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회령 영수리농장 꽃제비 청년 분조, 일 잘해 표창
회령시 영수리농장의 꽃제비들로 구성된 청년 분조가 ‘2중 3대혁명 붉은 기 표창단위’로 선출됐다. ‘일을 황소같이 잘 한’ 우수한 분조로 뽑혀, 지난 달 23일, 평양에서 개최된 전국 3대혁명 단위 표창대회에 참석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런데 다른 지역 참가자들과 비교해 함경북도 참가자들은 열악한 대우를 받았다. 이들의 숙소는 평양에서 손님이 잘 찾지 않는 낡은 여관이었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담요 한 장 없는 시설이라, 참가자들은 냉 바닥에서 옷 입은 채로 덜덜 떨며 자야했다. 그 결과 대부분 감기에 걸렸다. 함경북도 책임자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해당 지역 참가자들 전원 데리고 돌아갔다. 체류 일정은 열흘이었지만, 청년분조원들 대부분 감기몸살이 심해 일정을 계속할 수가 없어 닷새 만에 돌아가게 됐다. 다른 도 참가자들은 난방도 되고 담요도 있는 호텔에 배정돼 함경북도 참가자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았다.
회령시, 꽃제비 70명 농장에 배치
회령시는 2007년도에 청진시 려행자집결소에 구류됐던 꽃제비 70여 명을 농장 인력으로 보냈다. 일단 영수리농장과 궁심리농장에 인원을 각각 분리 배치했다. 시당에서는 이들을 ‘농장 청년독립분조’로 이름 했다. 청년독립분조는 합숙생활이 기본이고, 식사는 각 일꾼들이 갹출해서 보장한다. 매일 작업과제가 있어 이를 수행 못하면 완수할 때까지 밥을 주지 않는다. 간혹 밤 10시가 넘어도 과제를 다 할 때까지 숙소에 안 보낼 때도 있다. 노력일수를 따져 개인 도급제를 실시한다.
이들 대다수는 2007년 봄 춘궁기에 부모, 형제를 잃은 고아들로 도시출신이다. 한 농장관리일꾼은 “농사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도시 로동자들의 자식이라 처음에는 일이 서툴렀지만, 이제는 제법 잘 한다”고 말했다. 다른 농장일꾼은 “다른 농장들도 이런 아이들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2007년도와 2008년도에 집결소에 붙잡혔던 아이들 중에 열여섯 살이 넘은 애들을 농장에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식량소식
남포 항구동, 대일 무역 중단 뒤 식량사정 나빠져
평안남도 남포시는 그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식량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남포항에 도착하는 외부 지원 식량이 알게 모르게 시장으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대일 무역 등으로 경제 사정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벌써 옛날 일이라고 말한다. 항구동에는 유리공장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경란(40대)씨는 “우리 항구동은 식량이 다른 곳보다 좀 낫다고 하나, 일본과의 무역이 중단되면서부터 여느 지방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됐다. 풍족하지는 못하고 간신히 살아가는 형편”이라고 했다. 하루에 유리제품을 팔면 얼마나 남느냐는 물음에, “잘 되는 날에는 국수 2kg 정도이고, 이것을 국수로 먹는 게 아니라 국수 죽을 끓여서 온 식솔이 앉아 먹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황정숙(40대)씨는 “그건 (장사가) 잘 되는 세대나 그렇게 먹는다. 나머지는 먹지도 못하고 굶는 세대도 많다”고 했다. 황씨는 “길에 걸어 다니는 노인들 봐보시라. 걸음도 잘 걷지 못하지 않네. 젊은 사람들도 힘 있게 걷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래 그중 생활이 좋다는 우리 지방도 이런 형편”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만난 리금순(50대)씨도 식량이 너무 어렵다는 말부터 꺼내놓았다. 리씨는 “먹을 걱정 때문에 입는 것은 더 말할 형편이 못 된다. 고저 먹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굶주림 속에서 각기 생활 차이가 크게 나는 게 없고, 날마다 굶주림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신포시 주민 대다수 풀뿌리, 나물죽 연명
함경남도 신포시 인구는 약 6만 명 정도이다. 주로 어로공 가족들이 많다. 장공장, 철재공장 등 일반 공장, 기업소들이 있지만 배급이 나오는 곳은 거의 없다. 바닷가라 고기잡이를 하고 싶어도, 특급기업소인 신포수산사업소 외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다. 바로 앞에 있는 마양도에 해군 잠수함기지가 있고, 봉대산 쪽에는 잠수함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해안지역에서는 전마선이라도 타고 나가 고기잡이를 할텐데, 이 지역 주민들은 그조차 제약을 받아 생계가 매우 곤란하다. 한 간부는 “현재 신포시 주민의 90%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다 주변을 다니며 곤포, 미역 같은 것을 주워 팔아 옥수수를 겨우 1-2kg 정도씩 사먹는 집들이 많다. 그것도 너도나도 그렇게 하다 보니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집들은 추운 겨울에도 산이나 들에 나가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는 “작년 춘궁기 이후 올해 초까지 40세대가 호적에서 완전히 없어졌다. 굶어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고 식량난의 심각성을 전했다.
