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민영 운송회사 출현(1)
평양 울림운송 합영회사
1) 개인 운송회사의 출현
2003년 4월부터 평양 보안성 산하 운림운송 합영회사에서 각 주요 도시간 장거리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은 열차가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경제난의 장기적 영향으로 전력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기차 운행도 계속 차질을 빚고 있다.
장사가 활발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이동수단에 대한 필요성은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식량난 전에도 기업소 단위의 화물차를 서비차로 이용했던 사례들은 있었지만, 경제난 시기 서비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서비차는 이동을 하려는 개인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교통수단이다.
이에 반해 평양 울림운송합영회사의 장거리 버스는 열차의 불안정한 운행을 보완해 줄 합법적인 운송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투자하고 운영, 조직, 관리하는 회사는 아니다. 국가의 승인 아래 개인 자본을 투입하여 중국 북경의 한 운송회사와 합영하여 건립한 것이다. 수입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게 되어있다.
국가가 운영해 온 각 주요 지역 여객사업소, 운송 여객사업소 등은 경제난 시기에 국가로부터 유류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공급이 끊어지면서 지금은 최소한의 운행만 하는 상태이다.
2) 버스 운행 지역
평양을 중심으로 신의주 방면, 해주 방면, 함흥 방면이 대표적이다. 각 방면에 직통으로 가는 버스는 아직 없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가려면 일단 향산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평양에서 해주 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평양에서 사리원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사리원에서 해주행 버스를 다시 갈아탄다.
․ 신의주 방면: 평양-향산, 향산-신의주
․ 해주 방면: 평양-사리원, 사리원-해주
․ 함흥 방면: 평양-원산, 원산-함흥
각 방면으로 가는 도중 중요 도시는 잠시 정차하여 승객을 갈아 태운다. 버스 정류장은 주로 기차역전을 이용한다. 역전은 기차 운행이 들쭉날쭉해서 기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이 상시적으로 대기하고 있어 승객 유치에 유리하다.
민영 운송회사 출현(2)
3) 분회사 운영
평양 낙랑구역 거리에 운림운송 합영회사 본사가 있고, 신의주, 해주, 함흥, 청진에 각 분사(분회사)가 있다. 다만 청진은 거리가 현저하게 멀어 다른 세 방면에 비해 연결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이다.
각 분회사는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분사장(분회사 사장), 회계를 맡은 부기, 버스표를 관리하는 출표원, 각 버스당 운전사․안내원 한 명씩, 자동차 기름과 각종 부속품 등을 조달해오는 보조성원들, 경비원, 식당 보모 등 기타 종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회사는 매달 평양 본사에 수입의 일부를 바치고, 인건비, 운행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분회사의 사장과 부기가 일정한 비율로 배분해 갖는다. 분회사 사장들은 평양 본사의 사장과 친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장과 부기를 제외한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는데 2급 운전사의 경우 한달 월급은 1,500원이고 안내원들은 800-900원 선이다.
버스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거의 폐차 직전의 중고차들이 대부분이다. 버스를 새로 들여올 경우 평양 본사에 대당 약 7천 달러를 낸다. 중국에서 실제 수입하는 가격은 4천 달러 미만이지만 평양 본사의 이익금을 덧붙인 가격이다.
평양 본사를 제외한 각 운림운송회사는 평양 본사에 매달 버스 한 대당 100만원을 납입해야 한다.
4) 해주-사리원간 버스 운행
해주 분회사는 총 세 대의 버스를 운용하고 있다. 오전 6시, 7시, 8시에 각각 사리원으로 출발했다가 오후 1시, 2시, 3시에 해주로 돌아온다. 해주-사리원간 버스 요금은 2,500원(2004년 4/4분기 기준)이다. 2003년 첫 운행 버스 요금은 600원이었으나 기름값 인상에 따라 요금 역시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버스의 좌석은 57인승이지만 승객은 거의 한 대당 100명 선을 유지한다. 승객이 많은 경우 120명까지 타는 경우도 있다. 승객의 90% 이상은 장사꾼들이다.
해주의 농산물을 사리원에 팔고 사리원에서 평양, 남포, 평성 등으로부터 들여오는 공업품을 사들여와 해주 시장에 파는 장사가 대부분이다.
