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당 창건일, 평양만 경축분위기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일만 하더라도, 평양에서는 식당과 상점들, 길거리마다 사람들로 들썩이며 경축 분위기였다. 반면 다른 지역들은 겨우 형식만 갖춰 경축 행사를 치렀다. 주민들이 행사에 참여는 하는데 열의가 없었다.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정은실(가명)씨는 “당창건일을 경축한다면서 시내에서 매일 고성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성천구역만 해도 옥수수밥도 못 먹는 집이 태반이다. 오늘 하루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무슨 심정으로 당창건일을 경축할 수 있겠느냐? 잘 사는 평양 사람들이야 꽃치마에 저고리 입고 외화식당이나 상점에 드나들며 좋아라 하겠지만, 우리한테는 똑같이 바쁘고 힘든 날일 뿐”이라고 했다. 매일 새벽부터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김춘화(가명)씨는 “날은 추워지는데 집에 땔감은 없고, 추운 집구석에서 움츠리고 있느니 한 푼이라도 벌자고 새벽부터 나온다. 추울 때는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한데, 집에 가도 식은 죽밖에 못 먹는다. 밥 해먹을 땔감이 없으니 데워먹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그냥 속이 시려도 후루룩 넘기고 만다. 얼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당 창건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옥수수 한 키로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지방에서는 식량난으로 가정이 많이 해체되고 있다. 주민들이 아무리 1년 내내 뼈 빠지게 고생해도, 자연재해와 비료부족으로 소토지 농사가 전혀 안 됐다. 1년 전 화폐개혁으로 있는 돈 다 날렸던 사람들은 장사 밑천이 없어 아직 회복을 못하고 있는데, 올 겨울 지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못 살겠다는 원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방 주민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평양과 지방 격차가 날로 벌어지는 양상이다
평양 직불카드 인기, 지방은 불만 고조
올해 초, 평양에서 처음 등장한 직불카드가 외화상점이나 호텔 식당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외화 사용자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도 잔돈을 거슬러 받지 못해 불편을 겪어왔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한 외화상점에서 근무하는 심미숙(가명)씨는 손님들의 호응이 대단히 좋다며, “그동안에는 바꿔줄 돈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손님이 100달러를 들고 와서 10달러짜리 물건을 사도 나머지를 못 주니까 장부에 기록하고 도장 찍고 수표를 떼 주었다. 다음에 물건을 사러 오면 그 수표를 받고 다시 남은 돈을 수표로 주는 식이었다. 손님들이 아예 물건 사는 것을 꺼리게 되고, 우리도 장사가 안 돼 손해였다. 지금은 카드로 그때그때 쓸 수 있으니 편해서 다들 좋아 한다”고 전했다. 중앙당의 간부들도 카드 시행에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간부는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해온 것이라 신기할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공화국으로서는 경제 혁명과도 같은 대사변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도 놀라워하고, 편리해서 좋아 한다”며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평양 소식을 전해들은 지방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한 간부는 “지방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마당에, 평양 간부들이 내화도 아니고 외화로 식당과 상점 출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지방에서는 집집마다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데, 평양에서는 술과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변학도 생일잔치에 참가해 던졌던 글귀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일갈했다. 지방과 평양의 격차가 갈수록 너무 커지고 있다는 우려를 전하는 간부도 있다. 평양은 살림집 10만호 건설이다 뭐다 날로 변모해가고 생전 들어보지 못한 카드 결제도 하고 있다는데, 지방에서는 당장 먹을 식량도 없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옷 한 장이 없어 덜덜 떨고 있는 현실이 너무 대조적이라고 했다. 함흥시의 한 무역일군은 “일부 간부들은 평양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소문들을 듣고, 뱁새가 황새 따라하듯 자기도 흉내내보겠다고 애매한 백성들 주머니를 털어 제 배 채우기만 바쁘다. 백성을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 당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느냐. 통행증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돈을 바쳐야 하는지 도대체 바빠서 못 해먹겠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호위사령부 검열을 해봐야 지방 간부들의 비리 행위가 여전하다며, 지방당 간부들이 백성들의 것을 갈취하는 것은 결국 평양을 따라 배우는 것이므로, 평양 간부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 꼬집었다.