홍원군 주민 상당수 옥수수죽 연명
함경남도 홍원군은 함경남도에서 제일 잘 사는 지역으로 이름난 곳이다. 농사도 잘 되고, 양식업을 비롯한 수산업도 잘 돼 외부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오랜 병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그런 홍원군조차 심화되는 식량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홍원군에서 생산한 식량이 자체 수요량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수산업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겨우 옥수수가루를 구입해 죽을 끓여먹는 수준이다. 주민들은 “한 끼라도 더 먹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아 한숨소리가 이 집, 저 집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옛날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 수산사업소 일꾼은 “우리 기업소만 해도 작년에 오랫동안 굶주린 탓에 얼굴이 붓고, 일어나지 못해 집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단천 광천지구, “빈 가마에 물만 끓이는 집이 열의 아홉”
함경남도 단천시 광천지구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너도나도 “빈 가마에 물만 끓이는 집이 열의 아홉”이라고 말한다. 작년 2월부터 식량이 없어 굶기 시작한 집들이 지금까지도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1년 넘게 굶주리다보니 기력이 쇠해져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주민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 중에 영양실조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광천 지구에는 목재가공품공장, 식료품공장, 종이공장, 장공장, 화학공장, 영예군인공장, 독공장, 피복공장 등이 있는데, 공장들마다 생활 형편이 비슷하다. 제대로 생산이 돌아가는 공장이 없다. 배급은 당연히 꿈도 못 꾼다. 먹을 것, 입을 것, 땔 것이 부족해 지난 해 겨울 혹한을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보냈다. 돈을 못 벌어오는 세대주들을 대신해 집집마다 여성들이 끼니를 마련하고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집집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얼굴에는 버짐 꽃이 피고 그늘져 있을 뿐이다.
장공장에 다니는 정세옥(40대)씨는 “한숨만 난다. 우리 집 세대주는 공장에도 못 나가고 있다. 맥이 없어 좀 걸으면 어지럽다는데. 병에 걸려도 손 쓸 수가 없다. 약도 없지만 뭘 먹어야 약발도 들고 할 텐데 먹는 게 없으니 기력이 안살아 난다”고 걱정했다. 최동석(40대)씨는 “(광천지대는) 단천시 중에서도 기아와 병에 시달리고 있는 세대가 많다. 애들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수가 60% 정도”라고 했다.