해주-사리원 버스는 평양 운림운송회사 해주 분회사 소속 버스 외에 사리원 여객소와 평양 관광여객사업소에서 운용하는 버스가 한 대씩 다닌다. 버스 요금은 여객소마다 약 100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해주 분회사는 시간 엄수를 통해 다른 여객사업소에 비해 승객 점유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회사의 버스들이 폐차직전의 고물차이고, 도로 사정도 매우 좋지 않아 잦은 고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해주 분회사는 한 번 사리원에 가면 반드시 당일 해주로 돌아오는 것으로 원칙을 삼고 있다. 따라서 해주 승객들은 당일로 사리원에서 해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생각해 해주 분회사의 버스를 이용한다.
해주에서 사리원까지 버스비가 2,500원이면 서비차는 1,800-2,000원 선이다. 서비차는 화물차이기 때문에 손님을 끌기 위해서 요금이 더 저렴하다. 합법적으로 뛰는 버스보다 더 싸야 사람들이 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이 없거나 바쁜 사람들이 서비차를 타고 이왕이면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싶어 한다. 서비차는 무연탄, 시멘트 화물차들이 많아서 올라타면 석탄 가루나 시멘트 가루가 옷에 묻어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버스를 타려고 한다.
5) 소요시간 및 수익 분배
해주-사리원까지 가는데 보통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운전사들은 상시적으로 예비 타이어 2개, 삽, 곡괭이, 밧줄 등을 준비해 간다. 포장도로가 파손된 곳이 많아 직선으로 운전하지 못하고 대부분 곡예를 하듯 운전하게 된다.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엔진이 과열되어 멈춰 서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번 고장이 나면 그 자리에서 고치는 시간이 2-3시간 소요되어 가는 데만 4-5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하루 버스 한 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평균 50만 원 선이다. 하루 왕복에 승객 200명 선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스 세 대가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이 약 150만원 정도라면, 유류비, 자동차 부품비, 수리비 등으로 최소 30-40만원을 제하고 약 100만 원 이상의 이익이 남는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으므로 3천만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급 운전수의 월급이 1,500원이지만 국가에서 주는 쌀로 배급을 대신한다. 쌀 20kg에 1,200원을 제하고 세금이라고 경조사비 명목으로 떼고 각종 분담금 내고 당비로 50원을 제한다. 그러면 한달 일하고 나서 손에 쥐는 것은 쌀 20kg과 100원 정도 남는다.
따라서 사장과 부기를 제외한 기타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지출면에서 볼 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운전사와 안내원은 쌀 20kg와 100원 미만의 월급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에 운전사와 안내원은 자구책으로 승객의 인원수를 조정하는 방법을 쓴다. 만일 승객을 100명 태웠다면 80명 또는 90명으로 보고하고 나머지 요금을 운전사와 안내원이 2:1의 비율로 나눠 갖는 식이다.
■ 경제활동
2005년 2월 함경북도와 평안북도 신의주의 물가 동향
물가 동향
1) 곡물가격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곡물 가격을 1되 단위로 파는데 입쌀 1되(1.5kg)의 가격은 1,200원 가량이다. 따라서 1kg에 800원쯤 하는 편이다. 옥수수 1되(1.5kg)는 400원, 콩 1되(1.2kg)는 600원에 팔린다.
신의주에서는 올해의 쌀값이 2천원까지 올라갈 것 같다는 말이 돌고 있다.
2) 위안화 환율
인민폐는 신의주가 250원, 온성과 종성은 240-250원, 회령은 250원이다. 청진은 250-260원이다.
3) 생필품 가격
함경북도 온성의 생필품 가격은 입쌀 750원, 수입쌀 800원, 옥수수 290원, 콩 600원, 돼지고기 2,200원, 식용유 2,500원. 온성군 남양시에서는 장마당의 쌀 중 90%는 중국산이고 10% 가량이 북한산이다.
2005년 2월 황해남도 해주의 장마당 모습
황해남도 시장 경제 소식
1) 중고 옷 장사
해주의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중고 옷은 낱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대나 상자에 포장되어 들어온다. 한 마대당 5천원, 7천원, 1만원에 거래된다.
장사꾼들은 내용물의 종류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고 가져오게 된다. 어떤 것은 여성 속옷만 가득 들어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하의만 가득 들어있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옷 상태와 질이 좋아 판매가 잘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수익이 크지 않다. 옷 장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이윤은 약 60% 정도이나, 질이 좋지 않을 경우 30% 정도에 그친다.
