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목숨만 보존한다면 봄이 올 것이다
목숨만 보존한다면 봄이 올 것이다” 겨울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면서 함경북도 청진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럽게 새 봄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오고 있다. 봄을 기다리며 나온 말이 바로 “버티자, 버티자, 버틸 수밖에 없다”이다.
전기 없이 물을 길어먹고,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 땔감이 없어 2-3일에 한 번꼴로 겨우 난방을 하는 등 지난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혹독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덮쳐 행여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보내왔다. 이러다 올 겨울 꼼짝 못하고 죽는 게 아니냐며 거의 자포자기했던 청진 주민들이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때였다.
이 때 약 열흘 분량의 식량이 풀렸다. “이 쌀을 옥수수나 다른 잡곡으로 바꾸면 어찌 어찌 한 달은 버틸 수 있다. 여기에 더 아껴서 쓰면 4.15 태양절까지도 버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계산하는 주민도 있다. 이런 계산 밑바탕에는 태양절에 좀 더 많은 식량을 공급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깔려있다. 2.16 명절에도 최소 4일 분량을 공급해주었으니, 태양절에는 더 많이 공급하지 않을까 하는 게 모두의 기대이자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그래서 요즘 주민들은 “목숨만 보존하면 봄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위안삼아 막바지 추위를 견디고 있다.
청진, 현지지도로 식량가격 하락세
함경북도의 식량가격이 지난 2월 초순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kg당 1,000원대를 유지하던 쌀이 850-900원까지 떨어지고, 옥수수도 kg당 250원으로 떨어졌다. 함경북도의 물가는 청진 물가에 영향을 받는데, 청진시의 식량가격이 떨어진 데 따른 연쇄 작용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함경북도 청진시 화력발전소, 수성천발전소 등의 현지 지도와도 관련이 있다. 현지 지도 지역 주민들에게 군량미를 풀어 약 10일 분량의 입쌀을 공급했던 것이다.
입쌀이 워낙에 비싼데다 환자나 특수명절, 생일에나 한 번 맛볼 수 있는 고급사치품으로 여겨져, 공급받은 전량을 모두 시장에 내다 판 주민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일반 주민들은 공급받은 쌀을 팔아 그 돈으로 옥수수나 더 싼 곡물을 구매했다. 이런 이유로 쌀 공급량이 늘어나 쌀 1kg에 150-200원 가량 떨어지게 되었다.
금 채취 작업소 사고로 15명 사망
지난 2월 26일, 함경북도 회령시 오류리에 위치한 금 채취 작업소에서 굴 붕괴로 매몰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18명 중 1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명은 뒤늦게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 중이다.
피해자 가족 대부분은 한 달 2,500-3,000원의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빈곤가족들이다. 회령시에서는 사망자 가족에게 흑색 텔레비전 한 대씩 공급하는 것으로 하고 사고를 수습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아무리 값이 없는 천한 백성이라 하여도 어찌 사람 목숨을 TV한 대로 대신할 수 있냐”며 TV를 안고 시당 정문 앞에 앉아 밤샘을 불사하며 식량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 경제활동
“특수명절은 특수부문이 좋아하는 명절”
“특수명절은 특수부문이 좋아하는 명절”
북한에서도 5일의 긴 명절이 끝났다. 지난 2월 16일 명절로 이틀 쉬고, 음력설인 2월 18일에 연이어 사흘을 휴식했다. 이 때 배급표 대상자에 한해 각각 이틀 분량의 쌀과 밀가루 등 총 4일분을 국정가격에 공급하고, 부양가족에게는 600원씩에 공급했다. 국정가격으로 쌀은 1kg당 44원, 밀가루는 42원씩이었다. 식료품 상점과 공업품 상점에서는 세대 당 양초 1대, 1인당 콩기름 50-100g, 달걀 1알, 과자 500g, 사탕 500g, 술 1병, 콩나물 1kg, 양말 한 켤레, 수건 1장, 운동화 1켤레 등을 공급했다. 물론 각 기관 기업소의 사정에 따라 공급물품이 다르지만, 내용물은 대체로 비슷하다.
