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한국 전화기 사용자 아내에 연좌제 적용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에 사는 한경희(가명)씨는 지난 해 큰 고초를 치렀다. 남편이 작년 8월에 한국 전화기를 사용하다가 전파탐지국 검열조사에 걸려든 탓이다. 다행히 남편은 재빨리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한씨를 곧 잡아들였다. 몇 달 동안 강도 높은 심문 조사가 이어졌다. 남편이 한국전화기로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와 연락해왔는지, 돈은 어떻게 받았는지 등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한씨는 세대주가 자신과 상의하는 법이 없었기에 들은 바가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집에 어린 아이 둘과 연로하신 모친이 계시니 풀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세대주의 일에 아무리 상관을 안 한다고 해도, 한국 전화기 사용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 신고하지 않았으므로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며 교화형을 내렸다. 한씨는 “한국 전화기인지, 중국 전화기인지 내가 어떻게 구별하느냐.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교화소로 직행했다. 보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 한씨가 운 좋게 석방된다고 해도, 최우선 감시 대상에 들어간다고 했다. 남편이 언제고 한씨에게 접촉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전화 연락을 하다가 걸리면, 그때는 안쪽으로 가차 없이 추방될 것이라고 했다.
여자 행인들, 성적(性的) 괴롭힘 호소
각 초소들마다 검열을 세부적으로 치밀하게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만약 도강 의심이 든다 싶으면 초소 구류실 안에 며칠씩 가두고 심문을 벌인다. 꼬투리가 잡힌 사람은 일단 청진 여행자 집결소에 보내졌다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젊은 여성들은 별 이유 없이 며칠씩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어머니 대신 장사할 물건을 받으러 회령으로 떠났다가 고무산 초소에서 걸린 김선화(가명)씨는 “처녀가 어디 혼자 다니느냐, 중국에 팔려가는 거 아니냐, 한족한테 시집가느냐며 밤낮없이 괴롭히는데,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들으니 몸을 허락하기 전에는 초소에서 놓여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더라. 나같이 험한 꼴 당하는 여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들었다”며 성폭행을 증언했다. 김씨는 “녀자로 태어난 게 이 나라에서는 큰 죄”라며 울분을 토했다.
여행증명서를 소지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약단속을 명분으로 단속해서 거덜 내는 악명 높은 초소들도 많다. 소지품과 짐 꾸러미를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벗겨 세세하게 검사한다. 마약운반이 의심될 때는 여자들도 단속실에 끌고 가 강제로 옷을 벗긴다. 마약을 몸속에 감추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하지만, 여자들의 수치심을 자극한다. “남자들도 아랫도리 속옷까지 다 벗기는데 여자들이라고 봐줬다가는 여자들이 마약 운반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 마약을 단속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곳 초소 담당자의 생각이다. 마약을 소지하지도 않았는데 낯선 남자들 앞에서 강제로 옷을 벗어야 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없다. 이런 중에도 돈벌이는 은밀히 진행된다. 짐 검열을 하다가 값비싼 물건이 나오면 빼앗는 것이 다반사다. 안쪽 지방에서 온 사람일수록 물건을 빼앗겨도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없다. 억울하더라도 통과비라 생각하고 그냥 당하고 만다.
악명 높은 금동1반 보위사령부 초소
회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초소 3개 중에 가장 악명을 떨치는 초소는 금동1반에 있는 보위사령부 초소이다. 2009년도에 유선동 인민병원 초급당비서와 원장 등 60여 명이 줄줄이 간첩사건으로 체포된 것도 이 초소에서 만년필 비디오카메라를 소지한 간호원을 적발하면서였다. 이 사건으로 회령시 주요 행정일군들 30여 명이 해임, 철직되는 것은 물론 농장원으로 강등되거나 명백한 간첩죄로 드러난 사람은 22호 정치범관리소 닫힌 구역에 이송되기도 했다. 당시 후폭풍이 거세서 전국적으로 간첩 경계령이 내려졌고, 회령시당 일군들이 대거 물갈이되기도 했다. 당시 중앙당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으로 간 탈북자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집들은 2011년까지 무조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이때부터 주민 료해사업이 시작됐는데, “최대한 탈북자 세대를 조사 장악하고, 남조선에 간 탈북자들과 손전화로 거래를 하는 자, 정치적 색채를 띠는 기미를 보이는 세대들을 면밀히 살펴 사회 주민 지역에서 숙청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북반부 최대간첩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이 사건 이후, 금동1반 보위사령부 초소는 또다시 큰 공로를 세우겠다며 그 어느 초소보다 단속을 심하게 한다. 검열원들은 주로 보위사령부 소속 하전사들인데, 주민들은 이 초소를 지나가기가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단속에 걸릴만한 물건이 없는 사람조차 소름끼친다고 말할 정도이다. 특히 여성들의 고초가 심하다. 몸에 서슴지 않고 손을 대는 단속원들 때문이다. 청진에서 회령까지 버스로 3시간이면 갈 거리를 이렇게 초소마다 모든 승객들이 일일이 검열을 받고 나면 보통 6시간이 넘고 만다. 한 초소에서 보통 1시간 이상씩 소요된다.
