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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98호

■ 사건사고

어랑군, 도적질한 발전소 건설자재 무더기 적발

함경북도 어랑군 보안당국은 상부의 지시로 6월 15일부터 5일 동안 건설장 주변에서 음식장사를 하는 집들을 집중 단속했다. 주로 술과 음식을 파는 집들이었는데 약 20여 곳에서 시멘트 총 20여 톤, 철근 소재 1,000여 미터 등 건설자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발전소 건설장 인부들이 음식물이나 술과 맞바꾸려고 훔쳐 나온 자재들이었다. 어랑천건설 총지휘부에서는 돌격대 일군들을 불러다 “일주일이면 가능한 일도 한 달 내내 끌면서, 혁명자금으로 들여오는 건설 자재를 매일 도적질해서 부락에 나가 술과 음식을 바꿔먹고 있다”며 일은 안하고 도적질만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어랑군은 도당의 지도에 따라, 해당 인민반에 보안원을 한 명씩 파견해 “돌격대원들이 자재를 도적질해오더라도 받아주지 말라”는 내용으로 강습을 했다.

김책시 돌격대원들, 쥐약 먹고 죽은 개 먹고 사망

지난 6월 4일에는 김책시 돌격대원 4명이 술과 음식을 좀 얻어먹으려고 민가에 내려갔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길가에 중간 크기의 개 한 마리가 쓰러져있는 것을 보고, 잘됐구나 하고 구워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밤새 고통스러워하다가 2명이 결국 목숨을 잃고, 나머지 2명은 급히 병원에 실려 갔다. 검사 결과 쥐약 먹고 죽은 개를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해독 치료를 받은 2명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뇌 손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동료들은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쥐약 먹은 개까지 먹다가 이런 참변을 당하느냐며 개탄해마지 않았다.

■ 시선집중

초라한 청명 제사상에 주민들 한숨

올해 청명(4월 5일)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 주민들이 많았다. 해마다 청명이 되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성묘를 하는 것이 풍습인데,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제사 음식 마련을 못한 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벌써 조상들의 산소에 가 있어서, 청명 하루 전날에는 평소보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장사꾼들도 그날만큼은 벌이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시장 곳곳에서 오랜만에 흥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제수용품을 구입하러 온 사람들 중에 쉽게 돈을 건네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모두들 값을 물어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국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였다. 재작년 같았으면, 따뜻한 이밥에 명태나 낙지, 술, 돼지고기, 떡, 계란, 과일 중에 2-3가지라도 구색을 맞춰 제사상에 올렸을 텐데, 올해는 1-2가지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청진 수남 시장에서는 쌀이 kg당 1,800원에 거래됐고, 옥수수가 750원, 돼지고기는 kg당 5,500원, 계란은 1알에 400원, 사과는 kg에 3,500원이나 했다. 평성 시장에서는 쌀이 kg당 1,850원, 옥수수가 850원으로 수남 시장보다 100원씩 더 비쌌고, 다른 가격은 비슷했다. 하루 옥수수 값 벌이도 못하는 집들에서는 계란 1알을 사기도 벅찬 실정이었다.