2) 자전거 장사
해주의 자전거 상인들은 원산항, 흥남항 등지에서 화물차로 한 번에 약 400대 정도 가져온다. 중간 상인에게 20-30대씩 넘기고, 소매상들에게는 3-5대씩 넘긴다. 자전거는 일본산으로, 일본에서 가져올 때는 평균적으로 대당 20달러이지만 유통을 거치면서 50-150달러에서 거래된다. 중고 자전거이기 때문에 상품 상태, 기름값, 상인들의 능력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소매상인들은 자전거를 팔기 전에 직접 수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자전거가 녹이 심하게 슬고 타이어가 펑크 나서 안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다시 분해해서 기름칠을 하고 수리를 해서 내놓는다. 보통 하루나 이틀에 한 대씩 팔린다.
3) 짐꾼
짐꾼들은 짐을 운반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혼자 짐을 운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짐수레를 여럿이 함께 끌며 짐을 운반하고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짐꾼은 수레 주인에게서 약간의 수고비를 받는다.
40-50리의 거리를 수레로 운반해 준 뒤 약 3,000원 가량을 받게 되는데, 수레 주인이 주는 대로 수고비를 받는다. 만약 300원을 수고비로 받았다면, 나머지 돈은 수레 주인이 전부 가진다. 수레 가격은 약 3,000원~15,000원대이다. 겨울에는 눈 위를 끌고 다니는 소수레를 끌고 여름엔 바퀴달린 수레를 이용한다.
2005년 함경북도 경성의 사굴채탄과 삼림보호
산업 활동 소식
1) 농업 분야의 개인 경작지 분배
함경북도 경성의 한 농장에서도 개인 경작지를 나눠주고 수확물을 3․7제로 나누기로 했다. 국가에 3을 바치고 7은 개인이 가지도록 한 것이다. 농사가 2003년보다 잘 된 편이었지만 수확이 늘어난 만큼 국가에서 가져가는 양도 많아져서 3․7제를 시행하기 전에 분배받은 양과 큰 차이가 없었다.
2) 광업 분야의 사굴 채탄
함경북도의 여러 국가 기업소 탄광은 채굴이 중단되었지만, 개인들이 땅을 파서 석탄을 캐내는 곳이 생겼다. 이를 ‘사굴’이라고 한다.
함경북도 경성군의 한 사굴은 공장 기업소의 명의를 걸고 외화벌이 단위에서 운영을 한다. 농장과 마찬가지로 공장을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직장 기업소의 명의를 빌려 쓰고 운영은 직접 한다. 생산량을 3․7제로 나누어 3을 공장에 바친다.
사굴에서는 노천에 나뭇가지로 움막처럼 만들고 수직으로 굴을 파고 내려가서 채탄을 한다. 보통 6명이 모여 탄을 캐고 국가에 일정 비율을 바치고 나머지는 노동자들끼리 분배한다.
공장에서 얼마나 생산했는지 조사가 나오면 석탄 생산량을 줄여서 보고한다. 또는 일부러 검열이 나오는 낮에는 일을 안 하고 밤에 채탄 작업을 하기도 한다.
3) 사굴 석탄의 유통
장사꾼들은 사굴에 직접 탄을 사러 가는데, 사굴 사람들이 아침에 나오라면 아침에 가고 새벽에 나오라면 새벽에 나가서 기다렸다가 산다. 그렇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탄을 구하기 힘들다. 이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순번을 정해주는 대로 탄을 구입한다. 탄을 구입하려고 개인이 오는 경우도 있고 차를 가져와서 탄을 사 가는 직장들도 있다.
구입한 석탄은 직접 시장에 팔기도 하고 중간 상인에게 넘기기도 한다. 그렇게 사굴에서 장마당에 팔리기 전까지 보통 4단계 가량의 중간 상인을 거치게 된다. 기업소에서 와서 사 가기도 한다. 질이 좋은 석탄은 20kg에 500원에, 질이 나쁜 석탄은 150원 정도에 판다.
4) 사굴에서의 안전사고
곳곳에 사굴이 생겨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일제 때 쓰던 굴이라서 붕괴 위험도 높고 가스로 질식하는 사고도 자주 생긴다. 길을 가던 사람이 굴에 빠져 추락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2002년에 사굴을 무분별하게 파지 말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2002년에는 경성 지역 사굴에서 가스에 의한 질식사 사고가 있었다. 2003년에는 학교 갔다오던 학생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있었고 굴이 붕괴되어 압사한 사고도 발생했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생계를 걸고 있다보니 무분별한 사굴 채탄을 막을 수 없다.
