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강원도 곳곳 새 토지 개간하려다 산불 피해
5월 현재 강원도 관내 지역 곳곳에서 산불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산불에 해당 지역 기관, 기업소 노동자들이 산불 진화에 진땀 빼는 모습이다. 고산군에 사는 정필규(50대)씨는 “한 쪽 끄고 나면, 또 다른 쪽에 산불이 나서 야단이다. 소토지를 회수당한 주민들이 야산에 몰래 또 소토지를 가꾼답시고, 잡초를 태우다가 불을 낸다”고 했다. 안변군에 사는 고승덕(40대)씨도 산불이 잦은 이유를 당국의 소토지 회수에서 찾았다. 고씨에 따르면, 소토지를 뺏긴 주민들이 반발심에 자기가 가꾸던 밭에 불을 놓는 일이 많다고 한다. 고씨는 “종자 심을 때가 지나버리자, 사람들이 악이 받쳐 불을 확 질러버린다. 우리 구역에서도 산불이 났는데, 보안원들이 왔다가더니 누가 일부러 불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지만, 다들 소토지 뺏긴 사람이 한 짓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삼림감독원, 산림반 해체로 권한 높아져
올해 삼림조성사업에 따라 소토지를 회수당해 울상 짓는 주민이 많은 반면, 살림이 펴지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삼림감독원들이다. 땅을 뺏긴 주민들이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보려고, 삼림감독원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어서다. 야산을 새로 개간하려는 주민들도 삼림감독원들에게 올 가을 수확량의 절반을 주기로 했다. 주민들은 땅 빼앗아 삼림감독원들 좋은 일만 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함경북도 길주에 사는 조정석(30대)씨는 “어머니와 내가 피땀 흘려 뭐 좀 심을만한 땅으로 만들어놨더니 이번에 뺏기고 말았다. 다시 땅이라도 좀 부쳐보려고, 삼림감독원을 찾아가 밸 없는 소리도 하고 돈도 많이 갖다 바쳤다. 자랑도 못되지만 내가 사업을 좀 잘했다. 그래서 다행히 좀 부쳐 먹게 됐다. 하지만 소토지를 뺏긴 다른 사람들은 살 방법이 막연하다. 소토지 농사 소출이 줄어들면 내년에는 식량 값이 더 많이 오를 것”이라며, 앞으로도 식량고생이 심할 것이라 예견했다.
소토지 뺏긴 노인들, 생계 어려워 자살
전국적으로 기존의 산림이용반이 해체되면서 소토지 농사를 못 짓게 된 주민들 중에 자살자가 발생하고 있다. 대개 농사 외에는 달리 생계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개성에 사는 안복화(62세)씨는 몇 년간 정성들여 가꾼 소토지를 뺏긴 뒤 다시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해당 일꾼들을 찾아다니며 신소도 하고, 애걸복걸하다시피 사정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파종 시기가 다 지나가자, 일주일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하다가 그대로 죽었다. 옆에서 안씨를 지켜봤던 주민들은 안씨가 울분에 차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오랜 친구 김말례(가명, 60대)씨는 “(안씨가) 죽어가면서 하소연하던 말들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무 것도 못 먹어서 힘이 없는데도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우리(이웃)들도 따라 울곤 했다. 당은 사람이 죽어도 아무 것도 안 바꾼다. 그러니 사람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서도 노부부가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부부는 그동안 산에서 살다시피 하며 소토지를 가꿔왔으나, 이번에 회수되고 말았다. 이들은 죽기 전에 이웃들에게 “소토지를 뺏겨서 살 길이 막혔다. 인제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안서에서 이들 노부부의 죽음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지만, 길주 곳곳에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도 자살자가 발생했다. 지난 5월 6일 오후, 계량리 2반에 사는 올해 68세 리성실씨가 자신이 농사짓던 소토지의 한 소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웃들에 따르면, 리씨는 그동안 소토지 농사를 못하게 돼 살 길이 막혔다며 한탄해왔다고 한다. 이렇게 소토지를 뺏긴 노인들이 자살한 소식이 퍼지면서 당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 식량소식
철원군 부대, 하루 배급량 400g