단천시, 요즘 끼니는 ‘죽’
함경남도 단천시 주민들의 주식은 ‘죽’이다. 잘 사는 집들에서는 옥수수밥에 가끔 입쌀밥을 먹지만, 대다수 집에서는 ‘죽’으로 연명한 지 오래됐다. 금봉동에는 어렵게 사는 주민들이 많다. 하루에 밥 한 끼 구경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다. 멀건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하루 종일 장마당에 나가 다음 끼니를 벌어들인다. 잡화장사를 하는 홍경심(40대)씨는 “집식구들은 장마당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목 빼고 기다린다. 국수 한 덩이라도 사오면 그 날은 안 굶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들 안심한다. 국수를 후루룩 먹으면 아까우니까 죽을 끓여 먹는다. 못 먹고 굶주리는 식구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 다음 날 또 어떻게 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돼 먹는 근심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많다”고 했다. 장마당에 내다팔 것도 없는 사람들은 들과 산으로 나가 나물을 캔다. 겨울이다 보니 주로 소나무껍질을 벗겨온다. 다행히 봄이 오고 있어, 나물 구경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복천동 작은 공장, 기업소에 다니는 주민들은 배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필규(50대)씨는 “하루 생활이 백년 맞잡이”라고 하면서, “하루라도 배불리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호철, 김경환, 김성만, 리상학 등의 세대에서는 굶주려 고생하다 죽은 가족들이 집집마다 최소 1-2명씩 있다. 이들 가족들은 작년 춘궁기부터 매일 죽으로 연명하다가 영양실조에 다른 질병이 겹쳐 고생이 심했다. 그들 중에는 올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도 생겼다. 복천동에서는 작년 춘궁기부터 올해 초까지 이런 식으로 굶어죽은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다. 오랜 영양실조로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세대도 많다.
덕흥동에서도 생활이 곤란해 죽으로 연명하는 세대가 많다. 김철수, 김강옥, 김광근 등의 세대는 한두 끼 굶는 것이 다반사다. 김철수의 아내 한영애(50대)씨는 “매일 울음으로 세월을 보낼 때가 많다. 가마에 쌀을 끓여야겠으나 (옥수수)쌀이 없다. 나물이나 풀뿌리에 옥수수 가루를 약간 넣어 끓여먹는다”고 했다. 김강옥의 딸 명희(20대)씨도 “아버지, 어머니, 동생 모두 제대로 못 먹어 얼굴은 붓고 영양실조로 병들어 허덕이고 있다. 먹을 것도 없다나니 입을 것도 제대로 못 입는다. 땔 것도 없어 풀잎사귀들을 주워 때는 정도다. 날이 추우면 밖에 나갈 처지도 못 돼 추운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어려운 사정을 전했다. 작년부터 배급 한 번 타본 일이 없다는 최의철(40대)씨는 “특별히 곤란한 집은 굶는 때가 먹는 날보다 많다. 좀 (가정 형편이) 낫다는 집들도 하루 두 끼나 세 끼 다 죽을 먹으니, 우리 고장이 특별히 못 사는 건지, 다른 데도 다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고장만 못 사는 거냐?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경제활동
옥수수 값, 그나마 원산이 싸
강원도 원산에서는 옥수수 값이 비교적 싸다. 농토가 척박한 강원도에서 그나마 옥수수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함흥, 김책, 신포는 물론 멀리 청진 등지에서까지 많이 사러 온다. 옥수수를 장마당에 나가 파는 집들도 있지만, 좀 많이 파는 사람들은 주로 달리기 장사꾼들을 집에 부른다. 주민들은 장마당 매대에서든 집에서든 이렇게 옥수수를 판돈으로 다른 생필품을 산다. 일본과 무역이 중단되기 전만 해도 원산시는 일본 중고품 장사의 도매지 역할을 했었다. 무역이 중단된 후부터는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심지어 어떤 주민들은 “(원산이) 조선 땅에서 제일 못 사는 지역이 됐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집에서 옥수수를 판다는 한은성(40대)씨는 “작년도 풍년이라고 소문이 났던데 그게 정말이냐. 