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지금은 세외부담을 거둘 때가 아니다
"임금으로 있으면서 백성이 굶어죽는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할 일이다. 하물며 지금 묵은 곡식이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니,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준다 해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되거늘, 오히려 굶은 백성에게 조세를 부담시켜서 되겠는가. 더욱이 감찰(어사)을 보내어 백성의 굶주리는 상황을 살펴보게 하고서 조세조차 면제를 해주지 않는다면, 백성을 위하여 혜택을 줄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세종실록」 세종 1년 1월 6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였다고 하는, 조선의 세종시대에도 대기근은 있었다. 그것도 장장 7년이나 계속됐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며, 왕은 배고픔에 쓰러져가는 백성들이 애달파 궁궐 앞에 초가집을 짓고 3년을 기거했다. 그리고 국록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며, 친아들과 친손자들에게 배당된 과전을 50결 이상씩 감해버렸다. 왕실재산은 백성들에게 내어놓되, 대신 백성들에게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할 일”이라고 세금을 거두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요즘 식으로 풀면, 세종대왕은 나라의 근간인 백성들이 굶어죽는 것을 가장 심각한 안보위기로 보고,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 모든 국정의 최우선 과제임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북한 당국도 좀 배웠으면 한다.
북한은 명목상 세금이 없는 사회이다. 1974년 3월 21일, 조세제도가 근로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내는 가혹한 착취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인식 때문에 세금제도의 완전폐지원칙을 발표하고, 4월 1일을 세금제도 폐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가예산수입이 필요하기에, 예산수입의 원천으로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사회협동단체이익금, 봉사료 수입금 등을 징수하고 있다. 이것만 존재하면 다행이다.
3대 혁명판정사업비, 영예군인 노병지원비, 충성의 자금, 퇴비과제, 외화벌이용 과제, 인민군대 지원품 명목, 농장 지원용, 양어장 및 염소우리 수리비 등 부족한 재원과 자재 원천마련을 위해, 세외부담의 항목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들 명목에 동원되는 자재원천들은 개가죽, 토끼가죽, 파고철, 폐지, 인분토, 줄당콩 등 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 수집항목은 현물 혹은 현금으로 내야만 한다. 심지어는 장군님의 배려라고 하는 명절 선물조차 이제는 뭔가를 바쳐야 받을 수 있다. 말만 세금이 없을 뿐이지 늘어나는 세외부담은 주민들의 삶을 옭아맨 지 오래되었다.
주민들은 세외부담 물품을 구하기 위해 혹은 대체현금 마련을 위해 허리가 휠 정도이고 학생들은 학교가기를 두려워한다. 북한당국이 조세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로, “일제 식민지통치 시기에 58가지의 반인민적인 세금과 수많은 가렴잡세가 근로인민의 고혈을 짜냈다”고 밝혔던 바로 그 일이 오늘날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올해 신년사에서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당국은 5․26 당지시문을 통해, “국가는 더 이상 식량과 물품을 공급해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 세외부담이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금은 세외부담을 거둘 때가 아니라,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해야할 때이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라고 했다고, 당국이 두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아주 많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세외부담처럼 주민들을 괴롭히는 정책을 폐지하는 것이다. 각종 국책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다른 식으로 마련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아니면 잠시 중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식량을 수입하는 것과 같은 국가적으로 식량을 구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분명한 세금명목과 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집행하는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누구나 자신의 수입에 비례해 세금을 내는 조세원칙과 조세법정주의를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상당수의 간부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세외부담을 내지 않고, 주민들에게만 전가하는 폐해도 해소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가진 자는 내지 않고 힘없고 헐벗은 백성들에게만 가중되는 세외부담은 가렴주구를 일삼던 조선의 탐관오리와 일제 식민통치 시대의 억압과 하등 다를 바 없다(끝).