신의주, 혜산, 회령, 온성, 무산 등 국경연선지역에서 제사 준비를 제대로 갖춘 집들은 대개 도강한 가족이 있거나 법관 일군들, 보따리 무역을 하는 돈주들로, 외화를 손에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들이다. 그 이외에 옥수수밥이나 먹고 사는 집들은 돼지고기 150g에 이면수 작은 것으로 1마리, 사과 3알, 계란 1알, 술 1병 등으로 간소하게 준비해 갔다. 이날만큼은 그래도 이밥 한 그릇이라도 구해서 두부 한 모, 콩나물 무침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룡호동에 살고 있는 최영림(가명)씨는 청명에 제사는 지냈는가 물어보니 술 1병 겨우 구해서 다녀왔다고 했다. 하루에 겨우 국수 2끼 먹는 처지에 죽을 싸들고 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송평구역에 사는 리선희(가명)씨는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팔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돼지고기를 제사상에 올리지 못했다고 했다. 청명 전날, 고기를 많이 팔아야 자신도 제사 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장사가 기대한 것보다 너무 안 됐다고 했다. 과일 장사를 하는 김미화(가명)씨도 리씨와 마찬가지로 제사음식을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안됐다고 했다. 재작년 같으면 사과나 배를 1kg씩 사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kg단위로 사가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사과 한 알, 아니면 2-3알정도 사가는 바람에 돈을 쥘 수가 없었다고 했다. 회령 주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농장원들은 청명 하루 전날, 옥수수를 5-6kg씩 싸들고 시내 시장에 나왔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겨우 새끼 이면수 1마리와 사과 1-2알, 돼지고기 200g 정도 바꿔오는 것이 전부였다. 시장마다 산소에 갈 준비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평소보다는 활기가 있었지만, 제수용품 매대들 마다 구경꾼만 넘쳐날 뿐 사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수북동에 사는 주영란(가명)씨는 평소 자기가 아끼느라고 입지 않고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제일 좋은 옷을 중고 매대에 팔고, 그 돈으로 쌀 500g과 이면수 1마리, 그리고 계란 2알을 샀다고 했다. 주씨는 “평소에 풍족하게 먹지는 못해도, 청명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조상 음식 준비는 잘 한다고 자부했던 사람이다. 작년부터 장사할 거리가 떨어져 사는 게 바빠지더니 올해도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 조상들 볼 면목이 없다. 나뿐만이 아니고, 점점 날이 갈수록 인민 생활이 떨어지다나니 이번 청명때 제사 준비도 못해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고 우울해했다.

“두 사람 이상 식사하지도 말고, 장시간 말하지 말라”

국내 통제 분위기는 더 강화되고 있다. 4월 현재, “두 사람 이상씩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장시간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전국에 내려졌다. 인민반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강습을 받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교양을 받은 간부들조차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 간다”며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괜히 말 한 마디 잘 못했다가 보안서나 보위부에 끌려가 심한 매를 맞고 나오거나 단련대에 보내지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것도 말조심을 하게 되는 이유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몇 번씩 생각하고 말하게 되고, 친한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가도 조그만 기척에도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다. 이번에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국내 정세와 관련해 여러 조치들이 내려졌는데, 모두 국내 질서와 주민에 대한 통제 사항들이었다. 그 내용 중에는 지난 2008년 청진 시장에서 발생했던 집단 항의 사건의 경위와 진압 과정을 소개한 것도 있다. 청진시에서는 지난 2008년 3월 4일, 청진 수남 시장 등 각 구역관리소에 45세 미만 여성들에 대한 장마당 장사 금지령으로 생활난을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몰려나와 집단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줄 쌀이 없으면 장사를 하게 해 달라”며 오후 1시부터 모여든 여성들의 기세가 워낙 험악해 당시 보안서나 시당국에서는 쩔쩔 매다가 한시적이지만 나이 제한을 없애고, 장사를 하도록 허용했었다. 당시 보안당국에서는 사태 확산을 우려해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그때의 사건은 중앙당의 개입으로 훌륭하게 조기 진압한 사건으로 윤색되어 전국 보위부에 학습 자료로 전달되었다. 당시 여성 상인들의 집단 항의는 “근년에 있은 최대 반혁명적 폭동 사건”으로 규정됐다. 학습 자료를 살펴보면, “이때 청진시에서 중앙당의 허락도 없이 시장 운영을 다시 허락하라는 폭동배들과 타협하는 사건이 일어났기에 중앙당에서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보위부에서 강하게 진압해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 함경북도 관내 지역의 모든 보안서와 규찰대들도 동원 태세에 돌입해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청진 시장에서 여성들 사이에 반항하는 분위기가 번지려고 하자, 맨 앞에서 떠들던 주요 선동자 47명을 진압해 체포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들은 모두 엄중 처벌했다. 이후 청진 시장은 다시 조용해졌다”는 식으로 당시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각 지역 보위부와 보안서 등 보안당국에서는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 무조건 강제 진압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3년도 더 지난 사건을 재차 비중 있게 소개하는 것은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느냐며, 현재 국내 사회 분위기는 통제 강화로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간부들이나 주민들이 똑같이 들려주는 얘기다.

