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거리의 꽃제비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2006년 9월호
거리의 꽃제비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부모 없는 아이, 봉양해줄 자녀가 없는 노인, 장애인과 가족을 잃고 혼자 된 사람들이 방랑자, 일명 ‘꽃제비’가 되어 북한 전역을 떠돌고 있다. 북한 정부는 이들을 구제소와 양로원을 통해 보호하려고 하고 있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구제소가 취약계층을 더 힘들게 하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꽃제비들 중에 구제소 한 번 안 다녀온 이들이 없는데, 이들은 열이면 열, 구제소에 있으면 배가 너무 고파 죽을 것 같아서 뛰쳐나왔다고 전한다.
꽃제비들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수해의 여파로 꽃제비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수재민들 중에는 아마도 꽃제비로 전락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기존의 꽃제비들 중에 벌써 눈치 빠른 일부는 농촌 시골 마을에서 그나마 먹을 것이 있는 도시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시의 빈민층은 이들의 가세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꽃제비 수의 증가는 그만큼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불안 요소라 할 수 있다. 사회 불안이 높아질수록 사회의 비윤리성 또한 높아진다. 꽃제비들은 사회적 범죄에 취약하며,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쓰러져 죽더라도 더 이상 동정의 눈길을 받기 힘들다. 그렇다고 사회 안정을 위해 북한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일시에 단속해 구제소에 넘기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구제소에 들어가도 굶주림에 못 이겨 얼마 못 버티고 뛰쳐나오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또한 자기들 먹을 것조차 없어 전전긍긍하는 일반 주민들로부터 분담금을 거둬 꽃제비들을 지원하는 방식 역시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일반 주민들조차 매일 끼니 걱정하는 것이 꽃제비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탄식하고 있지 않은가.
꽃제비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체계적인 지원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꽃제비를 지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취약계층을 살리는 것이지만, 동시에 일반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꽃제비들이 더 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예방하는 방비책이기도 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은 곧 사회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에 북한 정부는 더 이상 취약계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제사정이 어렵고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더욱 긴장된 안보문제와 수해와 같은 자연재난 등 여러 내우외환 속에 북한 정부가 취약계층에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북한 정부가 그동안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여러모로 애를 쓴 것은 사실이나 꽃제비는 늘어만 갈 뿐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북한 정부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면 한국 정부가 나서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나중에 북한 정부가 여력이 생겨 취약계층을 직접 보호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때까지 만이라도 북한 정부는 한국 정부와 협력해서 사회의 최약자층을 보호하는 데 힘써주기 바란다. 이를 위해 취약계층의 실태 자료를 한국 정부와 공유하는 일부터 했으면 한다.
한국 정부 역시 북한 정부가 요청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나서서 취약계층을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 바란다. 일단 북한 수해 피해 지원에 있어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취약계층에 대한 지속적인 실태 파악과 취약계층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가 아무리 경색된다하더라도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자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인도적 지원 단체들 역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때 꽃제비들과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기탁 또는 지정기탁을 할 수 있도록 북한 정부와 꾸준히 협의해나가기를 바란다.
■ 경제활동
결핵 병동 치료 대책 마련 시급 -2006년 9월호
결핵 병동 치료 대책 마련 시급
결핵 병동에서 치료 대책이 없어 매달 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약품 공급이 안 되다보니 가족들이 약과 영양 보충 음식을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 결핵이 하루 이틀에 낫는 병이 아니어서 환자는 물론 가족의 고생이 막심하다.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족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게 되어 더 이상 뒷바라지를 못해주면 환자들은 그냥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질병 전문 치료 병원들은 턱없이 부족한 치료설비와 의약품, 식량공급 등으로 거의 80% 이상을 환자 측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돈 없고 먹을 게 없는 환자들은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공급이 잘되던 시절에는 병원에서 환자가 죽으면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린 뒤에 법적 제재가 뒤따르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들의 열의가 높았다. 지금은 병원 운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데, 배급이 없는 의사들은 부업지를 경작해야 해서 근로시간이 줄어든 데다 약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의사들조차 굶기를 밥 먹듯 하게 된 요즘에는 환자가 죽거나 의료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국가에서 공급되는 것이 없어 치료를 못했다고 하면 되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환자와 그 가족들만 병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면서 생활고에 고통 받고 있다
진단서 끊으려면 2만 원 이상 내야 -2006년 9월호
진단서 끊으려면 2만 원 이상 내야
청진시는 비교적 병원 체계가 잘 잡혀 있는데 구역마다 진료소, 병원, 도 병원, 의대병원 등 각종 병원들이 위치해있다. 병원이 많이 있는 편이지만 환자들이 이용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진찰 한 번, 진단서 한 번 받으려면 진료소부터 의대병원까지 상급병원으로 의뢰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상급병원에서 진단서를 받기까지 보통 2만 원 이상의 큰돈이 들기 마련이다. 무상치료가 이처럼 유상치료가 되어버리면서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는 점점 적어지고 있다.