5) 삼림 보호를 위한 묘목 심기
함경북도 경성 지역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산을 뙈기밭으로 만들어 나무가 빈약하다. 이에 산림보호원이 다니면서 묘목을 주면서 검열 나오면 안 되니까 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화전으로 일군 밭의 1/3 정도 넓이에 나무를 심어야 했다.
2005년 2월 황해도의 식량 상황
최근의 황해남도 식량 상황
1) 쌀값의 변동 양상
황해남도의 쌀값은 대체로 10월 말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변동 폭이 크지 않다. 곡창지대라는 지역적 특성상 햅쌀이 나오는 10월 말부터 저장된 쌀이 2월까지는 비교적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4월부터 서서히 쌀 가격이 상승하다가 여름 장마철과 9월 추수 직전까지 최고로 올라간다. 이 때 한국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 쌀이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가격이 급락할 때도 있으나 외부 지원량이 많지 않으므로 가격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도 한 해 황해남도의 쌀 가격 변동상황을 살펴보면, 2004년 1-2월경 350원대를 유지하다가 4월부터 400-450원으로 상승하였으며, 5-6월 들어 500-600원, 7-9월에는 최고 900원 선까지 올랐다가 10월 중순부터 400원대로 떨어졌다.
2) 겨울의 식량 단속
황해남도의 쌀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가을 수확철부터 다음 해 2-3월까지 집중 단속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이미 전한 바 있다(창간준비 4호). 황해남도의 쌀은 조선 인민군 후방총국(인민무력부 후방물자공급단위)에서 거두어 가고, 각 초소마다 무장 군인들을 2-3인 배치한다.
각 군 단위별로 초소가 한 개씩 있고, 해주시에는 기본 초소가 3개 있다. 황해남도에서도 쌀 수확량이 가장 많은 연안군, 배천군에는 해주시 보위부가 아니라 황해남도 보위부가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해주에서 연안과 배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장방 초소와 천태 초소는 전선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 완전무장을 갖춘 군인들이 지킨다.
군 보위부의 경우 1년 내내 고정된 사람들이라 협동농장 관리원장이나 부기장, 작업반장 등과 연계를 갖는 경우가 많다. 즉 이들이 쌀을 유출할 경우 일정한 분배를 받고 눈감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도 보위부가 들어오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속은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화물차로 2-3톤씩 실어 나르는 장사꾼들은 한 번 초소를 통과할 때마다 쌀 한 마대(50kg)를 도보위부 소속 단속원들에게 건네준다. 쌀은 그 자리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도 보위부원이 사는 집에 직접 운전수가 가져다주고, 이름을 알려주는 식이다. 몇 차례 이렇게 하면서 서로 거래가 계속되면 차후 현금이나 담배를 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2005년 평양 울림 운송 합영회사의 운영
평양 운림운송 합영회사
1) 개인 운송회사의 출현
2003년 4월부터 평양 보안성 산하 운림운송 합영회사에서 각 주요 도시간 장거리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은 열차가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경제난의 장기적 영향으로 전력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기차 운행도 계속 차질을 빚고 있다.
장사가 활발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이동수단에 대한 필요성은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식량난 전에도 기업소 단위의 화물차를 서비차로 이용했던 사례들은 있었지만, 경제난 시기 서비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서비차는 이동을 하려는 개인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교통수단이다.
이에 반해 평양 운림운송합영회사의 장거리 버스는 열차의 불안정한 운행을 보완해 줄 합법적인 운송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투자하고 운영, 조직, 관리하는 회사는 아니다. 국가의 승인 아래 개인 자본을 투입하여 중국 북경의 한 운송회사와 합영하여 건립한 것이다. 수입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게 되어있다.
국가가 운영해 온 각 주요 지역 여객사업소, 운송 여객사업소 등은 경제난 시기에 국가로부터 유류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공급이 끊어지면서 지금은 최소한의 운행만 하는 상태이다.