남포 영예군인공장, 부업지 농사에 최선

남포시 영예군인공장 일군들은 부업지 농사만이 노동자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부업 농사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 60여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햇감자와 보리 심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5-6월 식량사정이 최악에 치달을 것으로 보고, 6월 중순부터 감자나 보리를 조기 수확해 배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단 노동자 한 명당 씨감자를 30kg씩 심고 가꾸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러나 영예군인들은 부업지 농사보다는 당장 다가오는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 공급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는 형편이다. 비료와 농약 등이 없는 상황에서 부업지 농사가 얼마나 잘 될까 의문이기도 하거니와 조선인민군 창건기념일에 설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물론 사람마다 “지난 1월과 2월 명절에도 아무 것도 못 받았는데, 이번에도 못 받을 것이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대군인들에게 군 창건일에도 안 주겠는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래도 주었으면 하는 바람 쪽이 더 크다. 해마다 시인민위원회에서는 4월 25일이 되면, 영예군인들 세대에 약간의 쌀을 비롯해 콩기름과 사탕(설탕), 과자 등을 공급해주었다.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시들어갑니다”

평안남도 남포시에서는 지난 2월 16일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영예군인 일용품공장 정문에 “혁명의 꽃은 계속 피워야 합니다”라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말씀이 있는데, 그 밑에 누군가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계속 시들어갑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하필 2월 16일 명절에 벌어진 일이라 공장 보위부에서는 당장 모든 노동자들을 소집해 일일이 심문 조사를 벌였다. 필체 대조도 하고, 시간대별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답변이 조금만 이상해도 다시 묻고,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같이 있었다는 사람을 불러와 대질 심문을 벌이기도 했다. 며칠을 그렇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야단스럽게 조사를 했지만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시일이 흐르면서 어느새 없었던 일처럼 묻혔고, 공장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장 노동자 중의 한 사람이 했다는 물증도 없고 확증도 없는데 괜히 애꿎은 사람들만 괴롭히다가 누군가 재수 없게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놓여났기 때문이다. 공장 일군들과 간부들도 남모르게 한숨을 돌렸다. 검열이라도 붙으면 몇 달 내내 고생할 게 뻔한데, 다행히 일찍 마무리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을 전부 불러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우리 공장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들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자체적으로 비판 대회를 두어 번 열고 지나갔다.

영예군인 노동자들은 “혁명의 꽃이 시들어간다”는 말이 누군지 몰라도 자신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수군거리고 있다. 이 공장 역시 4월 현재까지 식량 배급이 끊어진 상태이고, 월급도 당연히 나오지 않은지 오래됐다. 영예군인들 대부분 신체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어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매우 벅찬 상태이다. 마땅한 부업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11월부터 이 공장에서 굶어죽는 세대가 나타나기 시작해 올 겨울에 10명 안팎의 노동자가 굶어 죽었다. 죽은 노동자들은 대개 옥수수 묵지가루 죽으로 연명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이 공장에 다니는 김희철(가명)씨는 “가장 분통이 터지는 것은 우리들에게까지 희천발전소 과제물을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과제 부담을 고통스러워했다. 남포시 인민위원회에서 영예군인들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건설 과제를 부담 지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가 허리 다치고 손 잘리고, 다리 부러져서 이 지경이 된 것 아니냐. 우리 같이 몸도 성치 않은 사람들의 생활을 돌봐주지는 못할망정 계속 가져가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는 것이 김씨와 그 동료들의 생각이다.

남포시 항구구역 후포동에 사는 박혜란(가명)씨는 남편이 허리를 다쳐서 제대한 뒤 영예군인 일용품공장에 나가다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 12월부터 하루 두 끼를 죽으로 먹고 있는데, 그나마도 올해는 하루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있다며 식량난을 호소했다. 밑천이 없어 장사도 못 나가는 형편에 그나마 입에 풀칠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집의 유일한 재산인 재봉기 덕분이라고 했다. 하루 온종일 삯바느질을 하면 보통 600-800원 벌이는 된다고 했다. 몸이 고되더라도 일감이 많으면 그래도 신이 날 텐데, 일감이 없을 때가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게다가 남편이 허리통증으로 날마다 끙끙 앓는 형편이라 약을 사 먹여야 하는데, 죽물만 먹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다보니 올해 2월부터는 전신마비 증세까지 보여 수심이 깊다. 어제부터는 공장 일군들을 찾아다니며 도와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선뜻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포 시당의 한 간부는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계속 시들어갑니다’라는 말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예군인 노동자들만 그렇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누군가 대신 표현해주었을 뿐이다. 누구를 잡아들여도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또 누군가 비슷한 낙서를 할 것이다. 지금은 식량 한 톨이라도 배급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평양 시민들, “된장, 간장만이라도 달라”아우성