풍년이면 먹는 게 더 좋아져야 할 텐데, 벌써부터 식량사정이 어렵다. 아직 봄도 안됐는데. 작년처럼 똑같이 굶어죽는 사람이 생길까 봐 걱정이다”고 했다. 함흥에서 옥수수를 사러 왔다는 박혜란(40대)씨는 “여기만 (식량이) 없는 게 아니다. 전국적으로 다 그런 것 같다. 벌써 식량 떨어진 집들이 많다. 우리 집도 2년 전만 해도 가끔 입쌀밥도 해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게 없다. 그냥 하루 한 끼니라도 안 굶고 보내는 게 일”이라고 했다. 박씨는 “옥수수 값이 그나마 눅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값이 눅은 것은 지금뿐일 거다. 아마 여기도 좀 있으면 식량이 없다고 값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순천 장마당, 타일 제품 많이 나와
평안남도 순천 장마당에는 다른 시장과 달리 유독 타일 제품이 많이 보인다. 보통 시장에서는 타일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순천에는 타일공장이 있어 시장에서도 물품을 구하기 쉬운 편이다. 그 외에는 자체 생산품이 적어 황해북도, 함경남도 등 인접 지역에서 들어오는 물품들로 채워진다. 여느 장마당과 마찬가지로, 순천에서도 주로 식량과 식료품, 그리고 기타 잡화상품들이 많이 팔린다. 시장에서 고무제품 장사를 하는 권순경(50대)씨는 “우리 시는 각 도와 린접돼 있어 (물건을) 가져오고 가는 것이 유리하나, 어떻게 이 많은 백성들이 겨우 몇 시간 열리는 장마당만 믿고 살겠는가? 장마당도 활성화시키면서 국가에서 공급해줄 것은 공급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해 작년부터 계속된 장마당 단속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현실(40대)씨도 “(타일을) 장마당에 내놔도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다. 나같이 공장에서 물건을 내오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집을 고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루 옥수수 사는 벌이도 안 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같은 백성들이 먹고 살게끔 나라에서 도와주면 좋겠다. 지금은 도와주는 건 한 개도 없고 그저 하지 말라는 소리만 한다”고 말하며,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 정치생활
만포시, 밀매자 공개재판
자강도 만포시에서는 밀매자들에 대한 공개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28일에는 공장 기계 설비와 부품을 중국에 팔아넘긴 노동자 5명에 대한 공개재판이 있었다. 피의자들은 교화형 7-9년형을 선고받고, 그 가족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 추방됐다. 이 날은 도당 간부들까지 참석해 주민들은 “무슨 큰 것이나 잡은 것처럼 난리를 피운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달 23일에는 군수품 공장 비사검열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다. 국경연선경비들과 손을 잡고, 군수공장에서 생산하고 남은 동을 전문적으로 중국에 밀매한 혐의다. 피의자는 교화형을 받았고, 그 가족들은 역시 먼 산골지역으로 추방됐다. 한편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도 지난 달 21일, 국가 희금속과 기계 설비, 부속품 등을 밀매한 5명에게 교화형을, 그리고 그 가족에게는 산골 추방령을 내렸다.
청진 수남구역 사회범 12명 공개재판
함경북도 청진시는 지난 달 28일 오후 1시쯤 수남 구역에서 사회범들에 대한 공개재판을 열었다. 대상은 남의 집에 들어가 도적질한 사람 3명, 자전거 타고 가던 행인을 구타하고 물건을 빼앗은 강도 2명,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불법록화물을 판매, 유포한 사람 2명, 마약장물을 취급한 자매 2명, 중국에 도강했다가 붙잡혀 나온 여성 3명 등 총 12명이었다. 시장 문을 열기 한 시간 전에 주민들을 불러 모아 공개재판을 실시했다. 이 날 수남구역 보안서장이 나와 이들의 죄행을 밝히고, 범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 내용을 선언했다. 대부분 노동교화형이 확정됐다.