단속 피해 산길로 다녀
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보안원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엔 차라리 중국으로 도강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최근 주민 동향을 전했다. 보안당국에서는 내륙지방에서 국경지역으로 들어가는 관문과 길목마다 초소들을 가능한 촘촘하게 배치하고 있다. 청진에서 회령까지 버스로 3-4시간 걸리는데, 도중에 3개의 단속 초소를 만나게 된다. 고무산 초소에는 부령군 보안서와 9군단 보위소대 초소가 있고, 회령 풍산리에는 회령시보위부가, 금동1반에는 보위사령부가 검열 단속한다. 출장증명서, 여행증명서, 공민증 등 이동허가증이 없으면 국경지역에 들어갈 수 없게 단속을 더 강화한 것이다.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조석훈(가명)씨는 함경북도 무산에 큰 형님이 사시는데 올해 환갑을 맞이해 다녀오고 싶다고 여행증명서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상급당에서 국경지역 여행증명서는 발급하지 않는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담당 보안원과 보위부원 등을 찾아가 뇌물을 바쳐가며 큰형님 환갑 사실을 승인받았는데도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단속경계령이 강화된 요즘 법 일군들도 가능한 몸을 사리고 있어서다. 작년에 비해 검문검색이 한층 강화되자, 여행증명서가 없는 안쪽 주민들은 산길을 둘러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청진에서 회령으로 갈 때 일단 고무산까지 차를 타고 들어간다. 단속 초소를 만나기 전에 내려서 회령까지 산길을 헤치며 150리길을 걸어간다.
“보위부원 괴롭힘, 너무 지나쳐”
중앙당에서는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다고 해도 연좌제를 섣불리 적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일선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탈북자 세대 감시 자체가 돈벌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 한 게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들쑤시면 뭐든 나오게 돼있다. 죄 지은 게 없어도, 가족 하나가 탈북 했다면 그 집은 돈벌이 대상”이라는 게 보위부원들의 얘기다. 더군다나 탈북가족이 남조선으로 간 사실이 확인되면, 말 그대로 평생 돈벌이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건이 달라는 대로 안 주면, 언제든 호출해서 괴롭히는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반 주민들이 보기에도, 탈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날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회령시 남문동에 거주하는 백순영(가명)씨는 “탈북한 가족과 아무 련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붙들어다가 얼마나 괴롭히는지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우리 인민반에 한 집은 살림살이를 탈탈 털리다 못해 나중에는 집까지 뺏기더라. 완전히 꽃제비 신세가 됐다. 보기만 해도 불쌍하다”고 했다. 일부 보위부원들의 도를 넘는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집을 버리고 타지로 떠나려다가 붙잡힌 가족들도 있다. 보위부원 피해 달아나려던 것인데, 탈북혐의가 씌워지는 경우도 있다. 탈북자 가족이 보내준 돈으로 달아나려 했다는 죄목이다. 탈북한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집들이 보위부원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탈북자 세대 이주 사업, 일단 중지
국경연선지역에서는 최근 탈북자 세대 이주 작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지난 2009년 11월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동 간첩사건을 계기로,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으면 안쪽 지방으로 이주시키라는 방침이 내려졌고, 탈북자 가족 조사 작업이 진행돼왔다. 조사 결과, 이주 방책이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탈북자 세대 규정 작업이 일단 만만치 않았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도강을 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행방불명자를 탈북자로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행방불명자를 예외 없이 탈북자로 규정할 경우,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해지므로 명확히 탈북자 세대로 규명된 집들에 한해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탈북한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거나, 수입 대 지출이 심하게 맞지 않는 집 등에 대해서는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반면 가족 중에 행불자가 있더라도 소토지 농사나 장사로 근근이 먹고 살거나, 특별한 변화가 없는 집들은 이주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혹여 행방불명자가 탈북자로 판명이 되더라도, 그동안 연계가 없었다면 당사자에 한해서만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탈북자 세대 이주 계획에 대해 주민들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수많은 세대를 숙청하다시피 쫓아내고 나면, 대체 누가 남겠느냐? 