평양시에서는 원료부족으로 2월부터 4월 현재까지 된장과 간장 등 기초식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락랑구역에 사는 인민반 반장 김정화(가명)씨는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된장, 간장만이라도 달라”고 아우성이라고 인민반의 분위기를 전한다. 만경대구역 당상1동에 사는 리춘실(가명)씨는 “식량 배급은 못 줘도, 간장과 된장까지 못 주는 게 말이 안 된다. 다른 데는 몰라도 평양만큼은 공급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기초식품공장들마다 자금난, 원료난, 전력난 등으로 생산이 부진하기는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평양만큼은 가동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평양 주민들의 생각이다. 가뜩이나 1월부터 식량 배급이 끊긴 뒤, 9월까지 자체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지시만 거듭 내려오는 마당에 기초식품 공급 중단은 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집마다 최소 6개월 분량의 식량을 비축해두고 있어 당장은 어렵지 않다 해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주민들로선 그동안 사먹지 않아도 되었던 간장과 된장까지 사먹어야 하는 현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함흥시 주민들의 사정도 평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함흥시 기초식품공장은 2009년에 공장을 개건한 뒤 작년 10월까지는 그럭저럭 각종 식품들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원료를 구하지 못하면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 현재까지 이 공장도 멎어있는 상태이다. 이 공장의 한 일군은 생산 중단에 대해 “된장과 간장의 주원료인 콩과 소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에 농사가 잘 안 돼 식량 배급도 못 주는 형편에 된장을 만들 콩과 옥수수가 어디 있었겠느냐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함경남도 염전은 물론이고, 함경북도 염전들도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회상구역 회상1동에 사는 금철룡(가명)씨는 된장과 간장 공급을 못 받게 되자, 작년 12월부터 시장에서 소금을 사다가 국을 끓여먹고 있다고 했다. 된장국을 먹고 싶어도 소금국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살림살이에 좀 여유가 생기면 콩을 사서 메주를 쑤어 된장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좋겠지만, 당장 입에 넣을 곡물도 없는 마당에 된장까지 만들어 먹는 것은 사치라고 했다. 반면 함흥에서 알아주는 돈주들이나 법관, 무역일군, 간부들은 된장과 간장을 공급해준다고 해도 받지 않는다. 위생관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의심스럽고, 맛도 없기 때문에 콩을 사다가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 1년 된장과 간장을 미리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 집들이 부자 소리를 듣는 이유이다. 전통음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된장 하나에 빈부의 차이가 가름 나는 실정이다.

광물자원 팔아 식량 수입

2월 16일 이후 광물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약 300척 되는 북한의 화물 선박 가운데 200여 척이 중국과 북한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국내 식량 수입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북한의 각종 광물들을 중국에 실어 나르고, 돌아올 때는 옥수수, 밀가루 등 곡물과 라면, 각종 식품류를 실어 오고 있다. 중국에서 아직 식량 수출이 허락된 것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광물 값을 식량으로 최대한 지불해달라는 북한 측의 요구를 수렴하는 분위기다. 광물을 수출하는 회사와 기관들마다 당장의 어려움은 피할 수 있게 됐다며 반가워한다. 이렇게 식량이 들어오면서 일군들과 간부들의 배급은 일부 해갈되었으나 일반 노동자들의 식량 배급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측과 협상이 잘 안 돼 광물 수출 대가로 식량이나 식품을 받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수입된 식량의 일부가 시장에 풀리면서 쌀 가격 하락에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 “올 9월까지 식량 자체 해결하라”