“함북 식당 해외 진출, 일대 혁신이다”
함경북도에서 중국 료녕성 안산시에 첫 외화벌이 식당을 개점하자, 다른 지방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함경북도 도당의 한 간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떠들썩한 사안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방 경제의 출구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일대 혁신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 도의 사례가 성공한다면, 다른 도시에서도 너도나도 실행하게 될 것이다. 다른 지방 정부에서도 우리 식당 진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함경북도에서 중국에 식당을 차리기까지, 해외 사업장은 거의 평양의 독무대였다. 지방에서는 자금이 부족하고 경험자가 없어서, 대개 평양이나 중국 회사들을 통해 무역거래를 해왔는데, 지방 경제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업장을 해외에 진출시키는 것은 지방당에서도 직접 수익을 내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다만 국가에 바쳐야하는 상납금이 걸림돌인데. 10만 달러를 바치고도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그는 “중국 회사에서 조선에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중앙에서는 해외에 진출하는 외화벌이 회사나 상점, 식당 등에 부과하는 국가 과제금을 높이고 있다. 국가 과제금이 무서워서 선뜻 못 나가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국가 과제금을 낮추어서 지방 기업소들과 무역회사, 개인들이 더 외화를 벌어들여 지방 재정 마련과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평양에서는 해외 사업장 진출과 별도로 평양 시내에서 외화상점과 식당, 오락시설 등을 활발하게 개업하고 있다. 해외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 투자자가 있으면 동업을 하거나, 해외 친척들이 평양의 공장, 기업소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공동운영하는 체제이다. 다른 지방에서 생필품난이 벌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평양 고위간부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들은 날로 번창하는 중이다.
함경북도, 해외 진출 식당 1호 개점
함경북도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식당을 냈다. 중국 요녕성 안산시로, 지역 차원에서 해외에 진출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지역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방 간부들은 함경북도의 해외 진출을 일종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함경북도 도당의 한 간부는 “식당을 중국에 내게 된 것은, 우리 도의 모든 봉사망들이 원료난, 자재난으로 운영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외국에서 원료를 자체적으로 들여오려는 목적으로 중국에 식당을 개설한 것”이라고 했다. 식당 개설이 어떻게 원료 수입으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에,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물품을 구매하자는 것이다. 육류, 양념류, 기름, 사탕가루(설탕), 쌀 등 모든 물자를 공급하자는 목적”이라고 했다. 중앙당에서는 올해부터 해외에 진출하는 식당들은 수입이나 종업원 수에 상관없이 1년에 10만 달러를 바쳐야 한다. 예전에는 사람마다 얼마씩 내라고 했다면 이제는 식당마다 10만 달러로 정했다. 더 잘 사는 지역들은 금액이 다른데, 북경, 상해 등지에서는 상납금이 10만 유로이고 규모가 큰 식당들은 추가금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간부들에게는 새 자동차, 주민들은 풀죽 연명
교체된 간부들의 생활 공급은 활발해지고 좋아진 반면, 주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양상이다. 중앙당은 물론이고 지방당 간부들과 법기관 일군들이 대거 바뀌면서 이들에 대한 광폭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식량과 생필품은 기본이고, 여타 모든 면에서 보장을 잘 해주고 있는데, 일례로 최근에는 간부용 승용차들을 새로 공급했다. 중앙당에서는 군 단위의 경우 군당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 인민부위원장, 검찰소장과 보안국장, 그리고 보위부장에게 1대씩 6대의 승용차를 제공해주었다. 검찰이나 보안국, 보위부 등 법 기관에는 기동차량으로 지프차량과 오토바이들을 대량 공급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전국적으로 간부 차량공급에만 1,600만 달라가 소요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반면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여전히 낙후하다. 평양시와 황해북도 사리원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전부해야 10여 대에 불과하다. 올 여름 집중폭우와 산사태로 다리와 도로, 철로가 심하게 파손되어 그나마도 운행이 어렵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에서는 내려온 돌들을 치우거나 움푹 꺼진 길목을 메우는 수준에서 임시로 길을 열어놓았다. 