강원도 철원군 5군단 5사단 10련대 산하에는 3개의 보병대대가 있다. 현재 이들 부대의 하루 급식량은 옥수수쌀 400g에 불과하다. 그나마 반찬으로 먹던 염장 무도 떨어져, 지금은 소금 약간이 나올 뿐이다. 각 부대에서는 부식물을 마련하려고, 인근 밭에서 달래, 냉이 등 나물을 캐기도 한다.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병들이 많다보니, 군복무를 하기 싫어 일부러 사고를 내는 군인들도 생기고 있다. 지난 4월 말, 2대대의 김강석(가명, 20대)씨는 영양실조에 걸리자, 일부러 오발사고를 위장해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그는 군의소에서 치료 받다가 5월 초에 드디어 감정제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6년 가까이 그와 친형제처럼 지냈던 동료들은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서군 3군단 군인들, 옥수수밥 5수저 뜨면 식기바닥
평안남도 강서군 대보리에 주둔하고 있는 3군단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 하루 분량의 식량이라곤 통옥수수 300-400g이 전부다. 사병들은 “위에서부터 층층이 다 빼먹다보니 하루 700g 정량을 받아본 적이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옥수수밥을 먹으면, 5수저도 못 떠서 늄(알루미늄)식기 바닥을 긁게 된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중대에서는 부대원 90명 중 영양실조자가 60여 명에 이른 경우도 있다.
■ 경제활동
함경남도 농장들, 기업소에 남새 팔아 수입 마련
함경남도 각 시, 군 농장들은 수입 마련을 위해 각 기관, 기업소에 판매할 남새(채소)를 별도로 기르고 있다. 시금치, 배추, 쑥갓, 빨간 무, 고추, 마늘, 토마토, 오이, 호박 등 갖가지 작물을 기르는 남새 작업반을 따로 구성해 농사에 땀을 쏟고 있다. 해당 시, 군 남새 관리소 지도서의 관리를 받아야 하지만, 판매수입을 높이려고 애를 많이 쓴다. 함주군의 한 협동농장 일꾼은 “작년에 식량난으로 너무 혼이 나서, 올해는 여러 방법을 다 써보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여름에 먼저 수확해서 식량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보리, 밀, 감자 등을 별도로 파종하고 있다고 했다. “한전(밭)에는 주로 옥수수를 심고, 수전(논)에는 벼를 심는다. 그 외에 일부 (농지) 면적에 이것저것 심는 거”라며, 다만 비료가 없어 큰 걱정이라고 했다.
김책제철소 주강직장 출근율 1/3도 안 돼
함경북도 청진 김책제철소 주강직장에서는 5월 현재 출근자가 30여 명에 불과하다. 주강직장 노동자 수가 11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1/3에도 못 미치는 수다.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은 대개 초급당일꾼들과 작업반장들이다. 일꾼들은 “올해 신년공동사설 방침에 따라, 하루 계획을 미루지 말고 열성을 다해 투신하자”는 선전만 반복할 뿐 뚜렷한 대책은 못 내고 있다. 출근율이 떨어지는 것은 올해 들어와서도 식량 배급이 안 되고 있어서다. 출근을 재촉하러 집에 가보면, 하나같이 먹을 게 없어 출근을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난 3월과 4월에 지급된 로임은 980원에 불과했다. 쌀 1kg 사기도 힘든 돈이다. 5월 초순 현재, 청진 수남 시장에서 쌀 1kg은 2,300원에 거래된다. 이번 4월 15일 태양절에는 겨우 밀가루 500g이 공급됐다. 작업복도 한 벌씩 나왔지만, 930원(국정가격)을 내야 받을 수 있었다. 주강직장에 다니는 한석현(가명, 40대)씨는 “(결근율이 높은 데가) 우리 직장만 그러는 게 아니다. 작년에는 농장원들이 일하러 안 나가더니, 올해는 시내 기업소와 공장들에서 결근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 정치생활
(150일 전투)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로, 조선 로동당원의 임무를 다할 데 대하여”
중앙당 조직부에서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150일 전투 관련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제목은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로 조선 로동당원의 임무를 다할 데 대하여”이다. 다음은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경제 강국의 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일대 진공을 과감하게 본때 있게 점령하자. 우리는 이미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요새를 점령했다. 경제의 잠재력이 막강하다. 경제 전선의 당면한 기본 전투 목표는 먹는 문제, 인민 소비품 문제, 자립적 민족 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문제가 있다.