특별히 공급을 잘 해주는 기업소는 외화벌이 단위, 세관, 호텔, 보안서, 보위부, 학교, 병원, 그리고 사적관 등이다. 이들에게는 쌀 1포대 50kg, 돼지고기 일인당 1kg, 기름 1kg, 옷 한 벌씩을 공급했다. 이번 명절 공급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주민들은 각종 외화벌이 사업에 동원됐었다. 일반 주민들은 외화벌이 사업이나 각종 노력동원으로 고생만 하고, 실제 좋은 공급물품은 특수부문 사람들이 다 가져간다며 “특수명절은 특수부문이 좋아하는 명절”이라고 냉소했다.
자동차 충전지 절도사건 빈발
자동차 충전지 절도사건 빈발
전력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동차 충전지 절도 사건이 잇따라 당국이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기부족으로 자동차 충전지를 이용해 조명 및 기타 필요 전기를 확보하는 사람들은 충전지 간수에 비상이 걸렸다. 충전지 한 개당 보통 10만원-15만원, 최대 20만원까지 거래되기 때문에 충전지 절도에 성공만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절도자들이 많다. 절도 사건이 빈번해지자 자동차 소유주들은 자동차를 밖에 놔두지 못하고 집 안방에까지 모셔둘 판이다. 까딱 잘 못하다간 충전지는 물론 다른 부속품마저 잃게 되어 파철 덩어리만 남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보안서는 차 부속품 절도자 뿐만 아니라 장물을 매입한 사람들까지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이런 내용의 대민 강연을 하고 있으나, 절도 사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일반 전기 사정이 풀리기 전에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큰 이익이 생기는 데 훔칠 능력만 된다면 누구라도 훔쳐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국 자동차 주인들이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
평양 간부,“10년 동안 계속 못 살았는데 무얼 믿겠나?”
평양 간부,“10년 동안 계속 못 살았는데 무얼 믿겠나?”
북한 현실에 대한 불안은 비단 일반 주민들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불안감은 오히려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커진다. 평양의 한 간부는 간부들과 이른바 엘리트 계층의 응집력이 와해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권력 구조와 돌아가는 체제의 양상을 잘 알면 알수록 절망감이 깊어지고, 급기야 체념하게 된다고 했다.
간부들 사이에 “살 구멍은 자기가 찾아야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도 벌써 10여 년이 넘었다. “사회주의를 믿고 따라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사회주의는 허울뿐이다. 현재의 체제는 철두철미 사회주의와 인연이 먼 체제이며 모두 배신당한 그런 느낌을 감추지 못한다. ‘아니 이거 사회주의여?’ 이렇게 서로 서로 조용하게 얘기한다. 그러면 ‘글쎄 나도 모르겠어요’ 이런다. 10여 년 동안 계속 못 살았는데 무얼 믿겠나?”라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에 따르면 경제난이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사상동요가 생겼다. 특히 당 간부, 군 간부, 내각 성원 등 이른바 지도층에서도 누구나 다 사상 동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그 대표적 예로 간부들의 보신주의(保身主義)를 들었다.