■ 시선집중
“농촌동원 학생 식량, 우린 못 줘”온천군 농장들 아예 손들어
평안남도 온천군 룡월리, 마영로동자구와 룡강군 룡호리 농장 등에서는 농촌동원 인력들의 식량 문제에 관해 도저히 부담질 수 없다며 아예 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가에 식량이 없어 결근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외지인들까지 먹일 여력이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룡강군 룡호리농장의 경우 농산반이 총 11개가 있는데, 한 분조 당 평균 13-15명이 속해있다. 이 중에서 현재 만출근하는 농장원은 5명도 채 안 된다. 일주일에 3-4일 출근하는 사람은 3-4명, 아예 무단결근하는 사람이 4-5명이다. 작업반마다 사정이 비슷하다. 정상 출근하는 사람이 1/3에 불과한 이유는 물론 식량문제 때문이다. 농장원들이 당장 제 먹을 것이 없으니 농사는 물론이고, 돕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까지 신경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농사는 지어야겠고, 농장에서 동원인력의 식량까지 챙길 여건은 전혀 안 되니, 결국 군당에서 직접 나서게 됐다. 어떻게든 모내기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군에서는 비상식량을 풀었다. 적은 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옥수수밥을 주었는데, 배추와 호박나물 반찬에 미역국까지 끓여주었다. 피죽도 못 먹어 배를 곯고 있는 농민들로선 눈에 불이 나는 일이었다. 자신들한테는 먹을 것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일도 잘 못하는 동원인력들에게 옥수수밥에 각종 반찬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불만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럴 여력이 있으면 농장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챙겨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농장관리일군들은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식량분배가 이미 끝난 마당에 자기들이 식량조절을 잘 못해서 굶는 것이고, 그래서 일을 못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농민들의 식량사정에 “내 알 바 아니다”, “굶어죽겠으면 굶어죽으라”고까지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농민 모임에도 그대로 이어져, 농장 일군들은 농장원들이 절반 이상이 못 나와도 농촌동원 나온 인력만으로 얼마든지 농사지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농민들을 자극해 어떻게든 일하러 나오게 할 목적에서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모내기한 꼴을 보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른다. 규정대로 심어진 게 하나도 없어서 저것이 벼가 될지 뭐가 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모내기가 끝나기만 하면 좋다니, 어디 저희들(일군들)끼리 잘 해보라고 해라. 가을걷이할 것 없다고 우리 보고 뭐라 하면 가만히 안 놔둘 거야”라며, 속상한 심경을 그대로 내비쳤다.
형편 되는 학부모들, 농촌동원 아이들 식량조달
청진시 청암구역 농장들에서는 있는 식량, 없는 식량을 긁어모아 5일에 한 번씩 옥수수쌀을 공급해주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형편없이 적었다. 한참 먹고 자라날 시기에, 뒤돌아서면 바로 배고플 정도로 먹는 게 부실하다보니, 자연히 집으로 도망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청암구역당 농사지도를 하는 간부들이 동원 나온 학생들의 실태를 조사해보니 심한 경우 절반 이상이 안 나온 작업반도 있었다. 농장 간부들은 괜히 애꿎은 선생님들만 닦달했다. 특히 도망간 학생들의 담당 선생님들은 거센 사상투쟁을 받아야 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잘 사는 학부모들을 찾아가 제발 식량을 도와주십사 읍소할 수밖에 없었다. 포항구역 중학교에서는 학부모 회의를 열어, 총동원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날짜를 계산해 학생들의 식량을 누가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지 긴급히 의논하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부모 3명이 한 조가 되어 이틀에 한 번씩 집에 있는 옥수수국수와 반찬 등을 준비해서 농장에까지 배달해주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그나마 먹고 살만한 학부모들이 몇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농촌동원 오겠다는데, 농장들“제발 오지 말라”사정
식량사정이 어려운 농장들마다 사회 주민들이 농촌 총동원 나오는 게 오히려 무섭다는 반응이다. 농사를 도우러 오는 동원 인력들의 식량을 해당 농장에서 보장해주라고 하기 때문이다. 당장 농장원들이 자기들 먹을 것도 없어 결근하는 마당에, 농사일에 서툴고 책임도 지지 않는 동원인력들의 먹을 것까지 챙기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다. 그러니 농장에 오겠다는 동원 인력이 있어도, 오히려 농민들이 제발 오지 말라고 사정하는 판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사구리와 부거리, 연진동 농장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수남구역 중학교와 포항구역 중학교 학생들이 이들 구역에 농촌 총동원을 나가겠다고 하니, 농장 작업반에서는 제발 인원수를 줄여달라고 사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당 전원회의에서 학생들의 식량은 해당 농장에서 담당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일부 농장에서는 배치해주는 대로 모두 받지 않고, 한 작업반마다 15명 이내로만 받겠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 작업반마다 한 학급인원 30-40명 전원이 다 들어가야 하는데, 절반 이상을 줄여달라는 부탁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장관리위원장은 “농사는 오늘 못하면 래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절기에 따라 봄철을 놓치면 가을 수확고를 높일 수 없고, 국가 계획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지원 단체 로력들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 정 식량이 없으면, 식량 여유가 있는 잘 사는 세대들한테 가을에 물어주기로 약속하고 식량을 꿔서라도 무조건 지원 단체 식량을 보장하라”고 지시했다.