2) 버스 운행 지역
평양을 중심으로 신의주 방면, 해주 방면, 함흥 방면이 대표적이다. 각 방면에 직통으로 가는 버스는 아직 없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가려면 일단 향산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평양에서 해주 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평양에서 사리원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사리원에서 해주행 버스를 다시 갈아탄다.
․ 신의주 방면: 평양-향산, 향산-신의주
․ 해주 방면: 평양-사리원, 사리원-해주
․ 함흥 방면: 평양-원산, 원산-함흥
각 방면으로 가는 도중 중요 도시는 잠시 정차하여 승객을 갈아 태운다. 버스 정류장은 주로 기차역전을 이용한다. 역전은 기차 운행이 들쭉날쭉해서 기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이 상시적으로 대기하고 있어 승객 유치에 유리하다.
3) 분회사 운영
평양 낙랑구역 거리에 운림운송 합영회사 본사가 있고, 신의주, 해주, 함흥, 청진에 각 분사(분회사)가 있다. 다만 청진은 거리가 현저하게 멀어 다른 세 방면에 비해 연결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이다.
각 분회사는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분사장(분회사 사장), 회계를 맡은 부기, 버스표를 관리하는 출표원, 각 버스당 운전사․안내원 한 명씩, 자동차 기름과 각종 부속품 등을 조달해오는 보조성원들, 경비원, 식당 보모 등 기타 종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회사는 매달 평양 본사에 수입의 일부를 바치고, 인건비, 운행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분회사의 사장과 부기가 일정한 비율로 배분해 갖는다. 분회사 사장들은 평양 본사의 사장과 친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장과 부기를 제외한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는데 2급 운전사의 경우 한달 월급은 1,500원이고 안내원들은 800-900원 선이다.
버스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거의 폐차 직전의 중고차들이 대부분이다. 버스를 새로 들여올 경우 평양 본사에 대당 약 7천 달러를 낸다. 중국에서 실제 수입하는 가격은 4천 달러 미만이지만 평양 본사의 이익금을 덧붙인 가격이다.
평양 본사를 제외한 각 운림운송회사는 평양 본사에 매달 버스 한 대당 100만원을 납입해야 한다.
4) 해주-사리원간 버스 운행
해주 분회사는 총 세 대의 버스를 운용하고 있다. 오전 6시, 7시, 8시에 각각 사리원으로 출발했다가 오후 1시, 2시, 3시에 해주로 돌아온다. 해주-사리원간 버스 요금은 2,500원(2004년 4/4분기 기준)이다. 2003년 첫 운행 버스 요금은 600원이었으나 기름값 인상에 따라 요금 역시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버스의 좌석은 57인승이지만 승객은 거의 한 대당 100명 선을 유지한다. 승객이 많은 경우 120명까지 타는 경우도 있다. 승객의 90% 이상은 장사꾼들이다.
해주의 농산물을 사리원에 팔고 사리원에서 평양, 남포, 평성 등으로부터 들여오는 공업품을 사들여와 해주 시장에 파는 장사가 대부분이다.
해주-사리원 버스는 평양 운림운송회사 해주 분회사 소속 버스 외에 사리원 여객소와 평양 관광여객사업소에서 운용하는 버스가 한 대씩 다닌다. 버스 요금은 여객소마다 약 100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해주 분회사는 시간 엄수를 통해 다른 여객사업소에 비해 승객 점유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회사의 버스들이 폐차직전의 고물차이고, 도로 사정도 매우 좋지 않아 잦은 고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해주 분회사는 한 번 사리원에 가면 반드시 당일 해주로 돌아오는 것으로 원칙을 삼고 있다. 따라서 해주 승객들은 당일로 사리원에서 해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생각해 해주 분회사의 버스를 이용한다.
해주에서 사리원까지 버스비가 2,500원이면 서비차는 1,800-2,000원 선이다. 서비차는 화물차이기 때문에 손님을 끌기 위해서 요금이 더 저렴하다. 합법적으로 뛰는 버스보다 더 싸야 사람들이 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이 없거나 바쁜 사람들이 서비차를 타고 이왕이면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싶어 한다. 서비차는 무연탄, 시멘트 화물차들이 많아서 올라타면 석탄 가루나 시멘트 가루가 옷에 묻어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버스를 타려고 한다.
