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굶어 죽는 안쪽지역 농민들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이른바 ‘안쪽’ 지역에서는 굶어죽는 농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농번기에도 일을 못 나오고, 산나물과 풀을 뜯으러 다니는 농민 세대가 많았다. 옥수수가루를 아껴 먹느라고, 풀에 옥수수가루 한 수저를 넣어 끓인 풀죽으로 목숨 줄을 연명하는 상황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재령군, 봉천군 등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죽이라도 두 끼 먹는 집은 잘 먹는 축에 속한다. 온 하루 굶는 세대가 전체 주민의 절반이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서해안은 6월 20일이 넘어가면서 올감자를 수확할 때이지만, 가뭄 피해로 콩알만한 감자가 많아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고비를 넘겨야 올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햇감자도 이 모양이고, 옥수수도 이삭이 안 여물 것 같아서 정말 큰일이다. 계속 농민들이 죽어가니 애가 탄다”고 걱정했다
회령 성북농장, 절반의 모가 말라죽어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로동자구 성북협동농장에서는 가뭄으로 벼 모판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을 대지 못해 말라 죽은 모가 절반이 넘는다. 식량증산에 힘쓰라는 중앙당의 지시가 거듭 내려오고 있지만, 벼이삭이 얼마나 나올지 농장일군들의 시름이 깊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벼농사 피해는 물론, 밭작물 파종이 늦어져 그 피해 역시 심각하다. 병해충이 증가하는데 농약이 없어 손으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장 관리 대책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회령시당에서는 “올해 농사를 망치면, 관리 일군 전원이 책임지고 법 추궁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뿐이어서 농장일군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함북, 가뭄 피해 옥수수 급감할 듯
함경북도 도당에서는 관내 농장들의 가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함경북도는 산간지대가 많아 옥수수 농사 비중이 큰 데 올 봄 가뭄에 옥수수가 여물지 못하고 다 말라 비틀어져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경북도 농장 일군들은 정보당 2-3톤 정도 예상하는데, 산골을 낀 농촌에서는 1톤도 못 거두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당의 한 간부는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9월이 되어봐야 보다 근거 있는 수확량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나마 황해남북도나 평안남도 지역보다는 괜찮은 편”이라며 씁쓸해했다.
평양 살림집 건설 제대군인들, 고대하던 집에 돌아왔지만
2009년부터 평양 살림집 건설에 투입됐던 군인 일부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돌아온 김병학(가명)씨는 만 4년 만의 귀향이라고 했다. 제대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선군정신의 기치를 받들어 조국이 부여한 임무를 달성하기위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아야했다. 김씨는 그래도 공사가 일찍 끝난 편이고, 현장에 남아있는 동료들도 많다. 그토록 고대하고 바라던 집에 돌아왔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승과 저승이라고 할 정도다. 살림집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동원됐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다 제대로 못하면서 살림집을 지었는데, 다 지으니 우리가 쓸모없어진 거다. 아무 보상도 없이 지방으로 돌려보냈다. 그것도 괜찮다. 조국에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니까. 막상 우리 집에 오니, 어머니는 소토지 농사를 짓다가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하고, 형수는 집을 떠났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쓰레기장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다. 어린 두 조카는 고개도 못 가누고, 쫄쫄 굶고 있지. 형이 죽고 없으니, 이제는 내가 이 집의 세대주가 되어야겠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겁이 난다. 제대군인이라고 배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너무 한심하니까 눈이 뒤집어지는 거”라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평양시 살림집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은“해도 너무 한다. 실내 공사가 안 끝난 곳이라도 높이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다가 자기네 집에 돌아가면 “내가 뭐 하다 온 건가 하고 회의감이 몹시 든다고 했다. 특히 제대군인들은 제 앞으로 땅집 하나 구하지 못해, 부모집이나 형제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소외감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위의 평양’, 창전거리
평양 간부들은 창전거리를 ‘평양 위의 평양’으로 부른다.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에 들어선 화려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살림집을 배정받지 못한 핵심 간부들 사이에 말이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창전거리 살림집에 냉동기와 세탁기를 다 수입제로 들여놓고, 보안도 철저하게 해서 일단 혁명 2세대와 3세대를 입주자로 선별했다. 대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살던 사람들인데, 여기에 뽑히지 못한 간부들도 꽤 많다. 특히 만경대 가문인데도 혜택을 받지 못한 간부들의 반발심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요 당, 정 간부들을 비롯해 체육인, 예술인, 과학자들의 주거지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서 만수대지구 창전거리로 바뀌면서 지역에 따른 새로운 신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라. 십 수 년 동안 같은 거리에 살던 이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창전거리로 이사 가는데, 자기 집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집안과 개인이 당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냐. 아무리 잘 나가던 집안이라도, 끈 떨어진 신세로 비쳐지는 것이 불쾌할 것”이라며, 기존 핵심 계층 사이에서도 창전거리 새 아파트가 위화감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 식량소식