1,500원 월급, 이것저것 떼고 나면 300원 남아
북한에 공식적인 세금은 없지만, 각종 명목으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월급이 만신창이가 된다. 월급이 정상 지급된다고 가정해도, 그것만으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월급마저 제대로 나오기도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에 위치한 도시건설대에서는 지난 5월 9일,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했다. 2월 달 월급이 이제야 나온 것이다. 노동자들의 급수에 따라 월급 액수에 편차가 있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은 1,500원 선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군대 지원용 돼지고기값으로 500원을 제한다. 피마주씨와 해바라기씨를 비롯한 기름 작물 과제로 250원, 직장 동료와 상사 가족들의 경조사비로 200원을 뗀다. 당원들은 당비로 100원이 더 나간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떼다보면, 노동자들 손에 최종적으로 넘겨진 돈은 많으면 300-400원, 적을 땐 2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만 세금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회주의도 다를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제한 돈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불투명한 것도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도시건설대에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월급에서 돈을 떼 내는 게 진정으로 기업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 목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간부 일군들이 제 몫으로 챙겨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몇 사람 배부르게 하려고, 왜 우리들이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 몇 푼 안 되는 이 돈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 달 만출근한 사람도 월급 1,500원에서 겨우 300-400원 받는 현실에, 누가 공장에 붙어 있으려고 하겠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로동자들은 죽도록 일해도 계속 힘든 생활만 하게 되는데도, 간부 일군들은 뒤에서 제 살 궁리만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다. 간부 일군들에 대한 불신이 깊을 수밖에 없다.
식량 자급자족하라면서, 세외부담은 그대로
5․26 당 지시에 따라, 각자 알아서 식량을 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세외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전면 허용됐다지만 아직 구매력이 낮은데다 적은 유통량으로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주민들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데도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각 구역마다 인민반에 개가죽, 토끼가죽, 파철, 파지 등 각종 과제를 계속 내리고 있다. 하루 벌이 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데, 각종 과제들이 생계 부담을 가중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요즘 걷고 있는 개가죽은 한 세대 당 250원 상당인데, 쌀값 1kg에 550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 수 있다. 여성들이 하루 종일 시장에 쭈그려 앉아 장사해서 250원에서 300원 정도 벌면 장사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인데, 꼬박 하루벌이를 세외부담에 바치게 되는 셈이다. 토끼 가죽은 더 심하다. 한 세대 당 토끼 가죽을 바치려면 500원이 든다. 물론 못 내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500원을 다 못 내겠으면, 300원이라도 내라”며 값을 낮춰주기도 하지만, 세외부담이라는 게 이렇게 한 번 바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다른 형태로 내려오게 되니 주민들의 반발이 자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한도가 있지 사상문제로 몰아버리는 통에, 안내겠다고 무작정 버틸 수만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면서도, “자기들은 주는 거 하나 없이 우리보고 알아서 먹고 살라면서, 백성들한테서는 가져가기만 하느냐?”며 불만을 표한다.