수해 후 돈보다 현물 소유 선호 -2006년 9월호
수해 후 돈보다 현물 소유 선호
수해피해 규모가 커지고 미사일발사 후 국내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자 장사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정세 변화를 주의 깊게 가늠하면서 달러보다 금을 모으는데 몰두하고 있다. 사리원과 같이 곡창지대라 전통적으로 곡물가격이 저렴한 곳에서조차 수해 피해로 쌀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돈의 흐름이 경직되어 있는 형편이다. 반면 금과 같은 현물로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관 바가지요금으로 손님들 불평 -2006년 9월호
여관 바가지요금으로 손님들 불평
청진의 여관들은 보통 하루 숙박비가 100원이지만 방에 비해 손님이 많으면 가격을 올려 받기도 한다. 어떤 군인은 한 여관에 들어가 1,000원짜리 독방을 계약했는데, 3시간 지나 나오니 1,500원으로 값이 껑충 뛰어 여관 측과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였다. 여관의 형편을 보면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세면장과 위생실이 매우 더럽고 한심한 수준이다. 시설은 형편없으면서 돈만 올려 받는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손님들이 많다.
황해남도 장연군, 보석과 해삼 유명 -2006년 9월호
황해남도 장연군, 보석과 해삼 유명
황해남도 장연군은 보석과 해삼으로 유명하다. 이 곳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황해남도에서 비교적 높다.
감람석을 비롯한 수정 같은 자연보석은 100, 200, 300짜리가 있는데 1kg당 5만원, 8만원, 10만원씩 판매되고, 젖은 해삼은 1kg에 5만원 한다. 보석은 주로 라진에, 해삼은 신의주로 나간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다보니 이 지역 출신의 꽃제비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마전 유원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2006년 9월호
마전 유원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수해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있는 반면, 무더운 삼복더위를 잊기 위해 피서지로 달려가는 주민들도 있다. 함경남도 함흥 지역의 마전 유원지가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진 강원도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은 물이 더러워 여름철 피서객들이 마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마전 유원지는 하루 평균 3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어 피서객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8월 1일부터 20일까지 함흥-마전 임시 여객 열차가 운행 중인데 마전 유원지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함흥 시당의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마천령-길주 도로에 강도들 극성 -2006년 9월호
마천령-길주 도로에 강도들 극성
자동차 운행 길 중 마천령과 함경북도 길주 사이의 도로에 강도들이 극성이다. 마천령은 올리고개굽이(오름 고개)가 96개, 내리고개굽이(내림 길)가 136개나 되는 험한 산길이다. 매우 험한 산세와 가파른 마천령길을 지나가야 하는 운전수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잔뜩 긴장하게 마련이다. 올해 6월에는 상품을 가득 실은 콘테이너 차량 두 대가 20미터 간격을 두고 길을 올라갔는데 두 운전사 모두 눈치 챌 겨를도 없이 물품을 몽땅 도둑맞는 사건이 있었다. 힘겹게 산길을 오르다 정점에 다다라 차량을 확인해보니 뒷문이 어느새 파괴되고 문이 열려있었는데 상품이 거의 다 없어졌다. 현재까지 범인이 누군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함흥의 한 무역회사도 냉동차에 녹화기 등의 상품을 싣고 마천령을 넘다가 강도를 당했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차 뒷문이 열려있었고, 녹화기 9대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라진선봉시의 한 군부대 회사 차량 역시 길주 부근 도로에서 잠시 주차한 뒤 식사하러 나갔다 오다 차량에 실었던 짐을 다 털리기도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강도들 때문에 먼 길 떠나는 차량에는 몸싸움이 가능한 젊은 남성들이 함께 타기도 한다.
전쟁 분위기 때문에 후불 아니라 직불 결재 -2006년 9월호
전쟁 분위기 때문에 후불 아니라 직불 결재
중국과 무역 거래를 하는 무역회사들이 후불이 아닌 직불 거래를 하게 되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함흥의 한 무역회사 지도원은 청진에 상품을 가지러 갔다가 예정일보다 일주일 이상 더 머물러야 했다. 그동안 후불로 중국에서 상품을 들여왔는데, 이번에는 상품을 넘겨받는 즉시 현금을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조선에 전쟁이 나면 돈을 못 받는다고 직접 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없는 돈이 갑자기 어디서 생기겠냐며, 괜한 전쟁 바람 때문에 장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며 탄식했다.