개풍군 인삼농장, 농민들까지 검열 대상
지난달부터 개성시 개풍군 인삼농장들이 중앙 검찰소의 검열을 받기 시작했다. 검열 대상은 당일꾼, 행정일꾼들부터 농민들까지 사실상 농장의 거의 모든 대상이다. 지난 2007년에도 중앙당 검열이 들어가, 당 일꾼과 행정 관리일꾼들이 대거 해임, 철직된 바 있다. 예년에도 농장관리위원회 일꾼들이 빼돌리는 인삼이 한 해에 보통 30-35kg 이상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인삼은 1kg에 20만원(북한 돈)이 넘는 고가의 작물이다. 수출품이기 때문에 주로 중앙당 산하 무역회사들이 취급한다. 그러다보니 군당에서는 인삼에 함부로 손 댈 수가 없다. 가끔 화교들이 군당에 뇌물을 바치고 몇 십 kg씩 사가기도 한다. 수확기가 되면 ‘감모분(부족분)’이 발생한다. 이 때 중앙당에서는 군당 간부들을 의심한다. 이번 검열도 그 연장선에서 인삼이 불법으로 유출되지 않았는지, 위로는 간부들부터 아래로는 농장원들까지 비법 행위 여부를 철저히 조사한다.
회령 보안당국, 소 사료 방화에 긴급대책회의
지난 2월 26일, 함경북도 회령시 보안당국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농번기철을 앞두고 소 사료 화재가 부쩍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다. 보안당국은 소 사료 화재 발생 지역을 세밀히 조사해, 범죄자 소탕 작전을 실시하기로 했다. 보안서는 기동 순찰대를 늘여 소를 키우는 농가를 중심으로 야간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도록 했다. 소를 키우는 농장에서도 자체 경비를 세우도록 했다. 보안당국 회의에서는 소 사료 화재가 자꾸 발생하는 것은 “농번기철 소를 못 쓰게 하기 위해 적들이 책동하는 것”으로 보고, “범죄자들에게 돈을 주어 이 같은 범죄를 시킨 간첩을 모조리 체포, 소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진에 사는 리삼근(40대)씨는 “우리 공화국은 무슨 사건이든 났다하면 ‘계급적 원쑤의 도발’로 돌리는 게 하도 많아 이제는 믿지도 않는다. 농장에서 소를 맡아 키우는 농가들은 식량도 좀 있고 잘 사는 편이다. 누가 시기하거나 질투해서 개인적인 원한으로 저지를 수 있는 일 아닌가. 애들이 불장난하다 불 낸 걸 수도 있고. 그런 일을 간첩이 저지른 짓인 줄 누가 알겠냐?”고, 절도 사건을 간첩 사건으로 정치화하는 것에 의문을 표시했다.
한편 지난 달 2일부터 9일 사이, 회령시 오봉리 농장에서는 소 사료 더미들이 연이어 화재로 타버렸다. 범인은 총 3명으로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고달픈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100달러의 돈을 받고 일했다”고 자백했다. 강안동에서는 17일부터 22일 사이에, 소를 기르는 집 2세대에서 소 사료가 방화됐다. 27일에는 강안동 12반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강안분주소에서는 범인을 붙잡기 위해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 사회
빚 때문에 가족들 뿔뿔이 헤어져 방랑생활
강원도 원산에 사는 리길중(40대)씨는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고, 두 자녀와 병든 처를 부양해왔다. 이전에도 살림 형편이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2007년부터 식량가격이 천정부지 솟아오르면서 생계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작년에는 식량난이 극심해 궁지에 몰리다시피 했다. 리씨는 아버지를 봉양하고, 처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온갖 일을 다 했다. 처음에는 남새와 병아리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가구와 잡화 장사를 했다. 옛날 같으면 남자가 장사하러 다니면 위신이 안 선다고 꺼렸을 텐데 당장 딸린 입이 많다보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됐다. 돈을 벌 수 있다 싶은 곳은 어디든 달려갔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고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때마다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날은 온 가족이 굶어야 했다.
여름이 되자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셨다. 혼자서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어디서도 돈이 나오는 데가 없었다. 아내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아내를 살려보겠다고 약값을 대느라 꾼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날이 쌀쌀해지자 아내는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아이와 아내를 살리려고 꾸었던 빚만 남았다. 아이들은 굶주리다 못해 집을 뛰쳐나갔다. 아이들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으나 아이들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니 빚쟁이들이 달려들었다. 결국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갈 곳이 없어진 리씨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리씨는 아버지와 아내를 잃고 나니 남은 건 빚뿐이고, 졸지에 남은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이들이 어디서든 죽지 않고 살아있어, 언젠가는 꼭 다시 함께 살게 됐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하루빨리 자리를 잡겠다”고 말했다.
