 김위원장이 만족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허위보고라고 일축했다. 회령시가 배급한 것은 변질된 옥수수였다.
회령시찰- 김위원장, 김기송 제1중학교 시찰 흡족
김기송회령제1중학교를 둘러본 김정일 위원장은 교육시설을 둘러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학교 설비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을 보고, “전국 학교에 당장 일반화하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학교에는 김위원장의 특별 배려로 컴퓨터 50대가 지급될 예정이다. 김기송제1중학교는 주로 간부와 돈 많은 집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텔레비전, 녹화기, 컴퓨터 등은 모두 학생들이 갹출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꾸리기 명목으로 3개월마다 한 번씩 일인당 3만원을 내고 있다. 공부를 잘하지만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일반 노동자 자녀들은 세외부담이 너무 커서 얼마 다니지 못하고 자퇴하는 경우도 많다. 한 주민은 “이번에 ‘전국에 이 학교처럼 일반화하라’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이런 실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한편 김위원장은 오산덕 김정숙 동상과 기초식품공장, 대성담배공장 등 회령시에서 새로 건설한 단위를 돌아보고 만족해하면서 돌아갔다.
회령시찰-호위국 1선도로 집중 경비
호위국 군인들은 주민들을 쓸어 넣다시피 1-2층에 몰아넣은 뒤 곧장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1선 도로에는 호위국 군인들이 5미터 간격을 두고 경계를 섰다. 아파트는 옥상까지 경비를 세웠다. 이번 현지 시찰을 위해 호위사령부에서는 3개 대대에서 1,050여명의 병력을 차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위사령부에서도 60여 명의 보위부원들이 배치됐다. 이들에게는 각자 손전화기가 지급됐다. 지방 보위부에서는 외부 도로를 담당했다. 호위국과 보위부 성원들은 현지지도가 끝나자마자 철수했다.
회령시찰-아파트 주민들 1-2층 집단 감금
지난 2월 24일 새벽 3시, 곤한 잠에 빠져있던 회령시 아파트 3층부터 6층까지 살고 있는 주민들은 난데없이 군인들에게 끌려나와 곧장 1-2층으로 쫓기다시피 내려갔다. 호위부 소속 군인들이 아파트 현관을 가로막아서고, 3층 이상 복도를 점거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들 아파트가 1선도로(김위원장 전용 도로)에 위치해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섰던 주민들도 봉변을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군인들에게 붙잡혀 길가에 있는 아무 집에 들어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굼뜨거나 “사람을 왜 잡아 가두냐?”고 항의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심한 몰매를 맞아야 했다. 군인들에게 폭행당해 졸도한 사람들은 창고로 옮겨졌다. 그렇게 창고에 옮겨진 사람만 스무 명에 달했다. 그 중 갓난아이를 업고 있던 여성도 여러 명 있었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무조건 잡아넣으려고 해서 여성 몇 명이 항의하다 몰매를 맞았다. 군홧발에 채여 넘어지면서 아이들이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이 때 다쳤던 아이 6명은 산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두 명은 중상을 입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 여성/어린이/교육
외국 영화 시청한 신의주 대학생 4명 퇴학
신의주에서는 2월 16일 명절을 앞두고 외국 영화를 시청하다 대학생 4명이 퇴학을 당했다. 이들은 전체 교직원과 학생들이 모인 앞에서 비판과 함께 퇴학 처분을 받았다. 요즘 각 중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에서는 수시로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다. 불법록화물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가방이나 옷가지를 들쳐보면 한국 영화나 드라마 CD가 꽤 나온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지만 소용이 없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경미(44세)씨는 “입이 닳도록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애들이 아직 어려서인지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다. 자기들끼리 계속 돌려보고 그러는 데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보는 애들이 주로 돈 있는 집 애들이라 돈을 쓰고 빠져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워주는(가르쳐주는) 선생으로서 근심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녀맹 강연회, 정전되자 우루루 빠져나가
강연회장이 장마당 북새통을 이루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달 14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녀맹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시간 가량 녹음을 들려주는 ‘녹음 강연’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천만군민의 정신력을 발양시켜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령도의 거장이시다”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더니, 점점 여기저기서 소리가 커져 나중에는 장마당을 방불케 했다. 연단에서는 증폭기 녹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깜짝 놀란 녀맹위원장이 “조용히 하라”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 순간에는 조용해졌지만 5분도 못 가 다시 말소리가 시작됐다. 참다못한 녀맹위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떠드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녀맹위원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은 여성들은 순간 입을 다물었으나,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들까지 잠재울 수는 없었다. 급기야 녀맹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순찰대원처럼 청중들 사이를 오가며 감시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장사하러 갈 시간이 촉박한데 언제 끝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정전이 됐다.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앉아있던 녀맹원들이 하나 둘 일어나 우루루 빠져나갔다. 녀맹간부들이 문을 막아서고 못나가게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워낙 많은 수가 들이미는 통에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남은 사람들은 남편이 보안원이나 보위부원인 여자들뿐이었다. 혹시라도 남편에게 피해가 갈까봐 이들은 섣불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녹음 강연이 끝나고 15분 동안 강사가 직접 강연하기 시작했지만 청중석은 썰렁했다.