차 승객 끌어 모으는 ‘몰이꾼’ 등장 -2006년 9월호
차 승객 끌어 모으는 ‘몰이꾼’ 등장
함흥과 사리원을 왕복하는 교통편을 이용하려다보면 사람들을 차량에 데려다 태우는 일명 ‘몰이꾼’이라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한 차에 승객들을 다 채우는 역할을 하는데, 다 태우면 5-8천원의 현금을 받는다. 각 차량들은 승객들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몰이꾼을 보통 1-3명가량 고용한다. 저마다 자기 차에 더 태우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청진 비봉회사, 전국에 주류 유통 판매 -2006년 9월호
청진 비봉회사, 전국에 주류 유통 판매
청진에 있는 비봉회사에서는 상품을 수입해 전국 각 지역에 유통시키고 있다. 상품은 주로 주류 제품과 마른 낙지(오징어) 등을 취급한다. 가격은 다음과 같다.
마른낙지(마른 오징어) 상급-8,500원, 중급-8,000원, 하급-6,500원(kg)
오미자 통술 2.5리터 – 2,850원, 1.5리터 – 1,850원
구기자 통술 1.5리터 – 1,880원
청옥소주 2리터(8개) – 2,375원, 1지함(1상자) – 19,000원
구기자병술 20병 – 1,650원, 1지함(1상자) – 33,000원
산딸기병술 20병 – 1,650원, 1지함(1상자) – 33,000원
청옥병술 20병 – 1,600원, 1지함(1상자) – 32,000원
복숭아쥬스 15병 – 10,200원
정품(쥬스, 레몬쥬스) 12병 – 7,100원
시내의 거의 모든 돈은 국가 은행이 아니라 비봉회사와 같은 무역기관 외화벌이단위와 개인 장사꾼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개인들의 도매장사도 매우 활발한데, 개인이 서비차를 가지고 청진, 함흥, 평성 등 전국 주요 도시를 비롯한 각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장사 거래를 한다. 이 때 서비차 운영비가 많이 드는 편인데, 청진에서 함흥까지 1.5톤의 짐을 싣고 가려면 약 16만 원 이상의 돈이 든다.
■ 여성/어린이/교육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단천으로 몰려 -2006년 9월호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단천으로 몰려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수해로 열차운행이 마비되고 수해 피해가 커져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단천시로 몰리고 있다. 그동안엔 농촌 시골 마을에 나가 감자나 오이, 토마토 등을 훔쳐 먹으며 살았으나 수해 피해 여파로 농촌에서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어 도시로 나오고 있다. 단천 지역에는 아연, 연, 금 정광 등을 제련하는 제련소가 있어 꽃제비들이 공장구내에 들어가 각종 광물을 훔쳐 팔고 있다. 꽃제비들은 보통 무리를 이뤄 하룻밤 새 50-60kg씩 훔쳐내어 1kg에 500원씩 받고 판다. 이러한 무리가 보통 8-10개조 이상 있다.
해주 꽃제비들 형편이 제일 어려워 -2006년 9월호
해주 꽃제비들 형편이 제일 어려워
해주는 황해남도 도 소재지이나 빈부차이가 심하고 일반 주민들의 생활형편이 매우 어렵다. 쌀과 고기가 많은 어미지향(魚米之鄕)으로 불렸던 도시였고 쌀값도 싼 편이어서 올 수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일 비싼 쌀이 1kg에 700원을 넘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주민들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시장의 상품들은 다른 지역보다 비싸서 아주 곤궁한 편이다.
자체 발전을 하던 시멘트 공장이 멎어버려서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겪는데다 바다에서 나는 바지락 등의 수산물은 외화벌이 단위가 독점해 냉동 설비가 있는 중국 배에 모두 넘겨버려 해주는 변변한 생산물이 없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교통도 불편한 곳이어서 외지의 장사꾼들도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꽃제비가 없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해주 꽃제비들의 형편이 제일 어려운 편에 속한다.
신발 하나 없이 맨발로 다니는 꽃제비들이 많고, 손과 발, 얼굴이 모두 퉁퉁 부어있거나 헐어서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상처투성이 아닌 꽃제비들이 없고, 영양실조에 걸려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50여 명이 넘는다. 황해남도에서는 도 자체적으로 꽃제비 구제 사업을 하고 있으나 꽃제비들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양로원에서조차 학대받는 노인 늘어 -2006년 9월호
양로원에서조차 학대받는 노인 늘어
지난 시기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가했거나 건설장, 직장, 군대에서 퇴역한 노인들 중에 봉양해 줄 자녀가 없거나 자녀의 천대를 피하기 위해 양로원을 찾는 노인들이 많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스스로 양로원에 발을 들여놓은 노인들이라 해도 막상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양로원 시설은 둘째 치고 먹을 게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식사는 옥수수와 배추, 소금국이 전부인데 그마저 150g이 채 안 되는 작은 양이어서 노인들은 곧잘 배고픔을 하소연한다.