평양에서는 올해 9월까지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평양 주민들은 “9월까지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는 소리는 곧 9월까지 배급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평양도 배급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소문이 어느덧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명절에도 간부급에게만 일부 공급이 이뤄졌을 뿐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4월 15일 명절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위대하신 수령님의 아흔아홉 돌 생신을 맞는데도 설마 그냥 넘어가겠느냐는 희망이다. 한편, 평양의 쌀 가격은 2월 16일 명절을 기점으로 kg당 1,600원대를 유지하다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해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는 2,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4월 현재 2,100원인데, 1년 6개월 전 화폐 개혁 때보다 100배 이상 인상된 가격이라 일반 시민들이 구입하기에는 매우 비싼 가격이다. 4.15명절을 앞두고, 무역회사들이 부지런히 식량을 사들여오고 있어 시장 가격이 다소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것도 평양 주민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 식량소식

평양, “올 9월까지 식량 자체 해결하라”

평양 3-4월 초 곡물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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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0 | 3/20 |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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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북한 원/kg) | 1,600 | 2,000 | 2,100

옥수수(북한 원/kg) | 800 | 1,000 | 1,100

위안화(북한 원/ 위안) | 410 | 350 | 400

달러(북한 원/달러) | 2,700 | 2,345 | 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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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는 올해 9월까지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평양 주민들은 “9월까지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는 소리는 곧 9월까지 배급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평양도 배급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소문이 어느덧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명절에도 간부급에게만 일부 공급이 이뤄졌을 뿐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4월 15일 명절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위대하신 수령님의 아흔아홉 돌 생신을 맞는데도 설마 그냥 넘어가겠느냐는 희망이다. 한편, 평양의 쌀 가격은 2월 16일 명절을 기점으로 kg당 1,600원대를 유지하다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해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는 2,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4월 현재 2,100원인데, 1년 6개월 전 화폐 개혁 때보다 100배 이상 인상된 가격이라 일반 시민들이 구입하기에는 매우 비싼 가격이다. 4.15명절을 앞두고, 무역회사들이 부지런히 식량을 사들여오고 있어 시장 가격이 다소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것도 평양 주민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평양 시민들, “된장, 간장만이라도 달라”아우성

평양시에서는 원료부족으로 2월부터 4월 현재까지 된장과 간장 등 기초식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락랑구역에 사는 인민반 반장 김정화(가명)씨는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된장, 간장만이라도 달라”고 아우성이라고 인민반의 분위기를 전한다. 만경대구역 당상1동에 사는 리춘실(가명)씨는 “식량 배급은 못 줘도, 간장과 된장까지 못 주는 게 말이 안 된다. 다른 데는 몰라도 평양만큼은 공급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기초식품공장들마다 자금난, 원료난, 전력난 등으로 생산이 부진하기는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평양만큼은 가동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평양 주민들의 생각이다. 가뜩이나 1월부터 식량 배급이 끊긴 뒤, 9월까지 자체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지시만 거듭 내려오는 마당에 기초식품 공급 중단은 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집마다 최소 6개월 분량의 식량을 비축해두고 있어 당장은 어렵지 않다 해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주민들로선 그동안 사먹지 않아도 되었던 간장과 된장까지 사먹어야 하는 현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함흥시 주민들의 사정도 평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함흥시 기초식품공장은 2009년에 공장을 개건한 뒤 작년 10월까지는 그럭저럭 각종 식품들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원료를 구하지 못하면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 현재까지 이 공장도 멎어있는 상태이다. 이 공장의 한 일군은 생산 중단에 대해 “된장과 간장의 주원료인 콩과 소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에 농사가 잘 안 돼 식량 배급도 못 주는 형편에 된장을 만들 콩과 옥수수가 어디 있었겠느냐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함경남도 염전은 물론이고, 함경북도 염전들도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회상구역 회상1동에 사는 금철룡(가명)씨는 된장과 간장 공급을 못 받게 되자, 작년 12월부터 시장에서 소금을 사다가 국을 끓여먹고 있다고 했다. 된장국을 먹고 싶어도 소금국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살림살이에 좀 여유가 생기면 콩을 사서 메주를 쑤어 된장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좋겠지만, 당장 입에 넣을 곡물도 없는 마당에 된장까지 만들어 먹는 것은 사치라고 했다. 반면 함흥에서 알아주는 돈주들이나 법관, 무역일군, 간부들은 된장과 간장을 공급해준다고 해도 받지 않는다. 위생관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의심스럽고, 맛도 없기 때문에 콩을 사다가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 1년 된장과 간장을 미리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 집들이 부자 소리를 듣는 이유이다. 전통음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된장 하나에 빈부의 차이가 가름 나는 실정이다.