수행하기 위한 부문별 과업은 국방 공업에서 혁신의 불 바람을 일으키는 것인데 집중적으로 인민 경제 4대 부문을 추켜세워야 한다. 그 4대 부문은 강철 생산, 금속 부문 현대화, 전력 문제, 석탄 생산과 철도화물 수송 능력을 결정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기계화학, 림업, 수산사업에서도 증산하고 또 증산하여 4대 과업 수행에 발맞추어 비약하고, 또 비약해 농업 생산을 늘려야 한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기어이 해결하며 경공업을 발전시켜 인민들이 그 덕을 보게 하고 실지적인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수도 건설을 힘 있게 내밀어 나라의 곳곳에 사회주의 선경을 일떠세워 행복의 웃음꽃이 만발하게 해야 한다. 과학, 보건, 문화, 예술, 출판, 보도 부분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켜야 한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방도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 것이고, 혁명적 군인 정신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 조선 로동당원들이 오늘의 총 돌격전에서 용맹한 결사대가 돼야하고, 적극적인 신봉자이자 능숙한 선봉대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간부들과 당원들은 결사 옹위의 전위 투사가 되어야 한다. 기어이 강성 대국을 일떠세우려는 장군님의 신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실천과 실력으로 장군님을 받들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대고조의 앞장에서 돌격로를 열어 나가는 선봉 투사가 되어야 한다. 혁명의 주인이자 자기 단위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어야 한다.
셋째, 대중의 정신력에 불을 지피는 정치 활동가가 되는 것이다. 대중을 교양하는 것이 당 규약상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민심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사람들의 정신력을 최대한 발동하고 고조시켜야 한다.
넷째, 오늘의 치렬한 계급투쟁에서 예리한 눈초리 사나운 맹수가 되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와 심리 모략 전을 짓부셔 버려야 한다. 온갖 이색적으로 불건전한 사상과의 투쟁을 힘 있게 벌려야 한다.
다섯째, 간부들과 당일군들은 장군님의 강행군에 보조를 맞추고 장군님 식으로 일해 나가는 대고조 시기 지휘 성원이 되어야 한다. 행정 경제 일군들과의 일군들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높은 실력을 소유하여야 한다. 사업과 생활을 청렴결백하게 하며 인민을 위하여 전심전의로 일하여야 한다.”
(150일 전투)로동처,“인사이동 하지 말라”지시
함경북도 도 로동처는 150일 전투 기간 동안 노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세칙(규칙)을 각 시, 군 인민위원회 로동부에 내려 보냈다. 150일 전투 기간 동안 ‘노력 배치 수급 사업’을 중지하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동안 로동부는 ‘년로 보장자’(은퇴자)를 비롯해 질병, 사고 등을 이유로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회 보장자, 현직에서 다른 공장, 기업소로 이동하는 대상자 등을 새로 배치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로동처는 전투 기간이 끝난 뒤에 지시에 따라 다시 기존 업무를 시작하라고 했다. 단 전투 기간에 국가 대상 건설 교대로 본 거주지에서 다른 지역에 나갈 경우에는 이동이 가능하다. 한편 인민위원회 출장증명서를 발급하는 2부에서도 증명서 발급을 전면 중지했다.