■ 식량소식
[343호]“농촌동원 학생 식량, 우린 못 줘”온천군 농장들 아예 손들어
평안남도 온천군 룡월리, 마영로동자구와 룡강군 룡호리 농장 등에서는 농촌동원 인력들의 식량 문제에 관해 도저히 부담질 수 없다며 아예 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가에 식량이 없어 결근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외지인들까지 먹일 여력이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룡강군 룡호리농장의 경우 농산반이 총 11개가 있는데, 한 분조 당 평균 13-15명이 속해있다. 이 중에서 현재 만출근하는 농장원은 5명도 채 안 된다. 일주일에 3-4일 출근하는 사람은 3-4명, 아예 무단결근하는 사람이 4-5명이다. 작업반마다 사정이 비슷하다. 정상 출근하는 사람이 1/3에 불과한 이유는 물론 식량문제 때문이다. 농장원들이 당장 제 먹을 것이 없으니 농사는 물론이고, 돕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까지 신경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농사는 지어야겠고, 농장에서 동원인력의 식량까지 챙길 여건은 전혀 안 되니, 결국 군당에서 직접 나서게 됐다. 어떻게든 모내기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군에서는 비상식량을 풀었다. 적은 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옥수수밥을 주었는데, 배추와 호박나물 반찬에 미역국까지 끓여주었다. 피죽도 못 먹어 배를 곯고 있는 농민들로선 눈에 불이 나는 일이었다. 자신들한테는 먹을 것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일도 잘 못하는 동원인력들에게 옥수수밥에 각종 반찬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불만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럴 여력이 있으면 농장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챙겨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농장관리일군들은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식량분배가 이미 끝난 마당에 자기들이 식량조절을 잘 못해서 굶는 것이고, 그래서 일을 못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농민들의 식량사정에 “내 알 바 아니다”, “굶어죽겠으면 굶어죽으라”고까지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농민 모임에도 그대로 이어져, 농장 일군들은 농장원들이 절반 이상이 못 나와도 농촌동원 나온 인력만으로 얼마든지 농사지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농민들을 자극해 어떻게든 일하러 나오게 할 목적에서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모내기한 꼴을 보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른다. 규정대로 심어진 게 하나도 없어서 저것이 벼가 될지 뭐가 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모내기가 끝나기만 하면 좋다니, 어디 저희들(일군들)끼리 잘 해보라고 해라. 가을걷이할 것 없다고 우리 보고 뭐라 하면 가만히 안 놔둘 거야”라며, 속상한 심경을 그대로 내비쳤다
형편 되는 학부모들, 농촌동원 아이들 식량조달
청진시 청암구역 농장들에서는 있는 식량, 없는 식량을 긁어모아 5일에 한 번씩 옥수수쌀을 공급해주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형편없이 적었다. 한참 먹고 자라날 시기에, 뒤돌아서면 바로 배고플 정도로 먹는 게 부실하다보니, 자연히 집으로 도망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청암구역당 농사지도를 하는 간부들이 동원 나온 학생들의 실태를 조사해보니 심한 경우 절반 이상이 안 나온 작업반도 있었다. 농장 간부들은 괜히 애꿎은 선생님들만 닦달했다. 특히 도망간 학생들의 담당 선생님들은 거센 사상투쟁을 받아야 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잘 사는 학부모들을 찾아가 제발 식량을 도와주십사 읍소할 수밖에 없었다. 포항구역 중학교에서는 학부모 회의를 열어, 총동원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날짜를 계산해 학생들의 식량을 누가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지 긴급히 의논하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부모 3명이 한 조가 되어 이틀에 한 번씩 집에 있는 옥수수국수와 반찬 등을 준비해서 농장에까지 배달해주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그나마 먹고 살만한 학부모들이 몇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농촌동원 오겠다는데, 농장들“제발 오지 말라”사정
식량사정이 어려운 농장들마다 사회 주민들이 농촌 총동원 나오는 게 오히려 무섭다는 반응이다. 농사를 도우러 오는 동원 인력들의 식량을 해당 농장에서 보장해주라고 하기 때문이다. 당장 농장원들이 자기들 먹을 것도 없어 결근하는 마당에, 농사일에 서툴고 책임도 지지 않는 동원인력들의 먹을 것까지 챙기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다. 그러니 농장에 오겠다는 동원 인력이 있어도, 오히려 농민들이 제발 오지 말라고 사정하는 판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사구리와 부거리, 연진동 농장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수남구역 중학교와 포항구역 중학교 학생들이 이들 구역에 농촌 총동원을 나가겠다고 하니, 농장 작업반에서는 제발 인원수를 줄여달라고 사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당 전원회의에서 학생들의 식량은 해당 농장에서 담당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일부 농장에서는 배치해주는 대로 모두 받지 않고, 한 작업반마다 15명 이내로만 받겠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 작업반마다 한 학급인원 30-40명 전원이 다 들어가야 하는데, 절반 이상을 줄여달라는 부탁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장관리위원장은 “농사는 오늘 못하면 래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절기에 따라 봄철을 놓치면 가을 수확고를 높일 수 없고, 국가 계획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지원 단체 로력들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 정 식량이 없으면, 식량 여유가 있는 잘 사는 세대들한테 가을에 물어주기로 약속하고 식량을 꿔서라도 무조건 지원 단체 식량을 보장하라”고 지시했다.