광물자원 팔아 식량 수입

2월 16일 이후 광물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약 300척 되는 북한의 화물 선박 가운데 200여 척이 중국과 북한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국내 식량 수입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북한의 각종 광물들을 중국에 실어 나르고, 돌아올 때는 옥수수, 밀가루 등 곡물과 라면, 각종 식품류를 실어 오고 있다. 중국에서 아직 식량 수출이 허락된 것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광물 값을 식량으로 최대한 지불해달라는 북한 측의 요구를 수렴하는 분위기다. 광물을 수출하는 회사와 기관들마다 당장의 어려움은 피할 수 있게 됐다며 반가워한다. 이렇게 식량이 들어오면서 일군들과 간부들의 배급은 일부 해갈되었으나 일반 노동자들의 식량 배급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측과 협상이 잘 안 돼 광물 수출 대가로 식량이나 식품을 받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수입된 식량의 일부가 시장에 풀리면서 쌀 가격 하락에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회

초라한 청명 제사상에 주민들 한숨

올해 청명(4월 5일)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 주민들이 많았다. 해마다 청명이 되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성묘를 하는 것이 풍습인데,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제사 음식 마련을 못한 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벌써 조상들의 산소에 가 있어서, 청명 하루 전날에는 평소보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장사꾼들도 그날만큼은 벌이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시장 곳곳에서 오랜만에 흥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제수용품을 구입하러 온 사람들 중에 쉽게 돈을 건네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모두들 값을 물어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국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였다. 재작년 같았으면, 따뜻한 이밥에 명태나 낙지, 술, 돼지고기, 떡, 계란, 과일 중에 2-3가지라도 구색을 맞춰 제사상에 올렸을 텐데, 올해는 1-2가지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청진 수남 시장에서는 쌀이 kg당 1,800원에 거래됐고, 옥수수가 750원, 돼지고기는 kg당 5,500원, 계란은 1알에 400원, 사과는 kg에 3,500원이나 했다. 평성 시장에서는 쌀이 kg당 1,850원, 옥수수가 850원으로 수남 시장보다 100원씩 더 비쌌고, 다른 가격은 비슷했다. 하루 옥수수 값 벌이도 못하는 집들에서는 계란 1알을 사기도 벅찬 실정이었다. 신의주, 혜산, 회령, 온성, 무산 등 국경연선지역에서 제사 준비를 제대로 갖춘 집들은 대개 도강한 가족이 있거나 법관 일군들, 보따리 무역을 하는 돈주들로, 외화를 손에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들이다. 그 이외에 옥수수밥이나 먹고 사는 집들은 돼지고기 150g에 이면수 작은 것으로 1마리, 사과 3알, 계란 1알, 술 1병 등으로 간소하게 준비해 갔다. 이날만큼은 그래도 이밥 한 그릇이라도 구해서 두부 한 모, 콩나물 무침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룡호동에 살고 있는 최영림(가명)씨는 청명에 제사는 지냈는가 물어보니 술 1병 겨우 구해서 다녀왔다고 했다. 하루에 겨우 국수 2끼 먹는 처지에 죽을 싸들고 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송평구역에 사는 리선희(가명)씨는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팔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돼지고기를 제사상에 올리지 못했다고 했다. 청명 전날, 고기를 많이 팔아야 자신도 제사 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장사가 기대한 것보다 너무 안 됐다고 했다. 과일 장사를 하는 김미화(가명)씨도 리씨와 마찬가지로 제사음식을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안됐다고 했다. 재작년 같으면 사과나 배를 1kg씩 사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kg단위로 사가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사과 한 알, 아니면 2-3알정도 사가는 바람에 돈을 쥘 수가 없었다고 했다. 회령 주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농장원들은 청명 하루 전날, 옥수수를 5-6kg씩 싸들고 시내 시장에 나왔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겨우 새끼 이면수 1마리와 사과 1-2알, 돼지고기 200g 정도 바꿔오는 것이 전부였다. 시장마다 산소에 갈 준비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평소보다는 활기가 있었지만, 제수용품 매대들 마다 구경꾼만 넘쳐날 뿐 사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수북동에 사는 주영란(가명)씨는 평소 자기가 아끼느라고 입지 않고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제일 좋은 옷을 중고 매대에 팔고, 그 돈으로 쌀 500g과 이면수 1마리, 그리고 계란 2알을 샀다고 했다. 주씨는 “평소에 풍족하게 먹지는 못해도, 청명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조상 음식 준비는 잘 한다고 자부했던 사람이다. 작년부터 장사할 거리가 떨어져 사는 게 바빠지더니 올해도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 조상들 볼 면목이 없다. 나뿐만이 아니고, 점점 날이 갈수록 인민 생활이 떨어지다나니 이번 청명때 제사 준비도 못해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고 우울해했다.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시들어갑니다”