대기 숙박소 못하게 된 노부부 방랑생활하다 사망
강원도 원산시에 사는 최호철(70대)씨 부부는 고난의 행군 때 두 자식을 먼저 보내고 지금껏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두 사람 모두 일흔이 넘어 장사를 하지도 못하고, 농사짓기도 쉽지 않아 고통스럽게 생활해왔다. 그러다 기차 손님들이 돈이 없어 여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합실에서 날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 한 두 사람씩 집에 데려다 재웠다. 대신 약간의 사례비 정도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도중 식사’(도시락)를 숙박비로 주고 가기도 했다. 일반 여관보다 싸게 받으니 손님들이 제법 생겼다. 배불리 먹지는 못해도 하루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봄에 비사회주의라며 보안서에 불려갔다. 손자뻘 되는 보안원들이 “야, 자” 부르면서 죄인 취급하고 구박했다. 보안서에서 몹시 시달리고 나자, 더 이상 대기 숙박소를 운영하지 못했다. 또 다시 생계를 벌 수 있는 길이 막혔다. 하는 수없이 시장이나 역을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길을 택했다. 그러다 춘궁기를 넘기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작년 겨울, 빈 들판에서 이삭주이를 하다 쓰러져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웃들은 “모두 곤란하게 생활하다보니 누구 하나 돌봐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신포시 양로원 노인 건강 위험
함경남도 신포시 양화리 2반에 있는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노인들은 겨우 한 끼니에 옥수수 죽을 반 그릇 정도 먹는다.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야 하는 노인들은 그나마 그런 식사도 하지 못한다. 위생 문제도 심각하다. 대장염, 파라티푸스, 폐결핵, 감기 같은 병으로 노인들의 건강이 위험하다. 실태가 이런데도 시당과 행정일꾼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신포 양로원에는 약 40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 중에서 출근하는 사람은 11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한 달에 2만 5천 원씩 바치고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다. 다들 알아서 제 밥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치는 수입금으로 식량과 기초 생필품을 겨우 마련하는 형편이다.
■ 여성/어린이/교육
평성 중학생들, 자전거로 끼니벌이
평안남도 평성시에서는 자전거로 끼니벌이를 하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평성역에 대기하고 있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손님을 찾아가 호객행위를 한다. 짐을 대신 들어다주거나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일이다. 중학교 5-6학년 아이들은 비교적 할 만하지만, 갓 열 살을 넘긴 아이들은 애처로워 보인다. 자전거가 있는 아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자전거가 없는 아이들은 등짐을 대신 지고 가는데, 제 몸보다 두세 배 더 큰 짐을 메고 가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다. 자전거로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김순철(16세)군은 “일거리만 있으면 일이 힘든 줄도 모르고 한다. 제일 힘든 건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라고 했다. 김군은 “식량 가격은 북쪽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장사하는 사람들도 줄어든 것 같다. 하루 벌이하는 우리들도 바로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 사건사고
봉산군 식품창고장 피살
지난 달 18일, 황해북도 봉산군 상업관리소 식품 창고장이 행방불명됐다. 그 날 판매금이 약 60여 만 원이었는데, 부기장이 일찍 퇴근하는 바람에 인계하지 못했다. 마땅히 보관할 데가 없어 창고장이 들고 집에 돌아가던 도중 실종됐다. 사흘 뒤인 21일, 하천 퇴수로에 유기된 시체가 떠올라 부검해보니 사라진 창고장이었다. 보안당국은 누군가 창고장에게서 돈을 빼앗고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장연군, 옥수수 실은 화차 탈선
지난 달 24일, 황해남도 장연군 역으로 들어오던 화물기차가 600미터 앞에서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화물차량에는 옥수수가 총 11대 화차에 가득 실려 있었다. 탈선 사고로 6개의 차량이 굴러 넘어졌다. 4군단 산하 해안경비대원들이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이번 사고로 수습하지 못한 옥수수가 30여 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집중탐구
평양통신 – 대의원 되면 뭐가 좋을까?