도로 사정이 나빠지고 통행금지에 시장 단속이 심해지면서 식량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달리기장사꾼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외국에서 물건이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국내 도시들마다 물건이 잘 안도니 그 피해는 주민들이 입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농촌 리단위까지 요원들을 파견했는데 너무나 처참하다고 했다. 간신히 풀죽으로 연명하는 농민들이 많고, 덮을 옷이 없어 꽃제비처럼 맨팔과 맨다리가 드러난 다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수해피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원시인들처럼 아직도 움막 생활을 하고 있다. 피해를 비껴난 멀쩡한 사람들이라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려운 살림에 돌아다니지 못하니 식량을 구할 수도 없고, 생필품을 구할 수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일선에서 민심을 살피라고 해도, 간부들은 주민들의 생활고에 관심이 없다. 그저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통행을 단속하기만 할 뿐이다. 농사도 망치고 장사도 안 되니 주민들이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무역성 검열이 생필품 대란 불렀다”
북한 전역에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중앙당에서는 그 원인을 대외무역에서 찾고 있다. 식량과 군수품, 농자재 수입을 우선하다보니 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 수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무역성 간부들의 얘기는 다르다. “다른 물건은 일체 수입하지 말라고 금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당에서 생필품 수입을 처음부터 배제했다는 말이다. 또 “무역성 검열을 세게 하면서 일군들이 대거 교체되다나니 중국 대방들과의 거래에 장애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 교체된 일군들을 상대로는 현금 거래가 아니면 잘 응하지 않는다. 새 일군들이 현지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무역거래가 지지부진할 것은 자명하다. 한 무역성 간부는 “그동안 세대교체로 중국 상품들이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 편의봉사망마다 운영이 잘 안 되고 있는데, 평양 봉사망들도 기름부터 고춧가루, 고기 등 모두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지금은 잘 안 되고 있어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무역성 검열이 너무 심해서, 어지간한 지원물자들도 (국내에) 들여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식량을 제외하고는, 과자나 라면 같은 것도 들여보낼 수 없다. 약품이나 옷가지 등도 전 같으면 얼마든지 들여보냈겠지만, 물건을 들여보내도 약속한대로 현금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이제는 국내에서 아무리 요청해도 보내주기 어렵다. 한 일군은 “물건을 들여보낸 게 많으면 나중에 검열에서 꼬투리가 된다. ‘물건을 많이 집어넣은 걸 보니 수입도 많겠는데, 너는 얼마나 챙겼느냐?’면서 검열을 더 세게 한다. 조사도 더 많이 받고, 바쳐야 하는 것도 더 많아진다. 이번에도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 괜히 나라 살림 걱정하다가 자기 목이 먼저 날아가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다보니 나도 한 발 물러서거나 모른 체하게 된다”고 했다. 국가에서 생필품 공급에 별 관심이 없고, 일선 일군들의 교체로 수입에 차질이 생기는데다, 능력이 있는 일군들은 거래를 기피하는 등 3박자 현상이 맞물려 전국적인 생필품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전국 생필품 부족 사태
바야흐로 생필품 대란이다. 외국인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물품을 공급하는 국경연선지역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식량과 더불어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평성, 원산, 함흥 등 지방의 큰 도시도 편의봉사망에서는 진열할 물건조차 구하기 어렵고, 사실상 운영을 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평양의 외화상점에서도 가끔 공급량이 딸릴 때가 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 내의류 등 방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손에 넣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밀매매꾼이나 암거래를 잘 하는 장사꾼도 요즘엔 물건 들여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평안남도 평성 시장을 찾은 강현정(가명)씨는 속옷 한 장 구하기 어려워 낡은 윗옷을 잘라 속옷으로 대체해 입는다고 했다. 함경북도 함흥에 사는 김영호씨는 “평양은 그런대로 살겠지만 지방은 너무 심하다. 사람들마다 꽃제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옷들이 다 헤지고 람루하다. 먹는 문제가 더 급하다보니 옷가지들에 신경을 못 쓰고 있기도 하고, 옷을 구하기가 더 바빠진 탓도 있다. 요새는 물건이 잘 안 들어오다나니 중고옷 한 벌에 옥수수 몇 키로 값을 내도 살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러니 사람들이 겨우 살만 가리고 다니는 형편”이라고 했다.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 원망 높아라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일현))
옥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요만성고)).