평안남도 남포시에서는 지난 2월 16일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영예군인 일용품공장 정문에 “혁명의 꽃은 계속 피워야 합니다”라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말씀이 있는데, 그 밑에 누군가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계속 시들어갑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하필 2월 16일 명절에 벌어진 일이라 공장 보위부에서는 당장 모든 노동자들을 소집해 일일이 심문 조사를 벌였다. 필체 대조도 하고, 시간대별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답변이 조금만 이상해도 다시 묻고,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같이 있었다는 사람을 불러와 대질 심문을 벌이기도 했다. 며칠을 그렇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야단스럽게 조사를 했지만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시일이 흐르면서 어느새 없었던 일처럼 묻혔고, 공장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장 노동자 중의 한 사람이 했다는 물증도 없고 확증도 없는데 괜히 애꿎은 사람들만 괴롭히다가 누군가 재수 없게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놓여났기 때문이다. 공장 일군들과 간부들도 남모르게 한숨을 돌렸다. 검열이라도 붙으면 몇 달 내내 고생할 게 뻔한데, 다행히 일찍 마무리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을 전부 불러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우리 공장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들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자체적으로 비판 대회를 두어 번 열고 지나갔다. 영예군인 노동자들은 “혁명의 꽃이 시들어간다”는 말이 누군지 몰라도 자신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수군거리고 있다. 이 공장 역시 4월 현재까지 식량 배급이 끊어진 상태이고, 월급도 당연히 나오지 않은지 오래됐다. 영예군인들 대부분 신체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어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는 매우 벅찬 상태이다. 마땅한 부업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11월부터 이 공장에서 굶어죽는 세대가 나타나기 시작해 올 겨울에 10명 안팎의 노동자가 굶어 죽었다. 죽은 노동자들은 대개 옥수수 묵지가루 죽으로 연명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이 공장에 다니는 김희철(가명)씨는 “가장 분통이 터지는 것은 우리들에게까지 희천발전소 과제물을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과제 부담을 고통스러워했다. 남포시 인민위원회에서 영예군인들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건설 과제를 부담 지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가 허리 다치고 손 잘리고, 다리 부러져서 이 지경이 된 것 아니냐. 우리 같이 몸도 성치 않은 사람들의 생활을 돌봐주지는 못할망정 계속 가져가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는 것이 김씨와 그 동료들의 생각이다. 남포시 항구구역 후포동에 사는 박혜란(가명)씨는 남편이 허리를 다쳐서 제대한 뒤 영예군인 일용품공장에 나가다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 12월부터 하루 두 끼를 죽으로 먹고 있는데, 그나마도 올해는 하루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있다며 식량난을 호소했다. 밑천이 없어 장사도 못 나가는 형편에 그나마 입에 풀칠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집의 유일한 재산인 재봉기 덕분이라고 했다. 하루 온종일 삯바느질을 하면 보통 600-800원 벌이는 된다고 했다. 몸이 고되더라도 일감이 많으면 그래도 신이 날 텐데, 일감이 없을 때가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게다가 남편이 허리통증으로 날마다 끙끙 앓는 형편이라 약을 사 먹여야 하는데, 죽물만 먹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다보니 올해 2월부터는 전신마비 증세까지 보여 수심이 깊다. 어제부터는 공장 일군들을 찾아다니며 도와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선뜻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포 시당의 한 간부는 “‘혁명의 꽃은 먹을 것이 없어 계속 시들어갑니다’라는 말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예군인 노동자들만 그렇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누군가 대신 표현해주었을 뿐이다. 누구를 잡아들여도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또 누군가 비슷한 낙서를 할 것이다. 지금은 식량 한 톨이라도 배급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 정치생활