(150일 전투)함경북도 도당 전원회의, “모든 원천을 식량 생산에 동원해야”
함경북도 도당은 지난 5월 7일 오후 2시, 청진에서 도당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번 150일 전투를 잘해야 강성대국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 전투 기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강성대국으로 가는 길이 10년 떨어질 수 있다. 그럴 정도로 올해 식량사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다. 올해 식량문제를 풀어야만 강성대국건설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조건 모든 부문에서 100프로 모든 원천을 식량 생산에 동원해야 한다”며, 농사 부문에 전력투구할 것을 강조했다. “노력(노동력)으로 농촌을 힘 있게 지원해 올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대단히 중요한 과업”이라고 했다. 올해 비료가 풍족히 못 들어가는 조건에서 흙보산을 최대로 생산하여 강냉이 밭에 주도록 해야 한다. 올해는 농장원들의 노력 통제 관리를 최대한 잘하여, 하나의 루락자도 없이 모두 전투에 참가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또 참석한 시, 군당 비서들과 초급당일꾼들에게 “정치 사업을 짜고 들어 로동자들에게 이를 깊이 인식시키라. 정열한 전투 지휘 체계를 세워야 한다. 시, 군당 책임 비서들은 강력한 지도 력량을 조직하여, 실적이 안 나는 기업소나 농장들이 전투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주공전선의 힘을 넣어야 한다. 파견 나가 해당 단위 책임자들과 잘 협력하여, 현지에서 전투 지휘를 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당, 정 일꾼들이 자기 실력을 발휘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150일 전투)“아무리 어려워도 15일 식량은 보장하라”
중앙당은 150일 전투의 성과를 내기 위한 방침을 지방당에 내려 보냈다. 시, 군 책임일꾼들은 식량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전투 기간 동안만큼은 15일 분량이라도 식량을 보장하라는 내용이다. “전투 기간에 모두 떨쳐나서 강성대국 대문을 열자고 해도 먹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이 당의 지시였다. 모든 근로자들이 농촌 지원 전투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하려면, 식량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투 기간 동안 보름 분량의 식량이라도 공급하기 위해 일꾼들이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150일 전투)간부들, 생산현장에 파견
지난 5월 7일 궐기모임을 시작으로 150일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전투 기간 동안 중앙당과 지방당의 간부들은 일제히 생산 현장에 파견된다. 현장의 생산 활동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간부를 파견하는 주요 목적이다. 만약 생산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총화를 거쳐 간부직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 해당 단위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만큼 최대한 각오를 다져 “일꾼들이 생산 현장에 몸을 푹 담그라”는 것이 당의 요구다.
간부 대상 강연회도 평소보다 자주 열린다. 강연회에서는 “150일 전투의 기본 목표는 세계적인 식량 위기 속에서 농사에 모든 것을 다 보장해 먹는 문제를 푸는 것”이라며 농사에 집중하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 사회
집집마다 방문하는 간호사들 인기
농촌 진료소들마다 환자가 늘고 있는 와중에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들도 바빠졌다. 간호사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사를 놓아 주거나, 약을 팔아 돈을 번다. 그 집에서 한 끼 얻어먹을 때도 있다. 근육 주사 한 대에 500-1,000원, 포도당 한 대에 500원을 받는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보다 2-300원 더 비싼 값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주사 한 대 맞으려고 병원에 갔다가 1-2시간 넘게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간호사가 집을 방문해주면 기다리는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간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면 몇 시간 기다려서라도 주사를 맞고 오는 게 낫다고 본다. 이에 반해 간혹 잘 사는 집이나 간부들 집에 가면 5천원쯤 받기도 한다. 일종의 서비(서비스)값이다.
한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는 중앙당의 배려로 안과 질환 치료를 해주고 있다. 장티푸스와 콜레라 예방 주사도 시작됐다. 담당의사가 인민반장네 집에 돌아다니며 주사를 놓아주고 있다.