이 집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집은 저래서 문제라면서 갖가지 모자를 씌워 처벌하는 통에 마음 놓고 일할 수가 없다”는 불만이 그것이다. 언제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몰라, 아무 짓도 안했는데 괜히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에서는 일벌백계 효과를 노리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주민들은 하도 자주 목격하다보니 비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오히려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막말로 비법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도강하는 것도 그 사람이 진짜 조국을 배반하려고 건너간 건지, 그냥 먹고 살려고 건너간 건지, 누가 아느냐. 1994년부터 미공급 시기를 맞이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느냐. 그때처럼 안 죽으려고 다들 이 난리 치면서 하지 말라는 위험한 일에도 손대는 것이 아니냐. 오죽하면 사람들이 결혼을 해도 아이들을 안 낳으려고 하겠느냐. 자기들도 먹고 사는 게 힘든 데, 누가 제 자식 굶어죽는 꼴을 보고 싶겠나. 이러다가는 우리나라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 뻔한데, 여기다 또 탈북자 세대라고 안쪽으로 추방하려고 했다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회령, 온성 등 국경연선지역 주민들의 경우, 탈북자들이 보내주는 돈 덕분에 시장에 물건도 많이 나오고, 식량도 나오는 거라며 탈북자 세대 추방에 반대 의견이 많았다.
■ 정치생활
한국 전화기 사용자 아내에 연좌제 적용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에 사는 한경희(가명)씨는 지난 해 큰 고초를 치렀다. 남편이 작년 8월에 한국 전화기를 사용하다가 전파탐지국 검열조사에 걸려든 탓이다. 다행히 남편은 재빨리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한씨를 곧 잡아들였다. 몇 달 동안 강도 높은 심문 조사가 이어졌다. 남편이 한국전화기로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와 연락해왔는지, 돈은 어떻게 받았는지 등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한씨는 세대주가 자신과 상의하는 법이 없었기에 들은 바가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집에 어린 아이 둘과 연로하신 모친이 계시니 풀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세대주의 일에 아무리 상관을 안 한다고 해도, 한국 전화기 사용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 신고하지 않았으므로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며 교화형을 내렸다. 한씨는 “한국 전화기인지, 중국 전화기인지 내가 어떻게 구별하느냐.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교화소로 직행했다. 보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 한씨가 운 좋게 석방된다고 해도, 최우선 감시 대상에 들어간다고 했다. 남편이 언제고 한씨에게 접촉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전화 연락을 하다가 걸리면, 그때는 안쪽으로 가차 없이 추방될 것이라고 했다
악명 높은 금동1반 보위사령부 초소
회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초소 3개 중에 가장 악명을 떨치는 초소는 금동1반에 있는 보위사령부 초소이다. 2009년도에 유선동 인민병원 초급당비서와 원장 등 60여 명이 줄줄이 간첩사건으로 체포된 것도 이 초소에서 만년필 비디오카메라를 소지한 간호원을 적발하면서였다. 이 사건으로 회령시 주요 행정일군들 30여 명이 해임, 철직되는 것은 물론 농장원으로 강등되거나 명백한 간첩죄로 드러난 사람은 22호 정치범관리소 닫힌 구역에 이송되기도 했다. 당시 후폭풍이 거세서 전국적으로 간첩 경계령이 내려졌고, 회령시당 일군들이 대거 물갈이되기도 했다. 당시 중앙당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으로 간 탈북자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집들은 2011년까지 무조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이때부터 주민 료해사업이 시작됐는데, “최대한 탈북자 세대를 조사 장악하고, 남조선에 간 탈북자들과 손전화로 거래를 하는 자, 정치적 색채를 띠는 기미를 보이는 세대들을 면밀히 살펴 사회 주민 지역에서 숙청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북반부 최대간첩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이 사건 이후, 금동1반 보위사령부 초소는 또다시 큰 공로를 세우겠다며 그 어느 초소보다 단속을 심하게 한다. 검열원들은 주로 보위사령부 소속 하전사들인데, 주민들은 이 초소를 지나가기가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단속에 걸릴만한 물건이 없는 사람조차 소름끼친다고 말할 정도이다. 특히 여성들의 고초가 심하다. 몸에 서슴지 않고 손을 대는 단속원들 때문이다. 청진에서 회령까지 버스로 3시간이면 갈 거리를 이렇게 초소마다 모든 승객들이 일일이 검열을 받고 나면 보통 6시간이 넘고 만다. 한 초소에서 보통 1시간 이상씩 소요된다.