촛농 떨어질 때에 백성 눈물 떨어지고(燭漏落時民淚落(촉루낙시민누락))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歌聲高處愍聲高(가성고처민성고))”
춘향전에서 어사 이몽룡이 탐오와 부패를 일삼는 변사또의 생일잔치에서 던진 시구이다. 북한 지방 간부들이 평양 상류층에 던지는 쓴 소리이기도 하다. 지방에서는 추위와 굶주림에 주민들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평양에서는 고기와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최신식 고층 살림집에 직불카드로 외화를 흥청망청 사용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호위사령부를 동원해 아래로는 무시무시한 검열의 칼날을 휘두르지만, 정작 자신들은 배 두드리며 살고 있지 않느냐,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기도 하다. 식량난과 생필품 대란 속에서도 당에서는 새로 교체된 간부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이것저것 풍족하게 배려해주는 모양이다. 헐벗은 주민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단연코 먼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양공화국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 정치생활
당 창건일, 평양만 경축분위기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일만 하더라도, 평양에서는 식당과 상점들, 길거리마다 사람들로 들썩이며 경축 분위기였다. 반면 다른 지역들은 겨우 형식만 갖춰 경축 행사를 치렀다. 주민들이 행사에 참여는 하는데 열의가 없었다.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정은실(가명)씨는 “당창건일을 경축한다면서 시내에서 매일 고성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성천구역만 해도 옥수수밥도 못 먹는 집이 태반이다. 오늘 하루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무슨 심정으로 당창건일을 경축할 수 있겠느냐? 잘 사는 평양 사람들이야 꽃치마에 저고리 입고 외화식당이나 상점에 드나들며 좋아라 하겠지만, 우리한테는 똑같이 바쁘고 힘든 날일 뿐”이라고 했다. 매일 새벽부터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김춘화(가명)씨는 “날은 추워지는데 집에 땔감은 없고, 추운 집구석에서 움츠리고 있느니 한 푼이라도 벌자고 새벽부터 나온다. 추울 때는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한데, 집에 가도 식은 죽밖에 못 먹는다. 밥 해먹을 땔감이 없으니 데워먹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그냥 속이 시려도 후루룩 넘기고 만다. 얼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당 창건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옥수수 한 키로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지방에서는 식량난으로 가정이 많이 해체되고 있다. 주민들이 아무리 1년 내내 뼈 빠지게 고생해도, 자연재해와 비료부족으로 소토지 농사가 전혀 안 됐다. 1년 전 화폐개혁으로 있는 돈 다 날렸던 사람들은 장사 밑천이 없어 아직 회복을 못하고 있는데, 올 겨울 지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못 살겠다는 원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방 주민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평양과 지방 격차가 날로 벌어지는 양상이다
■ 경제활동
평양 직불카드 인기, 지방은 불만 고조
올해 초, 평양에서 처음 등장한 직불카드가 외화상점이나 호텔 식당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외화 사용자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도 잔돈을 거슬러 받지 못해 불편을 겪어왔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한 외화상점에서 근무하는 심미숙(가명)씨는 손님들의 호응이 대단히 좋다며, “그동안에는 바꿔줄 돈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손님이 100달러를 들고 와서 10달러짜리 물건을 사도 나머지를 못 주니까 장부에 기록하고 도장 찍고 수표를 떼 주었다. 다음에 물건을 사러 오면 그 수표를 받고 다시 남은 돈을 수표로 주는 식이었다. 손님들이 아예 물건 사는 것을 꺼리게 되고, 우리도 장사가 안 돼 손해였다. 지금은 카드로 그때그때 쓸 수 있으니 편해서 다들 좋아 한다”고 전했다. 중앙당의 간부들도 카드 시행에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간부는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해온 것이라 신기할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공화국으로서는 경제 혁명과도 같은 대사변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도 놀라워하고, 편리해서 좋아 한다”며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평양 소식을 전해들은 지방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한 간부는 “지방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마당에, 평양 간부들이 내화도 아니고 외화로 식당과 상점 출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지방에서는 집집마다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데, 평양에서는 술과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변학도 생일잔치에 참가해 던졌던 글귀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일갈했다. 지방과 평양의 격차가 갈수록 너무 커지고 있다는 우려를 전하는 간부도 있다. 평양은 살림집 10만호 건설이다 뭐다 날로 변모해가고 생전 들어보지 못한 카드 결제도 하고 있다는데, 지방에서는 당장 먹을 식량도 없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옷 한 장이 없어 덜덜 떨고 있는 현실이 너무 대조적이라고 했다. 함흥시의 한 무역일군은 “일부 간부들은 평양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소문들을 듣고, 뱁새가 황새 따라하듯 자기도 흉내내보겠다고 애매한 백성들 주머니를 털어 제 배 채우기만 바쁘다. 백성을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 당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느냐. 통행증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돈을 바쳐야 하는지 도대체 바빠서 못 해먹겠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호위사령부 검열을 해봐야 지방 간부들의 비리 행위가 여전하다며, 지방당 간부들이 백성들의 것을 갈취하는 것은 결국 평양을 따라 배우는 것이므로, 평양 간부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 꼬집었다.