“예전에는 당원들이 감히 무슨 보신이냐. 자기 한 몸 바쳐서 수령을 위해 희생해야지 이랬다. 이제 보신주의가 하나의 추세가 된 지 오래됐다. 보신주의라는 게 무엇인가. 창발성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런다. 간부들이 창의성, 창발성이 없다. 어느 간부나 마찬가지다. 자기 자리만 지킨다. 자리에 있을 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이나 벌어서 실익을 챙기자는 거다. 그 자리는 영구한 게 아니니까 그 자리 물러나도 살아갈 수 있게 돈을 저축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너 돈 얼마나 모았나? 이렇게 물어보는 정도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살겠는데. 생존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니까. 그건 부패라고 할 수 없다. 생존방식이다”고 했다. 만약 한 자리 하고 있을 때 돈벌이를 못하면 자리 물러날 때 생활이 처참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지만, 사상전을 아무리 강화해봤자 이 총체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병들, 한 겨울에 여름 옷 입고 근무
사병들, 한 겨울에 여름 옷 입고 근무
추운 겨울, 일반 사병들의 고생이 막심하다. 여름옷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는 사병들이 있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들일수록 처지가 딱하다. 선임병들이 신병에게 지급된 솜옷을 뺏어 가면 대꾸 한 마디 못한 채 여름옷으로 한 겨울을 나야 한다. 얇은 옷으로 야간근무를 하다 보니 전신동상에 걸려 결국 입원하는 병사들도 속출한다. 물론 군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집에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동복을 보내준다. 반면 집이 가난하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군인들은 차라리 춥고 말지, 배고픈 것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한다. 군량미는 부족하고, 눈 덮인 겨울 산에서 먹을 것을 찾기가 어려워 병사들은 늘 굶주린 상태다. 상관들이야 직위를 이용해 후방물품을 빼돌리기라도 한다지만, 사병들은 민가에 내려가 약탈하지 않는 이상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동복(冬服)은 물론 군화, 허리띠, 모자 등 지급받은 물건을 닥치는 대로 시장에 내다판다. 이에 경무부에서는 여러 차례 보안서와 합동으로 시장에서의 군품 매매 단속에 나섰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무부는 행여 탄약이나 무기까지 시장에 흘러들어가지 않을지 우려하며 단속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어찌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
“어찌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행여 자녀가 영양실조에 걸리지나 않을지 늘 노심초사한다. 게 중에는 자녀를 어떻게든 빨리 제대시키려고 동분서주하는 열성적인 부모들도 있다. 의무제다보니 마지못해 군에 입대시켰으나 먹지 못하는 고생이 막심해 뇌물을 주고 빼내려고 애쓴다. 대부분 대학 추천을 받거나 감정제대, 정 안되면 불명예제대나 다름없는 생활제대라도 할 수 있게 손을 쓴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어느 마을에서는 군입대한 지 8년 만에 표창 휴가 나온 젊은이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축하해주기 위해 그 집에 모였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다들 기분 좋게 갔다가 막상 얼굴을 보자 차마 반갑다는 인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주민에 따르면 청년의 몰골이 너무 형편없이 마르고 험상궂어 눈이 미안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병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 없는 산골짜기 탄광에서 총 대신 곡괭이 들고 석탄 캐는 일을 하다 왔다. 북창 화력발전소에 공급하는 탄을 캐는 중소 탄광들에는 주로 군인들이 배치되어있다. 병사들은 오소리 굴처럼 사람 한 명 겨울 들어갈 만한 갱에서 탄과 씨름해야 한다. 밥이라곤 주먹밥 한 덩어리 정도이고, 제대로 된 ‘노동보호물자’ 하나 없이 맨몸으로 일해야 하니 건강 상태가 급속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결한 주위 환경으로 병에 취약한 조건이다.
그 병사는 “장군님께 충성 다 하는 참된 혁명 전사가 되자!”, “장군님 전사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일했지만, 결국 영양실조에 걸렸다며 허탈해했다. 주민들은 딱한 그의 모습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어찌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국경지역 외화벌이 회사 일대 검거 선풍
국경지역 외화벌이 회사 일대 검거 선풍
함경북도 국경연선지역에는 계속해서 단속과 검거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달 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의 지시에 따라 이 지역 외화벌이 회사들이 전격 해산된 데 이어 불법 행위가 드러난 회사 일꾼들에 대한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당국은 약 220여 명의 주요 일꾼들을 연행해 자금의혹 및 정보유출 등의 문제를 집중 수사했다. 대부분의 무역회사들이 회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얼음(빙두) 판매에 뛰어들어 불법적으로 자금을 조성해왔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서 무사히 비껴간 곳이 거의 없다. 이 결과 60여명이 구속 수감되어 징역형이 선고되었으며 이 중 10여 명이 간첩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평양 압송자들은 대부분 중국 회사와 거래하면서 중국 공안 당국에 정보를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