탈북자 세대 이주 사업, 일단 중지
국경연선지역에서는 최근 탈북자 세대 이주 작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지난 2009년 11월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동 간첩사건을 계기로,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으면 안쪽 지방으로 이주시키라는 방침이 내려졌고, 탈북자 가족 조사 작업이 진행돼왔다. 조사 결과, 이주 방책이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탈북자 세대 규정 작업이 일단 만만치 않았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도강을 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행방불명자를 탈북자로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행방불명자를 예외 없이 탈북자로 규정할 경우,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해지므로 명확히 탈북자 세대로 규명된 집들에 한해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탈북한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거나, 수입 대 지출이 심하게 맞지 않는 집 등에 대해서는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반면 가족 중에 행불자가 있더라도 소토지 농사나 장사로 근근이 먹고 살거나, 특별한 변화가 없는 집들은 이주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혹여 행방불명자가 탈북자로 판명이 되더라도, 그동안 연계가 없었다면 당사자에 한해서만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탈북자 세대 이주 계획에 대해 주민들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수많은 세대를 숙청하다시피 쫓아내고 나면, 대체 누가 남겠느냐? 이 집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집은 저래서 문제라면서 갖가지 모자를 씌워 처벌하는 통에 마음 놓고 일할 수가 없다”는 불만이 그것이다. 언제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몰라, 아무 짓도 안했는데 괜히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에서는 일벌백계 효과를 노리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주민들은 하도 자주 목격하다보니 비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오히려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막말로 비법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도강하는 것도 그 사람이 진짜 조국을 배반하려고 건너간 건지, 그냥 먹고 살려고 건너간 건지, 누가 아느냐. 1994년부터 미공급 시기를 맞이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느냐. 그때처럼 안 죽으려고 다들 이 난리 치면서 하지 말라는 위험한 일에도 손대는 것이 아니냐. 오죽하면 사람들이 결혼을 해도 아이들을 안 낳으려고 하겠느냐. 자기들도 먹고 사는 게 힘든 데, 누가 제 자식 굶어죽는 꼴을 보고 싶겠나. 이러다가는 우리나라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 뻔한데, 여기다 또 탈북자 세대라고 안쪽으로 추방하려고 했다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회령, 온성 등 국경연선지역 주민들의 경우, 탈북자들이 보내주는 돈 덕분에 시장에 물건도 많이 나오고, 식량도 나오는 거라며 탈북자 세대 추방에 반대 의견이 많았다.
■ 여성/어린이/교육
여자 행인들, 성적(性的) 괴롭힘 호소
각 초소들마다 검열을 세부적으로 치밀하게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만약 도강 의심이 든다 싶으면 초소 구류실 안에 며칠씩 가두고 심문을 벌인다. 꼬투리가 잡힌 사람은 일단 청진 여행자 집결소에 보내졌다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젊은 여성들은 별 이유 없이 며칠씩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어머니 대신 장사할 물건을 받으러 회령으로 떠났다가 고무산 초소에서 걸린 김선화(가명)씨는 “처녀가 어디 혼자 다니느냐, 중국에 팔려가는 거 아니냐, 한족한테 시집가느냐며 밤낮없이 괴롭히는데,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들으니 몸을 허락하기 전에는 초소에서 놓여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더라. 나같이 험한 꼴 당하는 여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들었다”며 성폭행을 증언했다. 김씨는 “녀자로 태어난 게 이 나라에서는 큰 죄”라며 울분을 토했다.