“명절은 여자들이 제일 고달프고 힘든 날”
“명절은 조선 여자들이 제일 고달프고 힘든 날이다. 중국처럼 식당이나 극장 구경을 하면서 쇠는 것이 아니다. 모여서 식사나 하고 가면 좋은데, 앉아서 주패놀이나 오락을 하면서 오랫동안 놀다간다. 아이들까지 제 동무들을 데리고 놀러 오니, 앉을 새도 없고 손 한번 쉴 틈이 없다. 손님들 가고 다 치우고 나면 죽을 지경이다.” 명절이 끝난 뒤 시장에서 만난 여성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강원도 원산시에 사는 장원영(30대)씨는 결혼한 지 5년이 넘었는데, 명절 때만 되면 남편 손님 뒤치다꺼리에 뼈가 녹아날 지경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못 먹고 못 살아도 명절 상을 안 차릴 수 없어, 명절 음식 마련부터가 큰일이라고 한다. 남편이 가장 원수처럼 미워질 때도 이때라고 한다. 집에 먹을 게 없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손님들을 끌고 와서 계속 술을 내오라고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도끼눈을 뜨게 된다고 했다. 최옥화(30대)씨도 “술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죄라 그냥 꾹 참고 손님들 뒷바라지 다 하긴 하지만, 내 속은 문드러진다”고 했다. 최씨는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탈 난 것처럼 속이 미식거리는 증상이 있다고 했다. 명절이 끝나면 이상하게 그 증상도 사라진다고 했다. 함께 장을 보던 정정희(20대)씨도 “어머니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선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여자들이 많다”고 한 마디 거들었다.
■ 사건사고
적재함 차량에 타고 가다 떨어져 사망
지난 2월 15일, 함흥에서 청진으로 옥수수를 싣고 가던 차량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운전했던 김재학(50대)씨에 따르면 함흥 아주머니 두 명을 적재함 차량에 태웠다고 한다. 차량 안에는 같은 기업소에 다니는 동료들이 타고 있고, 뒤 칸에는 옥수수 마대를 높이 쌓아놔서 탈 자리가 없어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옥수수 마대 위에라도 좋으니 태워달라며 하도 사정하기에 마지못해 허락했다고 한다. 김씨는 “눈은 안 내렸지만 날이 추워 걱정이 됐다. 하도 이악해 보이는 여자들이라 별 일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쌩한 게 생각보다 더 추웠다. 걱정되는 마음에 ‘일 없냐’고 물었는데 어째 대답이 없었다. 올라가봤더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키 작은 아주마이 어디 갔냐고 흔들었더니 이 여자가 얼어 죽어있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됐냐는 물음에 나중에 보안원들이 멀리서 발견했는데, 아마 떨어져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떨어져 죽은 여자는 딸이 함흥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한 푼이라도 아끼자고 우리 기업소 차를 얻어 탔다. 키도 작고 얼굴도 새까매가지고 삐쩍 말랐다. 여자가 얼마나 고생하며 사는지 보기에도 불쌍해서 태워줬던 건데 괜한 짓 했던 것 같다. 내가 모른 척 했으면 목숨은 건졌을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 논평
가두여성 끌어들인다고 농촌인력 해결되나?
작년 춘궁기는 농민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그때는 오직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을 때다. 오랜 굶주림 속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죽은 농민들도 많았다.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농장은 지난 해 4월부터 6월까지 죽어간 농민의 수가 32명이라고 했다. 같은 기간, 평안남도 남포시 태성농장은 35명, 황주군 흑교농장 28명, 그리고 함경남도 단천 복평농장은 31명이었다.