5) 소요시간 및 수익 분배
해주-사리원까지 가는데 보통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운전사들은 상시적으로 예비 타이어 2개, 삽, 곡괭이, 밧줄 등을 준비해 간다. 포장도로가 파손된 곳이 많아 직선으로 운전하지 못하고 대부분 곡예를 하듯 운전하게 된다.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엔진이 과열되어 멈춰 서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번 고장이 나면 그 자리에서 고치는 시간이 2-3시간 소요되어 가는 데만 4-5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하루 버스 한 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평균 50만 원 선이다. 하루 왕복에 승객 200명 선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스 세 대가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이 약 150만원 정도라면, 유류비, 자동차 부품비, 수리비 등으로 최소 30-40만원을 제하고 약 100만 원 이상의 이익이 남는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으므로 3천만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급 운전수의 월급이 1,500원이지만 국가에서 주는 쌀로 배급을 대신한다. 쌀 20kg에 1,200원을 제하고 세금이라고 경조사비 명목으로 떼고 각종 분담금 내고 당비로 50원을 제한다. 그러면 한달 일하고 나서 손에 쥐는 것은 쌀 20kg과 100원 정도 남는다.
따라서 사장과 부기를 제외한 기타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지출면에서 볼 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운전사와 안내원은 쌀 20kg와 100원 미만의 월급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에 운전사와 안내원은 자구책으로 승객의 인원수를 조정하는 방법을 쓴다. 만일 승객을 100명 태웠다면 80명 또는 90명으로 보고하고 나머지 요금을 운전사와 안내원이 2:1의 비율로 나눠 갖는 식이다.
■ 여성/어린이/교육
2월 황해남도 해주 주민들의 금바치기 운동(2005년)
해주 주민들의 삶
1) ‘충성의 금’ 바치기 운동
해주시의 매 기업소에 적을 둔 모든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1인당 금 1g 씩을 바쳐야 한다. 물론 형편에 따라 바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내지 못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해주에 청년 제련소라고 하는 금 제련소가 있다. 10월 13일 제련소라고도 한다. 금광에서 캐오는 금을 제련하는데 중앙당 39호실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어 하루도 가동이 멎어본 적이 없다. 노임 뿐 아니라 배급, 명절 공급도 나온다. 임금도 높아 제일 낮은 사람이 8,000원, 기능공은 16,000원이나 된다.
말단직 노동자들은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데 납 중독에 걸린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치료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은 직장에 돈을 내고 개인 사업을 하는데 직장에 내는 돈이 다른 기업소보다 비싸다.
2월 황해남도 해주 주민들의 사회 인식(2005년)
한국 및 중국에 대한 인식
① 한국 상품에 대한 인식
해주에선 한국 상품이 인기가 좋아 장사꾼들이 자기가 쓰려고 먼저 가져간다. 사리원은 해주보다 한국 상품이 더 많다. 사리원의 한국 물건은 남포항에서 들어오는 것이 많다. 중국 상품은 사도 금방 버리게 되는데 한국 물건은 질이 좋아 인기가 좋다.
한국 물품으로는 주로 의류제품이 많고 식료품도 있다. 식료품 중엔 라면도 들어온다. 한국 라면은 꼬부랑 국수라고 한다. 2004년도에 들어와 한국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물건을 감추거나 안전원들이 한국 물건을 판다고 잡아가는 일도 없다.
② 한국에 대한 인식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2000년 정상회담을 하고 금강산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미국과 남한이 북한을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황해도 주민들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을 보면서 한국 정부가 말로만 통일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북한이 한국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적절한 시기,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농사에 필요한 시기에 비료와 비닐을 지원해 주고, 쌀도 북한에서 제일 귀할 때 보내주어 진심으로 북한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느낀다.
③ 중국에 대한 인식
황해도의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심하다. 중국산 제품은 한국산에 비해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예전에 북한이 중국을 도와줬는데 중국은 북한을 돕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봄에 주어야 할 비료를 봄철이 지나 여름에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닐 박막도 농촌에서 한창 필요할 때는 주지 않고 여름에 준다. 그래서 지원이 진실하지 못하고 중국이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
군인들의 궁핍한 삶
군인들의 배급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다. 일반 주민들이 밤에는 군인들이 무서워서 나다니지 못할 정도이며 어느 물건을 도둑맞았으면 ‘군인들이 그랬겠지’라고 흔히 말한다. 군인들도 잘 먹지 못해서 키가 아주 작다. 징집 대상의 최소 신장을 2000년경에 145cm로 줄였다가 최근에는 140cm까지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