“두 사람 이상 식사하지도 말고, 장시간 말하지 말라”

국내 통제 분위기는 더 강화되고 있다. 4월 현재, “두 사람 이상씩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장시간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전국에 내려졌다. 인민반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강습을 받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교양을 받은 간부들조차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 간다”며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괜히 말 한 마디 잘 못했다가 보안서나 보위부에 끌려가 심한 매를 맞고 나오거나 단련대에 보내지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것도 말조심을 하게 되는 이유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몇 번씩 생각하고 말하게 되고, 친한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가도 조그만 기척에도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다.

이번에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국내 정세와 관련해 여러 조치들이 내려졌는데, 모두 국내 질서와 주민에 대한 통제 사항들이었다. 그 내용 중에는 지난 2008년 청진 시장에서 발생했던 집단 항의 사건의 경위와 진압 과정을 소개한 것도 있다. 청진시에서는 지난 2008년 3월 4일, 청진 수남 시장 등 각 구역관리소에 45세 미만 여성들에 대한 장마당 장사 금지령으로 생활난을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몰려나와 집단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줄 쌀이 없으면 장사를 하게 해 달라”며 오후 1시부터 모여든 여성들의 기세가 워낙 험악해 당시 보안서나 시당국에서는 쩔쩔 매다가 한시적이지만 나이 제한을 없애고, 장사를 하도록 허용했었다. 당시 보안당국에서는 사태 확산을 우려해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그때의 사건은 중앙당의 개입으로 훌륭하게 조기 진압한 사건으로 윤색되어 전국 보위부에 학습 자료로 전달되었다. 당시 여성 상인들의 집단 항의는 “근년에 있은 최대 반혁명적 폭동 사건”으로 규정됐다. 학습 자료를 살펴보면, “이때 청진시에서 중앙당의 허락도 없이 시장 운영을 다시 허락하라는 폭동배들과 타협하는 사건이 일어났기에 중앙당에서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보위부에서 강하게 진압해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 함경북도 관내 지역의 모든 보안서와 규찰대들도 동원 태세에 돌입해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청진 시장에서 여성들 사이에 반항하는 분위기가 번지려고 하자, 맨 앞에서 떠들던 주요 선동자 47명을 진압해 체포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들은 모두 엄중 처벌했다. 이후 청진 시장은 다시 조용해졌다”는 식으로 당시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각 지역 보위부와 보안서 등 보안당국에서는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 무조건 강제 진압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3년도 더 지난 사건을 재차 비중 있게 소개하는 것은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느냐며, 현재 국내 사회 분위기는 통제 강화로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간부들이나 주민들이 똑같이 들려주는 얘기다.

■ 경제활동

남포 영예군인공장, 부업지 농사에 최선

남포시 영예군인공장 일군들은 부업지 농사만이 노동자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부업 농사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 60여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햇감자와 보리 심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5-6월 식량사정이 최악에 치달을 것으로 보고, 6월 중순부터 감자나 보리를 조기 수확해 배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단 노동자 한 명당 씨감자를 30kg씩 심고 가꾸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러나 영예군인들은 부업지 농사보다는 당장 다가오는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 공급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는 형편이다. 비료와 농약 등이 없는 상황에서 부업지 농사가 얼마나 잘 될까 의문이기도 하거니와 조선인민군 창건기념일에 설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물론 사람마다 “지난 1월과 2월 명절에도 아무 것도 못 받았는데, 이번에도 못 받을 것이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대군인들에게 군 창건일에도 안 주겠는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래도 주었으면 하는 바람 쪽이 더 크다. 해마다 시인민위원회에서는 4월 25일이 되면, 영예군인들 세대에 약간의 쌀을 비롯해 콩기름과 사탕(설탕), 과자 등을 공급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