“함북 식당 해외 진출, 일대 혁신이다”
함경북도에서 중국 료녕성 안산시에 첫 외화벌이 식당을 개점하자, 다른 지방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함경북도 도당의 한 간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떠들썩한 사안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방 경제의 출구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일대 혁신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 도의 사례가 성공한다면, 다른 도시에서도 너도나도 실행하게 될 것이다. 다른 지방 정부에서도 우리 식당 진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함경북도에서 중국에 식당을 차리기까지, 해외 사업장은 거의 평양의 독무대였다. 지방에서는 자금이 부족하고 경험자가 없어서, 대개 평양이나 중국 회사들을 통해 무역거래를 해왔는데, 지방 경제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업장을 해외에 진출시키는 것은 지방당에서도 직접 수익을 내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다만 국가에 바쳐야하는 상납금이 걸림돌인데. 10만 달러를 바치고도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그는 “중국 회사에서 조선에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중앙에서는 해외에 진출하는 외화벌이 회사나 상점, 식당 등에 부과하는 국가 과제금을 높이고 있다. 국가 과제금이 무서워서 선뜻 못 나가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국가 과제금을 낮추어서 지방 기업소들과 무역회사, 개인들이 더 외화를 벌어들여 지방 재정 마련과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평양에서는 해외 사업장 진출과 별도로 평양 시내에서 외화상점과 식당, 오락시설 등을 활발하게 개업하고 있다. 해외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 투자자가 있으면 동업을 하거나, 해외 친척들이 평양의 공장, 기업소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공동운영하는 체제이다. 다른 지방에서 생필품난이 벌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평양 고위간부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들은 날로 번창하는 중이다.
함경북도, 해외 진출 식당 1호 개점
함경북도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식당을 냈다. 중국 요녕성 안산시로, 지역 차원에서 해외에 진출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지역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방 간부들은 함경북도의 해외 진출을 일종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함경북도 도당의 한 간부는 “식당을 중국에 내게 된 것은, 우리 도의 모든 봉사망들이 원료난, 자재난으로 운영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외국에서 원료를 자체적으로 들여오려는 목적으로 중국에 식당을 개설한 것”이라고 했다. 식당 개설이 어떻게 원료 수입으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에,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물품을 구매하자는 것이다. 육류, 양념류, 기름, 사탕가루(설탕), 쌀 등 모든 물자를 공급하자는 목적”이라고 했다. 중앙당에서는 올해부터 해외에 진출하는 식당들은 수입이나 종업원 수에 상관없이 1년에 10만 달러를 바쳐야 한다. 예전에는 사람마다 얼마씩 내라고 했다면 이제는 식당마다 10만 달러로 정했다. 더 잘 사는 지역들은 금액이 다른데, 북경, 상해 등지에서는 상납금이 10만 유로이고 규모가 큰 식당들은 추가금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간부들에게는 새 자동차, 주민들은 풀죽 연명
교체된 간부들의 생활 공급은 활발해지고 좋아진 반면, 주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양상이다. 중앙당은 물론이고 지방당 간부들과 법기관 일군들이 대거 바뀌면서 이들에 대한 광폭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식량과 생필품은 기본이고, 여타 모든 면에서 보장을 잘 해주고 있는데, 일례로 최근에는 간부용 승용차들을 새로 공급했다. 중앙당에서는 군 단위의 경우 군당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 인민부위원장, 검찰소장과 보안국장, 그리고 보위부장에게 1대씩 6대의 승용차를 제공해주었다. 검찰이나 보안국, 보위부 등 법 기관에는 기동차량으로 지프차량과 오토바이들을 대량 공급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전국적으로 간부 차량공급에만 1,600만 달라가 소요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반면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여전히 낙후하다. 평양시와 황해북도 사리원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전부해야 10여 대에 불과하다. 올 여름 집중폭우와 산사태로 다리와 도로, 철로가 심하게 파손되어 그나마도 운행이 어렵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에서는 내려온 돌들을 치우거나 움푹 꺼진 길목을 메우는 수준에서 임시로 길을 열어놓았다. 