원산 병원, 5월 되자 환자들로 북적북적
150일 전투가 시작된 지 불과 며칠 새 원산시 각 병원에는 각종 환자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대부분 영양실조 관련 환자들이 많다. 주사라도 한 번 맞으려고 오는 주민들은 하루 동안에도 수십 명에 이른다. 왜 이리도 환자가 많으냐는 물음에, 의사들은 “허약한 몸에 (150일 전투 기간에) 노동 강도가 높아져서 몸이 견디지 못해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말한다. 원산 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예로부터 매년 5월이면, 1년 중 각종 질병 환자들이 제일 많이 나타난다. 이는 계절 변화 때문이다. 예로부터 전염병이 대부분 5월에 발생해 ‘흑5월’이라는 말도 있다. 거기다 우리나라의 지금 실정을 보면, 영양실조자가 너무도 많아 면역력이 떨어져 대부분 사람들이 사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문천시 병원에서 일하는 한 의사도 계절이 바뀌는데서 원인을 찾았다. “잘 먹지 못한 사람들이 병에 걸려 미처 치료를 못하거나, 돈이 없어 약도 못 사고 치료도 못하면 죽게 된다. 작년에 그렇게 많이 죽었다. 봄에 식량마저 부족하면, 능히 살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죽게 된다”고 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봄에 제일 많이 죽고,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계절이 바뀔 때 몸 관리를 잘해야 된다. 5월 이맘때가 평소 튼튼한 사람도 병이 생길 수 있는 계절이라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먹지 못해 죽지 뭐, 계절 바뀐다고 죽나. 허약 걸린 사람들도 (150일) 전투에 몰아대니 사람들이 못 당해내고 병에 걸리는 거”라고 했다.
■ 여성/어린이/교육
평강군 농장에 배치된 원산시 꽃제비들도 도주
강원도 원산시는 올해 3월 농촌에 자원하겠다는 중학생들이 없어 꽃제비들을 보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꽃제비들을 보낼 때 원산시는 중학교 졸업생들을 보내 장군님의 근심, 걱정을 덜어드리겠다고 했었다. 도당에서는 이를 높이 평가했었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생들 중에서도 실상 부모 없는 아이들을 골라 보냈다. 올해에는 그나마 보낼만한 고아 학생들이 없었다. 고민 끝에 시당에서는, 회양군 철령고개 사적지 답사자들이 장군님의 선군 령도를 받들려고, 평강군 농장 청년반에 자원하려고 한다는 거짓 편지를 올렸다. 그런데 올해 3월 졸업생들 중 자원자가 한 명도 없어, 결국 꽃제비 구제소와 시골 학교 졸업생 120여명을 긴급히 모았다. 지난 4월 18일에 환송식을 해주며 평강군에 보냈는데, 한 주가 지나기도 전에 120명 중에 40명이 벌써 도주하고 말았다. 원산시에서는 도주한 학생들을 맡았던 교사들을 총동원해 학생들을 빨리 찾아내 돌려보내라고 종용하고 있다.
평강군, 작년 한 해 농장 청년분조원 1/3 도주
강원도 평강군에서는 작년 한 해 청년분조원을 꾸려 농사를 지은 결과 3대 혁명 판정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다. 2007년 3월 당시, 강원도 도당 근로단체 비서가 꽃제비들을 책임지고 농장원들로 키우겠다고 장담했었다. 과유불급이었는지, 꽃제비 청년 분조원 사업은 오래지 않아 좌초되기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리고 점심 식사한 다음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온종일 농사일에 내몰다보니 어린 농장원들이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춘궁기였던 작년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도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작년 한 해에만 약 1/3 이상이 도주하고 말았다. 한 작업반의 경우 100여명에서 30명이 도주를 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3대 혁명 판정이 취소되고 말았다. 또 군당 근로비서와 해당 농장 관리위원장, 농장 당비서 등이 청년 작업반원을 제대로 관리를 못 한 책임을 물어 해임됐다.
■ 사건사고
청진, 살인 사건으로 마약범 구속
지난 5월 6일,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관해동 41반 경비 초소 옆에서 한 여성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조사결과, 전직 소학교 음악 교원을 하던 28세 여성으로 밝혀졌다. 가족들은 사망하기 전 집에서 300만원을 들고 마약을 사러 나갔는데,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아 애타게 기다렸다고 했다. 보안당국은 가족의 진술에 따라 마약 판매상 5명을 살해용의자로 긴급 체포했다. 신암구역 보안당국은 이들의 집을 수색해 총 4kg의 마약과 마약을 만드는 기계, 그리고 8,000만원 상당의 현금과 2,200 달러 등의 재산을 몰수했다. 신암구역 보안서 수사과와 감찰과에서는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마약범 5명을 체포하는 성과를 올려 상부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 논평
장사와 소토지 농사 금지, 왜 악수(惡手)를 거듭하는가?