굶어 죽는 안쪽지역 농민들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이른바 ‘안쪽’ 지역에서는 굶어죽는 농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농번기에도 일을 못 나오고, 산나물과 풀을 뜯으러 다니는 농민 세대가 많았다. 옥수수가루를 아껴 먹느라고, 풀에 옥수수가루 한 수저를 넣어 끓인 풀죽으로 목숨 줄을 연명하는 상황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재령군, 봉천군 등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죽이라도 두 끼 먹는 집은 잘 먹는 축에 속한다. 온 하루 굶는 세대가 전체 주민의 절반이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서해안은 6월 20일이 넘어가면서 올감자를 수확할 때이지만, 가뭄 피해로 콩알만한 감자가 많아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고비를 넘겨야 올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햇감자도 이 모양이고, 옥수수도 이삭이 안 여물 것 같아서 정말 큰일이다. 계속 농민들이 죽어가니 애가 탄다”고 걱정했다
회령 성북농장, 절반의 모가 말라죽어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로동자구 성북협동농장에서는 가뭄으로 벼 모판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을 대지 못해 말라 죽은 모가 절반이 넘는다. 식량증산에 힘쓰라는 중앙당의 지시가 거듭 내려오고 있지만, 벼이삭이 얼마나 나올지 농장일군들의 시름이 깊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벼농사 피해는 물론, 밭작물 파종이 늦어져 그 피해 역시 심각하다. 병해충이 증가하는데 농약이 없어 손으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장 관리 대책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회령시당에서는 “올해 농사를 망치면, 관리 일군 전원이 책임지고 법 추궁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뿐이어서 농장일군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함북, 가뭄 피해 옥수수 급감할 듯
함경북도 도당에서는 관내 농장들의 가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함경북도는 산간지대가 많아 옥수수 농사 비중이 큰 데 올 봄 가뭄에 옥수수가 여물지 못하고 다 말라 비틀어져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경북도 농장 일군들은 정보당 2-3톤 정도 예상하는데, 산골을 낀 농촌에서는 1톤도 못 거두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당의 한 간부는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9월이 되어봐야 보다 근거 있는 수확량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나마 황해남북도나 평안남도 지역보다는 괜찮은 편”이라며 씁쓸해했다.
■ 사회
평양 살림집 건설 제대군인들, 고대하던 집에 돌아왔지만
2009년부터 평양 살림집 건설에 투입됐던 군인 일부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돌아온 김병학(가명)씨는 만 4년 만의 귀향이라고 했다. 제대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선군정신의 기치를 받들어 조국이 부여한 임무를 달성하기위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아야했다. 김씨는 그래도 공사가 일찍 끝난 편이고, 현장에 남아있는 동료들도 많다. 그토록 고대하고 바라던 집에 돌아왔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승과 저승이라고 할 정도다. 살림집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동원됐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다 제대로 못하면서 살림집을 지었는데, 다 지으니 우리가 쓸모없어진 거다. 아무 보상도 없이 지방으로 돌려보냈다. 그것도 괜찮다. 조국에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니까. 막상 우리 집에 오니, 어머니는 소토지 농사를 짓다가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하고, 형수는 집을 떠났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쓰레기장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다. 어린 두 조카는 고개도 못 가누고, 쫄쫄 굶고 있지. 형이 죽고 없으니, 이제는 내가 이 집의 세대주가 되어야겠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겁이 난다. 제대군인이라고 배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너무 한심하니까 눈이 뒤집어지는 거”라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평양시 살림집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은“해도 너무 한다. 실내 공사가 안 끝난 곳이라도 높이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다가 자기네 집에 돌아가면 “내가 뭐 하다 온 건가 하고 회의감이 몹시 든다고 했다. 특히 제대군인들은 제 앞으로 땅집 하나 구하지 못해, 부모집이나 형제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소외감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위의 평양’, 창전거리
평양 간부들은 창전거리를 ‘평양 위의 평양’으로 부른다.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에 들어선 화려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살림집을 배정받지 못한 핵심 간부들 사이에 말이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창전거리 살림집에 냉동기와 세탁기를 다 수입제로 들여놓고, 보안도 철저하게 해서 일단 혁명 2세대와 3세대를 입주자로 선별했다. 대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살던 사람들인데, 여기에 뽑히지 못한 간부들도 꽤 많다. 특히 만경대 가문인데도 혜택을 받지 못한 간부들의 반발심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요 당, 정 간부들을 비롯해 체육인, 예술인, 과학자들의 주거지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서 만수대지구 창전거리로 바뀌면서 지역에 따른 새로운 신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라. 십 수 년 동안 같은 거리에 살던 이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창전거리로 이사 가는데, 자기 집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집안과 개인이 당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냐. 아무리 잘 나가던 집안이라도, 끈 떨어진 신세로 비쳐지는 것이 불쾌할 것”이라며, 기존 핵심 계층 사이에서도 창전거리 새 아파트가 위화감을 부추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