한 개 농장 당 총 농장원 수가 400-500명임을 감안하면 사망율은 거의 7%에 육박한다. 작년 해주시 사망자 수가 1.4%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이렇듯 황해도 지역을 비롯해 여러 농장원들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전반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북한 당국은 올해 초 각 지역에 농촌 진출 자원자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가장 손쉬운 대상은 바로 가두여성(주부)이었다. 시당간부들은 온갖 수사를 동원해 농촌 진출이 얼마나 강성대국에 이바지하는 일인지 열변을 토했다. 여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국은 당근을 내밀었다. 적게는 5개월 분량, 많게는 8개월 분량의 식량을 미리 배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자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살림이 너무 궁핍해 한 끼 해결이 버거운 집안의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그만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곳이 생겼다. 함경북도 은덕군에서는 8개월 분배를 주겠다고 했는데 1개월만 주었다. 나머지는 2개월 뒤에 주겠다고 했다. 여성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당장 농장에 나갈 이유가 없다며 결근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농촌 진출자 모집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현재의 식량 분배 구조 속에서는 농촌 인력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군량미 우선 확보 방침’때문에 농사지은 당사자는 분배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난다. 농민들이 김일성 수령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그 때는 농민들부터 분배해준 뒤 군대가 가져갔는데, 지금은 정반대라는 거다. 군량미부터 가져가고 나면 아무리 풍작이라 해도 농민들이 가져갈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식량 분배량이 적으면 한창 농사지어야 할 춘궁기에 결근자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그때쯤 되면 식량이 떨어져서, 그 시간에 산으로 들로 나가 풀뿌리라도 캐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두여성을 농촌인력으로 유인하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유인책이든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은덕군 농장 집단 결근 사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식량으로 유인했는데 식량을 주지 않으니 당장 결근자가 속출하고 만다. 이를 사상성 부족으로 여성들을 비판하면 될 일인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어떠해야 할 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벌써 농사철이 시작됐다. 미봉책이라도 써야 한다면, 여성들에게 약속한 식량을 반드시 분배해주기 바란다. 식량을 제대로 분배하려면 먼저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방법은 자체 증산과 자체 수입 그리고 외부 지원이 될 것이다. 첫째, 자체증산을 위해 생산자 농민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우선 공급해야 한다. 비료 등 농자재도 충분히 공급되도록 국가적 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식량 수입을 늘려야 한다. 외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주민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결단만 있다면 식량 수입을 우선할 수 있다. 셋째, 외부 지원이다. 그나마 지원되던 WFP를 통한 미국 식량지원도 모니터링 문제로 중단된 상태다. 지원 식량은 지원 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지원 단체의 요구를 가능한 한 수용해 지원 식량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평양 간부들은 좀 덜 먹더라도, 외부 지원 식량은 무조건 농민들에게 먼저 분배하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어찌됐든 농민들의 식량을 확보해주는 것만이 농사 인력을 확보하는 확실한 길이다.
■ 집중탐구
[268호]평양통신-일급기업소 간부 임명 받던 날
[평양통신]- 일급기업소 간부 임명 받던 날
입춘이 지난 평양의 날씨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쌀쌀한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오늘 아침, 일찍이 어머님이 차려놓은 아침 식사를 대충 요기한 뒤 집을 떠나 창광산려관 뒷길을 따라 중앙당 이접수에 9시까지 도착하라는 당의 지시를 받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원래 우리 집에서 본평양역까지 가는 전차를 타야했지만, 이 날은 걸어서 갔다. 정전됐다가 당의 부름을 받고도 지각하면 만회할 수 없는 실수가 될까봐 시간 맞추기에 제일 정확한 걸음을 택했다. 당중앙 이접수에 도착했을 때 벌써 여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이접수에서 접수를 하고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행정간부과에 도착했다. 담당비서 동지가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서동지의 안내에 따라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3대장군 초상화 앞에서 담당비서로부터 간부임명을 받았다.
내가 제일 먼저 받았다. 이렇게 차례대로 임명을 받은 다음 담당비서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 축하하고, 격려했다. 이 임명식은 장군님 탄생일을 계기로 진행하는 간부 임명 사업의 일부였다. 우리 임명식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 임명 간부들은 행정간부과에 가서 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문을 썼다.