소토지 없으면 죽는다. 개인 소토지 회수에 즉각적으로 터져 나온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이 한 마디에 주민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개인 소토지 농사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였다. 먹을 게 없어 대책 없이 죽어가던 주민들이, 믿을 건 제 두 손밖에 없다며 뙈기밭 농사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토지 농사를 지어왔다. 경사 60도가 넘는 험산도 이들의 사생결단식 개간에는 버티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벌거숭이산이 늘어가고, 해년마다 큰물피해가 되풀이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뙈기밭 농사, 즉 ‘개인 소토지 농사’는 현재 ‘장사’와 더불어 북한 주민들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5월, 함경북도 회령과 창평 등지에서 산불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개인 소토지를 회수당한 주민들이 반발심에 일으킨 고의 방화였다. 그 때 붙잡힌 범인 중 한 명은 “나를(소토지 농사를) 못 심게 할 바엔 너희도 못 심게 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민들의 불만 정서를 감지한 중앙당에서는 즉각 사상 강연에 들어갔다. “올해 배급을 무조건 풀게 된다. 더 이상 소토지 농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이상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가 가는 머저리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2008년에도 소토지 농사를 금지시킨다는 방침이 내렸다. 하지만 5-6월, 고난의 행군 못지않은 식량 부족에 방침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이 되자, 당국은 예고대로 소토지 회수를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죽음’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뙈기밭 농사 외에 다른 먹고 살 방법을 모르는 노인들이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누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날까 두려워 조용히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여론을 의식한 까닭이다.
그런데 당국은 현재 150일 전투까지 전개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70일 전투, 120일 전투, 200일 전투 등 전투 사업이 여러 번 있었다. 대중 운동을 더 앙양하기 위한 전투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그 성격이 다르다. 명확한 경제 지표 없이 막연하게 전개되고 있다. 규정도 강하다. 이전에는 전투 기간 동안에도 몇 시에 출근하라는 식의 규정은 없었다. 뭐든 자발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에 비해 ‘강제 동원’을 강조하는 작금의 상황은 주민들이 얼마나 당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일반 대중과 당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민들은 거침없이 말한다. 이번에도 최약자만 희생되고, 곧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종합시장을 폐지하기 어려운 이유와 같다. 소수 평양 고위층과 간부 및 군인, 그리고 군수공업 노동자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민이 사실상 뙈기밭 농사와 장사로 먹고 사는 현실에서 이것이 과연 실현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중앙당이라고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악수(惡手)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당을 믿지 않는 주민들과 당이 내놓는 통제중심의 일방적인 방침들, 그리고 그 방침으로 더 높아만 가는 당에 대한 불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당의 통제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통제력을 회복하려다보니 계속 악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당국은 소리 없는 밑바닥 정서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중의 자발성은 그들의 요구와 이해를 국가가 받아주고, 그들 스스로 주인이라는 의식이 생길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주민들의 생존방식이 ‘우리식 사회주의’에 위배되니 무조건 금지시켜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주민들의 생명줄을 함부로 옭죄면 그 대가는 반드시 북한 당국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북한 당국은 악수(惡手)를 멈추고, 주민들을 살리는 정책으로 주민들과 진심어린 악수(握手)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집중탐구
평양통신 – 신임 지배인, 초급당 총회 하던 날
지난 3월 29일에는,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돌아갈 엄두도 못 냈다. 집무실에서 한 밤을 지새울 심산이었다. 마흔일곱쪽 되는 일사분기 초급당 생활 총화, 자기 비판 보고서 원안에 대해서 여러 번 고치기도 하고, 보고 또 봐야 했다. 내일 초급당총회에서 대중 당원들이 어떻게 공격해오겠는지, 신임지배인으로서 아래당원들과 사전 소통할 시간적 여유도 얻지 못한 채, 자기 비판해야 하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가늠하기 매우 어려웠다.