■ 경제활동
1,500원 월급, 이것저것 떼고 나면 300원 남아
북한에 공식적인 세금은 없지만, 각종 명목으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월급이 만신창이가 된다. 월급이 정상 지급된다고 가정해도, 그것만으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월급마저 제대로 나오기도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에 위치한 도시건설대에서는 지난 5월 9일,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했다. 2월 달 월급이 이제야 나온 것이다. 노동자들의 급수에 따라 월급 액수에 편차가 있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은 1,500원 선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군대 지원용 돼지고기값으로 500원을 제한다. 피마주씨와 해바라기씨를 비롯한 기름 작물 과제로 250원, 직장 동료와 상사 가족들의 경조사비로 200원을 뗀다. 당원들은 당비로 100원이 더 나간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떼다보면, 노동자들 손에 최종적으로 넘겨진 돈은 많으면 300-400원, 적을 땐 2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만 세금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회주의도 다를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제한 돈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불투명한 것도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도시건설대에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월급에서 돈을 떼 내는 게 진정으로 기업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 목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간부 일군들이 제 몫으로 챙겨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몇 사람 배부르게 하려고, 왜 우리들이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 몇 푼 안 되는 이 돈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 달 만출근한 사람도 월급 1,500원에서 겨우 300-400원 받는 현실에, 누가 공장에 붙어 있으려고 하겠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로동자들은 죽도록 일해도 계속 힘든 생활만 하게 되는데도, 간부 일군들은 뒤에서 제 살 궁리만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다. 간부 일군들에 대한 불신이 깊을 수밖에 없다.
식량 자급자족하라면서, 세외부담은 그대로
5.26 당 지시에 따라, 각자 알아서 식량을 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세외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전면 허용됐다지만 아직 구매력이 낮은데다 적은 유통량으로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주민들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데도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각 구역마다 인민반에 개가죽, 토끼가죽, 파철, 파지 등 각종 과제를 계속 내리고 있다. 하루 벌이 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데, 각종 과제들이 생계 부담을 가중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요즘 걷고 있는 개가죽은 한 세대 당 250원 상당인데, 쌀값 1kg에 550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 수 있다. 여성들이 하루 종일 시장에 쭈그려 앉아 장사해서 250원에서 300원 정도 벌면 장사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인데, 꼬박 하루벌이를 세외부담에 바치게 되는 셈이다. 토끼 가죽은 더 심하다. 한 세대 당 토끼 가죽을 바치려면 500원이 든다. 물론 못 내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500원을 다 못 내겠으면, 300원이라도 내라”며 값을 낮춰주기도 하지만, 세외부담이라는 게 이렇게 한 번 바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다른 형태로 내려오게 되니 주민들의 반발이 자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한도가 있지 사상문제로 몰아버리는 통에, 안내겠다고 무작정 버틸 수만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면서도, “자기들은 주는 거 하나 없이 우리보고 알아서 먹고 살라면서, 백성들한테서는 가져가기만 하느냐?”며 불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