노인들은 부업 밭에 나가 옥수수, 조, 기장, 남새(채소)를 가꾸기도 하는데 노인들의 자체 식량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생산물은 상당부분 직원들에게 가고, 명절에나 겨우 공급받는 정도이다. 말이 부업 밭이지 일이 너무 힘들고 고되다보니 노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로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 중에는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심하게 욕설을 하고 끼니를 줄이는 등 학대를 일삼기도 한다. 이를 참지 못해 나온 노인들은 꽃제비가 되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매대나 시장, 식당 앞에서 구걸로 살아가게 된다.
청진에서도 이런 꽃제비들이 늘어가고 있다. 식당이나 강가의 음식 매대 주변에는 꽃제비들과 양로원에서 나온 노인 꽃제비들로 늘 붐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은 자녀들, 자녀의 학대를 피해 나온 노인들, 가족 없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꽃제비 생활을 하는데, 이들은 주로 시내의 시장들이나 송평, 수남, 라남 역 앞, 또는 근교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거나 도적질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린아이들은 시내 구제소에 데려놓아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달아나 다시 꽃제비 생활을 한다. 구제소에 있으면 배가 너무 고프고 일만 시키기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은 술손님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얻어먹거나 강가의 모래, 재무지, 풀밭 등지에서 잠자는 식으로 그날그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사리원의 꽃제비들 -2006년 9월호
사리원의 꽃제비들
사리원 시내에는 꽃제비들과 도적들이 너무 많아 ‘대낮에도 코 떼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시장에는 어린 꽃제비들이 13-15명씩 무리지어 다닌다. 아이들의 행색을 보면 맨발로 다니거나 해진 옷,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아무렇게 걸치고 다니는 등 처참한 모습이다. 사리원에도 구제소가 있으나 여기도 역시 배가 너무 고파 곧 뛰쳐나오고 만다. 주민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보면서도 다들 사는 게 힘들다보니 이 아이들에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올해 아홉 살인 한 여자아이는 평안북도 출신인데, 5살 되던 해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사리원 역 앞에 자기를 버려두었다고 한다. 그 후 사리원에서 지금까지 4년 동안 시장에서 걸식하거나 음식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끼니를 근근이 해결하며 살아오고 있다. 여름에는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겨울에는 보일러가 있는 곳에 몰래 숨어들어가 욕을 먹더라도 새우잠을 자는 식으로 살아왔다. 열두 살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배곯는 일이 많아지자 집을 나왔다. 구걸과 도적질로 살아가고 있는데 잠은 주로 다리 밑이나 유원지 등에서 잔다. 사리원 역 앞에서는 이런 어린 꽃제비들과 함께 “10원만 주시오”라며 구걸 다니는 노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 시선집중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단천으로 몰려-2006년 8월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단천으로 몰려
함경남도 꽃제비들은 수해로 열차운행이 마비되고 수해 피해가 커져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단천시로 몰리고 있다. 그동안엔 농촌 시골 마을에 나가 감자나 오이, 토마토 등을 훔쳐 먹으며 살았으나 수해 피해 여파로 농촌에서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어 도시로 나오고 있다. 단천 지역에는 아연, 연, 금 정광 등을 제련하는 제련소가 있어 꽃제비들이 공장구내에 들어가 각종 광물을 훔쳐 팔고 있다. 꽃제비들은 보통 무리를 이뤄 하룻밤 새 50-60kg씩 훔쳐내어 1kg에 500원씩 받고 판다. 이러한 무리가 보통 8-10개조 이상 있다.
해주 꽃제비들 형편이 제일 어려워
해주는 황해남도 도 소재지이나 빈부차이가 심하고 일반 주민들의 생활형편이 매우 어렵다. 쌀과 고기가 많은 어미지향(魚米之鄕)으로 불렸던 도시였고 쌀값도 싼 편이어서 올 수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일 비싼 쌀이 1kg에 700원을 넘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주민들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시장의 상품들은 다른 지역보다 비싸서 아주 곤궁한 편이다. 자체 발전을 하던 시멘트 공장이 멎어버려서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겪는데다 바다에서 나는 바지락 등의 수산물은 외화벌이 단위가 독점해 냉동 설비가 있는 중국 배에 모두 넘겨버려 해주는 변변한 생산물이 없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교통도 불편한 곳이어서 외지의 장사꾼들도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꽃제비가 없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해주 꽃제비들의 형편이 제일 어려운 편에 속한다. 신발 하나 없이 맨발로 다니는 꽃제비들이 많고, 손과 발, 얼굴이 모두 퉁퉁 부어있거나 헐어서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상처투성이 아닌 꽃제비들이 없고, 영양실조에 걸려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50여 명이 넘는다. 황해남도에서는 도 자체적으로 꽃제비 구제 사업을 하고 있으나 꽃제비들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