‘별 일 없겠지. 그래도 부비서와 기사장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총화 보고서 아닌가. 대중 당원들이 공격해도, 초급당은 날 도와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위안을 해보았다.
3월 30일 아침이 서서히 밝아왔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니 길 건너편에 한덕수경공업대학건물이 눈앞에 안겨온다. 아직도 6시밖에 안 되는데 벌써 대학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드나드는 학생들이 보인다. 반대편인 청년 거리 쪽으로는 인기척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옆골목길 건너편에 화장품연구소에는 밤새 불빛을 끄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 월말 돌격전 하는 모양이구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딸아이가 아침밥을 싸가지고 왔다.
“아버지 밤을 새웠구나. 어머니가 특식을 해왔소. 잡수시고 힘내십시오.”하고 창문에 가까이 가더니, “아이구 나보다 더 빠른 등교생들도 있구나, 빨리 가야겠어” 하고는 환히 웃는 얼굴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무리 특식이라고 해도, 먹을 생각이 안 났다. 오늘 자기 비판 원고를 빨리 초급당비서에게 보여줘야 되기에 초급당비서 방으로 올라갔다. 아침 9시에 드디어 초급당총회가 시작됐다. 초급당비서가 먼저 주석단에 올라가 말문을 열었다.
“등록당원 OO명 가운데 출장, 병결 등으로 OO명을 제외하고, 90% 이상의 등록당원이 참가하였으므로, 초급당 총회가 성립됩니다. 취급안건은 일사분기 당원들의 당생활에 대하여 찬성하는 동무들은 손을 들으시오.”
반대 물음. 반대 없음. 전원 찬성.
“그러면 초급당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회의에 성과적 수행을 위하여 상급당에서 선전비서동지가 회의 지도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회의의 성과적 수행을 위하여 주석단은 나, 김창호(가명) 동무, 부비서 동무로 구성하겠습니다. 찬성하는 당원 동무들은 손을 들으시오.”
반대 물음. 반대 없음. 전원 찬성.
회의 지도 내려온 선전비서 동지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랑독하였다. 이어서 초급당비서가 일사분기 당생활 총화 보고를 하였다. 약 40분 동안 중점적으로 “신임 지배인의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과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끝까지 수행하겠다는 자세와 입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1/4분기 공장 생산 계획을 심히 미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심각하게 지적하였다. 이윽고 내가 자기비판에 나섰다.
1/4분기 공장의 생산계획 미달은 지배인인 내가 모든 책임을 다 지겠다고 했다. 생산계획이 미달된 주원인으로, 생산 자재, 설비 보수, 종업원들의 후방 사업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이는 내 스스로 관료주의적 작풍과 틀에 박힌 재래식 사업방법에 기인된다고 자기비판을 하였다. 2/4분기 기간에는 이런 작풍을 꼭 퇴치하겠다고 맹세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의 신임과 믿음에 생산완수로 보답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급기관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하였다. 다음 당원들이 너도나도 일어서서 제 자리에서 짤막하게 비판을 들이댔다. 마지막으로, 당비서가 결론하기 전에 지도나온 선전비서가 중요발언을 하였다.
“지배인 동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창호 동무께 믿음을 안겨주고, 이 공장을 맡겨주셨는데, 이 믿음을 망각하여 정말 생산마저 미달됐으니 왜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장군님께 큰 심려를 끼치지 않았느냐. 자기 책임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는 아느냐. 다음 분기에 보자고 했는데, 지배인 동무의 그 맹세에 대해 나는 믿겠다. 모든 당원들이 쳐다보겠는데, 상반년 총화할 때 고치지 못한다면 다른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지배인 동무가 똑똑히 명심하라”고 결론을 하였다. 초급당비서는 지도사업을 내려온 선전비서의 결론을 초급당의 결론으로 대신한다고 하면서 총회를 끝마쳤다. 그때야 비로소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