올해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지난 3월 8일 있었다. 작년에 했어야 했는데, 공화국 사정으로 올해로 미뤄졌다. 2003년 내가 제 11기 대의원으로 선출됐을 때의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때쯤이었다. 그 날은 평소 아침보다 더 일찍 대동교를 건너 시당 청사로 향했다. 걸으면서 지난 토요일 간부학습을 마치고, 초급당 비서가 했던 말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지배인 동무, 월요일 아침 9시까지 시당 책임비서 방에 찾아가시오”
“무슨 일 있습니까?”
“가보면 알거요”
‘다짜고짜 시당 책임비서를 찾아가라니, 간부 승진은 아닐 거고, 무슨 표창을 줄 것도 아닐 거고 도대체 뭘까? 아무튼 가보자’
궁금한 마음을 안고 시당에 도착했다. 접수에는 이미 명단이 가있었다.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쉽게 접수하고 바로 책임비서 방에 들어섰다.
책임비서가 보자마자
“지배인 동무,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알아본 데 의하면 동무가 대중의 평이 대단히 좋습니다. 그렇습니까?”라고 말을 걸었다.
예상하지 못한 물음에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했다.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동무는 평양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로 추천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변변히 대답도 못했다. 그저 “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좋습니다. 간부부에 들르십시오. 거기서 무슨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요. 가서 안내를 받으라요”
간부과에 갔더니 대동문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으라는 쪽지를 받고, 황급히 가서 사진을 찍었다. 양복차림으로 갔던 게 아니라, 급히 간부부 부원들의 옷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틀 후에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대의원 사업부에서 보내온 대의원 후보로 추천받았다는 통지서를 받고 집에 돌아왔다. 집사람에게 보여주었더니 집사람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야아 우리 집도 이런 날도 있구나”
“무슨 말이냐?”
“여보, 생각해보시오. 당신이 지배인이지만 집안에 보탠 게 뭐 있소. 내가 장사 길에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안 식구들이 입에 풀칠도 못할 거야”
“그런 말 마오. 내가 지배인이니까 당신도 편안히 장사할 수 있지.”
“하긴 그건 맞는 말이오. 세대주가 아닌가. 기대는 데가 있으니까 내가 편안히 장사하지. 그런데 지금 대의원이 됐으니까 우리가 더 큰 벌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한심한 소리 하지 말라. 그저 입만 벌리면 장사밖에 모르는가.”
“아니요. 한 번 황해도에 가서 김 장사를 해볼 생각이오. 대의원증만 내밀면 무사통과인데.”
“그런 말마라. 대의원이라고 해도 2호 초소(평양시 들어오는 평양호위사령부 초소)는 통할 수 없소.”
“아이, 황해도 가는데 무슨 상관이냐. 당신이 일요일에 나랑 같이 황해도에 한 번 가보자요. 승용차는 내가 마련하겠으니. 한 탕만 하면 기름 값이여 이것저것 다 떼고 50만 원은 넉넉히 떨어지오. 대의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아니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뭘 그러나”
대의원증을 내밀면 검열을 안 하니까 이런 식으로 장사하는 대의원 세대들이 많다고 했다. 김은 다 수출용이라 공화국에서 굉장히 비싸다. 평양에 못 가져나온다. 현지에 나가서 싼값에 사와 평양에서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성한 대의원의 책무를 받은 지 하루도 안 돼 하는 말이, 장사를 잘 할 수 있어 좋다니 한심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집사람의 판단이 백번 옳았다. 충성을 다 할 일은 별로 없고, 그저 보신주의하는 게 살아남는 것이라는 습성이 어느덧 내게도 생겼다. 올해 새로 선출된 대의원들도 아마 그 집에서는 우리 집사람이 했던 얘기들을 똑같이 들었을 거다. 대의원이라는 게 뭐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