도로 사정이 나빠지고 통행금지에 시장 단속이 심해지면서 식량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달리기장사꾼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외국에서 물건이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국내 도시들마다 물건이 잘 안도니 그 피해는 주민들이 입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농촌 리단위까지 요원들을 파견했는데 너무나 처참하다고 했다. 간신히 풀죽으로 연명하는 농민들이 많고, 덮을 옷이 없어 꽃제비처럼 맨팔과 맨다리가 드러난 다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수해피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원시인들처럼 아직도 움막 생활을 하고 있다. 피해를 비껴난 멀쩡한 사람들이라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려운 살림에 돌아다니지 못하니 식량을 구할 수도 없고, 생필품을 구할 수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일선에서 민심을 살피라고 해도, 간부들은 주민들의 생활고에 관심이 없다. 그저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통행을 단속하기만 할 뿐이다. 농사도 망치고 장사도 안 되니 주민들이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무역성 검열이 생필품 대란 불렀다”
북한 전역에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중앙당에서는 그 원인을 대외무역에서 찾고 있다. 식량과 군수품, 농자재 수입을 우선하다보니 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 수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무역성 간부들의 얘기는 다르다. “다른 물건은 일체 수입하지 말라고 금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당에서 생필품 수입을 처음부터 배제했다는 말이다. 또 “무역성 검열을 세게 하면서 일군들이 대거 교체되다나니 중국 대방들과의 거래에 장애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 교체된 일군들을 상대로는 현금 거래가 아니면 잘 응하지 않는다. 새 일군들이 현지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무역거래가 지지부진할 것은 자명하다. 한 무역성 간부는 “그동안 세대교체로 중국 상품들이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 편의봉사망마다 운영이 잘 안 되고 있는데, 평양 봉사망들도 기름부터 고춧가루, 고기 등 모두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지금은 잘 안 되고 있어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무역성 검열이 너무 심해서, 어지간한 지원물자들도 (국내에) 들여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식량을 제외하고는, 과자나 라면 같은 것도 들여보낼 수 없다. 약품이나 옷가지 등도 전 같으면 얼마든지 들여보냈겠지만, 물건을 들여보내도 약속한대로 현금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이제는 국내에서 아무리 요청해도 보내주기 어렵다. 한 일군은 “물건을 들여보낸 게 많으면 나중에 검열에서 꼬투리가 된다. ‘물건을 많이 집어넣은 걸 보니 수입도 많겠는데, 너는 얼마나 챙겼느냐?’면서 검열을 더 세게 한다. 조사도 더 많이 받고, 바쳐야 하는 것도 더 많아진다. 이번에도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 괜히 나라 살림 걱정하다가 자기 목이 먼저 날아가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다보니 나도 한 발 물러서거나 모른 체하게 된다”고 했다. 국가에서 생필품 공급에 별 관심이 없고, 일선 일군들의 교체로 수입에 차질이 생기는데다, 능력이 있는 일군들은 거래를 기피하는 등 3박자 현상이 맞물려 전국적인 생필품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전국 생필품 부족 사태
바야흐로 생필품 대란이다. 외국인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물품을 공급하는 국경연선지역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식량과 더불어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평성, 원산, 함흥 등 지방의 큰 도시도 편의봉사망에서는 진열할 물건조차 구하기 어렵고, 사실상 운영을 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평양의 외화상점에서도 가끔 공급량이 딸릴 때가 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 내의류 등 방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손에 넣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밀매매꾼이나 암거래를 잘 하는 장사꾼도 요즘엔 물건 들여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평안남도 평성 시장을 찾은 강현정(가명)씨는 속옷 한 장 구하기 어려워 낡은 윗옷을 잘라 속옷으로 대체해 입는다고 했다. 함경북도 함흥에 사는 김영호씨는 “평양은 그런대로 살겠지만 지방은 너무 심하다. 사람들마다 꽃제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옷들이 다 헤지고 람루하다. 먹는 문제가 더 급하다보니 옷가지들에 신경을 못 쓰고 있기도 하고, 옷을 구하기가 더 바빠진 탓도 있다. 요새는 물건이 잘 안 들어오다나니 중고옷 한 벌에 옥수수 몇 키로 값을 내도 살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러니 사람들이 겨우 살만 가리고 다니는 형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