여행증명서를 소지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약단속을 명분으로 단속해서 거덜 내는 악명 높은 초소들도 많다. 소지품과 짐 꾸러미를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벗겨 세세하게 검사한다. 마약운반이 의심될 때는 여자들도 단속실에 끌고 가 강제로 옷을 벗긴다. 마약을 몸속에 감추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하지만, 여자들의 수치심을 자극한다. “남자들도 아랫도리 속옷까지 다 벗기는데 여자들이라고 봐줬다가는 여자들이 마약 운반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 마약을 단속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곳 초소 담당자의 생각이다. 마약을 소지하지도 않았는데 낯선 남자들 앞에서 강제로 옷을 벗어야 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없다. 이런 중에도 돈벌이는 은밀히 진행된다. 짐 검열을 하다가 값비싼 물건이 나오면 빼앗는 것이 다반사다. 안쪽 지방에서 온 사람일수록 물건을 빼앗겨도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없다. 억울하더라도 통과비라 생각하고 그냥 당하고 만다.
■ 사회
“보위부원 괴롭힘, 너무 지나쳐”
중앙당에서는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다고 해도 연좌제를 섣불리 적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일선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탈북자 세대 감시 자체가 돈벌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 한 게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들쑤시면 뭐든 나오게 돼있다. 죄 지은 게 없어도, 가족 하나가 탈북 했다면 그 집은 돈벌이 대상”이라는 게 보위부원들의 얘기다. 더군다나 탈북가족이 남조선으로 간 사실이 확인되면, 말 그대로 평생 돈벌이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건이 달라는 대로 안 주면, 언제든 호출해서 괴롭히는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반 주민들이 보기에도, 탈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날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회령시 남문동에 거주하는 백순영(가명)씨는 “탈북한 가족과 아무 련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붙들어다가 얼마나 괴롭히는지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우리 인민반에 한 집은 살림살이를 탈탈 털리다 못해 나중에는 집까지 뺏기더라. 완전히 꽃제비 신세가 됐다. 보기만 해도 불쌍하다”고 했다. 일부 보위부원들의 도를 넘는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집을 버리고 타지로 떠나려다가 붙잡힌 가족들도 있다. 보위부원 피해 달아나려던 것인데, 탈북혐의가 씌워지는 경우도 있다. 탈북자 가족이 보내준 돈으로 달아나려 했다는 죄목이다. 탈북한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집들이 보위부원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단속 피해 산길로 다녀
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보안원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엔 차라리 중국으로 도강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최근 주민 동향을 전했다. 보안당국에서는 내륙지방에서 국경지역으로 들어가는 관문과 길목마다 초소들을 가능한 촘촘하게 배치하고 있다. 청진에서 회령까지 버스로 3-4시간 걸리는데, 도중에 3개의 단속 초소를 만나게 된다. 고무산 초소에는 부령군 보안서와 9군단 보위소대 초소가 있고, 회령 풍산리에는 회령시보위부가, 금동1반에는 보위사령부가 검열 단속한다. 출장증명서, 여행증명서, 공민증 등 이동허가증이 없으면 국경지역에 들어갈 수 없게 단속을 더 강화한 것이다.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조석훈(가명)씨는 함경북도 무산에 큰 형님이 사시는데 올해 환갑을 맞이해 다녀오고 싶다고 여행증명서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상급당에서 국경지역 여행증명서는 발급하지 않는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담당 보안원과 보위부원 등을 찾아가 뇌물을 바쳐가며 큰형님 환갑 사실을 승인받았는데도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단속경계령이 강화된 요즘 법 일군들도 가능한 몸을 사리고 있어서다. 작년에 비해 검문검색이 한층 강화되자, 여행증명서가 없는 안쪽 주민들은 산길을 둘러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청진에서 회령으로 갈 때 일단 고무산까지 차를 타고 들어간다. 단속 초소를 만나기 전에 내려서 회령까지 산길을 헤치며 150리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