“맹세문
우리 모두의 자애로운 어버이시며, 위대한 천출장군이신 김정일 원수님께 삼가 올립니다. 저는 일찍이 강계에 한 평범한 군인 가정에서 태어나 강계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최전방 민경초소에서 6년 복무생활을 하면서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하고, 대학추천까지 받아 평양한덕수경공업대학에 입학하는 크나큰 배려를 받은 김창호입니다. 그 후 아버지는 무력부 후방총국에 소환하는 바람에 우리 모두 평양에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에 걸쳐 경공업과학연구소에 종사하다가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평양방직기계공장 기사장으로 임명되어 지금까지 일했습니다. 그 영광과 신임, 배려에 아직도 보답하지 못한 저에게 또 다시 일급기업소 지배인으로 임명되었으니 이 대해같은 은혜와 이 신임을 어떻게 보답해야하는 지 걱정만 오릅니다. 제가 맹세합니다.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여는 구상에 한 몸 바치겠습니다. 이 몸이 가루되더라도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완성하기 전에 죽을 권리도 없다는 결심을 가지고 신발끈을 단단히 매고 총돌진하겠습니다. 장군님, 믿으십시오. 제가 맡은 이 공장은 더는 장군님께 심려를 끼치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합니다. 주체 98년 2월 12일
맹세문을 바치고 행정간부부에서 이접수에 나오니 공장당 선전비서가 승용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공장에 갔다. 공장당 비서를 비롯해 공장의 여러 간부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며칠 지나면 최대 명절(2.16)을 맞이하겠는데, 공장에 부식물을 좀 준비한 게 있으니 집에서 잘 쉬고 명절 지난 다음에 공장에 나오십시오”라고 했다. 나와 보니 백두산 들쭉술 5병에 돼지고기 5kg, 생닭 2마리, 사과 한 지함, 감자 10kg, 콩기름 10리터, 사탕과자 등등 많은 부식물이 준비돼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나를 제일 반기는 건 내 처였다. 하긴 처도 나보다는 내가 들고 온 부식물을 반가워한 거였다. 반면 우리 어머니는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걱정부터 늘어놓으셨다.
어머니께서는 “얘야, 어제부터 내 오른쪽 눈꺼풀이 자꾸 뛰는데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있겠구나 싶다. 네가 일급기업소 지배인이 되려고 그랬나보다.”라며 얼굴을 찌푸리셨다.
“왜 자꾸 미신 같은 소리만 하십니까? 좋지 않은 일은 또 무엇입니까?”
“일급기업소 지배인이 그렇게도 좋으냐? 지금까지 지배인들이 잘 되는 걸 보지 못했어. 무보수로동 아니면 당 처벌 받는 것을 밥 먹듯 하는데, 그것도 약과다. 당 철직, 지방 추방이 대부분 아니냐. 내 그게 걱정이다.”
뒤따라 들어와 앉은 여동생도 “어머니 말이 옳아요. 공장 지배인은 인질이 아닙니까? 희생양이죠. 매 맞는 대로 때리기 좋게 매 맞는 자리 아닌가요”라고 한 마디 했다. “너도 허튼 소리 하는 구나”
어머니가 또 말씀하셨다.
“허튼 소리는 왜 허튼 소리냐. 내 걱정이 지금 태산이다. 창옥이(가명)가 선보러 온 남자 있지 않니. 나는 반대 안 한다. 빨리 시집갈 준비해서 보내야지. 괜히 너한테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기면 온 가족을 지방에 다 추방하겠는데 동생까지 따라가야 되겠냐. 그런 고생 면하자면 지금이라도 빨리 시집가게 손을 써야지”
“창호야, 지금까지 경공업지배인들이 얼마나 해임, 철직당하고, 지방에 추방됐는지 알고 있느냐. 그들이 충실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상급당이 무리하게 요구하고, 공장 살리기 위해서 부득불 좀 나섰다가 희생양이 되지 않았느냐. 이게 다 행정일꾼들의 운명이 아니냐”고 한 말씀 덧붙였다.
줄곧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아버지도 드디어 입을 여셨다.
“어머니 말 잘 새겨들어라. 어떤 경우라도 나서지 말아라. 무보수로동까지는 감수할 수 있다. 그 이상은 안 된다.”
“아버지, 저는 청맹과니가 아닙니다. 저도 칼날 위에 춤을 출 줄 압니다. 내가 인민경제대학을 나와 배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실과 방침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은 우리 젊은 간부 세대들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살아남자면 책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학교에서는 못 배우지만, 현실 속에서 체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끼어들었다.
“창호야, 아직도 마음이 살았구나. 다른 지배인들이 너보다 못해서 그래? 철직, 추방당하는 것이 내가 수가 아무리 높아도 당할 때는 용뺄 재간이 없어. 그래서 내가 불안한 거야.”
창옥이도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씀하십시오. 오빠도 앞이 캄캄하다고 보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책임에서 빠질 궁리를 하십시오. 투쟁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연구하고 또 연구하십시오. 보신주의하라는 것이 아니고, 가족을 많이 생각하라요”라고 말했다.
“아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요들. 나를 인질로 만들 때까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들 걱정 마십시오. 오늘 부식물 많이 가져왔는데, 그거 차려놓고 민족 최대의 명절을 즐깁시다. 자자 그만하자요”
다른 집도 행정 간부 되면 식구들이 안 반가워한다더니 우리 집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식구들 걱정한 걸 보니 나도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